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장:로시아/2: 두 판 사이의 차이

(문서를 비움)
태그: 비우기
 
(사용자 2명의 중간 판 293개는 보이지 않습니다)
1번째 줄: 1번째 줄:
== 세계관 준비 1 ==
=== 이라크 이란 침공 ===
{{나무위키 전쟁 정보
| 너비 = 400px
| 전쟁 이름 = 이라크·이란 침공<br/><small>Britain Invasion of Iraq·Iran</small>
| 사진 = 이라크전쟁.jpg
| 범례 너비 = 25%
| 시작일 = 1939년 3월 1일
| 종료일 = 1940년 4월 14일
| 장소 = 이라크, 이란 전역, 영국령 팔레스타인 동부
| 원인 = 영국의 석유 수입 불안정, 소련의 중동 진출 견제
| 결과 = 이라크·이란 연합군의 패배, 이라크·이란에 민주 공화국 수립, 쿠르드족 자치 공화국 건국
| 영향 = 탈식민주의 운동 전개
| 교전국1 이름 = 영국
| 교전국2 이름 = 이라크·이란 연합
| 교전국1 상세 = [[파일:유니언 잭.png|20px]] 영국
| 교전국2 상세 = [[파일:이라크 국기.svg|20px]] 이라크 왕국<br/>[[파일:이란 국기.svg|20px]] 이란 제국
| 지휘관1 = [[파일:유니언 잭.png|20px]] 네빌 체임벌린<br/> [[파일:유니언 잭.png|20px]] 조지 6세
| 지휘관2 = [[파일:이라크 국기.svg|20px]] 가지 1세<br/>[[파일:이란 국기.svg|20px]] 팔라비 1세
| 병력1 =
| 병력2 =
| 피해1 =
| 피해2 =
}}
{{-}}
==== 개요 ====
'''이라크·이란 침공'''(Britain Invasion of Iraq·Iran)은, 1939년 3월 1일부터 1940년 4월 14일까지 1년간 영국과 이라크·이란 연합군 사이에 벌어진 전쟁이다.


==== 배경과 진행 ====
소비에트 연방의 정치적 혼란으로 반(反)스탈린파가 우크라이나 지방에서 반란을 일으킨 가운데, 영국의 총리 체임벌린은 시종일관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였다. 그러나 반란군이 불리한 상황에서, 대공황 회복에만 집중하는 체임벌린에 반대하는 주전론자들이 내각 불신임안을 결의하여, 체임벌린을 사임시키고 윈스턴 처칠을 수상 자리에 오르게 하였다.<br/>
<br/>
영국의 새 수상이 된 윈스턴 처칠은 석유 수입이 불안정한 현재 상황을 극복하고, 자신을 지지하는 주전론자들을 만족시키고자 이라크와 이란에 압박을 가하였다. 또한 처칠은 소비에트 연방의 내전을 주시하며, 소련과 국경으로 맞닿아 있는 이란에 특히 관심을 들였다.<br/>
<br/>
이러한 상황에서 이라크 북부의 쿠르드족 독립운동이 심화되자 영국은 중재와 영국령 쿠웨이트의 보호를 빌미로 하여 이라크를 침공하였다. 반쯤 문맹인데다 무능했던 이라크의 국왕은 국민의 대부분을 전쟁에 동원해 전쟁 초기엔 오히려 이라크가 요르단 지방을 점령하기도 하였으나, 곧 수도 바그다드를 제외한 전 국토가 영국의 수중에 떨어지게 되었다.<br/>
<br/>
이란 역시 비슷한 명목으로 침공당하였고, 초기에는 나름대로 버텼으나, 영국령 인도의 참전으로 인해 양면전선이 형성되어 얼마 가지 못하고 1940년 4월 14일, 수도 테헤란에서 맺어진 평화협상으로 인해 이라크와 함께 영국의 괴뢰국으로 전락하였다.<br/>

2023년 6월 15일 (목) 13:59 기준 최신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