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주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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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주의 역사
九州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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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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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
일제강점기 구주E
미군정기 재구주 미국 육군사령부 군정청E
칭제건원 구주 제국
E : 외세 침략 등의 이유로 인해 구주인에 의한 정권수립이 되지 않은 경우
한자문화권의 황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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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950 ~ 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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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외 소중화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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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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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의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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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북한 일본 구주
중국 몽골 대만
구주제국
九州帝國 | Empire of Gujyu
국기 국장
康乾盛世
강건성세
상징
국가 구주 황실찬가
국화
목화꽃
국수
기러기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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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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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몽골의 일본 원정 1281년 8월 29일
  • 구주국 성립 1363년 1월 17일
  • 1차 구조 전쟁 발발 1402년 10월 21일
  • 2차 구조 전쟁 발발 1437년 5월 10일
  • 성조 반정 1507년 1월 7일
  • 일본의 합병 1890년 1월 1일
  • 광복 1945년 9월 2일
  • 구주제국 출범 1947년 9월 2일
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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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평주황도시
최대 도시
장도시
면적
36,782km2
인문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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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총 인구
14,349,180명
밀도
390.1명/km2
민족 구성
구주인 85.1%
한국인 8.4%
일본인 4.4%
기타 2.1%
출산율
1.9명
기대 수명
80세
공용어
구주어
지역어
한국어, 일본어
공용 문자
한글
종교
국교
불교
분포
불교 56.3%
기독교 5.3%
기타/무종교 38.4%
군대
구주국방군
하위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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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역 행정구역
3개 시, 7개 도, 1개 자치도
기초 행정구역
33개 시, 105개 구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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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체제
입헌군주제, 의원내각제, 단일 국가, 단원제, 다당제
민주주의 지수
7.88점, 결함있는 민주주의 (2020년)
(168개국중 27위, 아시아 4위)
국가 원수 (황제)
융계제
정부
요인
수상
노순형
부수상
금창준
사법원장
한태길
여당
연립 여당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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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체제
자본주의적 시장경제
GDP
(PPP)
전체 GDP
$7,031억 982만 0,000
1인당 GDP
$49,000
GDP
(명목)
전체 GDP
$6,170억 1,474만
1인당 GDP
$43,000
신용 등급
무디스 A1
S&P A+
Fitch A
화폐
공식 화폐
구주 환
ISO 4217
GJH
단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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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연호
융계 (隆械)
시간대
GMT + 09:00
도량형
SI 단위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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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수교현황
대한민국 : 1948년 12월 1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1995년 7월 18일
UN 가입
1960년
주한대사관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ccTLD
.gj
국가 코드
GUJ, GJU, 433
전화 코드
+85

개요

구주(九州) 또는 구주제국(九州帝國)은 동아시아의 구주섬과 첨각열도에 위치한 입헌군주제 제국이다.

상세

일본 열도의 구주섬과 충승 군도 일대에 위치해있다. 면적은 총 36,782km2 가량이며, 인구수는 총 1,400만명에 이른다. 정치 체제는 입헌군주제이다.

13세기 원나라에 의해 점령된 규슈섬이 14세기 독립하여 세워진 구주왕국이 기원이다. 이후 한번 왕조가 바뀌었으며, 15세기경 조선과의 전쟁에서 패해 조선과 군신관계를 맺었다. 20세기에는 일본의 식민통치는 약 55년간 받기도 하였다. 1945년 독립 이후 황제국을 선포해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으며, 정치적으로 민주주의를 조기에 받아들이고 경제적으로도 크게 발전했다.

대한민국, 싱가포르, 대만, 일본 등과 함께 동아시아에서 가장 발전해있는 선진국으로 분류된다. 국민소득과 삶의 질 모두 전세계적으로 최상위권에 속하며, GDP 역시 매우 높다. 공용어는 한국어의 방언인 구주어이고, 한글이 공용 문자로 쓰인다.

현재 구주는 UN, G20 등 다양한 국제기구에 소속되어있으며, 일본, 한국, 미국과 군사동맹을 맺고 있다.

상징물

구주의 국기 구주의 국장

구주의 국기와 국장은 법으로 정해져있는 공식 국기, 국장이며, 이는 황실에서 사용하는 어기이자 어보이기도 하다. 구주의 국기는 옛부터 쓰여온 가몬이며 어보의 경우 1945년 칭제로 인하여 새로이 지정되었다.

어기의 경우, 약 15세기부터 사용되어져왔으나 정확한 제작 시점은 불명이다. 조선과의 전쟁 이전에 만들어진 것은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봤을때 확실하나 그 이전의 기록은 묘연하다.

역사

구주의 역사
九州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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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토 충승
조몬 시대 구마소 하야토 구석기·패총시대
야요이 시대
고훈 시대
아스카 시대 소가씨 정권
나라 시대 율령국가
헤이안 시대
왕조국가
헤이시 정권
셋칸 정치
인세이
구스쿠 시대
삼산시대
가마쿠라 시대 가마쿠라 막부
호조씨 정권
몽골통치기 몽골통치기 구주E
왕정시대 구주 왕국 류큐 왕국
금씨 구주 구주국
황씨 구주
일제 강점기 한구연합
임시정부
구주단독
임시정부
일제강점기 구주E
미군정기 재구주 미국 육군사령부 군정청E
칭제건원 구주 제국
E : 외세 침략 등의 이유로 인해 구주인에 의한 정권수립이 되지 않은 경우

원나라

13세기 원나라의 일본 침공으로 인해 규슈 지역이 일본 본토로부터 분리되었다. 또한 고려에서 수많은 이주민들이 넘어오면서 구주는 원나라 최동단 영토로 크게 발전하였다.

그러나 원나라의 정치적 혼란이 심해지자, 구주 지역에 대한 원나라의 통제가 크게 약화되었고 이는 금이형 등 수많은 지역 유력자들이 부상하는 계기가 되었다.

구주 왕국

금씨 구주

원나라가 14세기 정치적 혼란으로 인하여 구주 지역에서 철수하면서 구주왕국이 세워졌다. 이때 독립 국가를 형성한 것은 몽골의 장수 출신이자, 고려계 주민이었던 금정윤이다. 금정윤의 성을 따와 이때부터 16세기 반정까지 이어진 구주의 체제를 통틀어 금씨 구주라고 부른다.

15세기 중반경에는 조선과 2년간의 전쟁을 치뤘으며, 구주가 패한 이후 조선과 군신관계를 맺어야했다. 이러한 군신 관계는 19세기 후반, 일본이 구주 식민화를 위해 조선에서 구주를 떼어내면서 끝났다.

황씨 구주

패전으로 인한 왕실에 대한 여론 악화와, 연이은 흉작으로 인해 민심이 흉흉해진 가운데 황연옥이 일으킨 성조 반정으로 인해 금씨 왕가는 조선으로 도망치고 황씨 왕조가 설립된다. 이때를 나누어 14~16세기를 금씨 구주, 17~19세기를 황씨 구주라고 부른다.

네덜란드와의 교역으로 일찍이 서양 문물을 받아들였으며, 이를 통해 한중일 삼국중 가장 먼저 외국의 문물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18세기 이후 기독교 관련 파문이 커져 쇄국정책을 추구하면서 점차 기술은 덜떨어졌고, 반대로 19세기 초반 이후 서양 문물을 받아들인 일본에 뒤쳐지는 결과가 일어났다. 그 결과 19세기 중후반 이후로는 일본의 내정간섭이 심화되었다.

일제 강점기

1890년, 구주는 회령 협약을 통해 일본에 합병된다. 황실은 일본 정부의 배려로 유지되었지만 가혹한 식민통치가 이어졌고, 1930~40년대 2차대전 당시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전쟁에 끌려가 목숨을 잃기도 하였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 구주에 현대 문물이 대거 유입되면서 경제가 성장하는 등의 사회적 발전 역시 존재하였다.

국가가 상대적으로 작았던 탓에, 경제 발전의 이익을 대부분의 국민들이 누릴 수 있어서 독립운동은 조선에 비하면 활발하지 않았다. 또한 일본 정부가 황실을 존중하면서 구주는 약 50년이 넘는 기간동안 큰 동요 없이 식민지가 유지되었다. 하지만 1930년대 이후 청년층을 통해 사회주의가 인기를 얻고, 중일전쟁으로 식민지 통치 정책이 강경하게 돌변하자 일제 강점기 후반기에는 독립 단체가 여럿 설립되기도 했다.

구주 제국

1945년, 2차 대전이 일본의 패전으로 끝나자, 구주 역시 미군정으로 독립하게 된다. 2년간의 미군정 체제를 거친 이후 자주 독립을 쟁취하였다. 또한 구주는 조선, 일본, 미국으로 이어지는 수백년간의 식민 통치 기간을 끝내고 독립을 이뤘다는 것을 자축하기 위해 제국을 선포하였다. 1950년 한국 전쟁 당시에는 남한을 도왔고 미국과 영국 다음으로 많은 군사를 파견한 국가였다.

구주는 경제가 매우 좋지 못한 국가였으나, 1960년대 중공업 위주의 강력한 경제 개발 정책으로 경제가 크게 발전하여 선진국의 반열에 들었다. 현재 구주는 대만, 남한, 일본, 싱가포르 등과 함께 동아시아 국가중 가장 국민소득과 삶의 질이 높은 국가로 분류된다.

지리

구주는 섬나라이다. 수백여개의 섬 중에서는 일본열도에 속해있는 의 구주섬이 가장 큰 섬이다. 대한해협으로 부산을 사이에 두고 대마도가 위치해있으며, 구주섬 남서쪽에는 충승제도가 길게 이어져있다. 충승제도는 과거 구주의 영토가 아니었으나 15세기 구주에 편입되었다. 이 때문에 구주 본토와는 다른 독특한 문화가 발전했다.

한국과 굉장히 가까우며, 특히 북쪽의 기창도는 부산과 배로 단 2시간이면 오갈 수 있는 짧은 거리에 위치해있다. 대마도는 기창도 본토보다도 한국에 더 가깝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오간다. 특히나 한국 시민들이 가장 많이 찾는 구주의 관광지이기도 하고, 한국인들도 상당수가 이주했기 때문에 한국 문화와 구주 문화, 그리고 섬의 토착 문화가 결합하여 구주 본토와는 다른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구주섬

구주의 영토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구주 최대의 섬이다. 일본어로는 "규슈"라고 읽는다.

충승 제도

충승자치도가 위치해있는 제도를 뜻한다. 일본어로는 "오키나와"라고 읽는다.

기후

기후로는 열대기후에 속하며 쾨펜의 기후표에서 Cfa에 속한다. 여름에는 40도에 가깝게 올라가고, 겨울에도 영하로 내려가는 일은 굉장히 드물다. 이 때문에 대만과 마찬가지로 열대 작물 농사가 발달하였다. 한편 충승의 경우에는 해양성 기후 때문에 저위도임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본토에 비해 날씨가 온화하다.

인구

구주의 인구 추이
1945년 6,038,241명
1952년 6,822,563명
1960년 8,129,325명
1971년 10,493,814명
1982년 12,658,326명
1997년 13,684,300명
2003년 14,005,293명
2010년 14,295,111명
2020년 14,349,180명

구주의 인구는 총 1,400만명으로 중소형 국가에 속한다. 인구가 많지는 않으나,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이다. 1945년 해방 당시에는 600만명 가량이었으나 고도의 산업화를 겪으며 인구가 크게 증가하였다.

남초 사회 문제

성비가 무려 224:100이라는 극악의 남초 사회이다. 구주 인근에서 진행된 핵실험의 여파로 인하여 구주인들의 유전자 정보가 수정되어, 여성이 출산될 확률이 극단적으로 줄어들었고, 1960년대부터 남초 사회의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특히나 세대를 거듭할수록 여성의 수가 줄어들고 남성 출생아의 비율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구주 사회에서 고민이 크다. 이에 따라 구주 정부는 여성 이민자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여성 인권을 대폭 신장시키는 등의 정책으로 여성의 비율을 어느정도 선이 무너지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사유로 구주는 여성들이 귀한 몸 대접을 받아, 일찍이 페미니즘이 득세하고 낙태가 합법화되는 등 적극적인 여성 인권 신장 정책이 이뤄져, 동아시아 지역에서 전례를 찾기 힘들정도로 남녀 평등이 이뤄진 국가가 되었다. 한편으로는 남성이 우세를 점함에 따라 성폭행, 성추행 문제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부상하였다. 이로 인해 1990년대 극단적인 성폭행 근절 및 엄벌이 이뤄진 결과, 현재는 이러한 일이 크게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치안이 좋은 국가 치고는 성범죄 문제가 심각한 편이다.

성소수자

남성의 인구가 많은 국가인만큼 동성애자의 비율 역시 굉장히 높으며, 양성애자까지 포함하면 전국민의 거진 반 정도가 성소수자로 분류될 수도 있을 정도이다.

전체 주민 등록 인구의 9.5%가 동성애자, 26.3%가 양성애자로 등록되어있어 전세계에서 가장 성소수자의 비율이 높은 국가이다. 실질적인 성소수자의 비율은 전체 인구의 40%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된다.

현직 총리인 노순형 역시 남편까지 두고 있는 동성애자고, 국왕인 융계제도 양성애자이다. 그런만큼 성소수자의 인권과 위상 역시 매우 높아, 세계적으로 구주는 성소수자 인권의 선구자격으로 평가받는다.

행정구역

구주제국
광역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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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역 행정자치단체
평주황도시 장도시 창성시
 일반 광역 행정단체
기창도 정사도 형평도
소림도 백경도 신자도
천초도
 특별 행정자치단체
충승자치도
구주제국
광역 행정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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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 시, 7개 도, 1개 자치도로 이뤄져있고, 그 밑에 33개 시, 105개 구의 기초자치단체가 존재한다. 7개의 도는 각각 기창도, 정사도, 형평도, 소림도, 백경도, 신자도, 천초도이며, 시는 창성시, 장도시, 평주황도시가 존재한다. 1개 자치도는 충승자치도이다.

구주는 1960년대 일찍이 지방자치제도가 실현되었으며, 도지사와 시장을 직선으로 선출한다. 또한 각 지역에 주의회, 시의회가 존재하여 매우 높은 지방 자치의 수준을 누리고 있다. 특히나 충승자치도는 그 자치의 수준이 거의 연방제나 다름 없다고 평가받는다.

행정구역 목록

지자체 이름 시·도청
소재지
인구 (2020년) 비율
총 인구 남성 여성
평주황도시 중구 431,957명 279,825명
(64.8%)
152,132명
(35.2%)
3%
장도시 천헌구 1,150,383명 680,832명
(59.2%)
469,551명
(40.8%)
8%
창성시 전성구 900,831명 592,020명
(65.7%)
308,811명
(34.3%)
6.3%
기창도 현주시 3,108,344명 2,038,272명
(65.6%)
1,070,072명
(34.4%)
21.7%
정사도 정산시 1,696,143명 1,153,953명
(68%)
542,190명
(32%)
11.8%
형평도 정견시 2,249,437명 1,503,832명
(66.9%)
745,605명
(33.1%)
15.7%
소림도 태복시 1,403,826명 964,832명
(68.7%)
438,994명
(31.3%)
9.8%
백경도 형성시 1,095,832명 778,942명
(71.1%)
316,890명
(28.9%)
7.6%
신자도 한원시 708,431명 596,833명
(84.2%)
111,598명
(15.8%)
4.9%
천초도 송연군 917,165명 804,195명
(87.7%)
112,970명
(12.3%)
6.4%
충승자치도 남현시 686,831명 536,701명
(78.1%)
150,130명
(21.9%)
4.6%
총계 14,349,180명 9,930,237명
(69.2%)
4,418,943명
(30.8%)
-

정치

체제

민주적인 정치가 발달한 국가이다. 옆나라인 대만이나 한국과는 달리, 독재 정권이 들어선적이 없고 안정적으로 다당제 민주주의가 유지되어왔다. 민주주의 지수에서 구주는 매우 높은 순위에 올라있으며 특히 동아시아 국가중에서는 대만, 일본, 한국 다음으로 높은 순위를 기록하고 있다.

구주는 입헌군주제 국가이자, 의원내각제 국가로 일본과 비슷한 정치 체제를 운영중이다. 표면상으로는 강력한 황권을 표방하고 있으나, 실질적으로 국정 권한은 수상이 이끄는 내각에게 있다. 수상은 다른 내각제 국가가 그렇듯이 원내 1당이나 연립여당으로 국회 의석수에서 과반을 차지한 정당의 당수이다. 수상에 대한 불신임 투표와, 수상의 조기 사퇴 역시 매우 활발하나, 이는 일본에 비해 빈도수가 적기에 수상의 평균 임기는 3~5년으로 상대적으로 긴 편이다.

종전 이후, 중국 국민당의 삼민주의 사상에서 영향을 받은 민족주의자들이 정치적 우세를 점했다. 처음에는 진보, 리버럴 성향이 우세했으나 점차 보수주의가 우세해졌다. 이후 구주국민당의 일당 독주 체제가 1970년대까지 이어졌으나, 1970년대 뒤늦게 닥쳐온 68혁명의 여파로 국민당의 대항마로 진보 성향의 화평민정당이 국민당과 양강 구도를 확립했다. 1990년대에는 화평민정당의 우클릭 행보에 반발한 사민주의자들이 보다 더 진보적인 정당인 구주민정당을 창당해, 화평민정당은 화평당과 민정당으로 분당되었다. 그러나 이후에는 특별한 정치 구도에서의 이변 없이, 보수주의를 지지하는 국민당과 진보주의를 지지하는 화평당 그리고 그 틈사이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는 사회주의 성향의 민정당이 2.5당제 구도를 이어나가고 있다.

2021년 기준으로, 제21회 입법위원 선거에서 승리해 재선에 성공한 노순형 수상의 화평당구주민정당과 연립내각으로 정권을 잡고 있는 상황이다.

역대 수상


구주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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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수 이름 소속 취임 퇴임 비고
초대 한희덕 (韓熙德)
1945년 9월 2일 1955년 5월 17일 임기 만료
제2대 금현택 (金鉉澤)
1955년 5월 18일 1959년 5월 17일 임기 만료
제3대 박수영 (朴輸嶺)
1959년 5월 18일 1960년 7월 26일 사임
제4대 신은수 (申銀洙)
1960년 7월 26일 1972년 5월 17일 임기 만료
제5대 금하성 (金河聖)
1972년 5월 17일 1974년 9월 10일 조기 총선
제6대 장희윤 (將嬉尹)
1974년 9월 11일 1982년 9월 10일 임기 만료
제7대 강석훈 (康石勳)
1982년 9월 11일 1983년 1월 7일 사임
제8대 금천호 (金天湖)
1983년 1월 7일 1986년 9월 10일 임기 만료
제9대 구도국 (究度局)
1986년 9월 11일 1994년 9월 10일 임기 만료
제10대 이형태 (李衡泰)
1994년 9월 11일 1997년 5월 25일 사임
제11대 금경준 (金慶遵)
1997년 5월 25일 1998년 9월 10일 임기 만료
제12대 양두현 (梁斗鉉)
1998년 9월 11일 2006년 9월 10일 임기 만료
제13대 서원길 (序元吉)
2006년 9월 10일 2008년 12월 17일 조기 총선
제14대 한경준 (韓警俊)
2008년 12월 18일 2012년 12월 17일 임기 만료
제15대 금오승 (金吳乘)
2012년 12월 18일 2016년 12월 17일 임기 만료
제16대 노순형 (盧純型)
2016년 12월 18일

원내 정당 목록

구주 입법원
원내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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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116석

15석
야당

102석

5석

5석

2석

2석
무소속 3석
재적 250석

로고 당명 당수 이념 의석수 비고
화평당
和平黨
Pacifist Party
노순형 중도 - 중도좌파
사회자유주의
현대자유주의
116석 여당
구주국민당
九州國民黨
Nationalist Party of Gujyu
금민철 중도우파
자유보수주의
사회보수주의
102석 야당
구주민정당
九州民政黨
Party for Political Democracy
금창준 중도좌파 - 좌익
사회민주주의
진보주의
15석 연립 여당
청민당
淸民黨
Anti-corruption Party
조현길 빅텐트
반 부패
대중주의
5석 야당
충승공화당
沖繩共和黨
Republican Party of Chungseung
승주한 좌익
충승 지역주의
민주사회주의
5석 야당
녹색연대
綠色連帶
Green Alliance
금수덕 중도좌파
환경주의
사회자유주의
2석 야당
시민권리당
市民權利黨
Party of Civic Rights
천휘석 중도 - 중도우파
중도주의
보수자유주의
2석 야당

구주의 정당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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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좌 ● 구주공산당, ● 혁명자유공산당, ● 반미투쟁위원회
진보 ● 구주민정당(15석), ● 충승공화당(5석), ● 남성의당, ● 진보정의당
중도좌파 ● 화평당(116석), ● 녹색연대(2석), ● 자유민주당, ● 민주온건당
개혁보수 ● 청민당(5석), ● 청년당
보수 ● 구주국민당(102석), ● 정통보수당, ● 신자유당, ● 우파연합
극우 ● 시민권리당(2석), ● 불교혁명당, ● 반공투사연대, ● 반동성애국민연합, ● 국가사회주의구주노동자당

황실

과거에는 전제군주제 국가였던 구주의 특성상, 막강한 권력을 가졌었으나 19세기 일본과의 합병으로 구주 왕실은 사실상 실권 없는 허수아비 영주로 전락했다. 독립 이후, 전제군주제로 복귀하자는 여론이 있었으나, 서양 사상의 유입으로 인해 입헌군주제가 더욱 지지를 받았다. 따라서 구주는 독립 이후 제국 선포에 상관 없이 입헌군주제로 평화롭게 국가 운영의 주체가 전환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주 황실에 대한 국민의 여론이 압도적으로 좋지는 않은데, 이는 1970년대부터 이어져온 유서깊은 사생활 문제 때문이다. 현 황제인 융계제는 별다른 구설수가 없으나, 그의 아들들은 각각 음주운전과 폭언으로 큰 논란에 휩쌓인적이 있으며, 2000년대에는 황실 인사들의 마약 남용 문제가 수면위로 떠올라 한때 황실 폐지 여론이 30%까지 올라간적도 있다.

하지만 황실이 이에 따라 적극적으로 범죄 행각에 적법한 벌을 내리고, 세금을 납부하고 기부금도 쾌척하는 등 민심 다독이기 행보를 적극적으로 보였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황실은 대다수의 국민들에게서 지지를 받는다.

황제


구주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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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주는 황제국이며 당연히 황제가 존재한다. 공식 명칭 역시 황제이다. 현재까지 총 3명의 황제가 즉위하였고 현재 황제는 융계제이다.

극초기에는 금씨 왕가가 다스렸지만 15세기 이후로 황씨 왕가가 지배하고 있다. 또한 1945년 칭제가 이뤄지면서 구주 왕은 구주 황제로 격상되었다.

보통 연호에다가 황제를 뜻하는 "제"자를 붙여서 "건희제" "신력제" 등으로 부르나, 실질적으로는 언론이나 민간에서나 그냥 현직 황제를 "황제"라고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선대왕의 경우에는 주로 묘호와 연호를 붙여 "고조 건희제" 또는 "고조"라고 부른다.

구주의 황제는 평주황도시에 위치한 수경궁에 거처한다.

역대 황제
대수 이름 묘호 연호 즉위 퇴위 비고
초대 황윤 (黃倫) 고조 (高祖) 건희 (建喜) 1945년 9월 2일 1951년 7월 19일 승하
제2대 황현 (黃賢) 화종 (和宗) 신력 (新歷) 1951년 7월 19일 1984년 8월 8일 퇴위
제3대 황철 (黃㬚) 융계 (隆啓) 1984년 8월 8일 - -

역대 국왕 목록은 틀:역대 구주 국왕 항목으로.

공화제 전환 논의

구주 내 황실이 아무것도 안하고 놀고 먹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구주 내 황실을 폐지해야한다는 의견도 있다. 특히나 사회주의적 평등 사상에 입각한 사회주의, 공산주의 성향 정치인들이 공화제 전환을 지지하고 있다. 충승공화당구주민정당은 공화제를 지지한다. 반면 구주국민당, 화평당, 시민권리당 등 다른 원내 정당들은 황정을 지지하고 있다. 양대정당이 황실을 강하게 지지하고 있기 때문에 공화제 논의는 쉽지 않은 편이다.

국민들의 여론 역시 공화제 전환에서 매우 멀다. 공화제 지지 여론은 20%대에 그치고 있고 여전히 70% 이상의 국민들이 황실을 지지하고 있는만큼 섣불리 공화정으로 전환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구주 국왕


구주 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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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씨 구주
초대 제2대 제3대 제4대
태조 광종 성종 폐왕 희천군
제5대 제6대 제7대 제8대
현종 벽종 상종 폐왕 경덕군
황씨 구주
제9대 제10대 제11대 제12대
성조 평종 황종 선종
제13대 제14대 제15대 제16대
강종 덕종 정종 민종
제17대 제18대 제19대 제20대
혜종 예종 양종 명종
제21대 제22대 제23대 제24대
하종 인종 폐왕 성덕군 주종
제25대 제26대 제27대
영종 신종 숙종
일제 강점기
제27대 제28대 제29대
숙종 흥종 고조
구주 제국
제29대 제30대 제31대 제32대
고조 화종 덕성왕 순영왕
구주 황제 · 구주 국왕 · 유구왕 · 구주 황태자

구주 국왕은 구주의 황태자가 겸임하여 재위한다.

유구왕


유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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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질적인 권한은 거의 없는 명목상의 왕위이긴하나, 구주 제국의 일원으로서 유구왕이라는 왕위가 존재한다. 이 유구왕 왕위는 1945년 건희제의 칭제건원 이후 세워진 왕위로, 구 류큐 왕국의 왕족 후손들이 돌아가면서 세습하고 있다.

그러나 충승의 이질적인 정치적 성향 때문에 정작 충승 내에서 왕실의 지지율은 크게 높은 편은 아니다. 여론조사에서 구주 본토에서는 황실에 대한 지지율이 60~70%대를 기록하는 반면, 가장 최근의 조사에서 유구 왕실에 대한 지지도는 46.3%로 공화제를 선호하는 30.1%보다는 높았으나 구주에 비해 확연히 왕실 지지율이 낮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역대 유구왕
대수 왕명 이름 즉위 퇴위 비고
초대 현덕 (賢德) 상유 (尙裕) 1945 1997 승하
제2대 태선 (泰宣) 상위 (尙衛) 1997

사법

구주의 사법 체계는 내각 산하의 법무부와 독립적 기관인 사법원으로 나뉜다.

검찰이 법무부의 산하 기관이기 때문에 구주에서는 한국과 달리 검찰보다 사법원, 즉 판사들의 힘이 더 강력하다는 말이 많이 나온다. 특히나 사법원이 독립된 기관으로서 정치 부패에 관해 엄격한 처벌을 내리고 있기에 정치인들도 왠만하면 사법원을 잘 건드리지는 않는 편. 대신 사법원에 수사권이 없기에 한국의 검찰과 같은 정치적인 행위는 잘 없다.

경제

무역이 크게 발전하였다. 그 외에는 경공업, 금융업, 관광업 등도 발전했다. 예전에는 중공업이 발전했으나, 중국의 영향으로 현재 중공업은 예전만하지 못하다.

예로부터 구주는 일본과 조선이라는 두 강대국 사이에서 중계무역을 하였고, 이 두 나라에서 이민자들이 많이 유입되었기 때문에 경제가 크게 발전하였다. 또한 네덜란드와도 교역하면서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다. 19세기, 일제에 의해 강제병합을 당한 이후에도 경제가 크게 발전했으며 오히려 근대화를 통해 이전에 비해 경제가 더욱 빠른 속도로 발전했다. 20세기와 21세기에 들어서도 일본, 대만, 중국, 한국 등 다양한 경제대국 사이에 위치한 국가로서 재미를 톡톡히 보고있는 동아시아의 대표적인 무역 강대국이다. 그중에서도 장도시에 위치한 장도항은 세계에서 가장 큰 항구중 하나다.

구체적으로 보자면, 구주의 국민소득은 명목 4만 3천불로, 대만, 한국은 물론 일본보다도 높은 수치를 자랑한다. 아시아 전체로 범위를 확장해도 일부 산유국들을 제외한다면 싱가포르 다음으로 높은 수치이다. 탄탄한 국민소득과 더불어, 삶의 질 역시 매우 높다고 평가받는다. 국민중 대다수가 중산층에 가까운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저출산으로 인한 실업률 증가, 미중 무역 전쟁의 타격, 코로나19로 인한 무역 감소와 관광업 직격타 등으로 인하여 정부 차원에서 많은 고민을하고 있다.

통화

구주의 공식 화폐는 환(環, GJH)이다. 환과 원의 교환비는 10환 : 1000원이다.

기술

복지

구주는 GDP의 총 16.4%를 복지로 지출하고 있으며, 그중 40% 정도가 노인 연금으로 지출된다. 복지의 수준은 한국과 비교했을때 매우 양호한 수준이지만 의료보험은 한국에 못미친다는 평가다. 그럼에도 청년 취업 지원금, 무상 대학 등 서유럽, 북유럽의 복지 체제를 일정부분 받아들여, 복지가 다른 아시아 국가들ㅇ에 비해 발전했다.

경제난으로 인하여 긴축을 실시해야한다는 신자유주의자들의 목소리가 반영되어 1980년대에는 잠깐 복지 비용이 축소되었으나 1990년대부터 다시 점차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2010년대 중후반 이후, 급변하는 국제 사정으로 인하여 구주의 경제 형편도 점점 나빠지자, 구주 정부 당국에서는 긴축은 하지 않겠지만 복지 증액 또한 하지 않을 것임을 선언했다. 이에 대한 저소득층의 큰 반발이 있었으나, 국민적으로 조금만 참고 버티자는 여론이 다수였기에 이 정책은 지지를 받고 있다.

노동 운동

교통

항공

주요 항공사로는 규모 순으로 구주황립항공, 솔라시드항공, 극동항공 등이 있다. 황립항공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플래그 캐리어이며 국영 회사로, 구주 내 항공편의 50%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민영 항공사중에서는 솔라시드항공의 규모가 가장 큰 편이다. 그 외의 중소규모 항공사는 장도항공, 스트레이츠항공, 디비전항공, 오리엔탈 에어 브릿지, 스타플라이어 구주 등이 존재한다. 그중 플라이 구주는 초저가, 엽기적인 비행, 최악인 서비스 등으로 유명하며 라이언 에어에 버금가는 세계 최악의 저가 항공사라는 오명을 가지고 있다.

한편 공항 중에서는 장도국제공항, 평주국제공항, 창성국제공항, 초천국제공항이 규모가 크다. 이 외에는 전국적으로 9곳의 공항이 존재한다. 군용 공항까지 포함할 시 그 수는 더욱 커진다.

철도

도로

항만

사회

동아시아 특유의 유교적 사상 때문에 경직되고 보수적인 분위기가 특징이다. 이 때문에 동성혼, 낙태도 정말 오랜 기간동안 불법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점차 개방된 사회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1970년대, 68혁명의 영향으로 사회 개혁운동이 있었으며 최종적으로는 반쪽짜리 혁명으로 그쳤지만 페미니즘, 반봉건사상, 자유주의 등 여러 진보적 아젠다가 경직된 구주 사회에서 논의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극단적 남초화로 인하여 동성애 및 양성애자 비율이 크게 늘어나면서 성소수자 인권은 동아시아 내에서 가장 잘 이뤄지고 있는 편이며, 동아시아 최초로 동성혼이 합법화된 국가이기도 하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보수적인 중장년층과 진보적인 젊은 세대들 사이 갈등이 있는 편이다. 하지만 한국과는 달리 세대 갈등이 그렇게 심각한 사회 문제는 아니며, 남녀 갈등은 국민적으로 여성주의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어느정도 이뤄졌기 때문에 일부 극우파들이나 급진 페미니스트들을 빼면 거의 갈등이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나 구주 사회는 갈등이 일어나도 구주 황실을 중심으로 뭉쳐야한다는 의식이 전제로 깔려있기 때문에 국론이 크게 분열되지는 않는 편이다.

민족

구주 내에서 가장 많은 파이를 차지하는 민족은 당연히 구주인으로, 전 인구의 85% 이상이 구주인이다. 그 다음으로는 한국인, 일본인, 대만인, 중국인, 베트남인 등이 잇는다. 충승인을 구주인에서 분리시킬경우 약 5%정도의 구주인이 충승인 또는 충승계로 분류된다.

구주가 경제적으로 발전하던 시절 한국에서 수많은 이민자들이 이민을 왔고 지리적으로 가까운 일본에서도 이민자들이 몰렸다. 베트남인들은 보트피플 출신으로, 1970년대경 구주에 정착했다. 세계적 무역항으로서 이민자들이 몰렸던 탓에 구주는 중국, 일본, 한국에 비해서는 단일국가로서의 정체성이 약하고 보다 다문화적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동아시아권에 국한된 문제이며, 베트남인 등 동남아계나 다른 인종에 대한 인종차별은 일본, 한국에 못지 않다. 특히 최근에는 외노자 인권 문제가 큰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충승 독립 문제

충승은 상술했다시피 구주와는 다른 문화권을 지니고 있었으며, 현재까지 구주 본토와는 다른 독특한 문화가 발전하였다. 이 때문에 구주 지역의 독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꾸준히 있어왔다. 특히나 1960년대 이후 구주 독립 운동은 좌파 학생운동 및 공화주의 운동과 결합하여 더욱 과격해졌다. 1967년, 충승 독립위원회가 창단되고, 2년 뒤 충승공화당이 창당되었다. 충승공화당은 과격한 공화주의, 사회주의, 민족주의를 주장하며 충승의 독립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구주 정부의 통치에 불만이 없었던 대다수의 시민들은 독립에 관심이 없었기에, 공화당의 활동은 수그러들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1980년대, 충승공화당은 노선을 온건화하여 사회민주주의, 충승 지역주의를 표방하는 정당으로 변모하였고, 이후 충승의 의견을 대변하는 정당으로 대중화되어 국회에 꾸준히 의원을 내보내고 있다.

언어

구주에서는 한국어의 방언인 구주어가 사용된다. 구주어는 기본적으로 한국어족에 속하는 언어이지만 제주어, 육진어와 마찬가지로 한국어와는 약간 어휘가 다르다. 그러나 매우 이국적인 구주어는 충승 지역으로나 가야 볼 수 있으며, 구주어와 한국어는 양국의 시민들이 프리토킹이 가능할정도로 유사성이 높다. 이 때문에 일부 언어학자들은 구주어를 구주 방언으로 묘사한다. 다만 억양이나 단어, 표현 등이 다르기 때문에 구주어는 엄연히 한국어와는 다른 언어다. 벨라루스어와 러시아어의 관계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그 외에 지역어로는 한국어, 일본어 등이 사용되며, 일본어는 구주어와는 크게 다르기 때문에 주로 영어와 함께 제1외국어로 많이 쓰이고, 정규 과정에서도 일본어를 가르치고 있다. 이 때문에 구주인들은 일본 자국민들을 제외하면 일본어를 가장 잘 구사한다고 정평이 나있다.

종교

구주의 종교 분포
2020년 불교 기독교 기타 무종교
56.3% 5.3% 1.7% 36.7%
[ 연도별 종교 신자 ]
1960년
85.1% 7.6% 3.6% 3.7%
1970년
78.9% 7.3% 2.5% 11.3%
1980년
73.3% 8.0% 1.8% 16.9%
1990년
70.0% 5.6% 2.1% 22.3%
2000년
65.7% 5.6% 1.4% 27.3%
2010년
61.7% 4.9% 1.3% 32.1%
2020년
56.3% 5.3% 1.7% 36.7%

구주는 전국민의 60%정도가 종교인으로, 무종교인의 수가 높은 국가에 속한다. 극도로 세속화되어있는 국가로 일부 극단적 종교 신자를 제외한다면 한국과 같은 과격 전도사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불교

구주는 공식적으로 불교를 국교로 채택하고 있고, 전국민의 50% 이상이 불교 신자이다. 과거 네덜란드를 통해 기독교가 유입된 적은 있으나, 과거 황실의 탄압으로 인하여 불교에 비하면 그 세력은 매우 미미하다. 구주의 황실 또한 불교를 믿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구주 내에서 불교의 위치는 잉글랜드 성공회와 비슷하다. 생활속의 불교를 표방하며, 세속화되어있다.

하지만 불교가 20세기 후반 들어 각종 부정부패와 추문이 드러나면서 시민들, 특히 하류층 시민들에게서 큰 신의를 잃었다. 그렇기 때문에 구주 내에서는 무종교인의 비율이 최근 들어 급격하게 늘어나는 추세다. 무종교인중에서는 무신론자의 비율이 50%이지만 잘 모르겠다는 사람 역시 상당하다.

불교 사찰 중에서는 평주황도시에 위치한 주현사가 가장 규모가 크다. 주현사는 구주인들이 가장 많이 따르는 종파인 천송종의 중심이 되는 사찰이다. 불교 신자중 약 90% 이상이 천송종이다. 그 외에는 조계종, 조동종 등 다양하다. 그러나 세속화된 사회인 구주 내에서 불교 종파간의 차이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기독교

기독교는 국민의 5%정도가 믿는 제2의 종교로 등록되어있지만 거의 세가 없고, 지속적으로 신자 수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전망이 암울하다. 옆나라인 한국에서 기독교가 최대 종교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

종교세

구주에서는 종교인들을 지원하기 위해 종교인들을 국가적으로 등록하고 이들에게서 종교세를 거두고 있다. 가령 불교인이 내는 세금은 불교 사찰을 지원하기 위해 사용되고, 기독교인이 내는 세금은 성당이나 교회를 위해 사용되는 식이다. 세금의 액수가 크지는 않으나 아무래도 저소득층과 청년층에게는 부담이 되는지, 청년층과 저소득층에서는 무종교인의 비율이 거의 70~80%에 육박한다.

교육

구주의 교육은 대한민국과 마찬가지로 6-3-3-4 구조이다. 다만 주입식 교육의 색체는 적으며 대학 진학률이 50~60%대로 다른 동아시아 국가와 비교하면 많이 낮다. 이때문에 다른 동아시아 국가에 비해 지식의 수준이 얕다는 비판이 재기되고 있으나, 학생 인권이라는 명목이 국민들에게는 더 큰 지지를 받는다.

대학교는 학사 4년, 석사 2년, 박사 3년 과정으로 구성되지만, 독일과 마찬가지로 교수의 권한이 매우 강력하여 교수가 논문의 방향성을 지도하고, 논문을 허가하지 않을시 영원히 졸업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구주의 대학교는 입학보다 졸업이 더 어렵다. 하지만 1990년대, 교수들의 부조리 행위가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면서 교수들의 권한은 예전에 비해 낮아졌으며 특히 석사까지는 약 8~90%의 진학자들이 졸업하는 편이다. 물론 박사 과정은 진학자중 중퇴자의 비율이 약 70% 이상일정도로 졸업이 어려운 편.

주요 대학으로는 구주 중앙대학교, 사회과학대학교, 장도공과대학교, 구주 황립대학교, 가현대학교, 영륜대학교 등이 있다. 상위권 종합대학은 전부 서울에 몰려있는 한국과는 달리 장도시, 창성시, 기창도 등에 주요 명문 종합대학이 골고루 분포되어 있는 편이며 각 지방의 최대도시에도 전국구 상위권 종합대학이 분포되어 있다. 또한 한국의 거점국립대학교나 일본의 구제국대학같은 개념처럼 구주에도 대도중심국립대학 (大都中心國立大學)이 존재한다. 각 지방의 주요도시 10곳에 설립되어 있는 각 지방의 최고 수준 종합대학이며, 해당 지방에서는 물론 전국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

한국 대학교와도 교류가 활발한데, 언어가 통하고 위치가 매우 가깝기 때문에 교환학생도 많이 오간다. 물론 일본 대학과도 교류가 활발하다. 또한 구주에서 한국, 일본으로 유학을 가는 학생들도 많은 편이다.

실제로 1995년 양국간의 친목 도모, 그리고 미래 첨단과학기술을 선도할 인재양성을 목적으로 한국과 구주는 한국-구주 공동 이공계 학부 유학 제도를 도입하였다. 구주 정부와 한국 정부가 공동으로 구주인 한국 이공계 유학생에게 학비 전액과 생활비를 지원하는 유학 프로그램이며 2005년과 2015년 2회 연장을 통해 현재도 지속되고 있다.

한국-구주 공동 이공계 학부 유학 제도는 수험자 총 1000명을 선착순으로 받은 뒤 그 중 시험 성적 상위 100명에게 차례대로 입학 자격을 부여한다. 보통 5위 이내 학생들이 서울대학교나 포항공과대학교에 진학하며, 그 외 "인서울"이나 "주요 거점 국립대"에 가려면 적어도 50등대 초중반에는 들어야 가능하다. 문제는 구주와 한국이 공동으로 제작하고 있는데, 한국의 수능에 논술과 면접이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다만 시험 범위가 한국 수능과 다소 다르기 때문에 별도의 준비 없이 잠깐 보는 것으로 100등 안에 들기란 하늘의 별따기 수준이다.

군사

구주가 그렇게 큰 나라는 아니기 때문에 군사력은 많이 약한 편이라고는하지만, 한중일러라는 4개의 강대국이 용호상박을 매일 벌이고 있는 동아시아에 위치한 국가인만큼, 왠만한 유럽 중진국 이상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다. 구주의 군대는 공식적으로 "구주 국방군"이라고 불리며, 국방군은 2019년 기준으로 세계 32위의 군사력을 보유중이다. 주구미군이나 주구한군, 주구일군 등이 주둔하고 있기 때문에 우스겟소리로 구주의 안보는 국방군보다 외국 군대가 더욱 많이 신경쓴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일부는 군사력 증강 및 자주국방을 해야한다고 주장하나 미국, 일본, 한국이 모두 구주와 친근한 현재 상황으로서 자주국방을 해야할 이유가 딱히 없는 것은 사실이다.

섬나라인만큼, 육해공군중 해군이 가장 강력하고 두각을 보이고 있다.

문화

언론

구주 6대 종합 일간지

제국신보

신민일보

태정일보

현인일보

민주일보

해방신문

일본처럼 아직도 종이 일간지가 영향력을 발휘하는 나라이지만 그 영향력은 줄어들고 있다.

주요 언론으로는 민주일보, 제국신보, 해방신문, 신민일보, 현인일보, 태정일보 등이 존재한다. 한국의 언론이 보수 쪽으로 치우쳐져있다면 구주는 진보 쪽으로 쳐져있는 편이다. 그러나 보수를 지지하는 언론들의 수는 결코 적지 않다. 6대 일간지중 민주일보, 신민일보, 태정일보는 진보, 제국신보, 현인일보는 보수, 해방신문은 중도 성향이다.

발매 부수로만 따지면 신민일보제국신보가 각축을 벌이고 있다. 각각 유료 판매 부수가 230만장, 215만장이다. 이는 인구 규모가 구주의 2~3배가 넘는 대한민국의 최대 일간지인 조선일보보다도 많은 수치로 얼마나 많은 구주인들이 종이 신문을 신뢰하는지를 알 수 있다.

6대 종합 일간지중에서도 제국신보신민일보 정도를 제외하면, 좌우파를 가리지 않고 기사의 신뢰도가 형편 없는 것으로 악명높다. 주요 일간지도 이러니 타블로이드지는 거의 말할 필요도 없는 지경. 영국의 황색 언론만큼 구주의 황색 언론 역시 유명한데, 연예인 관련한 뉴스에서는 아예 소설을 기사로 둔갑시키는 일이 횡횡하며 국민들의 언론 신뢰도는 그야말로 바닥을 친다. 구주에서는 우스겟소리로 뉴스보다 인터넷에서 나도는 정체불명의 글이 더 신빙성있다는 말도 있다.

이런 경향이 21세기 들어 인터넷 매체의 발달로 더욱 악회되자, 아예 융계제가 직접 우려를 표할정도로 정부와 황실 차원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하고 있다.

방송

주요한 방송국으로는 """"""가 있다.

대중문화

영화에서는 큰 두각을 보이지 못하지만, 서브 컬처 산업이 발달해, 대만, 일본과 마찬가지로 애니메이션에 대한 수요가 상당하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이 아닌 영화도 시장에서 큰 파이를 차지하고 있다.

아티스트 앨범 발매 장르 인증 판매량
(백만장)
추정 판매량
(백만장)
전문국 전문국 3집 1986 헤비 메탈, 글램 메탈 32.1 50
파고다 양탄자를 깔고서 1976 포크, 재즈 18.4 37
휘트니 휴스턴 & VA Bodyguard OST 1992 , R&B 13.6 35
필 콜린스 No Jacket Required 1983 , R&B, Funk 11.5 25
마이클 잭슨 Bad 1987 Funk, , R&B 14.8 25
전문국 전문국 4집 1989 글램 메탈, 익스트림 메탈 17.7 25
권동욱 새야 날아라 1983 포크 록, 팝 록 14.3 25
현진 Music Will Never Die 1986 팝 록, 댄스 록, 월드 뮤직 19.9 23
이글스 Hotel California 1975 컨트리, 컨트리 록 10.0 23
신경희 나가 1990 트로트, 디스코, 댄스 록 14.5 21
데프 레파드 Hysteria 1987 글램 메탈, 팝 록 10.6 21
전문국 전문국 2집 1981 헤비 메탈 15.3 20
메탈리카 Metallica 1991 스래시 메탈 10.0 18
아델 21 2011 소울 7.4 17
방탄소년단 MAP OF THE SOUL : 7 2020 , R&B, 힙합 10.5 17
비틀즈 1967-1970 1973 , 9.4 17
에미넴 The Marshall Mathers LP 2000 힙합, 붐뱁 9.2 15
레드 제플린 Led Zeppelin IV 1973 하드 록, 블루스 록, 헤비 메탈 4.9 14

음악으로는 옆나라 일본과 마찬가지로 록 음악과 헤비메탈이 강세를 보인다. 1960년대 어느정도 경제 규모가 되었기에, 필리핀, 일본과 더불어 비틀즈가 1966년 공연을 온 3개뿐인 동아시아 국가중 하나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내수시장이 작다보니, J pop, K pop과 같은 고유의 음악은 없으며 주로 K pop이나 영미권의 팝, 록 음악이 인기를 끄는 추세다. 최근에는 구주의 전통 음악에 대한 인기도 높아지고 있다.

구주의 음악은 전통적으로 외국 음악이 강세이지만 권동욱, 신경희, 전문국 등 구주 출신의 싱어송라이터들도 큰 두각을 보인다. 주로 한국의 트로트, 일본의 엔카, 서구권의 록, 팝, 컨트리, 블루스 등의 음악을 구주만의 정서에 결합한 음악이 인기를 얻고 있다.

스포츠

야구

역대 구주 프로야구 (GBO) 우승 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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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는 한국-일본의 영향을 받은 국가답게 야구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구주 프로야구(GBO)는 1989년 리그가 창설되어 1990년 첫 리그가 개최되었다. 일본 프로야구(NPB)와 한국 프로야구(KBO)로부터 많은 야구 노하우와 인프라를 전달받아 리그는 근 30년간 큰 속도로 성장하였다.

구주의 프로야구단은 총 6개의 구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창도를 연고지로 하는 소프트뱅크[1] 호크스, 창성시를 연고지로 하는 SHK[2] 라이온즈, 장도시를 연고지로 하는 레드캐비지[3] 타이거즈, 형평도를 연고지로 하는 레벨파이브[4] 드래곤즈, 정사도를 연고지로 하는 솔라시드[5] 자이언츠, 소림도를 연고지로 하는 마루에이[6] 돌핀스가 있다. 이 중 인기가 가장 높은 구단은 단연 소프트뱅크 호크스이며, 전성기인 2010년대 이후로는 "신민 중 절반은 호크스 팬이다"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그 외 레드캐비지 타이거즈와 SHK 라이온즈가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인기를 추격하고 있으며, 나머지 3개 구단도 인기는 밀리지만 각 지역에서 만큼은 확고한 지지를 받고 있다.

리그는 6개 구단이 서로 6개 시리즈(홈 10경기, 원정 10경기)씩 풀리그로 치른 다음 상위 3팀이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방식이다. 단, 4위가 3위와의 게임차가 1게임차 이내라면 와일드카드가 주어진다. 와일드카드는 4위 팀과 3위 팀간 경기를 치루어 2전2선승을 하는 구단이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방식인데, 3위 팀에게 1승이 먼저 주어지고 경기도 3위 팀이 홈 경기로 치르는 등 3위 팀에게 혜택을 많이 주고 있다. 3위 팀(혹은 와일드카드를 진행하여 올라온 4위 팀)과 2위 팀 간에는 플레이오프가 치뤄지며, 플레이오프는 5전3선승을 하는 구단이 승리하여 구주시리즈에 진출하게 된다. 구주시리즈는 당해 야구 리그의 우승자를 가리는 최상위 경기이며, 플레이오프 승자와 1위 팀 간에 치루어 진다. 7전4선승을 하는 구단이 구주시리즈에서 승리하여 최종 리그 우승팀이 된다. 당연하지만 구주시리즈는 매우 열기가 뜨거워 경기 중에는 해당 경기를 하고 있는 팀의 연고지 거리가 텅텅 빌 정도다. 또한 7차전이나 우승팀이 결정될 것으로 보여지는 경기에서는 황제인 융계제가 와서 경기를 관람하기도 한다. 또한 구주시리즈 1차전은 황족이나 정치인, 인기 연예인이 시구를 하기도 한다.

2010년대 이후 구단을 추가하여 8개 구단 체제로 가자는 제안도 적지 않지만, 연고지 문제나 기존 구단들의 반발로 인해 추진이 잘 되고 있지 않다. 국내 야구 뿐만 아니라 해외 야구 역시 수요가 높은데, 주로 언어도 비슷하고 양쪽에서 용병 선수가 오가는 한국 프로야구가 구주 내에서 인기가 많다. 특히 구주와 가까운 부산광역시에 자리잡고 있는 롯데 자이언츠의 인기는 구주 국내 구단들 만큼이나 높은 편으로, 구주 프로야구가 출범되기 전에는 구주 야구팬 대부분이 롯데 자이언츠의 팬이였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였다. 또한 충승자치도는 따뜻한 기후를 가지고 있기에 가을~겨울철에 한국이나 일본의 구단들이 찾아와 베이스캠프를 차려 동계 전지훈련을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충승자치도의 야구 인프라는 꽤 높은 편이지만 정작 충승자치도에는 야구 구단이 없기 때문에, 야구 구단 창설을 원하는 주민들의 여론이 높은 상황이다. 그래도 기창 소프트뱅크 호크스는 충승셀룰러구장[7]에서 한두시리즈 정도 경기를 개최하고 있다는 점이 위안거리다. 그래서 충승자치도에서는 기창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인기가 높다.

구주 야구 국가대표팀의 실력은 대체로 일본과 한국보다는 한 수 아래지만 그래도 꽤 수준급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지리적으로 가깝고 실력이 비슷한 대만 야구 국가대표팀과는 한일 다음가는 아시아 야구 3위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라이벌 관계이며, 이 때문에 둘 사이의 야구 국가대항전은 매우 뜨거운 열기를 자랑하고 있다. 2010년대 이후로는 구주가 대만에게 상대전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중이다.

국제 대회에서도 가끔씩 깜짝 성적을 내주고 있으며, 간혹 한국이나 일본에게 일격을 가하기도 한다. 특히 한국에서는 구주에게 패한 경기를 쇼크라고 칭할 정도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는 2003년 아테네 올림픽 아시아 예선 1차전에서 한국을 4:5로 이긴 것, 2006 도하 아시안 게임 본선에서 한국을 2:4로 이긴 것 등이 있다. 2010년대 이후로는 국제 대회에서 큰 성장을 보여주고 있는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본선에서 한국을 1:2로 이기는 등 선전한 결과 동메달을 가져갔으며 2019 프리미어 12에서도 한국을 무려 0:7로 이기는 등 한국 킬러로 급부상했다. 2020 도쿄 올림픽 본선에서도 2위간 경기에서 한국에게 1:3으로 이기고 있었으나 9회에 역전을 당해 4:3으로 패배했다. 그러나 동메달 결정전에서는 10:6으로 설욕했고, 동시에 구주 사상 첫 야구 올림픽 동메달도 가져가는데 성공했다.

그 외 스포츠

야구 외의 스포츠로는 축구, 수영 등이 인기가 많은 편이다. 지난 2020 도쿄 올림픽에서는 최종 순위가 17위였다. 중소규모의 국가 치고는 선방한 순위다.

구주 축구 국가대표팀은 아시아(AFC)에서 중상위권 팀으로 평가되고 있다. FIFA 월드컵 출전 경험은 3회이며 최고 성적은 조별리그 진출이다. 즉 토너먼트에는 한번도 진출하지 못하였다. 통산 월드컵 성적은 1무 8패이며, 체코슬로바키아에게 무승부를 거둔 것이 유일한 승점 획득 기록이다. 1982년 첫 출전한 이래 1986년, 1990년까지 3회 연속 출전하였으나 그 이후로는 30여년이 넘도록 출전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로는 한일호란으로 대표되는 강팀들 그리고 중동권 강팀들을 끝내 넘어서지 못해 한끝 차이로 탈락하거나 플레이오프로 떨어지는 등의 이유가 있다. 다만 아시안컵에서는 수준급 팀으로 분류되고 있으며, 1980년에는 한국을 이기고 깜짝 우승을 하기도 했다. 가장 최근에 치루어진 2019년에도 8강에 진출하였다.

외교

구주 정부는 한국과 중국, 일본, 대만 사이에 절묘하게 끼어있는 구주의 지정학적 이점을 살려, 냉전 시절때부터 한국, 일본, 중국, 대만 모두와 어느정도의 친선을 맺는 반중립화 정책을 표방해왔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구주는 자본주의 국가고, 미군도 주둔하고 있는만큼 친미에 기운 중립화 정책이라고 평가받는다.

이러한 특이한 위치 때문에 구주는 각 국가간 분쟁이 일어날때 싸움을 중재하는 역할을 역사적으로 많이 해왔다.

한구 관계

과거에는 구주가 조선의 속령으로서 사실상의 식민지배를 받았다. 그러나 독립적인 자치권을 인정받았기에, 15세기 이후 구주와 조선은 사실상 동맹 파트너 관계로 발전하였다. 19세기 구주가 일제의 통치를 받게된 이후, 일부 구주 독립투쟁가들은 조선의 독립운동가들과 힘을 합쳤다. 또한 1940년대 길어지는 전쟁에 대한 반발로 구주 내 독립 운동이 더욱 활발해지자, 조선 독립 세력은 구주 독립 세력을 지지했고, 구주와 조선이 독립한 이후 두 나라는 매우 친근한 관계가 되었다.

두 나라는 언어와 문화, 역사 등이 비슷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한국인이 구주에 대해 가지는 감정은 우호적이며 구주인들이 한국에 대해 가지는 감정 역시 비슷하다. 21세기 이후, 인터넷의 발전으로 구주와 한국의 젊은층이 상호간의 문화에 더 잘 접근할 수 있게 되면서 21세기 들어 관계가 더욱 우호적으로 변했다.

구주가 한국과 일본 양국과 친근한 관계이기 때문에, 구주는 보통 두 나라 사이의 싸움을 중재하는 역할을 한다.

구일 관계

과거 구주는 일본에 여러차례 침략을 당한 바 있으나, 조선과 달리 구주는 일본의 근대화로 인한 수혜를 톡톡히 입어 경제가 발전되었기 때문에 구주인들은 대체로 일본의 통치를 필요악이었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통치 기간, 좋든 싫은 구습이 타파되고 경제가 크게 발전하였기 때문에, 일제강점기 시기를 옹호하는 구주인들이 상당하다. 하지만 한국에서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 모두가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듯이, 일본의 독재 통치와 독립운동 탄압 등으로 인해 일본의 식민통치에 비판적 감정을 가지고 있는 구주인들도 매우 많다.

최근에는 일본의 문화가 구주에서 인기를 끌면서 일본에 대해서도 한국만큼은 아니지만 우호적 감정을 가지는 시민들이 대부분이다. 한국과 일본 양국과 친한 구주는 보통 두 나라간의 다툼이 일어났을때 중립국 포지션으로 싸움을 조정해준다.

구중 관계

구주가 기본적으로 외교에 있어서는 친미에 기운 중립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에, 동아시아의 친서방권 국가중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친중 성향인 국가이다.

다만 2010년대 이후 중국의 공격적인 외교 정책으로 인해 구주 정부도 점차 반중으로 기울어가고 있다. 특히나 자주 외교를 표방하는 진보 정당에서 강경한 반중 정책을 주장하는 중이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2020년 코로나19 이후 구주 내에서도 코로나 환자가 폭증하며 민중들 사이에서도 반중 정서가 극대화되어가고 있다.

구주-대만 관계

구주와 대만은 섬나라에 열대기후 등 비슷한 환경을 가지고 있는 국가이고, 문화 역시 비슷하여 관계가 우호적이다. 한국, 일본만큼은 아니지만, 경제적, 문화적으로 구주와 대만은 협력 파트너 관계다. 군사 훈련만 하지 않을 뿐 사실상의 동맹국으로 간주된다.

구주는 과거 대만과 1985년까지 수교하였으며 이는 대만과 가장 오래 수교한 기록중 하나이다. 그러나 중국의 규모가 너무 커지자 어쩔 수 없이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수교를 맺었다. 관계가 단절된 이후에도 구주와 대만은 비교적 가까운 관계를 맺고 있다.

구미 관계

미국이 일본으로부터 구주를 독립시켰고, 냉전 시대에는 함께 북한, 중국 등 공산권 국가와 맞서 싸웠다. 현재에도 구주와 미국은 합동 훈련을 하고 있으며 구주에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군사동맹국이다. 대만, 일본, 한국에 비해 지정학적 가치는 약간 떨어지지만, 그럼에도 동아시아에서 몇 안되는 친미 선진국인만큼 미국은 구주와 외교적으로 친근한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한다.

반면 구주에서는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으로 인해 미국정부에 대한 여론이 좋지 못하다. 허나 문화에 관해서는 구주인들이 미국 문화에 우호적이다.

각주

  1. 통신사.
  2. 해운회사.
  3. 유통업 및 대형마트 운영회사.
  4. 게임회사.
  5. 항공사.
  6. 해운 및 물류, 무역회사.
  7. 충승 향토기업인 셀룰러가 명명권을 구입하여 충승 셀룰라구장이라고 불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