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제국 (대영주의 세계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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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 역사 ==
* 1775년 이전의 역사는 [[https://ko.wikipedia.org/wiki/%EC%98%81%EA%B5%AD%EC%9D%98_%EC%97%AD%EC%82%AC|위키백과 문서]] 참고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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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75~1805년 ===
1775년 4월 19일 북아메리카 13개 식민지에서 미국 독립 전쟁이 있었으나, 1776년 5월 15일, 결국 영국군이 승리하면서 이와 같은 계획이 물거품이 되었다. 허나 이후에도 계속 독립 운동이 이어졌다. 1781년 5월 25일, 제2차 미국 독립 전쟁이 일어났을 때는 영국군이 비록 영국 의회에 보내지는 못하게 했으나, 미국의 자치권을 인정해 13개 식민지를 북아메리카 대연방 공화국이라는 이름으로 자치를 허용했고, 독자적인 의회와 헌법, 군대, 그리고 북아메리카 총통를 가질 수 있도록 해주었다. 총통은 임기가 없는 종신직이었고 왕에 준하는 강한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 첫 번째 북아메리카 총통은 제임슨 타일러로 민주당 소속이었다. 이 당시 주요 당은 자유당, 북미당, 애국당으로 민주당은 진보주의, 북미당은 보수주의 및 확장주의, 애국당은 친 영국 본토 적인 성향을 띄었다.
1775년 4월 19일 북아메리카 13개 식민지에서 미국 독립 전쟁이 있었으나, 1776년 5월 15일, 결국 영국군이 승리하면서 이와 같은 계획이 물거품이 되었다. 허나 이후에도 계속 독립 운동이 이어졌다. 1781년 5월 25일, 제2차 미국 독립 전쟁이 일어났을 때는 영국군이 비록 영국 의회에 보내지는 못하게 했으나, 미국의 자치권을 인정해 13개 식민지를 북아메리카 대연방 공화국이라는 이름으로 자치를 허용했고, 독자적인 의회와 헌법, 군대, 그리고 북아메리카 총통를 가질 수 있도록 해주었다. 총통은 임기가 없는 종신직이었고 왕에 준하는 강한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 첫 번째 북아메리카 총통은 제임슨 타일러로 민주당 소속이었다. 이 당시 주요 당은 자유당, 북미당, 애국당으로 민주당은 진보주의, 북미당은 보수주의 및 확장주의, 애국당은 친 영국 본토 적인 성향을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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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3년 경 인도 지역에서 프랑스 등 경쟁자를 밀치고 거의 대부분 지역을 영국이 획득하게 되었다.
1803년 경 인도 지역에서 프랑스 등 경쟁자를 밀치고 거의 대부분 지역을 영국이 획득하게 되었다.


=== 존 라이너 시대 ===
1806년 4월 8일 북미에서는 총통인 제임슨 타일러가 사망하자, 선거를 통해 1806년 6월 8일 당시 49세였던 북미당 존 라이너가 총통가 되었다.
1806년 4월 8일 북미에서는 총통인 제임슨 타일러가 사망하자, 선거를 통해 1806년 6월 8일 당시 49세였던 북미당 존 라이너가 총통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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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청나라의 조공국이었던 베트남과 조선을 각각 1846년, 1848년 공격해 영국의 보호국으로 삼았다. 조선의 경우 남포항, 제물포, 강화도, 목포항, 거제도, 부산항, 절영도, 포항항, 강릉항, 원산항, 청진항을 대영제국 왕실 직할령으로 삼았고 베트남도 여러 섬과 항구를 대영제국에게 넘겨줘야 했다.
이후 청나라의 조공국이었던 베트남과 조선을 각각 1846년, 1848년 공격해 영국의 보호국으로 삼았다. 조선의 경우 남포항, 제물포, 강화도, 목포항, 거제도, 부산항, 절영도, 포항항, 강릉항, 원산항, 청진항을 대영제국 왕실 직할령으로 삼았고 베트남도 여러 섬과 항구를 대영제국에게 넘겨줘야 했다.


=== 19세기 후반 ===
1849년 북미 총통 존 라이너가 사망하자 이후 헌법 개정 논의가 이어져 결국 총통의 임기를 10년으로 제한하고, 총통의 권한도 줄이게 되었다. 이후 북미 총통이 된 민주당 윌리엄 필모어는 노예 제도에 대한 비판을 했다가 남부 주민들의 반발로 노예 문제는 각 주가 알아서 해야 한다며 말을 바꾸었다. 당시 주 31개 중 17개 주가 노예 주였다.
1849년 북미 총통 존 라이너가 사망하자 이후 헌법 개정 논의가 이어져 결국 총통의 임기를 10년으로 제한하고, 총통의 권한도 줄이게 되었다. 이후 북미 총통이 된 민주당 윌리엄 필모어는 노예 제도에 대한 비판을 했다가 남부 주민들의 반발로 노예 문제는 각 주가 알아서 해야 한다며 말을 바꾸었다. 당시 주 31개 중 17개 주가 노예 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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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후반에도 식민지 열풍은 그대로 이어져 아프리카의 절반 이상, 인도의 거의 대부분, 동남아시아의 절반 이상, 동아시아의 상당 부분을 가지게 되었는데, 1870년대에 막 통일한 식민지 후발주자 독일, 이탈리아와 선발 주자이지만 영국을 견제하고 식민지를 뺏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프랑스, 스페인, 오스트리아-헝가리, 러시아, 스웨덴, 이란은 반영 동맹을 맺었고, 이에 친영적이었던 포르투갈, 네덜란드, 덴마크, 그리스와 카탈루냐, 발칸 반도, 오스트리아-헝가리의 독립군들은 친영 연합을 맺었다. 이후 동맹국이 베를린 회담에서 1886년 연합국에 선전포고를 내리기로 결심했고, 이듬해 1887년 덴마크 전선을 시작으로 제1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었다. 자세한 것은 [[제1차 세계 대전(대영주의 세계관)|제1차 세계 대전]] 문서 참고 바람.
19세기 후반에도 식민지 열풍은 그대로 이어져 아프리카의 절반 이상, 인도의 거의 대부분, 동남아시아의 절반 이상, 동아시아의 상당 부분을 가지게 되었는데, 1870년대에 막 통일한 식민지 후발주자 독일, 이탈리아와 선발 주자이지만 영국을 견제하고 식민지를 뺏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프랑스, 스페인, 오스트리아-헝가리, 러시아, 스웨덴, 이란은 반영 동맹을 맺었고, 이에 친영적이었던 포르투갈, 네덜란드, 덴마크, 그리스와 카탈루냐, 발칸 반도, 오스트리아-헝가리의 독립군들은 친영 연합을 맺었다. 이후 동맹국이 베를린 회담에서 1886년 연합국에 선전포고를 내리기로 결심했고, 이듬해 1887년 덴마크 전선을 시작으로 제1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었다. 자세한 것은 [[제1차 세계 대전(대영주의 세계관)|제1차 세계 대전]] 문서 참고 바람.


=== 전간기 ===
1891년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승리한 연합국은 동맹국들의 모든 식민지를 빼앗아 분배했고, 오스만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스페인 제국은 해체해 수많은 나라로 쪼개졌고 심지어 스페인은 영국의 보호국으로 들어갔다. 이후 막 독립한 카탈루냐와 기타 바다를 접한 발칸 국가들도 태평양, 카리브해, 인도양의 섬 몇 개를 나눠줘 이들 국가도 식민 제국이 되었다.
1891년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승리한 연합국은 동맹국들의 모든 식민지를 빼앗아 분배했고, 오스만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스페인 제국은 해체해 수많은 나라로 쪼개졌고 심지어 스페인은 영국의 보호국으로 들어갔다. 이후 막 독립한 카탈루냐와 기타 바다를 접한 발칸 국가들도 태평양, 카리브해, 인도양의 섬 몇 개를 나눠줘 이들 국가도 식민 제국이 되었다.

2018년 6월 19일 (화) 23:05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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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제국
The British Empire
국기 국장
국가 God Save the Queen

진분홍색은 대영제국.
수도 사실상 런던
최대 도시 뉴욕
정치
공용어 영어
지역어 스페인어, 중국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등 200여 개
황제 엘리자베스 2세
역사
잉글랜드 통일 967년
 • 1707년 연방법 1707년 5월 1일
 • 제국으로 승격 1901년 1월 1일
 • 모가디슈 조약 1952년 3월 21일
지리
면적 41,892,946km² (1위¹)
시간대 모든 시간대
인구
2018년 어림 1,796,486,043명
2015년 조사 1,580,733,723명 (1위)
인구 밀도 37.73명/km²
경제
 • 전체 51,356,820,937,051억$ (1위)
 • 일인당 20,553 북미 파운드
명목 47,326,526,621,234 북미 파운드 (1위)
HDI 0.808 2018년 조사)
통화 파운드 (£)

1. 남극, 달, 화성 포함 시 238,621,446km²

다음부터 설명할 것들은 모두 1950년 1월 1일을 기준으로 한다.

대영제국은 영국 황제가 통치 하는 여러 국가들로 구성된 제국이다. 남극을 포함한 모든 대륙에 걸쳐 있는 불연속국이자 면적, 인구, 군사, 경제 등 모든 면에서 세계 최강 국가이다. 공용어는 영어이고 구성국들은 힌디어, 스페인어, 아랍어, 중국어, 벵골어, 일본어 등 지역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수도는 헌법으로 정해져 있지 않으나, 관습 상 런던으로 취급된다. 최대 도시는 뉴욕이다. 루앙 군사 조약 기구, 국제연맹의 종주국이다. 종교가 없는 세속 국가이다. 화폐는 구성국 별로 다르나 모두 파운드를 사용한다.

역사

  • 1775년 이전의 역사는 [문서] 참고 바람.

1775~1805년

1775년 4월 19일 북아메리카 13개 식민지에서 미국 독립 전쟁이 있었으나, 1776년 5월 15일, 결국 영국군이 승리하면서 이와 같은 계획이 물거품이 되었다. 허나 이후에도 계속 독립 운동이 이어졌다. 1781년 5월 25일, 제2차 미국 독립 전쟁이 일어났을 때는 영국군이 비록 영국 의회에 보내지는 못하게 했으나, 미국의 자치권을 인정해 13개 식민지를 북아메리카 대연방 공화국이라는 이름으로 자치를 허용했고, 독자적인 의회와 헌법, 군대, 그리고 북아메리카 총통를 가질 수 있도록 해주었다. 총통은 임기가 없는 종신직이었고 왕에 준하는 강한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 첫 번째 북아메리카 총통은 제임슨 타일러로 민주당 소속이었다. 이 당시 주요 당은 자유당, 북미당, 애국당으로 민주당은 진보주의, 북미당은 보수주의 및 확장주의, 애국당은 친 영국 본토 적인 성향을 띄었다.

1801년 1월 1일 아일랜드 왕국을 합병해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 왕국이 되었다.

1803년 경 인도 지역에서 프랑스 등 경쟁자를 밀치고 거의 대부분 지역을 영국이 획득하게 되었다.

존 라이너 시대

1806년 4월 8일 북미에서는 총통인 제임슨 타일러가 사망하자, 선거를 통해 1806년 6월 8일 당시 49세였던 북미당 존 라이너가 총통가 되었다.

나폴레옹 제국과 전쟁 도중, 1807년 혼란을 틈타 프랑스의 루이지애나 식민지를 공격해 영국의 식민지의 일원으로 흡수했다. 이후 1808년 2월, 존 라이너 북미 총통은 영국 의회에게 북아메리카 나머지 지역(루이지애나, 캐나다, 애팔래치아 산맥 서쪽, 플로리다)을 요구했고, 결국 영국 의회에게 200만 파운드를 내는 대가로 영국령 북아메리카 지역을 차지하게 되었다. 또 스페인 본토가 나폴레옹 전쟁으로 정복 되자, 식민지 지역 권력의 공백을 틈타 미국 의회는 누에바에스파냐 부왕령을 공격해 1810년 누에바에스파냐 부왕령은 중앙아메리카 지역을 포기하고 필리핀만 통치하게 되었다. 이후 남아메리카까지 공격을 시도하려 하였으나, 예산 문제로 무산되었다.

존 라이너는 북미당에서도 제국주의 강경파로, "우리 대영제국은 미개한 흑인, 황인들을 통치해 그들을 문명화 해야 한다."라는 논리 하에 아프리카의 식민화를 가속했고, 1825년 일본을 공격해 대영제국의 보호국으로 만들었다. 이후 1828년 류큐를 대영제국의 보호국으로 만들었다.

이후 청나라가 아편 문제로 대영제국과의 외교 관계를 파기하자, 존 라이너는 북미군 단독으로 1840년 1월 30일 중국 베이징을 공격해 자금성을 쳐들어가 도광제를 협박해 베이징 조약을 맺었다.

조약의 내용에 따라 청나라는 지린 성, 헤이룽장 성과 자금성 내부를 제외한 모든 영토를 잃고 군대를 해산해 영국군이 주둔하도록 했다. 나머지 지역은 랴오닝 성 전체와 산둥 반도, 하이난 섬, 그리고 해안으로부터 30km 이내 지역은 대영제국의 영토로, 나머지 중국 본토 지역은 대영제국의 괴뢰국인 중화제국이 가지게 하였다. 중화제국의 황제는 친영파의 대표 주자였던 장명천이 되었다. 물론 허울 뿐이고 영국의 꼭두각시일 뿐이었다. 내몽골, 외몽골은 대영제국 왕이 내몽골, 외몽골 제국 황제를 겸하게 했다. 신강위구르는 공화국을 세웠고, 티베트는 달라이 라마의 통치를 인정하되 외교와 군사는 대영제국이 맡도록 했다.

대영제국의 직할령이었던 지역은 각각 랴오둥 반도, 허베이 해안, 산둥 반도, 장쑤 해안, 저장 해안, 푸젠 해안, 광둥 해안, 하이난 섬, 타이완 섬 왕실 직할령으로 만들었다.

이후 청나라의 조공국이었던 베트남과 조선을 각각 1846년, 1848년 공격해 영국의 보호국으로 삼았다. 조선의 경우 남포항, 제물포, 강화도, 목포항, 거제도, 부산항, 절영도, 포항항, 강릉항, 원산항, 청진항을 대영제국 왕실 직할령으로 삼았고 베트남도 여러 섬과 항구를 대영제국에게 넘겨줘야 했다.

19세기 후반

1849년 북미 총통 존 라이너가 사망하자 이후 헌법 개정 논의가 이어져 결국 총통의 임기를 10년으로 제한하고, 총통의 권한도 줄이게 되었다. 이후 북미 총통이 된 민주당 윌리엄 필모어는 노예 제도에 대한 비판을 했다가 남부 주민들의 반발로 노예 문제는 각 주가 알아서 해야 한다며 말을 바꾸었다. 당시 주 31개 중 17개 주가 노예 주였다.

1856년 이후 북미 정부는 본격 이민 정책을 펼쳐 유럽의 많은 사람들이 북미로 이민 오기 시작했다.

19세기 후반에도 식민지 열풍은 그대로 이어져 아프리카의 절반 이상, 인도의 거의 대부분, 동남아시아의 절반 이상, 동아시아의 상당 부분을 가지게 되었는데, 1870년대에 막 통일한 식민지 후발주자 독일, 이탈리아와 선발 주자이지만 영국을 견제하고 식민지를 뺏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프랑스, 스페인, 오스트리아-헝가리, 러시아, 스웨덴, 이란은 반영 동맹을 맺었고, 이에 친영적이었던 포르투갈, 네덜란드, 덴마크, 그리스와 카탈루냐, 발칸 반도, 오스트리아-헝가리의 독립군들은 친영 연합을 맺었다. 이후 동맹국이 베를린 회담에서 1886년 연합국에 선전포고를 내리기로 결심했고, 이듬해 1887년 덴마크 전선을 시작으로 제1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었다. 자세한 것은 제1차 세계 대전 문서 참고 바람.

전간기

1891년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승리한 연합국은 동맹국들의 모든 식민지를 빼앗아 분배했고, 오스만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스페인 제국은 해체해 수많은 나라로 쪼개졌고 심지어 스페인은 영국의 보호국으로 들어갔다. 이후 막 독립한 카탈루냐와 기타 바다를 접한 발칸 국가들도 태평양, 카리브해, 인도양의 섬 몇 개를 나눠줘 이들 국가도 식민 제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