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연호
연희
延熙
1678년 1월 23일 ~ 1700년 2월 18일
연희 1년 1월 1일 ~ 연희 22년 12월 30일
경희
慶熙
1700년 2월 19일 ~ 1743년 01월 25일
경희 1년 1월 1일 ~ 경희 43년 12월 30일
천우
天祐
1743년 01월 26일 ~ 1746년 01월 21일
천우 1년 1월 1일 ~ 천우 4년 12월 30일
20대
헌종
경희지절
慶熙之節
1700년 2월 19일 ~ 1743년 01월 25일
경희 1년 1월 1일 ~ 경희 43년 12월 30일
1. 사회계급

실연의 아픔을 접어두고 계속해서 학업을 이어 이내 사서오경을 쉬이 암독하시고 명나라에서 넘어온 각종 서적을 반입하여 보기를 반복하여 그 학문의 명성이 높아 광종과도 즐겨 토론하며, 시강원에서도 관리들을 상대로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는 등 선대와 같이 총명함이 돋보여 그 위세가 높았다. 다수의 시강원 학자들도 이를 기특히 여겨 인종에게 예의와 존경을 보이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부제학 이효명은 인종을 시기하여 사이가 좋지 아니하였으니 광종에 의해 이내 유배를 가게되었다.

1976년, 광종 10년부터 광종이 등창을 앓게 되어 겨울이 되자 그 증세가 심히 악화되었다. 이 때문에 광종 11년에는 인종의 명석함을 믿고 대리청정을 수행토록 하였다. 광종의 대리청정 공표에 형식적으로 온 신하들이 회유하였으나, 네 번째 공표에서 겨우 인종이 대리청정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인종은 대리청정이 시작되자 마자 전 부제학 이효명을 불러들여 집현원 행직전에 임명하니 관리들이 반대하였으나 끝내 그리 하도록 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