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제국 (조국으로 가는 길)

독일국
Deutsches Reich
독일 제국
German empire
Deutsches Kaiserreich
국가 그대에게 승리의 왕관을(Heil dir im Siegerkranz)
표어 신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Gott mit uns)
수도 베를린 (북위 52° 31′ 7″ 동경 13° 24′ 29″)
면적 741,853km2

인문 환경


인구 전체 인구 85,200,000명 (1962)
인구 밀도 160명/㎢ (1962)
출산율 1.85 (1962)
출생 인구 4100명
공용어 독일어
공용 문자 로마 문자
종교 루터교 60%
로마 카톨릭교회 32%
동방 정교회 8%
군대 독일 제국군

하위 행정구역


구성국 5왕국 1. 프로이센
2. 바이에른
3. 작센
4. 뷔르템베르크
5. 오스트리아 왕국
6. 보헤미아 왕국
8대공국 1. 올덴부르크
2. 헤센
3. 메클렌부르크슈베린
4.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
5.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6. 바덴
7. 외스터라이히
8. 룩셈부르크
9공국 1. 안할트
2. 브라운슈바이크
3. 작센알텐부르크
4. 작센마이닝겐
5. 작센코부르크고타
6. 케른텐
7. 잘츠부르크
8. 슈타이어마르크
9. 오버운트니더슐레지엔
8후국 1. 리페
2. 샤움부르크리페
3. 발데크
4. 로이스그라이츠
5. 로이스게라
6. 슈바르츠부르크존더샤우젠
7. 슈바르츠부르크루돌슈타트
8. 리히텐슈타인
2백국 1. 티롤
2. 포어아를베르크
3자유시 1. 함부르크
2. 뤼베크
3. 브레멘
3제국령 1. 엘자스-로트링겐
2. 도이치 크림
3. 도이치 칼레
식민지 1. 독일령 미텔아프리카
1-1. 남서
1-2. 서아프리카
1-3. 동아프리카
2. 독일령 인도-퍼시픽
2-1.말레이
2-2. 브루나이
2-3. 남태평양
2-4. 스리랑카
조차지 자오저우 만

정치


정치 체제 입헌군주제, 연방제
입법부 라이히스탁
국가
원수
독일 황제(카이저) 빌헬름 1세(1871~1888)
프리드리히 3세(1888)
빌헬름 2세(1888~1941)
빌헬름 3세(1941~1951)
빌헬름 4세(1951~)
정부
요인
국가수상 오토 본 비스마르크(1871~1890)
헤르만 괴링(1940~1951, 1962~)
여당 독일 조국당(DVP)

경제


경제 체제 자본주의
화폐 공식화폐 라이히스마르크 (RM)

코드와 단위


ccTLD .de
국제 전화 코드 +49

외교


국제 연합 국제 연합 가입 1948년
국제 연합 회원국
승인 여부
창립국
제국 동맹 제국 동맹 가입 1955년
제국 동맹 회원국
승인 여부
창립국

독일 제국(영어: German empire, 독일어: Deutsches Kaierreich)은 중부유럽과 동유럽에 위치한 국가이다. 북쪽으로는 북해와 발트해가 있으며, 남쪽으로는 아드리아해와 맞닿아있다. 주변국으로는 프랑크 기사단국, 폴란드, 이탈리아 등이 있으나, 대부분 독일의 괴뢰국이나 속국, 위성국이다. 제1, 2차 세계대전 모두 승리하고 미-독 냉전을 진행하고 있으며, 미국과 더불어 세계최강국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최근 전쟁을 모르는 젊은이들과의 세대 갈등, 군부와 정치계의 부패 그리고 헤르만 괴링과 군부의 독재로 조금씩 흔들리는 중이다.

역사

제국의 성립과 발전

제국 성립 이전

독일 제국의 황가인 호엔촐레른 가문은 신성 로마 제국 내의 선제후 영지인 브란덴부르크 변경백령과 폴란드 왕국 내의 프로이센 공국을 동군연합으로 차지하고 있었고, 1640년 '대선제후 프리드리히 빌헬름'이 즉위하면서부터 북독일에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그의 아들 프리드리히 1세는 30년 전쟁의 승리를 바탕으로 브란덴부르크 변경백령과 프로이센 공작령을 통합해 프로이센 왕국을 세웠고, 그의 아들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는 부국강병책을 적극 추진하여 수만의 대군과 부유한 국고를 확보하였으며, 그의 아들 프리드리히 대왕은 이를 바탕으로 강력한 팽창정책을 펼쳤다. 이후 어리석고 무능한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를 거쳐 나폴레옹 전쟁의 위기를 지나 빈 체제에 접어들어서는 오스트리아와 함께 독일 연방을 양분하는 강대국으로 등극하였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 시대는 바야흐로 자유주의 혁명의 시대였다. 1848년 혁명에서 호엔촐레른 왕조는 전복의 위기를 겪었고, 혁명으로 성립된 독일 국민 의회는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를 황제로 추대했으나, 왕권신수설을 신봉하던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는 이를 거절하였고 결국 혁명은 유야무야 실패로 돌아간다.

제국의 성립

이후 안정을 되찾은 호엔촐레른 왕조는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가 정신병에 걸려 퇴위한 후 새로운 국왕 빌헬름 1세를 맞이하게 되었다. 빌헬름 1세의 주요 관심사는 군대였다. 왕국의 전통대로 군인으로 성장해 온 그는 독일이 통일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프로이센의 사명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그는 군제를 개혁하고 신병을 확충하려 하였다. 그러나 곧 자유주의 세력의 반대에 부딪혀 개혁은 지지부진하게 되었고, 몇 차례의 의회 해산과 재선거에도 불구하고 계속 상황은 불리해져갔다. 결국 국왕은 퇴위를 결심하였으나, 당시 국방 대신이었던 보수 성향의 룬 장군이 오토 폰비스마르크를 재상으로 임명하라고 건의한다. 이리하여 비스마르크는 수상에 임명되었고, 그는 첫 의회 연설에서 그 유명한 철혈 정책을 내세운다. 이후 덴마크 위기, 보-오 전쟁, 북독일 연방 결성, 보-불 전쟁을 거쳐 최종적으로 베르사유 궁전에서의 선포식으로 독일 제국이 탄생한다.

제국의 발전과 위기

1871년 통일 이후 호엔촐레른 왕조는 독일 황제위도 겸하게 되었다. 황제인 빌헬름 1세는 재상 비스마르크를 전적으로 신임하였고, 그런 비스마르크에게 국내 정책은 외교 정책보다 덜 우선시 되었다. 소위 비스마르크 체제라고 불린 특별한 외교 관계를 통해 비스마르크는 독일의 안위를 도모하였다. "외교란 러시아와 친하게 지내는 것이다." 라고 그가 말한 것처럼, 독일은 러시아 제국과 동맹을 맺고 남쪽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도 동맹을 맺었으며 영국과도 동맹 내지 우호적 중립의 관계를 맺었다. 독일이 확장을 멈추고 유럽의 균형자로써 행동해야 이익을 취할 수 있다는 것이 비스마르크의 생각이었고, 베를린 회의는 이러한 구상에서 나온 산물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베를린 회의는 러시아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어 최종적으로 독일-러시아 동맹의 결렬을 불러왔다. 그러나 삼제동맹이라고 일컫어지던 독일-러시아-오스트리아 동맹은 이미 발칸 문제로 무너진 지 오래였다. 결국 비스마르크의 외교술에 전적으로 의존하던 독일의 외교는 그가 권력에서 물러난 후 갈 곳을 잃고 방황하며 한때 프랑스를 국제 왕따로 만들었던 독일을 국제 왕따로 전락시켰고 이는 끝내 제1차 세계 대전이라는 비극을 부르게 된다.

국내 문제 또한 간단하게 돌아가지만은 않았다. 비스마르크 앞에 놓인 국내 문제는 크게 세 가지, 문화 투쟁사회입법 그리고 관세 문제였다. 문화 투쟁(자유로운 문화를 요구하는 운동)이라 불린 가톨릭 교도들과의 전쟁은 교황이 신앙과 도덕에 대해 교황의 무오류를 선언하면서 불이 붙었다. 교황은 자유주의를 비판하며 중세 이후 유럽이 이룬 업적은 악마의 행위이므로 파괴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스마르크는 교황에 맞서 국내의 교황에 반하는 가톨릭파와 손을 잡았다. 그는 국정에서 가톨릭 교회를 배제하는 법안을 발의하고 민사 사건에 교회가 개입하지 못하게 철저하게 막았다. 그렇게 7년을 싸웠지만 관세 문제 때문에 비스마르크는 문화 투쟁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자유 무역을 원한 자유주의자들의 지지를 받던 비스마르크이지만 정치인인 그는 가톨릭당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다. 결국 관세 법안을 철회함으로써 비스마르크는 가톨릭당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한편 사회주의자들을 대하는 비스마르크는 매우 교묘했다. 1878년 황제 암살 미수가 두 번이나 발생하자 비스마르크는 이를 사회주의자들의 소행으로 몰고 가 결국 사회민주당을 박살내 버린다. 때로는 노동자의 권익을 증진시키는 법안, 아동 노동을 금지하는 법안을 낸 비스마르크였지만, 그에게 사회주의란 언제나 경계의 대상이었다. 그가 재상으로 있던 시절 독일에는 주요 6개의 정당이 있었다. 낡은 봉건적 이상을 품고 산업화와 기계화에 반대하던 보수당, 비스마르크의 배경인 융커(동프로이센의 지주들)들의 자유보수당, 가장 강력한 정당인 부르주아지의 국가자유당, 반군국주의, 반보수주의, 자유방임주의를 주장하던 진보당, 가톨릭교회의 중앙당, 유일한 좌파 정당인 사회민주당. 이 여섯 개의 정당이 여러 주요 쟁점들을 놓고 다투었다.

1888년, 빌헬름 1세가 서거하였고, 프리드리히 3세가 새로운 황제로 즉위하였다. 그러나 99일 만에 후두암으로 병사하자 그의 아들 빌헬름 2세가 제위에 오른다. 제위에 오른 그는 독일을 유럽의 제국을 넘어서 세계적인 제국으로 만들려고 했다. 이를 위해 함대를 건조하고, 해외 식민지를 확보하고 군대를 팽창시키려 하였다. 그러나 러시아와의 동맹이 결렬되었으며 함대 증강은 영국의 심기를 건드려 영국-프랑스-러시아 삼국협상을 결성하는 계기가 된다.

제1차 세계대전

1914년 7월 28일부터 1918년 11월 11일까지 치러진 전쟁 제1차 세계대전은 오래 전부터 복작합 갈등과 이해관계를 갖고 있던 유럽의 강대국들이 사라예보 사건을 계기로 시작된 전쟁으로 세계 최초의 세계대전이다. 이 전쟁에서 독일 제국은 승리하며, 영국을 넘어선 패권국으로 강림하였고, 유럽의 새 균형이 만들어졌다. 또한 이 전쟁을 계기로 독일은 군부 내각이 들어섰고, 프랑스에는 파시즘이 퍼져 프랑스국이 탄생하였다.

전간기와 제1차 군부 내각

1925년, 정치 개혁

1935년, 군사 개혁

제2차 세계대전

전후 복구와 제2차 군부 내각

미-독 냉전

제국의 오늘

정치

독일 제국은 입헌군주제로서 황제(카이저)가 있고, 그 밑에 총리(수상)이 있다. 제1차 세계대전 전까지는 비록 입헌군주제이지만, 황제(카이저)에게 어느 정도 권력이 있었지만, 두 차례의 전쟁 이후에는 군부의 꼭두각시가 되어버렸다. 또한 군부가 총리 자리부터 여러 장관직을 독식하였고, 의회도 아무런 힘 없이 군부의 입맛대로 조종 당하는 중이다. 부패와 군부 독재를 척결하기 위한 사회 운동이나 저항을 하고 싶어도, 엘베강의 사신이라 불리는 보안성에 의해 진압되고 암살 당한다.

제국 총리

독일 제국의 총리는 황제(카이저)가 선정함으로서 자리에 오르게 되는게 기본이지만, 제1, 2차 군부 내각부터는 사실상 자신들이 원하는 사람이 카이저를 압박하여 자리에 오를 수 있게 되었다. 특히, 현재 총리인 헤르만 괴링은 15대 총리 칼 되니츠를 강제로 실각시키고 자리에 올라, 독재를 하고 있다. 다르게 말하면 더 이상 황제(카이저)는 아무 권력이 없어져, 영국처럼 상징으로만 남은 셈이다.

제국 정당

현재 독일 제국에는 보수당, 자유보수당, 진보당, 중앙당, 사회민주당 그리고 독일 조국당이 있다. 하지만 괴링에 의해 1950년 창당된 독일 조국당이 모든 권력을 독식하고 있으며, 다른 정당들은 이름만 있을뿐, 별 다른 힘을 내지 못 하고 있다.

제국 보안성

독일 제국의 정보국이다. 하지만 주 업무는 국내 감시, 통제 그리고 군부 정권 유지를 돕는 것이며, 모든 국민들 그리고 정치인들에게 공포의 대상이다. 이들의 본부는 엘베강 근처에 있어서, 그들의 별명은 엘베강의 사신이다. 제국에 대해 반대하거나 저항하면 이들에게 잡혀 고문을 받거나, 암살 당할 수도 있다.

사회

외교

국방

육군

해군

공군

특수부대

항공기동대

레카(LeKa)

인구

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