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 전쟁
Napoleonic Wars
날짜
B.B. 132년 7월 14일 - B.B. 112년 12월 25일
장소
유럽 대륙 전역 및 브리튼 제도
원인
프랑스 대혁명에 대한 유럽 열강의 견제
교전국 대프랑스 동맹 프랑스 제국
영국
오스트리아 제국
러시아 제국
프로이센
스페인
포르투갈 왕국
프랑스 제국
지휘관 조지 3세
프란츠 2세
알렉산드르 2세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
나폴레옹 1세
병력 25만명
100만명
90만명
32만명
220만명
피해 규모 102만 5천명 전사
민간인 150만명 사망
30만 6천명 전사
민간인 60만명 사망
결과
프랑스 제국군의 승리
영향
영국, 포르투갈의 신대륙 천도
신성로마제국의 해체
베르사유 체제의 시작
브리타니아 제국의 역사
History of Britannia

개요

B.B. 132년부터 B.B. 112년까지 치뤄진 대프랑스동맹과 프랑스 제국간의 전쟁이다.

브리타니아 제국에서는 대유럽전쟁(Great European War)으로, 트라팔가르 해전에 한해서는 트라팔가르의 치욕이라는 명칭으로 부르고 있다.

전개 과정

B.B. 132년 7월, 프랑스 대혁명

대프랑스동맹의 결성과 전쟁

나폴레옹의 등장

트라팔가르에서의 대패와 나폴레옹의 영국 상륙

모스크바 함락

B.B. 112년 크리스마스 협정

결과와 영향

영국의 신대륙 천도

영국은 브리튼 제도가 나폴레옹에 의해 직접적인 공격을 받고 수많은 민간인들이 살상되자 결국 수도를 아메리카 신대륙으로 옮길 수 밖에 없었다. 런던을 명목상의 수도로 두었지만, 실질 수도는 필라델피아가 되었고 이후 프레더릭 3세의 치세때 임페리얼 캐피톨로 명칭이 변경되며 사실상 명목상으로도 옮긴 것이나 다름이 없게 되었다.

전화위복인지, 아메리카 신대륙은 자원이 풍부하고 영토가 넓어 영국이 새출발을 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었으며 이후 B.B. 60년대 태평양 영토 확장 전쟁과 산업혁명 이후에는 다시금 최고 열강의 반열에 올랐다. 10년대에는 공산 혁명으로 무너진 영국의 구 왕실을 구출하는 유럽 왕실 구출 작전으로 오히려 천도 후에 더욱 번창한 사례가 되어버렸다.

포르투갈 왕국의 신대륙 천도

포르투갈 역시 영국과 마찬가지로 브라질 식민지로 수도를 옮겼고, 브라간사 왕조 역시 유지되었다. 포르투갈 왕국은 영국과 마찬가지로 본토 수복을 외쳤으나 사실상 실패한데다가, 영국과 달리 왕실 암투로 인한 정치적 혼란을 겪으면서 크게 발전하지 못했고 영국의 공격을 받으며 제후국으로 전락하는 처지가 된다.

이후 32년 페드루 3세의 사망으로 인해 브라간사 왕조의 대가 끊기자, 브리타니아 제국의 황제가 직접 포르투갈 제국의 황제로 군림하면서 브라간사 왕조도 끝이 났다.

구 체제 왕실의 운명

영국은 브리튼 제도를 버리고 아메리카 신대륙으로 천도할 수 밖에 없었으며, 하노버 왕조 자체는 유지되었다. 이는 포르투갈의 브라간사 왕조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마땅히 천도할 곳이 존재하지 않았던 프로이센의 호엔촐레른 왕조,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조 등은 왕조 자체는 유지했지만 영향력이 크게 축소되었으며, 특히나 이때 오스트리아 제국은 상당한 영토를 프랑스에게 빼앗기고 정치적 영향력의 근간이었던 신성로마제국마처 해체됨에 따라 쇠퇴의 길을 피할 수 없었다. 러시아의 로마노프 왕조는 우랄 산맥 너머로 도망쳐 목숨만은 겨우 부지했으나 B.B. 112년 크리스마스의 굴욕적 협정을 통해 프랑스 황제의 제후가 되었다.

이후 유럽 왕조는 전반적으로 쇠퇴의 길을 겪다가, 10년대 유럽 혁명으로 유럽의 군주제 국가들이 전부 공산주의 혁명으로 무너지면서 완전히 붕괴하고 만다. 이때 거의 유일하게 공산주의의 물결을 피한 군주제 국가인 브리타니아 제국에서 유럽 왕실 구출 작전을 통해 왕실의 뿌리만 겨우 보존시켰다.

대중 매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