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The Eternal Empire)/역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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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1857년 문조는 환구단을 짓고 연호를 건흥으로 하여 대한제국을 선포한다.
이후 1857년 문조는 환구단을 짓고 연호를 건흥으로 하여 대한제국을 선포한다.
==호랑이의 사냥==
==호랑이의 사냥==
하지만 소년이던 문조는 늙어갔다.<br>국가를 위해 살던 그는 1862년 5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다.<br>거기다 뒤를 이은 헌종은 재위 6년만인 1868년 간암으로 급사한다.<br>문제는 그에게 후사가 없었고 헌종은 죽기전 이하응을 후계자로 임명하니 그가 철종 이었다.그때 청은 염군의 난도 진압한후,조선이 황실 정통성에
하지만 소년이던 문조는 늙어갔다.<br>국가를 위해 살던 그는 1862년 5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다.<br>거기다 뒤를 이은 헌종은 재위 6년만인 1868년 간암으로 급사한다.<br>문제는 그에게 후사가 없었고 헌종은 죽기전 이하응을 후계자로 임명하니 그가 철종 이었다.그때 청은 염군의 난도 진압한후,한국이 황실 정통성에
혼란이 생긴틈에 재차 한국을 침공하니 한청전쟁이 발발한다.<br>
혼란이 생긴틈에 재차 한국을 침공하니 한청전쟁이 발발한다.(1873년)<br>
제국은 한때 의주등 국경에서 밀려 위기를 겪었으나 청은 얼마안가 심각한 보급난에 빠지고 반격한 제국군에 재차 패배한 청은 남만주를 대한에 내주고 만다.<ref>만주 전체를 장악하려했으나 러시아의 개입으로 북만주는 러시아의 세력권에 들어간다.</ref><br>
제국은 한때 의주등 국경에서 밀려 위기를 겪었으나 청은 얼마안가 심각한 보급난에 빠지고 반격한 제국군에 재차 패배한 청은 남만주를 대한에 내주고 만다.<ref>만주 전체를 장악하려했으나 러시아의 개입으로 북만주는 러시아의 세력권에 들어간다.</ref><br>
 
그 다음 일본이 남아있었다.당시 지방 번들의 반란으로 혼란인 상황이었기에 한국은 반란제압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군사를 파견,일본의 내정에 간섭하기 시작한다.<br>이후 1883년 류큐또한 반란진압후 종속국화하고 철종은 1898년 성장하는 국가의 안에서 세상을 떠난다.<br>
1898년 고종이 즉위한다.그후 얼마안되어 1899년 의화단전쟁에 개입해서 청나라에게 만주서부일대<ref>현 금조도,적통도일대</ref>를 얻어낸다.<br>
[[분류:The Eternal Empire]]
[[분류:The Eternal Empire]]

2022년 12월 22일 (목) 12:28 판

개요

대한제국 (The Eternal Empire)의 역사를 작성한 문서

개화기

1776년 영조가 사망하고 장조가 즉위한다.그는 아버지의 탕평책을 포함한 개혁책을 이어갔다.또한 그는 무인의 기질또한 어느정도 있었고 여러 군제개혁을 감행하기도 한다.
그뒤 1800년 장조가 사망하고 정조가 즉위한다. 그또한 여러 개혁정책을 시행하며 20년간 조선을 이끌며 여러 개혁정책을 이끈 뒤 사망한다.
1820년 순조가 즉위하나 그는 선대 3명의 국왕들에 비해 무능했고 지방에선 세도가를 중심으로 부정부패가 들끓기 시작한다.
그러다 1825년 순조가 재위 5년만에 돌연 사망한다.그의 아들인 문조는 15세였기에 순원왕후의 대리청정이 진행되며 외척을 중심으로 세도정치가 시작되려한다.
그러나 문조는 어리지만 영리했다.그는 즉위 다음해에 친정을 선포하고,세도가를 사소한 부패,무능까지 잡아내어 세도가를 숙청한다.
물론 외척도 다수있었기에 그의 어머니인 순원왕후는 반발하였다.그러나 얼마후 순원왕후는 한발 물러선다.[1]
병술정국로 불리는 이 사건으로 세도가는 완전히 힘을 잃고 몰락했으며 문조는 부패를 척결하고 개혁을 진행하였다.
그러던 1832년 영국의 상선 암허스트호가 최초로 조선에 와 무력으로 통상을 요구한다.
그러나 조선의 해안은 장조시절부터 포로 무장해왔고 함선에 포격을 가하고,이에 상선은 퇴각한다.
그러나 1834년,돌아온것은 인천앞바다의 함대였다.(계사양요)
조선은 초기 소규모공격은 막아내었으나,이후 대대적인 공세에 인천을 빼앗기고 부평조약이라는 불평등조약을 맺는다.
문조는 충격을 받는다.개혁에도 그의 왕국은 약한 소국에 불과했다는 사실에 말이다.
그는 영국에게서 프랑스에게서 근대적 문물을 접하고,그는 조선이 이를 받는다면 더이상 이전의 소국이 아니리라 생각했다.그리고아편전쟁에서 청이 무너지자 그런신념은 확고해진다.
그러던 1855년 간도의 청나라인들이 조선인들을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난다.청은 안그래도염군의난으로 난장판이었기에 조선은 배상과 사대관계철폐를 요구한다.
하지만 청은 조선을 깔보고있었고 조청전쟁이 일어난다.하지만 조선은 예상과달리 강력했다.내부마저 혼란속이었던 청군은 패배했고,청은 물러난다.
이후 1857년 문조는 환구단을 짓고 연호를 건흥으로 하여 대한제국을 선포한다.

호랑이의 사냥

하지만 소년이던 문조는 늙어갔다.
국가를 위해 살던 그는 1862년 5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다.
거기다 뒤를 이은 헌종은 재위 6년만인 1868년 간암으로 급사한다.
문제는 그에게 후사가 없었고 헌종은 죽기전 이하응을 후계자로 임명하니 그가 철종 이었다.그때 청은 염군의 난도 진압한후,한국이 황실 정통성에 혼란이 생긴틈에 재차 한국을 침공하니 한청전쟁이 발발한다.(1873년)
제국은 한때 의주등 국경에서 밀려 위기를 겪었으나 청은 얼마안가 심각한 보급난에 빠지고 반격한 제국군에 재차 패배한 청은 남만주를 대한에 내주고 만다.[2]
그 다음 일본이 남아있었다.당시 지방 번들의 반란으로 혼란인 상황이었기에 한국은 반란제압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군사를 파견,일본의 내정에 간섭하기 시작한다.
이후 1883년 류큐또한 반란진압후 종속국화하고 철종은 1898년 성장하는 국가의 안에서 세상을 떠난다.
1898년 고종이 즉위한다.그후 얼마안되어 1899년 의화단전쟁에 개입해서 청나라에게 만주서부일대[3]를 얻어낸다.

  1. 문조가 설득을 위해 순원왕후를 찾아갔다고하나 어떤말이 오갔는지는 현재까지도 알려지지않았다.
  2. 만주 전체를 장악하려했으나 러시아의 개입으로 북만주는 러시아의 세력권에 들어간다.
  3. 현 금조도,적통도일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