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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다이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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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파
일반 러다이트주의
거부운동 지향 · 침투운동 지향
권위주의적 러다이트주의
권위주의적 러다이트주의
인물/단체
새질서회
이론
사건
정당
국가
(미승인국, 반정부 단체 포함)
붕괴된 국가
(미승인국, 반정부 단체 포함)
상징 · 표어
2031년 라오스 쿠데타
2031 Laos coup d'état
기간 2031년 3월 10일 – 2035년 3월 10일 (신정부 수립)
장소 라오스 전국
원인 국가주석의 암살, 라오스 국민의 민주화 요구, 2030년 라오스 홍수
교전국 및
교전 세력
라오스 정부 라오 인민군
라오스 라오 인민군
지휘관 라니 찬타봉 이카이카 판캄
병력
피해
결과 이카이카 판캄의 정권 찬탈
영향 캄보디아와의 국경 분쟁 심화, 동남아시아의 러다이트주의 확산

개요

2031년 라오스 쿠데타(2031 Laos coup d'état)는 라오인민민주공화국에서 일어난 쿠데타로, 이 쿠데타에서 군부가 승리함으로서 라오스에 군사 정부인 라오 러다이트국 정부가 수립되었다.

배경

2021년 미얀마 쿠데타

라오스의 통룬 씨술릿 국가주석이 미얀마 쿠데타에 대해 사실상의 지지 입장을 내세운 것뿐만 아니라, 미얀마 군부에서 일부 국가들과의 외교 관계를 정상화함으로서, 라오스 내에서는 미얀마의 쿠데타를 성공적으로 정치를 안정시킨 사례라 평가하는 경우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2030년 라오스 홍수

2030년, 메콩강의 범람으로 인한 홍수가 수도 비엔티안에서 많은 사상자를 내면서, 정부의 미흡한 대처에 대한 불만이 시민들 사이에서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당시 발생한 여러 재해에 의한 피해를 선진국들의 무리한 기술 개발로 지적하던 러다이트주의가 아시아에서 대세이던 참이라, 러다이트주의 운동에 영향을 받은 일부 시민들은 비엔티안의 왓 따이 국제공항을 습격하기도 하였다.

마카니 온팽 사망 사건

라오스에서 존경받던 불교 신자 마카니 온팽이 미국이 1970년대에 묻은 불발 지뢰가 터져 사망한 사건.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의 폭격으로 얼룩진 역사를 지닌 라오스에서 반서방 여론이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

통룬 씨술릿의 암살

사진은 헌화하는 베트남 조문단.

현 정부에 대한 불만이 심화된 상황에서 2031년 1월, 급작스럽게 통룬 씨술릿 라오스 국가주석이 괴한에 의해 갑작스럽게 습격당해 암살되었고, 이에 따라 민주화 운동과 함께 러다이트주의 운동이 라오스 전역에서 일어났다. 당시 러다이트주의자들이 일부 있었던 군부는 라오스를 안정시키기 위해 러다이트주의자들과 연합하게 된다.

경과

2031년

3월

  • 통룬 씨술릿 암살 이후 임시로 주석 자리를 맡은 라니 찬타봉이 군부에 의해 구금되었다.
  • 홍수 피해에서 간신히 복구된 왓따이 국제공항이 폐쇄되었다.
  • 군부 지도자 이카이카 판캄이 라오스의 제 1대 인민지도자 자리에 올랐다.

결과

이 쿠데타가 군부의 승리로 끝나게 되면서, 라오스에는 라오 러다이트국이라는 러다이트주의 군사정부가 세워진다.


군부의 승리 요인 중 하나는 급진적인 민주주의자들은 탄압하는 반면, 다수인 러다이트주의자들의 운동은 지지하는 선택으로 분열된 라오스를 빠르게 안정시킨 것이다. 탄압받던 민주주의자들은 정부로부터 다당제 도입을 약속받고 정부군과 연합했지만, 라오스 북부를 이미 장악한 러다이트주의자들과 군부에 의해 끝내 패배하게 된다.

해외로 도피한 라오스 민주주의자들은 여전히 이 시기를 군부의 쿠데타와 정부의 폭정에 대항한 라오스 3.10 민주 혁명으로 부르고 있다. 쿠데타 당시에는 민족 간의 갈등도 영향을 미쳤는데, 주로 다수인 라오인들이 러다이트주의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