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관 준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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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력

  • 중화 맹방
  • 아시아 공산주의 연대
  • 볼리바르-모스크바 동맹
  • 남유럽 민족전선
  • 프라하 협상국
  • 영 연합국

이라크 이란 침공

이라크·이란 침공
Britain Invasion of Iraq·Iran

기간 1939년 3월 1일 – 1940년 4월 14일
장소 이라크, 이란 전역, 영국령 팔레스타인 동부
원인 영국의 석유 수입 불안정, 소련의 중동 진출 견제
교전국 및
교전 세력
영국 이라크·이란 연합
영국 이라크 왕국
이란 제국
지휘관 네빌 체임벌린
조지 6세
가지 1세
팔라비 1세
병력 15개 사단 (영국)
5개 사단 (인도)
5개 사단 (이라크)
12개 사단 (이란)
피해 4,250명 사망 16,200명 사망 (이라크)
9,300명 사망 (이란)
결과 이라크·이란 연합군의 패배, 이라크·이란에 민주 공화국 수립, 쿠르드족 자치 공화국 건국
영향 탈식민주의 운동 전개

개요

이라크·이란 침공(Britain Invasion of Iraq·Iran)은, 1939년 3월 1일부터 1940년 4월 14일까지 1년간 영국과 이라크·이란 연합군 사이에 벌어진 전쟁이다.

배경과 진행

소비에트 연방의 정치적 혼란으로 반(反)스탈린파가 우크라이나 지방에서 반란을 일으킨 가운데, 영국의 총리 체임벌린은 시종일관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였다. 그러나 반란군이 불리한 상황에서, 대공황 회복에만 집중하는 체임벌린에 반대하는 주전론자들이 내각 불신임안을 결의하여, 체임벌린을 사임시키고 윈스턴 처칠을 수상 자리에 오르게 하였다.

영국의 새 수상이 된 윈스턴 처칠은 석유 수입이 불안정한 현재 상황을 극복하고, 자신을 지지하는 주전론자들을 만족시키고자 이라크와 이란에 압박을 가하였다. 또한 처칠은 소비에트 연방의 내전을 주시하며, 소련과 국경으로 맞닿아 있는 이란에 특히 관심을 들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라크 북부의 쿠르드족 독립운동이 심화되자 영국은 중재와 영국령 쿠웨이트의 보호를 빌미로 하여 이라크를 침공하였다. 반쯤 문맹인데다 무능했던 이라크의 국왕은 국민의 대부분을 전쟁에 동원해 전쟁 초기엔 오히려 이라크가 요르단 지방을 점령하기도 하였으나, 곧 수도 바그다드를 제외한 전 국토가 영국의 수중에 떨어지게 되었다.

이란 역시 비슷한 명목으로 침공당하였고, 초기에는 나름대로 버텼으나, 영국령 인도의 참전으로 인해 양면전선이 형성되어 얼마 가지 못하고 1940년 4월 14일, 수도 테헤란에서 맺어진 평화협상으로 인해 이라크와 함께 영국의 괴뢰국으로 전락하였다.

헝가리-유고슬라비아 국경분쟁

헝가리-유고슬라비아 국경분쟁
Hungary-Yugoslavia skirmishesn

기간 1939년 8월 – 1939년 12월
장소 유고슬라비아 보이보디나
원인 헝가리의 트리아농 조약 파기 및 유고슬라비아에 대한 영토 반환 요구
교전국 및
교전 세력
남유럽-지중해 동맹 프라하 연합
헝가리 파일:유고슬라비아 연합왕국 국기.png 유고슬라비아
지휘관 호르티 미클로시 파일:유고슬라비아 연합왕국 국기.png 파블로 왕자
병력 약 13,000명 약 9,000명
피해 전사 1,302명 전사 560명
결과 유고슬라비아의 승리
영향 동서 발칸 전쟁으로 심화

개요

보이보디나 분쟁, 또는 헝가리-유고슬라비아 국경분쟁(Hungary-Yugoslavia skirmishesn)은 유고슬라비아의 보이보디나 지방을 헝가리가 군을 앞세워 무단 점령한 사건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이탈리아를 필두로 한 남유럽 민족전선이 유고슬라비아를 침공한다.

배경

히틀러 암살 사건으로 독일의 나치당이 실질적인 힘을 잃은 이후, 이탈리아의 베니토 무솔리니와 헝가리의 호르티 미클로시는 남유럽-지중해 동맹으로의 연합을 추진하였다. 당시 신 로마를 내세우며 지중해를 장악하려고 한 이탈리아와, 옛 영토를 회복하고자 한 헝가리는 유고슬라비아의 영토가 필요하다는 공통점이 있었기에, 오스트리아를 연합에 가입하도록 한 후 유고슬라비아 침공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그 과정의 시작으로 헝가리는 1차 세계대전 당시 맺어진 트리아농 조약을 파기하고, 호르티는 세계에 루마니아의 트란실바니아 지방과 유고슬라비아의 보이보디나 지방, 슬로바키아의 남부 지방을 대(大)헝가리의 정당한 영토라 피력하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