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오르기 브렌드리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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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히기 위해 국가가 시민들이 제안한 복지 정책을 지원하게 하는 [[국가복지정책]]을 발표해 시민들의 정치 참여를 더욱 키워주었다. 덕분에 게르마스의 경제는 어느 정도 회복세를 보였고 그동안 입헌군주제였으나 제한적 민주주의에 불과했던 게르마스가 완전 민주주의로 탈바꿈함으로써 현재까지 민주주의가 크게 성장하는 원인으로 분석된다. 그런데 [[게르마스 인민당]]과 사민당 내 우파는 그의 집권을 반대하게 되었고 급기야 총리 탄핵소추안을 내걸며 탄핵을 시도했으나 공산당, [[게르마스 농민통일당|농민통일당]]이 탄핵소추안에 반대했다. 심지어 국왕이던 [[아들러 1세]] 역시 브렌드리크 총리를 반대했으며 118년 총선 이후 2년을 앞두고 의회 해산권을 발동했다. 하지만 민심은 국왕이 아닌 브렌드리크에 집중되었고 한 때 공화국 발언으로 헌정 사상 최대의 파장을 맞았지만 이는 브렌드리크가 현대 게르마스 좌파의 상징이자 야당에 불과했던 사민당을 22년 간 집권하게 된 결정적 원인이 되었다.
또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히기 위해 국가가 시민들이 제안한 복지 정책을 지원하게 하는 [[국가복지정책]]을 발표해 시민들의 정치 참여를 더욱 키워주었다. 덕분에 게르마스의 경제는 어느 정도 회복세를 보였고 그동안 입헌군주제였으나 제한적 민주주의에 불과했던 게르마스가 완전 민주주의로 탈바꿈함으로써 현재까지 민주주의가 크게 성장하는 원인으로 분석된다. 그런데 [[게르마스 인민당]]과 사민당 내 우파는 그의 집권을 반대하게 되었고 급기야 총리 탄핵소추안을 내걸며 탄핵을 시도했으나 공산당, [[게르마스 농민통일당|농민통일당]]이 탄핵소추안에 반대했다. 심지어 국왕이던 [[아들러 1세]] 역시 브렌드리크 총리를 반대했으며 118년 총선 이후 2년을 앞두고 의회 해산권을 발동했다. 하지만 민심은 국왕이 아닌 브렌드리크에 집중되었고 한 때 공화국 발언으로 헌정 사상 최대의 파장을 맞았지만 이는 브렌드리크가 현대 게르마스 좌파의 상징이자 야당에 불과했던 사민당을 22년 간 집권하게 된 결정적 원인이 되었다.


124년 브렌드리크가 물러나고 [[파울 에벤스토]]에게 당수 자리를 넘겨줌으로써 사민당을 탈당하고 정치인으로써의 삶을 그만두다가, 155년 [[베르데니스 파업]]을 계기로 정계 복귀를 선언했다. 그는 [[게르마스 공산당]]의 6대 서기장이 되어 사민당의 경제 정책을 강력하게 비판하여 반사민당 노선을 띄게 된다. 때문에 사민당 내 우파와 중도파는 물론, 좌파 역시 그를 변절자라 비판하는 상황까지 가게 된다. 그러나 159년 12월 췌장암 진단을 받아 건강 상의 이유로 서기장 직에서 물러나야 했고, 결국 160년 2월 베르데니스에서 사망하게 된다.
124년 브렌드리크가 물러나고 [[파울 에벤스토]]에게 당수 자리를 넘겨줌으로써 사민당을 탈당하고 정치인으로써의 삶을 그만두다가, 155년 [[베르데니스 파업]]을 계기로 정계 복귀를 선언했다. 그는 [[게르마스 공산당]]의 6대 서기장이 되어 그동안 지지했던 사민당을 버리고 반사민당 노선을 띄기 시작했고, 사민당의 경제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때문에 사민당 내 우파와 중도파는 물론, 그를 따랐던 좌파 역시 변절자라 비판하는 상황까지 가게 된다. 그러나 159년 12월 췌장암 진단을 받아 건강 상의 이유로 서기장 직에서 물러나야 했고, 결국 160년 2월 베르데니스에서 사망하게 된다.


== 이념관 ==
브렌드리크는 사회주의를 통한 정치, 사회 변화를 목적으로 노동자, 농민, 소작농 등은 물론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인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는 자본주의와 군주제를 부패한 자본가, 왕실·귀족 세력들에 의한 기득 이념에 불과하다며 사실상 실패할 것이고 사회주의는 이에 대한 변혁적 대안이지만 국민이 주권이 되는 나라가 되기 위해선 민주주의도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공산주의에 대해선 부분적으로 옹호적이지만, 이오시프 스탈린, 블라디미르 레닌, 카를 마르크스의 사상을 정면으로 비판했고 레프 트로츠키의 사상은 혁명적 사회주의를 지향하지만 과격한 투쟁을 통한 과두 독재정으로 갈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노동자 계급투쟁에 관해서는 회의적인 입장을 보이는데, 계급투쟁으로는 자본가 등의 기득권을 무너뜨리기 어렵고, 계급투쟁이 과격한 양상을 띄고 있어 잘못되면 노동자가 국가의 모든 것을 장악할 수 있다는 위험한 이념이라며 비판했다.
또 브렌드리크는 왕정이 아닌 공화제를 주장했는데, 그는 국왕의 정치적 간섭과 폭정, 탄압을 반대하고 국가원수이자 왕립군 통수권자로써 정치에 관여할 권리를 주어선 안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121년 총선 당시 공화국 발언을 통해 나라 전체에 큰 파장이 일어난 적이 있고 게르마스 공산당의 서기장이 되었을 때도 사회주의를 채택하되 자유 선거, 국민주권과 평등 사상을 기초로 한 [[민주공화국론]]을 발표하기도 했다.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있는 반면 국가의 계획을 통한 계획 경제를 소극적으로 바라본다. 대신 노동자를 따르는 대표가 기업이 되며 이를 통해 노동자들의 근무와 임금 수당, 행복 충족 등을 위한 노사 평등적 경제를 추구하고 있다. 복지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은 사상을 발표했는데 청원을 목적으로 하는 조직이나 기관에서 국민이 복지 정책을 필요로 할 때 다수의 사람들이 이를 찬성한다면 국가가 시민의 복지에 적극 응수하고 지원해야 하는데, 이를 [[민국복지공동론]]이라 부른다.
이러한 이념관을 통해 탄생한 것이 [[브렌드리크주의]]이며 170년대부터 현재까지 현대 유로아 좌파, 극좌파 이념의 대표적인 이념으로 불리고 있다. 브렌드리크주의는 반왕정과 동시에 사회적 복지국가, 사회주의, 공화주의를 혼합한 것으로 계급투쟁이 아닌 정치적 변혁을 통한 국민주권, 직접민주주의 도입, 인권과 평등의 실현, 군민교체(君民交替), 민국공동복지론 등을 중점 이념으로 두고 있다. 현재 좌파계열 정당 대부분은 브렌드리크주의를 표방하거나 이를 부분적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다. 브렌드리크주의는 사회주의와 노사평등, 국민주권과 민주주의, 인권의 필요성과 다문화, 반자본주의와 반왕정을 내건 사람들을 온건파라 부르고, 민주공화국론, 민국복지공동론을 포함하여 브렌드리크 총리 시기의 정통 이념을 가치로 삼고 왕정 타도를 내건 사람들을 급진파라 부른다.
== 소속 정당 ==
== 소속 정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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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3월 27일 (토) 18:30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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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임한 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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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마스 왕국 내각총리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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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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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제2대 제3대 제4대 제5대
오토 스벤라이너L
한스 알바르테M
페르디난트 프리히M 엘런 슈타이거M 게오르기 브렌드리크L 파울 에벤스토M
제6대 제7대 대행 제8대 제9대
프란츠 겔로스M 아돌프 호센R 프리드리히 엔리크R 한스 그라스티아M 프리드리히 헤섹R
제10대 제11대 제12대 제13대 제14대
아르투어 프리스M 에른스트 리스트M 카를 마우어M 게오르기 슈트하르트R 헨리 코펜M
제15대 제16대
하인리히 프론더M 프리드리히 아르티네M
M은 중도파, L은 좌파, R은 우파
취소선은 당수직에서 제명·사망·중도사임한 경우

역대 서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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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제2대 제3대 제4대 제5대
카벨 루트베어 루터 한센 프리드리히 플론테임 아르민 슈마허 마르틴 슈왈스
대행 대행 제6대 제7대 제8대
프리드리히 빌턴 발터 로젠 게오르기 브렌드리크 발터 로젠 파울 제바나
제9대
카를로스 폰 룩셈부르크
취소선은 당수직에서 제명·사망·중도사임한 경우
게르마스 왕국 제8-13대 내각총리대신
게오르기 슈트라서 브렌드리크
George Strasser Brendrick
출생 87년 5월
외스터리아 비에니
사망 160년 2월 (72세)
게르마스 베르데니스
거주지 게르마스 브레미아주 브레미아
게르마스 바이에리네주 뮈니헨
재임기간 제8대 총리
110년 6월 ~ 114년 6월
제9대 총리
114년 6월 ~ 118년 6월
제10대 총리
118년 7월 ~ 120년 3월
제11대 총리
120년 3월 ~ 121년 5월
제12대 총리
121년 6월 ~ 122년 1월
제13대 총리
122년 1월 ~ 124년 6월
직업 정치인, 사회주의자
약력 제4대 게르마스 사회민주당 당수
제8-13대 게르마스 왕국 내각총리대신
제6대 게르마스 공산당 서기장
소속 정당 공산당
정치 성향 사회주의 / 좌익
종교 무종교
국민을 탄압하고 기득권의 이익을 챙기려는 부패한 국왕이 있어선 안됩니다! 차라리 국왕을 몰아낸다면 우리는 공화국을 세울 것입니다!
브렌드리크, 121년 총선 유세 중 연설
노동자의 생계를 쥐어짜는 은 사회민주주의가 아니고, 국민의 정당도 아니다.
브렌드리크, 게르마스 공산당 서기장 당시 연설

게오르기 슈트라서 브렌드리크(George Strasser Brendrick, 87년 5월 ~ 160년 2월)는 제8·9·10·11·12·13대 게르마스 내각총리대신이자 제4대 게르마스 사회민주당 당수, 제6대 게르마스 공산당 서기장, 게르마스의 사회주의자, 정치인이다.

외스터리아비에니에서 가난한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났고, 나중에 브레미아로 이주한 후 게르마스 최대의 노동자 명문학교인 게르마스 노동자대학원브레미아 대학교를 졸업했다. 열아홉 살이 되던 시기 브렌드리크는 사회주의를 배우며 왕정에 맞서 가족들과 함께 반정부 시위에 참여하다 아버지가 투옥되었고, 어머니는 혁명선봉대에 가입하여 비에니로 탈출해 결국 딸과 남게 되었다. 그러다 사회주의와 정치 사상을 더 배우기 위해 정치인이 되기로 결심해 사회민주당에 입당했고, 108년 연설을 통해 당 내 좌파의 대표적인 인물로 자리잡았다. 이후 사회민주당의 당수가 되며 당의 좌경화와 함께 탈계급정당을 내걸고 총선에서 정치사 역사상 최연소 총리가 탄생하게 된다.

브렌드리크는 급진적인 정책을 통해 각종 정치·사회 개혁을 추진했고, 지주와 자본가, 기득권이 가지고 있던 토지를 농민에게 나눠주는 토지 개혁의 성과를 냈고 정치적으로는 선거법 개정을 통해 비례대표제와 여성, 엘프인 참정권이 적용되었다. 여기에 과거 정치 참여가 가능했던 국왕의 정치 참여권을 박탈하여 정치적 중립을 준수하도록 했고, 정부군 특별조치를 발령하여 군부 쿠데타를 방지하기 위한 문민통제를 대폭 강화했다.

또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히기 위해 국가가 시민들이 제안한 복지 정책을 지원하게 하는 국가복지정책을 발표해 시민들의 정치 참여를 더욱 키워주었다. 덕분에 게르마스의 경제는 어느 정도 회복세를 보였고 그동안 입헌군주제였으나 제한적 민주주의에 불과했던 게르마스가 완전 민주주의로 탈바꿈함으로써 현재까지 민주주의가 크게 성장하는 원인으로 분석된다. 그런데 게르마스 인민당과 사민당 내 우파는 그의 집권을 반대하게 되었고 급기야 총리 탄핵소추안을 내걸며 탄핵을 시도했으나 공산당, 농민통일당이 탄핵소추안에 반대했다. 심지어 국왕이던 아들러 1세 역시 브렌드리크 총리를 반대했으며 118년 총선 이후 2년을 앞두고 의회 해산권을 발동했다. 하지만 민심은 국왕이 아닌 브렌드리크에 집중되었고 한 때 공화국 발언으로 헌정 사상 최대의 파장을 맞았지만 이는 브렌드리크가 현대 게르마스 좌파의 상징이자 야당에 불과했던 사민당을 22년 간 집권하게 된 결정적 원인이 되었다.

124년 브렌드리크가 물러나고 파울 에벤스토에게 당수 자리를 넘겨줌으로써 사민당을 탈당하고 정치인으로써의 삶을 그만두다가, 155년 베르데니스 파업을 계기로 정계 복귀를 선언했다. 그는 게르마스 공산당의 6대 서기장이 되어 그동안 지지했던 사민당을 버리고 반사민당 노선을 띄기 시작했고, 사민당의 경제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때문에 사민당 내 우파와 중도파는 물론, 그를 따랐던 좌파 역시 변절자라 비판하는 상황까지 가게 된다. 그러나 159년 12월 췌장암 진단을 받아 건강 상의 이유로 서기장 직에서 물러나야 했고, 결국 160년 2월 베르데니스에서 사망하게 된다.

이념관

브렌드리크는 사회주의를 통한 정치, 사회 변화를 목적으로 노동자, 농민, 소작농 등은 물론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인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는 자본주의와 군주제를 부패한 자본가, 왕실·귀족 세력들에 의한 기득 이념에 불과하다며 사실상 실패할 것이고 사회주의는 이에 대한 변혁적 대안이지만 국민이 주권이 되는 나라가 되기 위해선 민주주의도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공산주의에 대해선 부분적으로 옹호적이지만, 이오시프 스탈린, 블라디미르 레닌, 카를 마르크스의 사상을 정면으로 비판했고 레프 트로츠키의 사상은 혁명적 사회주의를 지향하지만 과격한 투쟁을 통한 과두 독재정으로 갈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노동자 계급투쟁에 관해서는 회의적인 입장을 보이는데, 계급투쟁으로는 자본가 등의 기득권을 무너뜨리기 어렵고, 계급투쟁이 과격한 양상을 띄고 있어 잘못되면 노동자가 국가의 모든 것을 장악할 수 있다는 위험한 이념이라며 비판했다.

또 브렌드리크는 왕정이 아닌 공화제를 주장했는데, 그는 국왕의 정치적 간섭과 폭정, 탄압을 반대하고 국가원수이자 왕립군 통수권자로써 정치에 관여할 권리를 주어선 안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121년 총선 당시 공화국 발언을 통해 나라 전체에 큰 파장이 일어난 적이 있고 게르마스 공산당의 서기장이 되었을 때도 사회주의를 채택하되 자유 선거, 국민주권과 평등 사상을 기초로 한 민주공화국론을 발표하기도 했다.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있는 반면 국가의 계획을 통한 계획 경제를 소극적으로 바라본다. 대신 노동자를 따르는 대표가 기업이 되며 이를 통해 노동자들의 근무와 임금 수당, 행복 충족 등을 위한 노사 평등적 경제를 추구하고 있다. 복지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은 사상을 발표했는데 청원을 목적으로 하는 조직이나 기관에서 국민이 복지 정책을 필요로 할 때 다수의 사람들이 이를 찬성한다면 국가가 시민의 복지에 적극 응수하고 지원해야 하는데, 이를 민국복지공동론이라 부른다.

이러한 이념관을 통해 탄생한 것이 브렌드리크주의이며 170년대부터 현재까지 현대 유로아 좌파, 극좌파 이념의 대표적인 이념으로 불리고 있다. 브렌드리크주의는 반왕정과 동시에 사회적 복지국가, 사회주의, 공화주의를 혼합한 것으로 계급투쟁이 아닌 정치적 변혁을 통한 국민주권, 직접민주주의 도입, 인권과 평등의 실현, 군민교체(君民交替), 민국공동복지론 등을 중점 이념으로 두고 있다. 현재 좌파계열 정당 대부분은 브렌드리크주의를 표방하거나 이를 부분적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다. 브렌드리크주의는 사회주의와 노사평등, 국민주권과 민주주의, 인권의 필요성과 다문화, 반자본주의와 반왕정을 내건 사람들을 온건파라 부르고, 민주공화국론, 민국복지공동론을 포함하여 브렌드리크 총리 시기의 정통 이념을 가치로 삼고 왕정 타도를 내건 사람들을 급진파라 부른다.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104 - 124 정계 입문
무소속 124 - 155 정계 은퇴
공산당 155 - 159 정계 복귀, 서기장 취임
무소속 159 - 160 서기장 직 사임, 정계 은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