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당 (프랑스): 두 판 사이의 차이

편집 요약 없음
250번째 줄: 250번째 줄:
=== 번역 ===
=== 번역 ===
서문
서문
1789년 7월 14일 우리들의 선조들은 바스티유에서 봉기를 일으켜 반동적 왕당파를 제거하고 자유와 민주주의, 그리고 공화주의에 입각한 공화국을 건설하였다. 이것은 단지 프랑스의 공화화가 아닌, 전 세계의 민주화 및 공화파 득세를 의미하는 사건이었다. 그로부터 약 220년이 지난 오늘 2016년 6월 30일 프랑스의 공화주의 정신을 지키기 위해 모인 약 30여명의 국회의원, 정치학자, 법학자, 사회학자, 대학 교수들이 파리의 중앙당사에 모여 프랑스 공화주의 원칙에 입각한 공화당의 강령을 결정하고, 프랑스어와 독일어로 발간하고 서명한다.
1789년 7월 14일 우리들의 선조들은 바스티유에서 봉기를 일으켜 반동적 왕당파를 제거하고 자유와 민주주의, 그리고 공화주의에 입각한 공화국을 건설하였다. 이것은 단지 프랑스의 공화화가 아닌, 전 세계의 민주화 및 공화파 득세를 의미하는 사건이었다. 그로부터 약 220년이 지난 오늘 2016년 6월 30일 프랑스의 공화주의 정신을 지키기 위해 모인 약 30여명의 국회의원, 정치학자, 법학자, 사회학자, 대학 교수들이 파리의 중앙당사에 모여 프랑스 공화주의 원칙에 입각한 공화당의 강령을 결정하고, 프랑스어와 독일어로 발간하고 서명한다.
 
=== 원문 ===
=== 원문 ===
서문
서문

2019년 8월 1일 (목) 13:35 판

프랑스의 정당
Liste des Parti françaises
여당 (204석)
공화당
204석
야당 (196석)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프랑스 지부
123석
프랑스 공산당
30석
생태당
24석
자유당
13석
무소속
6석
Les Républicains
르 레푸블리캉
약칭 LR, 공화당
해외 The Republicans (영)
Die Republikaners (독)
한글명 공화당
창당일 2016년 7월 1일
이념 자유보수주의[1][2]
보수주의[3][4][5]
기독교민주주의[6]
분파
드골주의[7]
사르코지주의[8][9]
우익대중주의[10]
민족보수주의[11][12]
스펙트럼 중도우파[13][14]
분파
중도[15][16] ~ 극우[17][18][19]
당색 청색
당사 프랑스 파리 15e구 238
표어 République et liberté
공화와 자유
당가 Chant du départ
출발의 노래
대통령 프랑수아 바이루
총재 프랑수아 바롱
당협위원장 니콜라 사르코지
EU 리더 자비에 블라미
국민의회
203 / 400
유럽의회
2 / 33
당원 감소 55,733명

공화당(프랑스어: Les Républicains 르 레푸블리캉[*]), 직역 공화파사회주의 인터내셔널 프랑스 지부와 함께 프랑스 양대 정당중 하나이다. 전신은 조르주 퐁피두공화국 연합이며, 이후 약 50년동안 이합집산을 반복하면서 이름을 바꾸다가 2016년 현재의 공화당으로 명칭을 바꿨다. 조르주 퐁피두, 피에르 메스메, 자크 시라크, 그리고 현재의 프랑수아 바이루 등 수많은 대통령들을 배출했다. 성향은 보수주의이며 중도우파로 분류된다. 현재 총재는 프랑수아 바롱이다. 당사는 파리에 위치해있다.

역사

전신인 공화국 연합은 파리 시장 조르주 퐁피두가 설립한 정당으로, 현재보다 우파 색체가 강한 반공주의, 반 사회주의 정당들의 연합체였다. 공화국 연합 출신의 퐁피두 총리는 1956년 집권한 이후 1968년까지 장기집권하였다. 그러나 동성애 등 진보주의 운동을 탄압하였고, 이는 20대들의 불만을 야기하였다. 독일과 베트남간의 전쟁 즉 베트남 독립전쟁이 일어나자 프랑스는 독일과 함께 베트남전에 참전하기로 결정했고, 이에 반해 20대들이 폭동을 일으키는데 이것이 바로 68혁명이다. 68혁명으로 공화국 연합은 와해되었으나, 당 출신이었던 피에르 메스메가 당선되었다. 그러나 또다시 석유파동으로 1972년 실각하고 2002년까지 무려 30년동안 야당을 지냈다. 2002년 다시 자크 시라크 대통령을 배출해 여당이되었다가 2006년 또 야당이 되었다. 2010년부터 현재까지는 프랑수아 바이루 체제로 다시 장기집권하고있다.

현 체제인 공화당 창당

2016년 프랑수아 바이루 프랑스 대통령은 이전의 프랑스 민주연합(UDF)에서 이름 변경을 요청했는데, 이는 2016년 레지옹 선거 참패를 반영한듯 보였다. 당협위원장인 니콜라 사르코지의 제안으로 공화당(Les Républicains-직역하면 공화파)과 알랭 쥐페 전 총리에 의해 프랑스인 단결당(Francaise Unie)가 제안되었다. 2016년 6월 13일 약 83.5%의 득표를 얻은 공화당이 민주연합의 새 이름으로 정해졌고 당이 해체되고 2016년 7월 약칭 LR이라는 당명으로 다시 등록되었다. 좌파 언론인 르몽드는 프랑스인이 모두 공화파이기 때문에 '공화당'이라는 이름을 쓰는 것은 불법이나 다름 없다고 주장하였다. 2016년 9월, 프랑스 대법원은 공화당이라는 당명이 국민투표를 통해 옳은지 옳지 않은지 가려야한다고 판결했다. 국민투표 결과, 45.15%의 투표율로 60.93%의 국민들이 문제가 없다고 밝혀, 공화당이 공식 명칭이 되었다.

2016년 10월 1일 주요 당직자인 니콜라 사르코지, 알랭 쥐페, 프랑수아 피용, 프랑수아 바롱, 프랑수아 자비에 블라미, 로랑 보키에와 대통령 프랑수아 바이루 등이 모인 자리에서 선언문을 발표했다. 이 선언에 따르면 프랑스 공화당은 권리이념을 사수하고, 우리 정당의 이념에 동조하는 자들과 협력할 의지가 있었다. 2016년 10월 3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축하 메세지를 보냈고, 10월 4일에는 보수정당인 유럽 인민당에도 가입하였다. 이로써 공화당은 공식적으로 프랑스 우파의 단일 정당으로써 발돋음했다.

로랑 보키에 체제

이런 결과, 2017년 프랑스 총선에서 공화당은 단독 과반을 사수하며 선거에서 승리하였다. 그러나 제 1대 총재인 알랭 쥐페는 고령으로 사실상 정계은퇴를 선언하였고, 대안으로 로랑 보키에가 뽑혔다. 로랑 보키에는 프랑스 공화당에서 가장 보수적인 인물로 꼽히는 극우파였다. 로랑 보키에는 중도우파의 프랑수아 바롱을 75 : 25라는 큰 표차로 꺾고 당 총재에 당선되었다. 공산당과 사회당 등 주요 좌파 정당들은 이에 대해서 우려를 표하였고, 중도파인 대통령 프랑수아 바이루 역시 로랑 보키에를 경계하는듯한 발언을 하여 논란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랑 보키에는 공화당 내부에서 꽤 인기 있었고 2018년 프랑스 대선에서 총리 후보로 꼽히게 되었다. 총선 결과, 약 50.5% 득표율로 프랑수아 바이루 대통령이 3선에 성공함에 따라 로랑 보키에 역시 총리 직에 오르게 되었다.

2019년 EU 선거와 위기

2019년 EU 의회 선거 여론조사가 시작되자마자 프랑스 공화당은 위기에 처했다. 여론조사 결과, 사회당 25%, 녹색당 21%, 공산당 15%에 비해 공화당은 16%로 상당히 뒤쳐져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위 혹은 2위 자리는 수성할것이라는게 당직자들의 주요 예측이었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공화당의 대패였다. 공화당은 5.98%를 득표해 사회당, 녹색당, 자유당, 공산당에 이은 5위를 하였다. 원내정당중 최악의 결과일 뿐더러 봉쇄조항인 5%에 걸려 의석조차 얻지 못할뻔 하였다. 르몽드의 월간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이를 극우파 로랑 보키에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라고 분석했다. 로랑 보키에 본인도 이에 대해서 부정하지 않았으며, 총리직은 유지하는 대신 총재직을 그만둔다고 밝혔다. 후임으로는 프랑수아 바롱이 선출되었다.

역대 총재

# 이름 사진 부임 사퇴 사임 사유
1 알랭 쥐페
2016년 7월 1일 2017년 12월 11일 고령
2 로랑 보키에
2017년 12월 11일 2019년 5월 1일 선거 참패
3 프랑수아 바롱
2019년 5월 1일 현직 -

역대 당협위원장 (부총재)

# 이름 사진 부임 사퇴 사임 사유
1 프랑수아 바롱
2016년 7월 1일 2018년 7월 1일 임기 만료
2 니콜라 사르코지
2018년 7월 1일 현직 -

상징물

당가

Chant du départ
불어
샹 두 데파

출발의 노래
원어 가사 조선어 번역
1절

La victoire en chantant
Nous ouvre la barrière.
La Liberté guide nos pas.
Et du Nord au Midi
La trompette guerrière
A sonné l'heure des combats.
Tremblez, ennemis de la France.
Rois ivres de sang et d'orgueil.
Le Peuple souverain s'avance,
Tyrans descendez au cercueil.

승리가 노래를 부르고 있소.
우리는 방벽을 뚫고 나아가니
자유가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하는 중이오.
전쟁의 나팔이
북쪽 끝부터 남쪽 끝까지
전투 시각이 되었음을 울리고 있소.
프랑스의 적들이여, 벌벌 떨어라!
피와 오만에 취한 왕실 놈들이여!
주권자인 인민들이 나아가니
압제자들은 무덤 속으로 들어가는 도다.

후렴

La République nous appelle
Sachons vaincre ou sachons périr
Un Français doit vivre pour elle
Pour elle un Français doit mourir.

공화국이 우리를 부르고 있다.
이기는 법을 모르면 죽는 법을 배우니,
프랑스인이라면 공화국을 위해 살아야하며,
공화국을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하네.

빨치산의 노래(Le chant de Partisans)가 사회당의 실질적 당가 역할을 한다면, 출발의 노래는 공화당의 실질적 당가 역할을 한다. 당 대회 등에서 자주 불리는 노래이며, 1804년에서 1814년까지, 즉 나폴레옹 시절의 프랑스 국가였다. 공화주의에 대한 열정이 느껴지는 노래이기 때문에 적합하다는 의견도 있으나 독재자 나폴레옹 시절에 부른 노래를 공화당이 왜 부르고 있냐며, 지나치게 보수적이라고 진보 언론한테서 자주 까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운동연합 시절 때부터 불러온 유서깊은 당가이기 때문에 공화당의 정체성 그 자체를 상징하는 노래이기도 하다. 이 외에도 라 마르세예즈도 자주 불린다.

이념

드골주의

샤를 드골은 직접 프랑스의 대통령으로 지낸적은 없으나, 파리 시장 등 요직을 거치면서 그의 특이한 사상을 정치학 사상으로 발전시켰다. 또한 조르주 퐁피두 총리 시절 실세로써 퐁피두 총리를 조종해왔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12년동안 대통령으로 재직했으므로, 그의 사상은 더욱 퍼질수 있었다. 현재 공화당의 일부 분파는 이러한 드골의 사상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으로써 재직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현실 세계의 프랑스처럼 드골주의가 크게 영향을 끼친것은 아니다.

대외 정책

드 골 정부의 대외정책기조는 민족 자결에 기반을 둔 '비동맹 외교정책'이었다. 이를 위해 프랑스 정부는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나 유럽 경제 공동체(ECC)와 같은 국제 연합체들에 불참을 선언하기도 하였다. 드 골은 프랑스가 생존을 위해 외세에 기대는 것을 거부(이를 위하여 프랑스는 핵실험을 강행, 핵 억지력을 갖기도 하였다. 하였으며, 특히 당시의 냉전 체제 속에서도 미합중국이나 소비에트 연방 중 어느 한 편에 서는 것을 거부하였다. 또한 프랑스를 세계열강의 대열에 올려 제국의 옛 영광을 되찾고, 국제 사회에서의 입지를 굳혀 타국의 간섭을 받지 않는 주체적인 국가로 거듭나기 위해 군비를 확장하고, 경제력을 강화하는 등 '위용'의 정치를 추구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드골주의의 기조는 이후 수십 년 동안, 집권세력을 막론하고, 프랑스의 대외정책에 강력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대내 정책

드골주의자들이 내세우는 이념으로서 특기할 만한 것은, 사회적 보수주의와 경제적 '국가주도주의'(dirigisme), 그리고 의지주의다. 그러나 이러한 주요 이념을 모든 드골주의자들이 공유하는 것은 아니다. 드골주의는 보통 우파적 성격을 띤다고 여겨지나, 좌파적 색체를 띠는 드골주의자들도 있다. 이들간의 차이는 사회적 · 경제적 정책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드 골의 개인적인 카리스마에 의해 지나치게 의존했기 때문에, 드골주의는 종종 포퓰리즘의 사례로 언급된다. 즉, 드 골은 의회정치보다 대중과 직접 소통하는 것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러한 그의 정치 성향은 그가 프랑스 상원의 개혁법안을 레퍼렌덤과 결부시켰다가 부결되자, 즉각 사임했던 일에서도 엿볼 수 있다.

독일을 중심으로 하는 드골주의 비판세력들은 프랑스의 이러한 '위용'의 정치를 끊임없이 조롱하는 한편, 프랑스와 지속적으로 갈등을 빚어왔다. 갈등의 가장 큰 원인은 드 골의 나토 통합 군사 지휘부 탈퇴 결정(그러나 이후에도 프랑스는 나토의 회원국으로는 계속 남아있었다.)과 나토 본부를 퐁텐블로에서 철수시킨 일이다. 드 골은 프랑스군의 지휘를 받지 않는 외국군이 프랑스에 주둔하는 것을 원치 않았고, 이는 냉전의 기류 속에서 한 곳의 주둔지가 아쉬웠던 독일과 갈등의 원인이 됐다.

사르코지주의는 무엇인가?

2000년부터 2014년까지 14년간 파리 시장을 지낸 공화당의 정치인 니콜라 사르코지의 정책은 때로는 사르코지의 두뇌라고 불리는 참모 에마뉘엘 미뇽, 그리고 250명이 넘는 지식인들과 전문가들에 의해 적어도 5년간의 성과를 거두었다고 판단된다. 사르코지 시장은 기존의 이론과 정치 이데올로기를 뛰어 넘기로 선언했지만 퐁피두의 정책과 프랑스 전통에 그의 이데올로기와 정치적 의제를 연계시켰다. 그러나 사르코지 대통령은 전 대통령인 자크 시라크 대통령의 정책과 방향에 대한 분명한 결의를 표명 한 것으로 자신의 의제를 계획했다. 실제로 사르코지대통령은 시라크 대통령의 정책을 지도력에 대한 파탄으로 간주하고 시라크 대통령 관저의 '고정 관념'을 비난했다.

보수 언론 지롱드는 사르코지의 이 독특한 정치성을 사르코지주의라고 정의하고, 이것을 근대 보나파르트주의와 실용주의의 혼합으로 간주했다. 피에르 자코메티에 따르면 사르코지주의의 핵심은 특정 노동 윤리 (valeur travail), 인본 자유를 통한 민족적 국가로써의 정체성이다. 전 프랑스 공화당 국회의원은 장 루이 부랑즈는 사르코지의 이데올로기가 경제적 자유주의와 자코뱅주의의 혼합이라고 설명했다. 2008년 11월 사르코지 시장이 어려움에 빠진 은행을 구제하거나 재정 지원을 위해 200억 유로의 주권 기금을 조성하는 것을 일컫으면서 사회주의적인 면모도 있다고 주장했다. 프랑스 철학자 인 피에르 무소는 르몽드지에서 사르코지주의기 이탈리아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의 정책과 비교된다고 주장한다. 과거의 방법과 정치적으로 '틈'을 맺고 특정 노동 윤리, 경제 자유주의에 대한 공통된 강조, 친독 성향의 외교 정책-이를 묶어서 우익 대중주의로 일컫는 학자들도 존재한다.

당파

중도주의자

중도주의자, 혹은 진보주의자는 공화당 내에서 가장 좌파 색이 뚜렷한 당파로, 상당수가 프랑수아 바이루의 측근들로 이뤄져있다. 이런 사람들을 바이루주의자, 혹은 쥐페주의자라고 부른다. 대표적인 인물로써 프랑수아 바이루알랭 쥐페가 있다. 현재 대통령이 속한 당파인만큼 권한도 상당하다. 중도주의 당파는 진보파와 유사한 자유주의 - 즉 사회자유주의를 주장한다. 이들은 주로 환경주의, 친유럽주의자들로 분류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알랭 쥐페는 환경부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사회당보다도 더 급진적인 환경정책을 내놓기도 했다. 이들은 그러한 성격 탓에 사회당 우파들, 예를 들자면 에마뉘엘 마크롱 혹은 프랑수아 올랑드 파리 시장과 매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그러나 알랭 쥐페 총재 사임 이후에는 당세가 많이 기울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프랑수아 바이루가 고령으로 인해 조기 퇴임도 염두에 두고 있는 현재 이들은 3년에서 4년 내에 사회당으로 탈당할것으로 보인다.

자유주의자

자유주의자들은 현재 프랑스 공화당 양대 축인 만큼, 여기서도 분파가 나뉜다.

  • 보수적 자유주의자

보수적 자유주의자들은 애국주의자, 민족자유주의자, 반세계화파들을 포함한다. 그들은 가족적 가치관을 중요시하며, 동성애와 페미니즘 등 진보적 가족 사상을 배격한다. 또한 오스트리아학파로써 신자유주의를 옹호하며 시장경제를 신성하게 여긴다. 프랑스의 애국심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데, 이에 따라서 보수적 자유주의자들은 국방력의 강화와 강력한 이민정책, 고립주의 외교정책 (특히 EU 탈퇴)을 지지한다. 이러한 성향 때문에 극우파가 아니냐는 욕도 먹는다. 로랑 보키에의 가장 열렬한 후원자중 하나이나, 로랑 보키에 본인은 보수주의 파벌에 속한다.

  • 신자유주의자

신자유주의자들은 현재 당협위원장인 니콜라 사르코지가 이끄는 그룹으로, 페트릭 드비지앙과 피에르 메헤뉴리, 헤르베 노블리 등을 포함한다. 자유지상주의 정책을 옹호하며 경제적이든 정치적이든 자유 그 자체를 소중하게 여긴다. 따라서 국가가 개인의 업무에 신경을 쓰는것을 극도로 혐오한다. 경제적 자유는 그들의 궁극적 목표이기도 한데, 평등주의를 우선시하는 중도주의자들과 다르게 경제적 자유가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라는 강력한 목표를 갖고있다. 보수적 자유주의자들보다 경제적으로는 보수적이나 동성애를 일부 긍정하는 등 사회적으로는 더욱 진보적이다.

  • 중도우파 자유주의자

중도우파 자유주의자, 프랑스어 위키백과에 따르면 les libéraux de centre droit는 자유주의자들중 가장 온건한 당파로, 사회자유주의자들로 보통적으로 분류된다. 그들은 유럽과 세계화에 대해서 극도로 찬성적이고 전통적 가족관을 반대한다. 중도주의자들과 겹치는 부분이 상당하지만 그보다는 약간 보수적이다. 예를 들자면 환경문제나 마약 허용 등에서 중도파들과 충돌하는 면이 적잖이 많다. 그들은 보통 전통적인 공화당 당원들로 분류되기도 한다. 중도우파 자유주의자들은 레지옹의 권한을 강화시키려고 하는 연방주의적인 측면도 갖고있다.

보수주의자

보수주의자들은 최근에 급성장한 분파로 공화당에서 가장 보수적이고 우파적인 색체를 띄고있다. 주로 이들을 민족주의자, 기독교 우파로 부르기도 한다. 보수주의 파벌은 프랑스 민족주의자이자 기독교 보수주의자로써 프랑스를 반세속적, 반 다인종적 국가로 만들어 정체성을 지키고자 한다. 이들의 주장은 자주 극우파와 다를바가 없다고 비판받기도 한다. 그러나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굉장히 빠르게 세가 확장되고있으며 2017년에는 당 총재까지 배출하기에 이르렀다. 보수주의 파벌을 이끄는 로랑 보키에는 위대하지 않은 프랑스는 프랑스가 아니다(la France ne peut être la France sans grandeur)라고 보수주의 파벌의 목표를 간단 명료하게 밝힌바 있다. 이들의 주장은 민족적으로 효율적이나, 경제적이든 사회적이든 너무 보수적이어서 다인종 국가인 프랑스에는 별로 맞지 않는다고 비판받는다. 2019년 5월 29일, 보수 성향의 언론 피가로지는 사설에서 보수주의 파벌로 인해 공화당이 기존의 중도우파적 색체를 잃고 극우적으로 치닫고있다고 비판했다.

당 조직

공화당 중앙 당사 (2011년)

당사

이전의 프랑스 공화당 중앙 당사는, 그러니까 대중운동연합이라 불리던 시절의 당사는 2002년에 대여한것으로 파리 제 8구 55에 있었는데 연간 4백만 유로나 지불해야되는 매우 비싼 임대료가 있었던것이 흠이었다. 그래서 2011년 공화당은 당사를 파리 제 15e구, 통칭 보지라르구 238로 중앙 당사를 이주하였다. 공화당은 약 4000만유로 (구입료 1900만유로, 건물 유지비용 2100만유로)를 건물주인 자동차 회사 르노에게 주고 약 13년 6개월을 대여하기로 결정했다. 이 건물은 당 대회에 쓰일 400석 관중의석이 있는 대회장, 큰 당 회의실, 5층 사무실로 이뤄져있다. 이전에는 르노의 차고로 쓰였다. 면적은 5,500m2 로 JJ ory 건설이 건축한 통유리 건물이다.

총재

프랑스 공화당의 총재는 현재 프랑수아 바롱으로, 프랑스 공화당의 총 리더 역할을 맡는 사람이다. 사회당과 공산당의 서기장 역할과 역할은 동일하나, 중앙 집권형이 약한 공화당은 사회당의 서기장에 비해 권한이 많이 약한 편이다. 임기는 2년이나 현재까지 완전히 채운 총재는 없었다. 실질적인 권한 대다수는 지방당을 통솔하는 당협위원장에게 있다. 총재는 중앙당을 통솔하며, 동시에 의회 대표와 파리 관구장의 역할도 맡는다. 당협위원장과 기타 각료들의 의견을 듣고 그중 가장 괜찮은 방안을 결정하는 최종 결정자로서의 역할이 강하다. 총재 역시 의견 제안권이 있지만 자주 쓰이지는 않는다. 총재는 당원들의 온라인 투표와 직접투표 두가지 방식으로 진행되며 중복투표는 불법이다. 가장 최근의 총재 선거는 2019년 6월에 있었고 프랑수아 바롱이 95.3%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당협위원장

프랑스 공화당의 당협위원장은 실질적인 리더 역할을 하는, 지방당의 최고 리더이다. 현재 당협 위원장은 니콜라 사르코지이다. 당협위원장은 지방당의 의견을 듣고서 이 의견을 모두 총합하여 의견을 분류한다음, 본인의 의견까지 추가해서 총재에게 보고한다. 총재가 없을 경우 직접 선택할 권한도 가진다. 또한 아니다 싶은 의견은 지방당에 항의할수도 있기 때문에 지방 분권이 강한 공화당으로써 힘이 총재보다도 더 강력할때도 존재한다. 또한 당협위원장은 지방당 위원장을 해임할 권한까지도 가진다. 단, 당협위원장은 총재가 직접 선출하는것이므로, 어디까지나 실제 권한은 총재가 가장 강력하다. 임기는 총재오 마찬가지로 2년이다. 전직 프랑수아 바롱 당협위원장은 임기를 다 채우고 물러났다.

청년 조직

청년 공화당원들은 16세에서 29세 사이의 공화당원을 일컫는다. 30세 미만의 모든 당원들은 자동적으로 청년 공화당원으로 등록되며, 30세 이상이 되면 청년 공화당원 목록에서 제외된다. 현재 공화당에는 약 13000명 가량의 청년 공화당원이 있다. 청년 공화당 총재는 청년 공화당원들이 선출하며 임기는 당협위원장, 총재와 마찬가지로 2년이다. 지방차원에서의 청년 공화당 총재는 중앙당 청년 공화당 총재와 지방당이 협의하여 결정하는 식이다. 시라크 정권 때인 2004년 공화당은 기존 중앙당 중심 운영 방침에서 지방 분권으로 운영 방식을 수정하였다. 현재 청년 공화당 총재는 장 마르크 에냥이다.

타 단체와의 관계

사회당

경쟁관계이지만 관계는 나름 나쁘지 않다. 특히 중도주의 파벌과 사회당 우파들은 통하는면도 많고, 정책에서 합의를 하기도 한다. 2017년 일시적으로 당을 탈퇴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후보와 프랑수아 올랑드 파리 시장이 공화당 입당을 생각했을정도로 사회당 우파와 공화당 중도주의 파벌의 관계는 돈독하다. 하지만 사회당 좌파와 공화당 보수파의 관계는 최악중 최악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막말을 퍼붓는다. 사회당 우파 소속의 의원 한명이 근처에서 만난 공화당 의원과 말싸움을 벌이기도 하는 등 공화당 보수파는 사회당 우파와도 관계가 안좋다. 브누아 아몽 사회당 전 대통령 후보는 공화당과 굳이 친하게 지낼 필요는 없으며 사회주의 혁명 완수를 위해 공화당같은 반동파 제거는 필수적이라는 막말을 해 논란이 되었다.

르몽드

적대 관계를 넘어선 숙적 관계이다. 2018년 12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조사 결과, 약 55%의 독자가 2018년 대선에서 공산당을 지지하였으며 오직 2%의 독자만이 공화당을 지지하였다. 르몽드 신문 자체의 논조가 굉장히 진보적이고 좌파적이기 때문에 보수정당인 공화당과는 숙적 관계일수밖에 없으나 관계가 파탄난 상황이다. 거슬러 올라가자면 잘못된것은 자크 시라크 정부 때부터인데, 2003년에 독일이 아프가니스탄 반란군과 전쟁을 치룰때 자크 시라크 행정부가 참전을 결정하자 르몽드 기자 한명이 외교부 장관한테 이것저것 공격적으로 질문하였다. 이때 외교부장관이 도발적 질문에 분노를 참지 못하고 기자에게 주먹을 날리는 대참사를 일으켜 르몽드가 외교부 장관한테 고소를 먹였고, 자크 시라크가 외교부 장관은 잘못한게 없고 도발을 한 기자가 잘못이라고 맞대응을 해서 갈등이 심화되었다. 이후 공화당 후보들이 르몽드를 극도로 혐오해 대선 토론에서까지 가짜 언론이라고 까거나, 르몽드가 공화당이 미심쩍은 일이 있으면 끝까지 파고 들어서 비리 혐의로 의원들을 철창에 넣어버리는등 서로가 서로를 향해 소모적 공격을 계속하고있다.

비판

극우적 정책

로랑 보키에가 총리가 된 이후 확실히 극우적인 정책이 많이 늘었다. 인종 차별주의적 발언도 간간히 나오며, 강경해진 외교 정책은 말할것도 없다. 대통령인 프랑수아 바이루조차 이렇게 되면 공화당을 탈당할수밖에 없다고 발언할 정도로 2015 - 2019년 사이 당의 극우파 유입 현상은 심각했다. 당의 의원중 한명인 장 클로드 파드릴이 벨기에 학살 부정 발언을 했다가 벨기에 정부로부터 고소당하고, 의원직을 상실한 사건까지 있었다. 난민을 독일이나 마르세유로 모두 추방하겠다는 정책까지 내세우자 르몽드를 비롯한 프랑스 좌파들은 크게 반발하였고, 지지율은 폭락하여 2019년 EU 의회 선거 참패의 원인으로 받아들여졌다.

공화당 강령

번역

서문 1789년 7월 14일 우리들의 선조들은 바스티유에서 봉기를 일으켜 반동적 왕당파를 제거하고 자유와 민주주의, 그리고 공화주의에 입각한 공화국을 건설하였다. 이것은 단지 프랑스의 공화화가 아닌, 전 세계의 민주화 및 공화파 득세를 의미하는 사건이었다. 그로부터 약 220년이 지난 오늘 2016년 6월 30일 프랑스의 공화주의 정신을 지키기 위해 모인 약 30여명의 국회의원, 정치학자, 법학자, 사회학자, 대학 교수들이 파리의 중앙당사에 모여 프랑스 공화주의 원칙에 입각한 공화당의 강령을 결정하고, 프랑스어와 독일어로 발간하고 서명한다.

원문

서문

Le 14 juillet 1789, nos ancêtres ont dirigé une révolte à Bastille afin d'éliminer le royaume réactionnaire et de construire une république fondée sur la liberté, la démocratie et le républicanisme. Ce n'était pas seulement une république de France, mais un événement qui a signifié la démocratisation et le républicanisme à travers le monde. Environ 220 ans plus tard, le 30 juin 2016, une trentaine de législateurs, de politologues, de juristes, de sociologues et de professeurs d'université se sont rassemblés dans le centre de Paris pour rencontrer l'esprit républicain français, Décidez du mandat du parti républicain, publiez-le en français et en allemand et signez-le.

역대 선거 결과

대통령 선거

년도 후보 득표율 비고
1968년 피에르 메스메 52.7% 당선
1972년 피에르 메스메 41.3% 낙선
1976년 지스카르 데 스탱 42.5% 낙선
1980년 지스카르 데 스탱 41.3% 낙선
1984년 자크 시라크 35.9% 낙선
1988년 장 클로드 봐디 48.1% 낙선
1990년 도미니크 바디 43.1% 낙선
1994년 자크 시라크 48.8% 낙선
1998년 자크 시라크 49.5% 낙선
2002년 자크 시라크 55.2% 당선
2006년 니콜라 사르코지 47.4% 낙선
2010년 프랑수아 바이루 51.3% 당선
2014년 프랑수아 바이루 57.3% 당선
2018년 프랑수아 바이루 50.5% 당선

국회의원 선거

연도 대표 득표율 의석수 비고
1969년 조르주 퐁피두 29.4%
194 / 532
2위
1973년 조르주 퐁피두 35.3%
233 / 502
1위
1977년 자비에 뒤플로 22.6%
53 / 400
3위
1981년 자크 시라크 30.5%
133 / 400
2위
1985년 자크 시라크 32.1%
122 / 400
2위
1989년 자크 시라크 33.3%
182 / 400
1위
1993년 자크 시라크 41.2%
273 / 400
1위
1997년 자크 시라크 29.5%
156 / 400
2위
2001년 자크 시라크 36.5%
205 / 400
1위
2005년 자크 시라크 40.1%
203 / 400
1위
2009년 알랭 쥐페 25.6%
136 / 400
2위
2013년 장 프랑수아 코페 24.3%
125 / 400
2위
2017년 알랭 쥐페 33.6%
204 / 400
1위

같이 보기

파일:공화당 선전물 2019.png

이 문서는 Communist 1968 세계관의 문서입니다
무단으로 이 문서를 편집, 삭제한다면 반달행위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참고 자료

  • Les Républicains, 프랑스어 위키백과
  • The Republicans, 영어 위키백과
  • Sarkozysm, 영어 위키백과
  • 드골주의, 한국어 위키백과

각주

  1. https://www.businessinsider.com/r-the-hollande-sarkozy-re-match-france-doesnt-want-2015-6?r=UK
  2. http://web.archive.org/web/20070428022524/http://www.parties-and-elections.de:80/france.html
  3. https://about-france.com/political-parties.htm
  4. https://www.lesechos.fr/2015/04/les-republicains-comment-sarkozy-veut-depasser-la-logique-de-parti-258836
  5. https://www.franceinter.fr/emissions/l-edito-politique/l-edito-politique-15-avril-2015
  6. https://www.abc.es/internacional/20150531/abci-francia-sarkozy-refundacion-201505302037.html
  7. https://books.google.co.kr/books?id=K79sdX-amEgC&pg=PA157&redir_esc=y#v=onepage&q&f=false
  8. https://www.opendemocracy.net/en/what-is-sarkozysm/
  9. https://www.researchgate.net/publication/304789396_'Sarkozysm'_From_Political_Ambivalence_to_Hard_Right
  10. https://www.lexpress.fr/actualite/politique/les-republicains-nouvelle-terre-de-conquete-du-rassemblement-national_2081813.html
  11. https://www.lexpress.fr/actualite/politique/les-republicains-nouvelle-terre-de-conquete-du-rassemblement-national_2081813.html
  12. http://www.lefigaro.fr/politique/le-rassemblement-national-tend-les-bras-aux-electeurs-et-elus-les-republicains-20190529
  13. https://books.google.co.kr/books?id=DDYiAwAAQBAJ&pg=PA71&redir_esc=y#v=onepage&q&f=false
  14. https://books.google.co.kr/books?id=EW-zz_H54LMC&pg=PA105&redir_esc=y#v=onepage&q&f=false
  15. https://www.yna.co.kr/view/AKR20170210054200009
  16. http://web.archive.org/web/20070428022524/http://www.parties-and-elections.de:80/france.html
  17. Goodliffe, Gabriel (2012), The Resugence of the Radical Right in France: From Boulangisme to the Front National, Cambridge University Press, p. 250
  18. https://www.researchgate.net/publication/304789396_'Sarkozysm'_From_Political_Ambivalence_to_Hard_Right
  19. https://www.asiae.co.kr/article/20171211141602854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