Polarnacht/국가/러시아 사회주의 연방 소비에트 공화국

[ 극야 : 혁명의 잔재 ]
[ 4대 팩션 ]
PATRA Commonwealth of Nations SchutzBündnis Pacte de La Rochelle
러시아 사회주의 연방 소비에트 공화국
Российская Социалистическая Федеративная Советская Республика
국기 국장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Пролетарии всех стран, соединяйтес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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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국명(한국어)
러시아
국명(러시아어)
Российская
상징
국기
빈칸
국화
해바라기
국장
낫과 망치
역사
1911년 신해혁명
1917년 호법전쟁
1920년 2차 호법운동
1926년 제 1차 북벌
1931년 복건사변
지리
수도
페트로그라드 (1917년~1918)
모스크바 (1918년~)
위치
지구
동유럽-북아시아
주변국
연방 구성국
카자흐 자치 사회주의 소비에트 공화국, 우크라이나 사회주의 소비에트 공화국, 카렐리야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유럽 접경국
핀란드 왕국, 스웨덴령 에스토니아, 발트연방, 리투아니아-루테니아 연합왕국, 우크라이나 헤트만국
아시아 접경국
조지아 민주공화국, 아제르바이잔 민주 공화국, 러시아 극동 민주 연방 공화국, 중화민국 안복구락부, 대한제국, 일본 사회주의 제국
정치 · 경제
정치 체제
중앙집권적 사회주의 (볼셰비키-레닌주의)
공화제, 민주집중제, 연방제, 일당제
국가 원수
(인민위원장)
공석
행정 수반
(부인민위원장)
게오르기 퍄타코프
경제 체제
사회주의 경제 체제
통화
소련 루블 (руб.)

1917년 10월 혁명으로 시작된 러시아 사회주의 연방 소비에트 공화국은 역사상 최초로 생존에 성공한 사회주의 공화국이자, 굳건한 사회주의의 요새로 알려져 있습니다. 비록 대전쟁과 적백내전으로 이어진 기나긴 전쟁 그리고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으로 인한 방대한 동부 유럽 영토의 상실은 러시아를 황폐화했으나, 연방은 신경제정책 'NEP'를 통해 전쟁의 종식과 기아의 위기에서 벗어나 가까스로 힘을 회복하였습니다.

1924년 레닌 사후 인민위원장직을 계승한 트로츠키는 레닌의 이상과 혁명정신을 이어받았으며, 레닌의 유언에 따라 당과 정부를 분리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비록 소비에트 민주주의가 레닌이 남긴 1국 1당 원칙과 당의 반대로 완벽하게 이루어지지 않았음에도, 민주집중제 체제가 형식상의 민주주의가 아닌 고등 민주주의 체제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트로츠키 영도하에 이루어진 '인민경제발전오개년계획'은 대성공으로 완결되어 낙후된 농업국가 러시아를 강대한 공업 대국으로 만들어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고, 러시아 사회주의 연방 소비에트 공화국을 다시 세계열강의 무대로 올려주었습니다. 최근 일어난 레프 트로츠키 암살 사건으로 정치적 혼란을 겪고 있음에도, 레닌과 트로츠키의 유산은 소비에트 연방을 견고하고 강력하게 유지할 것입니다.

인생은 아름다워라!

개요

러시아 사회주의 연방 소비에트 공화국 (Российская Социалистическая Федеративная Советская Республика) 통칭 소비에트 러시아는 동유럽과 북아시아에 존재하는 국가이다. 세계 최초이자 역사상 가장 오래된 사회주의 공화국이며,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의 구성국 중 하나이다.

1933년의 상황

  • 인민경제발전오개년계획

인민경제발전오개년계획은 5차 소비에트 대회에서 예브게니 프레오브라젠스키의 이론을 바탕으로 한 급격한 산업화와 경제성장을 위한 정책을 의미합니다. 극도로 좌경모험주의적인 정책이라 비판받았음에도 5년의 계획량을 4년, 108%로 초과하며 위대한 혁명 과업 완수를 이루어냈습니다. 이제는 연방을 지탱하는 주요한 경제정책으로 발전했습니다. 자본주의 열강들은 우리를 두려워하고, 사회주의 국가들은 우리를 우러러 보고 있습니다. 드디어 우리는 세계 무대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계획은 법, 할달량 달성은 의무, 할달량 초과는 영광!'

  • 레프 트로츠키 암살 사건

1932년 10월, 오개년계획의 성공을 공식적으로 발표하기 위해 연설장에 선 트로츠키를 향해 울려 퍼진 두 발의 총성을 시작은 거대한 혼란을 일으켰습니다. 암살 사건의 충격으로 인민위원평의회와 당중앙이 머뭇거린 사이, 통합정치국은 광범위한 압수수색을 벌였고 붉은군대는 현장과 당정에 헌병대를 투입했습니다. 하나 둘씩 인민위원과 당원들이 무혐의로 판명되고 통합정치국과 붉은군대의 월권행위에 대해 논란이 점화되었으나, 걷잡을 수 없이 커져버린 두 기관의 영향력은 상황을 복잡하기만 합니다. 인민위원평의회와 두 기관의 협상 끝에 결론이 났음에도 현장에선 아무런 진전조차 없는 채 시간만 흘러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짧지 않았던 억압은 인민들의 여론을 분노케 했고, 그들의 월권 행위는 반드시 심판받을것입니다.

  • 전연방 공산당 내부 파벌

혁명 이후 수 많은 정당들이 등장했음에도 아직까지 남아있는것은 공산당뿐입니다. 레닌이 선언한 1국 1당 원칙에 의거하여 당을 통합하거나 반대로 트로츠키가 주장한 소비에트 민주주의에 의거하여 분할하려는 시도는 꾸준히 존재해왔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많은 좌절에도 당원들은 포기하지 않고, 모두 각기 다른 마음을 품고 본심을 숨기며 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 전연방 공산당 중앙파

트로츠키가 이끄는 좌익파와 그에 편승한 민주집중파 그리고 스베르들로프의 관료그룹까지 합류하여 시작된 중앙파는 볼셰비키-레닌주의의 신봉자이자 트로츠키의 계승자입니다. 중앙파의 대부분은 트로츠키의 유산을 매우 긍정적인 평가하나, 연합파벌이라는 특성상 오개년계획과 소비에트 민주주의에 대한 해석으로 당중앙은 크게 엇갈리기 시작했습니다. 고착된 관료화 문제가 일으키는 자기모순은 이들을 좀먹기 시작했고, 트로츠키 암살 사건 이후 벌어진 소동으로 중앙파의 위신은 크게 실추되었습니다. 당중앙-중앙통제위원회 공동 총회를 앞두고 중앙파의 세 후계자들이 바라보는 서로 다른 트로츠키의 이상이 충돌하며 분열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 당중앙-중앙통제위원회 공동 총회

정부와 당을 분리하려는 레닌과 트로츠키의 노력에도 인민위원장을 선출하는 유일한 조직은 공동 총회입니다. 이러한 경향은 트로츠키 암살 사건 이후 강화되었고, 당중앙과 중앙통제위원회를 장악한 중앙파를 제외하면 선출 이전에 이루어지는 후보 등록조차 불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교조주의적인 트로츠키주의를 주장하는 레닌그라드파의 카를 라데크, 수정주의적 견해로 소비에트 민주주의에 집중하는 좌공파-민주집중파의 게오르기 퍄타코프, 마지막으로 모험주의적 성향의 정치인과 군부로 이루어진 소장파의 레프 세도프까지 현재 세 후보만이 등록된 상태입니다. 오는 2월 10일, 이 세 후보간의 경합 끝에 단 하나만의 후보만이 당선될 것이며, 이는 곧 새로운 소비에트 연방 인민위원장의 선출로 이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