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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이츠리겐슈타트 교국'''(<small>[[그라이츠어]]:Reiden Griezliegenstadt</small>)은 [[헤르덴 제도]](<small>[[그라이츠어]]:Herden Archipel</small>)에 위치한 세속적 성격을 띈 [[신권국가]]이자 [[도시국가]]이다. [[보편 정교회]]에 총본산이며, 국가원수 및 보편 정교회 내 영적 지도자 직책을 수행하는 '제1사도'(<small>[[보편 정교어]]:Ersten Apostel</small>)의 통치 아래 대다수의 성직자들이 전반적인 국가 핵심 인력으로 자리잡고 있다. | '''그라이츠리겐슈타트 교국'''(<small>[[그라이츠어]]:Reiden Griezliegenstadt</small>)은 [[헤르덴 제도]](<small>[[그라이츠어]]:Herden Archipel</small>)에 위치한 세속적 성격을 띈 [[신권국가]]이자 [[도시국가]]이다. [[보편 정교회]]에 총본산이며, 국가원수 및 보편 정교회 내 영적 지도자 직책을 수행하는 '제1사도'(<small>[[보편 정교어]]:Ersten Apostel</small>)의 통치 아래 대다수의 성직자들이 전반적인 국가 핵심 인력으로 자리잡고 있다. | ||
[[대륙력]] 5세기를 기점으로 하여 [[타를리오스 2세]](<small>[[보편 정교어]]:Tarlios II</small>)의 [[세속금지령]] 철폐 이후 보편 정교회를 믿는 신앙심 깊은 귀족들의 토지 기부를 시작으로 제1사도의 사유 재산은 급격히 증가했으며, [[헤르덴 제도]]를 공동 통치하게 된 [[빌레이스 공가]](<small>[[그라이츠어]]:Series ad Villeis</small>)의 계승위 단절은 보편 정교회 중심의 종교국가화가 가속화되었다. | [[대륙력]] R. 5세기를 기점으로 하여 [[타를리오스 2세]](<small>[[보편 정교어]]:Tarlios II</small>)의 [[세속금지령]] 철폐 이후 보편 정교회를 믿는 신앙심 깊은 귀족들의 토지 기부를 시작으로 제1사도의 사유 재산은 급격히 증가했으며, [[헤르덴 제도]]를 공동 통치하게 된 [[빌레이스 공가]](<small>[[그라이츠어]]:Series ad Villeis</small>)의 계승위 단절은 보편 정교회 중심의 종교국가화가 가속화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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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국의 정식 명칭은 ''''그라이츠리겐슈타트''''(<small>[[그라이츠어]]:Griezliegenstadt</small>)이며, 이는 [[그라이츠어]]로 ''''신성된 리겐의 영지(혹은 국가)''''으로 번역된다. [[빌레이스 공가]]의 초대 대공이자 [[헤르덴 제도]]의 세속 영지를 처음으로 확보했던 [[리겐슈티른]](<small>[[그라이츠어]]:Liegenstirn der Villeis</small>)에서 비롯된 것인데, 이는 보편 정교회의 최고 수장인 [[제1사도]]가 단절된 빌레이스 공가의 뒤를 이어 영지에 대한 세속권을 확보 및 계승의 정통성을 인정받는 한편, 제정 사회로의 통합을 의미한다. | 교국의 정식 명칭은 ''''그라이츠리겐슈타트''''(<small>[[그라이츠어]]:Griezliegenstadt</small>)이며, 이는 [[그라이츠어]]로 ''''신성된 리겐의 영지(혹은 국가)''''으로 번역된다. [[빌레이스 공가]]의 초대 대공이자 [[헤르덴 제도]]의 세속 영지를 처음으로 확보했던 [[리겐슈티른]](<small>[[그라이츠어]]:Liegenstirn der Villeis</small>)에서 비롯된 것인데, 이는 보편 정교회의 최고 수장인 [[제1사도]]가 단절된 빌레이스 공가의 뒤를 이어 영지에 대한 세속권을 확보 및 계승의 정통성을 인정받는 한편, 제정 사회로의 통합을 의미한다. | ||
[[로메니덴 제국]]에서는 ''''로키에 아드 아포트루스'(<small>[[ | 과거 [[로메니덴 제국]]에서는 ''''로키에 아드 아포트루스''''(<small>[[로메니어]]:Locie ad Apotrus</small>)라고 불렀다. 의미는 ''''사도의 나라''''이며, 이러한 영향으로 인해 현재까지 [[동대륙|동부대륙]] 지방에서도 과거 로메니덴 제국의 표기를 거의 따르거나 변형시켜 칭한다. | ||
세속 교국민들이나 외국에서는 대체로 ''''리겐(혹은 리헨)''''(<small>[[그라이츠어]]:Liegen or Liehen</small>)이라는 약칭으로 부르며, 동부 대륙 국가들도 이러한 약칭을 부르는게 일반적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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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레이스 공동 공국'''(<small>[[ | '''빌레이스 공동 공국'''(<small>[[그라이츠어]]:Communio Ducis ad Villeis</small>)을 통치하던 [[엘레이츠 3세]](<small>[[그라이츠어]]:Eleiz III</small>)가 급사하면서 [[빌레이스 공가]]를 이을 후계가 단절되자, 공국을 함께 통치했던 제1 사도를 중심으로 한 단일 정치체제가 가속화 되었다.<ref>물론 제1 사도와 보편 정교회의 단일 통치를 견제하고자 남아있는 [[빌레이스 공가]] 일원과 빌레이스 공가에서 떨어져 나온 분가들과의 통치권 대립이 있었다.</ref> 이후에 [[헤르덴 제도]] 일대에 대해 확고한 통치 제도와 인망을 얻게 되자 당시 제1 사도였던 [[티레니엔 2세]]가 압도적인 민중의 지지를 바탕으로 신정에 입각한 교국을 건립함으로서 단일 국가 수립을 달성할 수 있었다. | ||
R. 981년에는 남부의 [[체르시코 섬]]을 기반으로 하던 [[아젠바르드 왕국]](<small>[[보편 정교어]]:Regnim ad Azenbard</small>)이 침략하기도 했으나, [[네를리스 파르티시오]](<small>[[보편 정교어]]:Nerlis Partisio</small>) 제1 사도가 성공적으로 이들을 격퇴하고 교국 사회를 안정화시켰다. 안정화된 사회 기반을 구축한 뒤 그는 [[루젠티아]](<small>[[론디니아어]]:Luzentia</small>) 왕국의 후계권을 둔 분쟁에서 개입을 시도하면서 [[리펜하이겐 왕가]](<small>[[보편 정교어]]:Husia ad Lifenheigen</small>)가 왕위를 획득하는데 큰 기여를 함에 따라 형식적인 루젠티아 내 세속화된 보편 정교회의 영지에 대한 통치권을 위임받게 되었다. | |||
==각주== | ==각주== |
2018년 10월 20일 (토) 22:21 기준 최신판
Reiden Griezliegenstadt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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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이츠리겐슈타트 교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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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어 |
Dum fata sinunt, vivite laeti[1] Per ardua ad astra.[2] | ||||
운명이 허락되는 동안 즐겁게 놀아라. 역경을 헤치고 별을 향해. | |||||
수도 | 리겐슈타트Ligenstadt | ||||
정치 | |||||
공용어 | 그라이츠어, 보편 정교어 | ||||
제1사도 Ersten Apostel[3] |
파를로스 레오니오 Parlos Leonio, R.1896~현재 | ||||
역사 | |||||
교국 역사 | |||||
• 세속금지령 철폐 | R.456년 1월 8일 | ||||
• 교국 선포 | R.731년 4월 15일 | ||||
• 아젠바르드 왕국 침략 격퇴 | R.981년 3월~10월 | ||||
• 로벤베르그 전쟁 | R.1421년 ~R.1436년 | ||||
• 클레버스 조약 체결 | R.1867년 3월 12일 | ||||
그라이츠리겐슈타트 교국(그라이츠어:Reiden Griezliegenstadt)은 헤르덴 제도(그라이츠어:Herden Archipel)에 위치한 세속적 성격을 띈 신권국가이자 도시국가이다. 보편 정교회에 총본산이며, 국가원수 및 보편 정교회 내 영적 지도자 직책을 수행하는 '제1사도'(보편 정교어:Ersten Apostel)의 통치 아래 대다수의 성직자들이 전반적인 국가 핵심 인력으로 자리잡고 있다.
대륙력 R. 5세기를 기점으로 하여 타를리오스 2세(보편 정교어:Tarlios II)의 세속금지령 철폐 이후 보편 정교회를 믿는 신앙심 깊은 귀족들의 토지 기부를 시작으로 제1사도의 사유 재산은 급격히 증가했으며, 헤르덴 제도를 공동 통치하게 된 빌레이스 공가(그라이츠어:Series ad Villeis)의 계승위 단절은 보편 정교회 중심의 종교국가화가 가속화되었다.
로메니덴 제국(로메니어:Imperium Lomeniden)의 메텔란트 정벌 이후 획득한 영지와 백작위를 제1사도에게 기증하면서 독립 영지가 됨에 따라 티레니엔 2세(보편 정교어:Tirenian II)가 R.731년, 기존의 독립 영지들을 하나로 묶어 '그라이츠리겐슈타트 교국' 건립을 선포했다.
국호
교국의 정식 명칭은 '그라이츠리겐슈타트'(그라이츠어:Griezliegenstadt)이며, 이는 그라이츠어로 '신성된 리겐의 영지(혹은 국가)'으로 번역된다. 빌레이스 공가의 초대 대공이자 헤르덴 제도의 세속 영지를 처음으로 확보했던 리겐슈티른(그라이츠어:Liegenstirn der Villeis)에서 비롯된 것인데, 이는 보편 정교회의 최고 수장인 제1사도가 단절된 빌레이스 공가의 뒤를 이어 영지에 대한 세속권을 확보 및 계승의 정통성을 인정받는 한편, 제정 사회로의 통합을 의미한다.
과거 로메니덴 제국에서는 '로키에 아드 아포트루스'(로메니어:Locie ad Apotrus)라고 불렀다. 의미는 '사도의 나라'이며, 이러한 영향으로 인해 현재까지 동부대륙 지방에서도 과거 로메니덴 제국의 표기를 거의 따르거나 변형시켜 칭한다.
세속 교국민들이나 외국에서는 대체로 '리겐(혹은 리헨)'(그라이츠어:Liegen or Liehen)이라는 약칭으로 부르며, 동부 대륙 국가들도 이러한 약칭을 부르는게 일반적이다.
역사
그라이츠리겐슈타트의 역사 Histerien ad Greizliegenstadt | ||||
빌레이스 공동 공국 Communio Ducis ad Villeis 제1 사도령 |
→ | 그라이츠리겐슈타트 교국 Reiden Griezliegenstadt 신성된 리겐의 영지 |
빌레이스 공동 공국(그라이츠어:Communio Ducis ad Villeis)을 통치하던 엘레이츠 3세(그라이츠어:Eleiz III)가 급사하면서 빌레이스 공가를 이을 후계가 단절되자, 공국을 함께 통치했던 제1 사도를 중심으로 한 단일 정치체제가 가속화 되었다.[1] 이후에 헤르덴 제도 일대에 대해 확고한 통치 제도와 인망을 얻게 되자 당시 제1 사도였던 티레니엔 2세가 압도적인 민중의 지지를 바탕으로 신정에 입각한 교국을 건립함으로서 단일 국가 수립을 달성할 수 있었다.
R. 981년에는 남부의 체르시코 섬을 기반으로 하던 아젠바르드 왕국(보편 정교어:Regnim ad Azenbard)이 침략하기도 했으나, 네를리스 파르티시오(보편 정교어:Nerlis Partisio) 제1 사도가 성공적으로 이들을 격퇴하고 교국 사회를 안정화시켰다. 안정화된 사회 기반을 구축한 뒤 그는 루젠티아(론디니아어:Luzentia) 왕국의 후계권을 둔 분쟁에서 개입을 시도하면서 리펜하이겐 왕가(보편 정교어:Husia ad Lifenheigen)가 왕위를 획득하는데 큰 기여를 함에 따라 형식적인 루젠티아 내 세속화된 보편 정교회의 영지에 대한 통치권을 위임받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