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제국 (새로운 세계)

로마를 위하여! (토론 | 기여)님의 2022년 7월 19일 (화) 21:22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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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 SENATVS•POPVLVSQVE•ROMANVS
로마의 원로원과 인민들
국기
표어 Laxatio, prosperitas, reformatio
확장, 번영, 개혁

서유럽과 중부 유럽, 동유럽 일부, 북아프리카, 아나톨리아에 걸친 대제국
수도 로마
최대 도시 로마
정치
공용어 라틴어
국민어 라틴어
지역어 그리스어 히브리어
정치 체제 연방 국가 황제국 식민제국 입헌군주제
임페라토르 율리우스 7세
원로원장
호민관
제사장
산타누스 카우리스
폴리피우스, 사나투스
막시밀리언 7세
역사
건국 기원전 753년
 • 왕국 멸망, 공화 정부 수립 기원전 509년
 • 카이사르의 대전쟁 기원전 49년 1월 12일 ~ 기원전 45년 3월 17일
 • 아우구스투스 1세의 제정 선포 기원전 27년
 • 기독교 국교화 383년
 • 헌법 제정 1380년 4월 6일
인구
1399년년 조사 1,450,098,044명
인구 밀도 235명/㎢
경제
통화


개요

새로운 세계(The New World) 세계관에 등장하는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에 걸쳐있는 입헌군주제를 채택한 제국이다..

페르시아, 루스 ,지옥의 나라, 신성아프리카공화국 , 사과공화국 과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유라시아 대륙에서는 진나라와 동등하거나 그 이상으로 강력한 국가이다.

역사

로마 제국(새로운 세계)/역사 참고

자연환경

지리

제국의 면적은 확실히 측정 된 바가 없다. 제국 정부에서 수 많은 통계청 직원들을 보냈으나 살아 돌아온 자가 없었다

기후

인구가 워낙 방대해서 기후가 다양하다. 대부분의 지역이 온대 기후에 속하지만 북아프리카는 건조 기후를 보이고 있다.

인문환경

인구

로마의 인민으로 인정되는 인구는 1,450,098,044명이며 미등록 인구까지 포함하면 로마 황립 통계 학회에 따르면 약16억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민족

로마 제국내에 사는 모든 사람은 라틴인으로 분류하여 라틴 시민권을 준다. 본국에 사는 이들에게는 특별히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로마 시민권을 부여한다..

언어

공용어는 라틴어이다. 지방의 언어로 게르만어 아람어 갈리아어등이 쓰이고 있다.

종교

로마 가톨릭을 국교로 삼고 있다. 종교세를 낼 경우 타종교를 허용하고 있으며 로마 가톨릭이 60% 고대 로마 다신교가 10% 유대교가 5% 탱그리 2% 기타 23%가 분포해 있다.

행정 구역

파일:로마의 행정구역(새로운 세계).jpg
로마의 본국과 속주

로마는 본국인 로마니아와 10개의 속주로 나뉘며 속주들은 원로원에서 추천한 인물 가운데 임페라토르가 선정하여 총독으로 파견하며 일부 자치권을 행사할 수 있다.

본국

로마 제국의 수도인 로마가 위치한 구역 로마 황제가 직접 다스리는 구역이다. 로마 제국에서 가장 부유하고 번화한 곳이다. 이곳의 거주민들은 로마 시민권을 부여 받으며 민회의 의원이 될 수 있다. 주요 사업은 관광업이며 대부분의 기독교 행사는 이곳의 도시에서 이루어진다. 로마니아(Romaina)라는 이름을 부여받았다.

속주
  • 갈리아(Gallia)

갈리아는 공화정 시절 기원전 58년 ~ 기원전 51년에 걸쳐 일어난 갈리아 전쟁에서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군대가 승리를 쟁취한 후 정복한 구역이다. 제국에서 포도주와 유제품이 가장 발달된 곳으로 "제국의 주조장"이라는 별명이 있다. 카이사르에게 정복될 당시 백만 명 정도가 노예로 팔려온 역사도 있고, 갈리아가 편입 당시부터 가난해 이 지역 출신들이 이탈리아로 상경해도 본국 안에서 하층민이 되거나, 국경을 오고가는 상인 등이 많았던 역사가 있었다. 더욱이 로마에서 들리는 이야기는 게르만족들이 분탕치고, 마적과 유랑도적, 탈영병들이 깡패짓을 한다는 소식이 많아 상경한 하층민 이미지가 많았던 속주다. 그러나 이는 수도 로마 출신 엘리트들이 볼 때 느끼는 갈리아 지방 이미지였을 뿐, 갈리아 전체의 이미지까진 아니었다. 왜냐하면 워낙 넓은 지역인 까닭에 남북간의 경제력 편차도 크고, 마르세유를 주도로 한 나르보넨시스 쪽은 본국 이탈리아 북부보다 확실히 잘 사는 동네였기 때문이다. 더욱이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와 플라비우스 왕조 아래에서 지역 유지들이 원로원 의석을 받았을 정도로 서방 속주 중 나름 잘 나가는 주류 속주이었다.

  • 게르마니아(Germania)

447년 이전 까지는 게르만족의 거센 저항으로 "주변 지역(ambiente)"으로 분류되어 간접 통치 하였으나. 447년 아틸라 1세게르만 정복 전쟁으로 복속시켰다.이곳은 제국의 주류 이동수단인 자동차가 유명하며 공업과 밀농사가 발달되어 있어 "제국의 용광로"라는 이명으로 불리운다. 갈리아 주 다음으로 부유한 동네이지만 북쪽 지방에 경우는 야만족의 약탈이 많다는 보고가 올라온다.

  • 브리타니아(Britania)
서방 속주 중 갈리아, 히스파니아, , 게르마니아보다 변방으로 취급받은 동네다. 그래서 5세기 초까지 파견된 총독과 군단장, 관리 모두가 선호하지 않은 속주로 악명을 떨쳤고, 같은 서방 속주민들 사이에서도 변방 중 변방으로 취급받았다. 왜냐하면 날씨는 게르마니아보다 나쁘고, 북쪽에선 칼레도니아인들과 사소한 분쟁이 툭하면 벌어져 골머리 썩힐 사건도 많은 데다 주민들 수준은 게르마니아 지방 로마 주민들보다 상당히 떨어지고 이해하지 못할 문화적 관습이 많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황제가 파견한 브리타니아 속주 총독들은 아그리콜라처럼 현지 사정을 빠삭하게 아는 야전사령관이나, 여러 환경 속에서 그 능력을 검증받은 베테랑 장군, 혹은 강도가 센 훈련과 엄격함으로 악명을 떨친 인사들이 많이 배속됐다.가난한 속주로는 오리엔트 속주와 1,2위를 다툰다. 주요 사업은 어업으로 '제국의 양식장'이라는 이명으로 불리운다.  스칸디나비아 제국하드리아누스 방벽을 사이에 하고 국경을 맞대고 있다. 기독교의 교세가 가장 약한 지역이다.

  • 히스파니아(Hispania)

2차 포에니 전쟁 이후 카르타고로부터 빼앗은 영토들로 구성되어 있다. 예로부터 산악지형이라 게릴라전이 자주 일어났으며 한니발의 동생이 이곳을 근거지로 삼기도 하였고 세르토리우스의 반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제국 이후에는 갈리아와 함께 로마화의 우등생으로 불렸으며, 네로 시대부터 시작된 본국 이탈리아 출신 로마 시민권자들의 속주 군대 지원 기피현상을 해결하려는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라틴 시민권 확장 및 속주 태생 로마 시민권자 정규군 입대 허가를 갈리아와 함께 가장 빨리 부여받은 동네다. 공화정 시대때부터 이탈리아 출신 로마군 퇴역병과 그 가족들이 정착도시를 건설하고 이주한 까닭에 이탈리아 출신 조상을 둔 로마 시민권자들이 많았다. 따라서 1세기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 시대에 이미 원로원 의원들을 여럿 배출했고, 이런 배경 속에서 1세기 말인 서기 98년 최초의 속주 출신 황제 트라야누스를 배출하고 117년에는 하드리아누스 황제까지 배출했다. 이 외에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친가 안니우스 베루스 가문도 히스파니아에서 기원한 대표적인 세습 원로원 귀족 가문이다. 이곳의 소는 미노타우루스라고 불리울 정도로 힘이 좋기로 소문나 있어 제국 어디에서나 농사할때 꼭 필요한 물건이다. 이곳은 목축업또한 발달하여 '제국의 목장'이라는 이명으로 불리운다.

  • 사르마티아(Sarmatia)

과거는 대달마티아(Dalmatia Magna)라고 불리었으나 450년 마틸라 1세에 의해 이곳에 살면서 유목 생활을 하던 사르마티안(아마존이라고도 불리운다)에 정복당하면서 로마의 속주로 편입이 되었다. 인프라가 발전 되지 않아 가난하며 아직도 유목 생활을 하며 약탈을 일삼는 야만족이 많이 있다. 그래서 인지 주로 로마군의 실전 훈련이 이루어지는 곳으로 '제국의 훈련장'이라고 불리운다. 그러나 이곳의 남부지역인 발칸 반도는 제국 내에서도 번성한 곳으로써 사르마티아의 많은 인구가 발칸에 살고 있다. 이곳은 아테네 학당과 같은 여러 명문 학교로 유명하여 '제국의 학교'라는 별명이 있다. 사회 양극화가 극심한 지역이다.

  • 소아시아(Asia Minor)

사르마티아에 속한 그리스 지역역과 함께 제국 내 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으로 꼽히고 있는 속주이자 이곳 지역의 말인 페가수스가 굉장히 유명하며 페가수스는 로마 기병의 주요한 말로써 활약한다. 이들 지방은 대부분 기원전 1세기 초반 폼페이우스에 의해 정복되거나 종속 관계를 맺었고, 제정 시대에 이르러서는 로마 제국 여러 지방 중 처음으로 살아있는 황제가 이 지역 주민들의 요구로 최초로 개인우상화되면서(기원전 29년), 황제우상화 정책이 시작됐다. 또한 4대 황제 클라우디우스 1세 시절, 이 지역 태생의 그리스혈통 주민들이 로마시민권을 많이 하사받아, 성씨로 클라우디우스를 사용한 이들이 꽤 많이 보이는 것도 이 지역의 특징 중 하나다. 이런 이유로 서기 1세기부터 4세기까지 등장한 집정관이나 총독 명단 중 노멘(성씨)로 클라우디우스를 사용하는 이들을 살펴보면, 열 중 여덞, 아홉명은 거의 대부분 소아시아 태생이나 그리스인들의 후손이다. 이곳은 축제 문화가 매우 발달하며 '제국의 축제장'이라는 이명으로 불리운다.

  • 오리엔트(Orient)

오리엔트 지역은 비옥한 토지로 농업이 발달하였고 최초의 문명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상지 이기에 문화와 경제의 중심지 였으나 356년 대재난으로 땅이 황폐해지며 대다수의 주민들이 소아시아와 서방의 속주로 대거 이사하여 사람이 별로 살지 않는다.그러나 성지 예루살렘이 위치한 곳으로 예루살렘은 이 지역에 남아 있는 번성한 대도시이다. 성지의 존재로 이곳은 '제국의 순례길'이라는 이명으로 불리운다.

  • 아이깁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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