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가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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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아의 역사
History of Ga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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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가이아
Gaia Civilization
가이아 문명 역사상 최대 강역이었던, 가이아 제국의 전성기
기원전 572년 ~ 원기 475년
가이아 왕국 (B.C. 572 ~ B.C. 202)
가이아 공화국 (B.C. 202 ~ B.C. 187)
가이아 제국 (B.C. 178 ~ A.D. 475)
동가이아 제국 (A.D. 475 ~ A.D. 523)
위치 클레이시아
남서이스톨리아, 스푸트니 제도 일부, 베스트 제도 일부, 서이스톨리아 일부(기원전 195년~원기 349년)
웨스티시아 레트로폴리스(기원전 183년~원기 475년)
길버트 섬(기원전 169년~원기 279년)
정치 체제 왕정 체제 (가이아 왕국)
민주주의 (가이아 공화국)
제정 체제 (가이아 제국)
언어 가이안어
종교 헤르시교
입법 가이아 민회
주요 사건 기원전 202년 공화정 체제 출범
기원전 195년 서이스톨리아 전쟁
기원전 187년 제정 건립
기원전 183년 가이아의 레트로폴리스 침공
원기 279년 길버트 섬 철수
원기 349년 제2차 서이스톨리아 전쟁
원기 475년 키오피 왕국가이아 정복
종결 이후 동가이아 제국
키오피 왕국
현재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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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고대 가이아(Gaian Civilization)는 통상적으로 기원전 572년, 클레이시아 북동부[1]에서 발현한 가이아 왕국부터 원기 475년 키오피 왕국가이아 정복으로 가이아 제국이 멸망하기까지의 가이아 문명을 이른다. 총 두 번의 정치 체제 교체가 있었는데, 가이아 왕국부터 시작해 가이아 공화국, 말기에는 제정 체제인 가이아 제국으로 이어졌다.

기원전 195년 서이스톨리아 전쟁에서의 승리를 시작으로 계속 진출하여 스푸트니 제도베스트 제도 일부, 심지어는 길버트 섬까지 정복하더니 183년 알렉산드리아 2세레트로폴리스 정복 전쟁에서까지 승리하며 전 대륙에 걸친 초강대국으로 성장했다.

과거에는 가이아 문명의 끝을 키오피 왕국이 클레이시아로 침입하여 가이아 정복을 실현한 원기 475년으로 봤으나, 학계에선 가이아 정복 이후 동부에서 생존한 동가이아 제국마저 멸망한 원기 532년을 가이아의 끝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물론 아직까지 통상적으로는 가이아 문명의 끝은 가이아 정복이라고 여겨진다.

역사

고대 가이아의 최대 강역, 가이아 제국 시기

 자세한 내용은 가이아 왕국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자세한 내용은 가이아 공화국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자세한 내용은 가이아 제국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가이아는 기원전 572년에 지금의 위클리 지역에서 발현한 아주 작은 도시국가였다. 당시 북동부에 위치했던 가이아는 북동부 클레이시아 문명의 패권국이었던 필로티아의 사실상의 위성국이었다. 기원전 559년부터 힘을 기르기 시작하며 무려 필로티아를 무너뜨리고 고대 글라스타, 알렉산드로 제국, 레트로스 제국 등 강대국들을 순차적으로 정복하면서 북동부 문명 지역의 대부분을 손에 넣었다.

여기에 더해 기원전 195년 서이스톨리아 전쟁에서의 대승을 시작으로, 기원전 183년에는 레트로폴리스까지 정복하더니 서이스톨리아 연안 일부와 길버트 섬까지 지배하며 최초의 초강대국으로 성장하게 된다.

당시의 가이아가 얼마나 영향력이 강했냐면, 대륙 간 교류가 제대로 시행되기 시작한 대항해시대는 가이아의 전성기와 약 열 세기 정도 차이나며, 본격적으로 강대국들이 바다 너머까지 영향력을 미치기 시작한 제국시대는 그보다 훨씬 먼 1800년대에 시작했다. 병사들을 태우고 단단하지도 않은 목재 배 하나 타고 망망대해를 건너 면적이 상당히 넓은 길버트 섬은 당연지사, 당대는 물론이고 현재까지 웨스티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으로 손꼽히는 레트로폴리스 지역까지 탈환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가이아의 영향력이 얼마나 어마어마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영원할 것만 같았던 가이아도 조금씩 무너져내리기 시작한다. 가이아는 세 대륙에 걸친 넓은 영토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당시 주류로 채택하던 봉건제가 아닌 각 지역마다 총독을 파견하고, 그 총독을 감시하고 국가원수령을 전달하는 중앙정부 소속 '감찰관'까지 파견하는 지방 자치 제도를 채택했다.[2] 처음 몇십 년은 잘 유지되다가, 길버트 섬이나 서이스톨리아 같은, 거리도 멀고 가는 길도 험한, 한마디로 '감찰관(중앙정부)의 영향이 잘 미치지 않는 지역'들에서 총독들이 점차 반란을 일으키기 시작했고, 이는 원기 3세기에 극에 달해 결국 가이아는 원기 279년 반란을 일으킨 길버트 섬에서 철수했다.[3]

가이아의 불운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원기 349년 안 그래도 반란의 조짐을 보이고 있던 서이스톨리아·남서이스톨리아 지역과 제2차 서이스톨리아 전쟁을 맞게 되고, 타 지역은 커녕 본토에서도 문제가 곪아가던 가이아였기에 이 전쟁에서 패배했고, 결국 가이아는 이스톨리아 지역을 모두 뺏기게 된다.

그래도 본토 클레이시아와 레트로폴리스 지역만은 사수한 상태로 황제의 권한을 늘리면서 강력한 절대군주정 중앙집권체제를 구축했다. 이는 대단히 성공적이었으며 전쟁 이후 완전히 썩어가던 가이아를 그 이후에도 무려 130년 간 존속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한계는 여기까지였다. 원기 475년 키오피 왕국이 강력한 병력을 앞세워 가이아 제국을 침입하여 단 8개월 만에 대륙 전체를 정복하는 데 성공했다. 역사학자들은 여기까지가 고대 가이아의 종말이라고 보는 견해가 대다수이다. 정복 이후에도 작은 국가인 동가이아 제국으로 살아남았긴 했으나 이마저도 523년 멸망하게 된다.

사회

언어

 자세한 내용은 가이안어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종교

 자세한 내용은 헤르시교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가이아인

 자세한 내용은 가이아인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계급

고대 가이아의 계급은 왕정 체제에서 처음 등장했다가 제정 체제에 다시 등장했다.

  • 클리엔트: 법적으로 평민과 완전히 분리되는 귀족 신분이다. 왕정, 제정에서는 이 신분만이 왕과 황제가 될 수 있었고, 공화정 초기에는 클리엔트만이 원수(元首)가 될 수 있었으나 평민들의 반발로 평민들에게도 원수(元首)의 기회가 주어졌다.
  • 노빌레스: 주요 공직을 대대로 맡아온 평민 귀족 가문을 의미한다.
  • 에퀘스테: 노빌레스 바로 아래의 계급인 기사계급이다.
  • 플레비우스: 일반적인 평민의 신분이다.

제도

정치

법률

지방 행정

 자세한 내용은 고대 가이아/행정구역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가이아의 역대 국가원수

가이아 왕국 국왕


가이아 왕국 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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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아 공화국 원수


가이아 공화국 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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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아 제국 황제


가이아 제국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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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가이아 제국 황제


동가이아 제국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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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러보기 틀

엘리시움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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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지금의 위클리 지역이다.
  2. 이 체제는 공화정 말기 서이스톨리아 전쟁 직전부터 계획되고 있었다가 제정 체제에 돌입하고 영토가 본격적으로 폭증하기 시작하며 시행되기 시작했다.
  3. 이 뒤로 길버트 섬은 대항해시대에 와서야 다른 국가들에게 그 위치가 제대로 알려지게 되면서 279년의 철수는 향후 길버티아 건국의 출발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