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히하우젠 상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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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대전쟁 중 서부 유로파 전역의 일부 | |||||||
상륙 중인 연합왕국 제1근위보병사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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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국 | |||||||
오렐리아 | 오스트마르크 사회국 | ||||||
지휘관 | |||||||
로널드 크러칠리 |
고틀리프 폰 포이팅거 발터 뢰브 | ||||||
병력 | |||||||
피해 규모 | |||||||
지상군: 구축함 1척 격침 상륙정 33척 격침 550명 사망 또는 부상 |
지상군 : 531명 사망, 180명 부상 |
뮌히하우젠 상륙(Münchhausen landings)은 1942년, 연합국이 오스트마르크 북부 뮌히하우젠에 상륙하려고 했던 작전이다. 테게른제 작전이라고도 한다.
발단
1942년 연합군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오스트마르크군은 에쉬르 연방으로 깊숙히 침공해 들어가, 연방의 수도였던 페트로파블롭스크를 앞두고 있었고, 벨포르 공화국과 연합왕국은 오스트마르크 육군의 대침공 당시, 오스트마르크군의 진격을 돈좌시키기는 하였으나, 제공권을 장악당해 방어하기에만 급급했다. 또한 오스트마르크 해군의 잠수한 작전으로 인해, 연합왕국의 물류 유통에 큰 차질이 생기는 등 최악의 상황이었다.
다급해진 겐나디 그레츠코 연방의장은 앙리 미셸 수상과 스탠리 퍼시벌 수상에게 제2전선을 만들라고 요구했다. 거기에 1942년 3월, 연합군 작전사령관으로 부임한 육군 중장 에드워드 게이블 경은 소규모 기습작전보다는 대대적인 침공작전을 구상하고 있었다. 침체된 연합군의 사기를 진작할 필요도 있었고, 그리하여 제출된 여러가지 침공작전안들이 반려된 가운데 벨포르와 연합왕국 전투기의 전투반경 내의 해안 항구들을 공격하자는 안이 나왔다.
그 결과, 연합국은 오스트마르크의 북부 해안에 설치된 방어진에 대한 여러 기습 작전을 계획하였고, 오스트마르크 북부의 뮌히하우젠 해변이 선택됐다. 연합왕국과 벨포르로부터의 거리가 가까워, 병력 수송에 알맞았고 공중 지원을 받기도 쉬웠다. 또 원래 군항이었던지라 항구가 있어 상륙환경이 좋았고, 추후 연계가 편리할 것으로 평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