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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text-align: center; margin-top: 10px; margin-bottom: 10px; font-size: 14pt; color: #CFA547; font-family: Noto Serif KR">"여소야대 정국의 출범"</div> | <div style="text-align: center; margin-top: 10px; margin-bottom: 10px; font-size: 14pt; color: #CFA547; font-family: Noto Serif KR">"여소야대 정국의 출범"</div> | ||
선거 결과 신한국당 125석, 새정치국민회의 74석, 자유민주연합 50석, 변화당 22석, 통합민주당 12석, 무소속 16석으로 | 선거 결과 신한국당 125석, 새정치국민회의 74석, 자유민주연합 50석, 변화당 22석, 통합민주당 12석, 무소속 16석으로 신한국당이 선전한 반면 새정치국민회의가 부진하였다. 자유민주연합은 충청 지역주의를 활용하고 민정·공화계 인사를 영입함으로써 충청권은 물론 대구, 강원에서 선전을 보였고, PK 출신들로 구성된 통합민주당은 12석으로 원내교섭단체를 상실해 입지가 불투명해졌다. | ||
한편 지역주의 타파, 정치 개혁으로 돌풍을 일으킨 변화당은 수도권에서만 22석을 확보하며 자유민주연합 다음으로 | 한편 지역주의 타파, 정치 개혁으로 돌풍을 일으킨 변화당은 수도권에서만 22석을 확보하며 자유민주연합 다음으로 선전했다. 국내에서는 생소한 군소정당임에도 불구하고 의석을 20석 넘게 확보했다는 것은 기성 정치에 실망한 유권자들의 결집이 컸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영남권 출신 국회의원들이 결성한 무당파국민연합은 17만 표를 얻고도 원내 입성에 실패했으며 대한민주당, 친민당, 21세기한독당은 아예 1%도 넘지 못해 등록 취소를 받게 되었다. | ||
<div id="toggle-15thExitPolls" class="toggleBtn" data-target="collapsible-15thExitPolls" style="text-align: left; margin-top: 10px; margin-bottom: -5px; font-size: 18pt; color: #CFA547; font-family: Noto Serif KR">{{bold|출구조사}}</div><span style="display: inline-block; margin-left: auto; margin-right: auto; margin-bottom: -5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 linear-gradient(to bottom, transparent 45%, #CFA547 45%, #CFA547 55%, transparent 55%); width: 100%"></span><div id="collapsible-15thExitPolls"> | <div id="toggle-15thExitPolls" class="toggleBtn" data-target="collapsible-15thExitPolls" style="text-align: left; margin-top: 10px; margin-bottom: -5px; font-size: 18pt; color: #CFA547; font-family: Noto Serif KR">{{bold|출구조사}}</div><span style="display: inline-block; margin-left: auto; margin-right: auto; margin-bottom: -5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 linear-gradient(to bottom, transparent 45%, #CFA547 45%, #CFA547 55%, transparent 55%); width: 100%"></span><div id="collapsible-15thExitPolls"> |
2023년 5월 20일 (토) 15:59 판
★★★★★ 3.5 / 5
변화의 시대는 "만약 새로운 정치 세력이 등장했다면?"을 바탕으로 제작된 시즌제 대체역사물입니다.
모든 설정은 공식이자 허구임을 밝히며, 자세한 정보는 각 링크를 참고하십시오.
개요 · 선거 과정 · 참여 정당 및 후보자 · 선거 결과 · 여담 |
대한민국의 주요선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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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펼치기 · 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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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대 국회의원 선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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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 299석 / 과반: 150석 | ||
실시일: 1996년 4월 11일 | ||
투표율: 63.9% (▼ 8.0%p) | ||
← 제14대 | 제15대 | 제16대 → |
신한국 125석 (41.8%) (24.7%) 74석 국민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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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 | 지역구 | 비례대표 | 총합 | 비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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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4월 11일에 치러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로, 20세기에 치러진 대한민국의 마지막 선거이다. 63.9%의 득표율을 기록했고 의원 정수는 지난 총선과 동일한 299명으로 지역구는 16석 늘어났지만 전국구가 16명 줄었다. 이번 총선에서는 1인 1표제를 통해 지역구를 선출하되, 전국구는 정당 득표율에 따라 선출하는 것으로 바뀌면서 소수당의 원내 입성이 조금 유리해지게 되었다.
이 선거에서는 신한국당, 새정치국민회의, 자유민주연합, 통합민주당, 변화당, 무당파국민연합 등이 참여했다.
개요 · 선거 과정 · 참여 정당 및 후보자 · 선거 결과 · 여담 |
개요 · 선거 과정 · 참여 정당 및 후보자 · 선거 결과 · 여담 |
개요 · 선거 과정 · 참여 정당 및 후보자 · 선거 결과 · 여담 |
정당 | 득표수 | 지역구 | 전국구 | 총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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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국당 | 5,911,246 (30.1%) | 109석 | 16석 | 125석 | |||||||||||||||||||||
새정치국민회의 | 3,941,225 (20.1%) | 63석 | 11석 | 74석 | |||||||||||||||||||||
자유민주연합 | 2,795,683 (14.2%) | 41석 | 9석 | 50석 | |||||||||||||||||||||
변화당 | 2,625,420 (13.4%) | 16석 | 6석 | 22석 | |||||||||||||||||||||
무소속 | 2,372,005 (11.8%) | 16석 | 당선자 없음 | 16석 | |||||||||||||||||||||
[ 기타 정당 결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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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속 당선자 복당 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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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 신한국당 | 141석 |
자유민주연합 | 50석 | |
민주 | 새정치국민회의 | 74석 |
통합민주당 | 15석 | |
기타 | 변화당 | 22석 |
선거 결과 신한국당 125석, 새정치국민회의 74석, 자유민주연합 50석, 변화당 22석, 통합민주당 12석, 무소속 16석으로 신한국당이 선전한 반면 새정치국민회의가 부진하였다. 자유민주연합은 충청 지역주의를 활용하고 민정·공화계 인사를 영입함으로써 충청권은 물론 대구, 강원에서 선전을 보였고, PK 출신들로 구성된 통합민주당은 12석으로 원내교섭단체를 상실해 입지가 불투명해졌다.
한편 지역주의 타파, 정치 개혁으로 돌풍을 일으킨 변화당은 수도권에서만 22석을 확보하며 자유민주연합 다음으로 선전했다. 국내에서는 생소한 군소정당임에도 불구하고 의석을 20석 넘게 확보했다는 것은 기성 정치에 실망한 유권자들의 결집이 컸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영남권 출신 국회의원들이 결성한 무당파국민연합은 17만 표를 얻고도 원내 입성에 실패했으며 대한민주당, 친민당, 21세기한독당은 아예 1%도 넘지 못해 등록 취소를 받게 되었다.
정당 | 지역구 | 전국구 | 예측 의석 수 | 최소대표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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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국당 | 150석 | 18석 | 168석 | 130~189석 |
새정치국민회의 | 49석 | 11~12석 | 60~61석 | 54~82석 |
자유민주연합 | 26석 | 6~7석 | 32~33석 | 25~37석 |
변화당 | 15석 | 6~7석 | 21~22석 | 18~36석 |
통합민주당 | 5석 | 5석 | 10석 | 9~11석 |
무소속 | 8석 | - | 8석 | 4~10석 |
의뢰기관: KBS, MBC, SBS, CBS 수행기관: 한국갤럽, 코리아리서치, 미디어리서치, 월드리서치, 동서리서치 수행기간: 4월 4일~7일(1차), 4월 8일~10일(2차), 4월 11일 14시까지(3차) 조사대상: 253개 지역구, 선거구별 350~1000명 대상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 4.3%p |
지역 / 정당 | 신한국 | 국민회의 | 자민련 | 기타 · 무소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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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 21석 | 15석 | 당선자 없음 | 13석 |
경기 | 12석 | 10석 | 5석 | 11석 |
인천 | 9석 | 2석 | 당선자 없음 | |
강원 | 9석 | 당선자 없음 | 2석 | 2석 |
대전 | 당선자 없음 | 7석 | 당선자 없음 | |
충북 | 2석 | 당선자 없음 | 5석 | 1석 |
충남 | 1석 | 당선자 없음 | 12석 | 당선자 없음 |
광주 | 당선자 없음 | 6석 | 당선자 없음 | |
전북 | 1석 | 13석 | 당선자 없음 | |
전남 | 당선자 없음 | 17석 | 당선자 없음 | |
부산 | 21석 | 당선자 없음 | ||
경남 | 17석 | 당선자 없음 | 2석 | 4석 |
대구 | 2석 | 당선자 없음 | 8석 | 3석 |
경북 | 11석 | 당선자 없음 | 2석 | 6석 |
제주 | 3석 | 당선자 없음 | ||
합계 | 109석 | 63석 | 41석 | 40석 |
개요 · 선거 과정 · 참여 정당 및 후보자 · 선거 결과 · 여담 |
- 이번 선거에서 개표방송을 맡은 KBS, MBC, SBS의 예측조사 결과는 실제 결과와는 달랐는데, 신한국당은 가중치를 높게 잡아 175석으로 예상했고, 새정치국민회의, 자유민주연합, 변화당, 통합민주당은 반대로 가중치를 낮게 잡아버리는 바람에 신한국당이 환호하는 해프닝이 일어났다. 그러나 개표가 시작되면서 예상보다 여당이 부진하는 결과가 나왔고 결국 방송 직후 항의 전화가 빗발치며 다음 날 사과를 해야 했다.
- 서울 종로구에서는 이명박, 이종찬, 노무현, 김을동, 최현월이 후보로 등록되며 군소 후보들과 함께 경쟁을 치렀는데, 선거 결과 이명박이 당선되어 초선 정치인이 되었다. 그러나 2년 뒤인 1998년, 불법 선거운동의 혐의를 받고 의원직에서 사퇴했고 재보궐선거 결과 노무현이 당선된다. 이는 두 전직 대통령이 종로구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셈이었기 때문에, 현재까지 종로구에서는 역대 대통령을 세 번이나 배출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 이번 선거에서는 '신인 영입'과 비정치인들의 '정계 진출'로 주목을 받은 선거였다. 신한국당은 개혁적 중도, 진보 운동권 성향의 인물들을 대거 영입시킨 반면, 새정치국민회의는 과거 정계에 몸을 담근 보수 정치인들을 대거 영입시켜 세를 과시했다. 변화당 또한 개혁 성향의 인물들 뿐만 아니라 30대 청년들까지 영입시키는 등 인재 영입에 뛰어들었다. 또 정동영, 박성범, 맹형규 등 뉴스 앵커 출신들이 정계에 뛰어들었고, 박호성 화백과 작가 김진명도 정계에 진출했다.
- 지난 총선에서 전국구로 당선된 최불암이 전원일기 출연을 중단하고 이번 총선에서 영등포구 을에 출마해 재선을 노렸으나, 초선 정치인인 김민석에게 패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후 최불암은 정계를 은퇴하며 전원일기에 복귀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