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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일국정당
입헌정우회
(합병)
대정익찬회 해체일본자유당, 일본사회당, 일본국민당
입헌민정당
(합병)
대정익찬회
大政翼賛会[1]
등록 약칭 대정(大政)
영문 명칭 Imperial Rule Assistance Association (IRAA)
슬로건 我が2億心から。
우리 2억 마음으로부터
[2]
창당 1940년 10월 12일
해당 1990년 6월 13일가네무라 담화와 민주화에 따른 해산.
총재 가네무라 슌에이 / 9선 (31~39대)
부총재 오부치 게이조 / 8선 (32~39대)
간사장 모리 요시로 / 8선 (32~39대)
이념 내셔널리즘
천황제 파시즘
집단주의
스펙트럼 중도 ~ 우파[3]
중의원 169석 / 732석 (23.1%)
당색 적색 (#be0026)
당원 수 1,348,395명 (1990년 6월, 해산 시)
국제조직 대동아정당연합

1990.06.13 기준

개요

일본에서 1940년 일국일당제 수립에 따라 창당되어, 1990년 가네무라 담화로 해산될 때까지 존재한 일본의 정당 또는 정치결사. 존속 기간 내내 대정익찬회는 유일한 정당이었고 중의원 총선거는 오로지 익찬회와 무소속 후보만 당선되었다.

상세

사실 일국일당제라고는 했으나, 구 입헌민정당과 입헌정우회를 중심으로 한 일본의 웬만한 정당들을 모두 합병하여 만든 것이 대정익찬회였다보니 당내 파벌이 극심했다. 1945년 전쟁이 끝나자 더이상 전시와 같은 강력한 일국일당의 필요성은 없어졌고, 이때부터 보수, 진보, 중도를 포함한 파벌들에게 의석을 안배하는 방식으로 유지했다.

특히 1963년 야스다 위기로 익찬회가 타격을 크게 입은 이래로는 사실상 익찬회 내에서 보수파 / 중도파 / 진보파의 크게 새 갈래로 파벌이 분화되게 되었다.

명목상 중원선엔 일국일당 결사체 익찬회와 무소속만 출마했다. 다만 중선거구제이던 당시. 각 파벌은 자신이 내세운 후보가 1위로 당선되게 하도록 은근히 경쟁하는 등 60년대 이후 익찬회는 사실상 한 간판 아래 3개의 정당이 강제로 몰려 있는 형태에 가까웠다.[4] 이 때문에 총리와 내각에 있어서도 각 파벌은 안배를 하였고 그랬기에 생각보다 익찬회 내에서의 상호 견제라는 형태로 독재는 억제되었다.

당시의 총선도 완전한 장식용이라기엔 익찬회 내부 파벌이 서로 다른 후보를 내서 지역구에서 익찬회 후보끼리 경쟁하는 일이 빈번했었고 심할 경우 무소속 후보에 조직을 몰아주는 등의 형태가 나타나 나름(?)대로 국민의 의사는 정치에 반영될수가 있었다.

이 때문에 대정익찬회를 대게르만국의 국가사회주의 게르만 노동자당이나 이탈리아 제국의 국가 파시스트당 등과 동치시키기는 어려운 면이 있었고 실제로 대부분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들의 경우 파시스트들이 기존 집권세력을 몰아내고 자신들이 그 자리를 독점한 것이라면, 대정익찬회는 성향이 다른 기존 집권세력을 모두 한데 모아놓은 결사체라 내부에서의 상호 견제가 매우 활발했다.

  1. 1972년부터 신자체. 구자체로는 大政翼贊會였다.
  2. 1979년 제정된 표어로, 당시 일본 내지의 인구가 약 2억 명이었다.
  3. 기존 일본 양당을 모두 합병했기에 스펙트럼은 넓었다.
  4. 여담으로, 이 파벌은 쭉 유지되어서 이후 중도파와 보수파 일부가 자유당, 보수파 중 강경파가 국민당, 진보파가 사회당을 이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