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내전 (기계들의 유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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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 크기|10|'''카르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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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날로아 카르텔 - (4만 4000명)
**'''할리스코 신세대 카르텔''' - (21만 700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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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프 카르텔 - (11만 500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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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 크기|10|'''국제의용군단 (소련군,대동아 공영권,지중해 협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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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군 - (40만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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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날로아 카르텔 - (4만 5000명)


멕시코 합중국 측으로 '''1,900,000명''',혁명정부 측으로 '''2,240,000명'''이 넘는 병력, 중재를 위해 소련과 일본,이탈리아 등지에서 상호합의 하에 파견한 '''400,000명'''이 넘는 병력이 참가하였다. 남아프리카 전쟁의 200만명,인도대전의 300만명을 돌파하였으며 지금도 그 수는 증가해 대규모 병력이 동원된 인도네시아 독립전쟁의 500만명을 넘으려 하고있다.
멕시코 합중국 측으로 '''1,900,000명''',혁명정부 측으로 '''2,200,000명'''이 넘는 병력, 중재를 위해 소련과 일본,이탈리아 등지에서 상호합의 하에 파견한 '''400,000명'''이 넘는 병력이 참가하였다. 남아프리카 전쟁의 200만명,인도대전의 300만명을 돌파하였으며 지금도 그 수는 증가해 대규모 병력이 동원된 인도네시아 독립전쟁의 500만명을 넘으려 하고있다.

2024년 2월 25일 (일) 21:04 판


Mexican Civil War
멕시코 내전

오늘 이자리에서 우리는 선언합니다. 기업독재는 끝나고 민중을 위한 정권이 부활 했음을.
간악한 위선자들에 맞서 최후의 한명까지 우리는 싸울것이며.
우리의 땅과 고향, 그리고 정의를 위해 투쟁은 멈추지 않을것입니다.

불쌍한 멕시코, 신과는 이렇게도 먼데 미국과는 이렇게도 가깝구나. - 포르피리오 디아스



개요

1920년부터 독재를 유지중인 제도혁명당과 민주정권 복귀를 주장하는 사회혁명당 간의 분쟁이자 1968년 멕시코에서 일어난 대규모 내전으로 멕시코 혁명 이후 오랜시간 이어진 사회불만이 누적되어 폭발하였다. 남아프리카 전쟁,인도차이나-인도네시아 독립전쟁,인도대전에 이은 대규모 전쟁으로 2차 기업전쟁 이후 최대 규모의 전쟁으로 평가받는다.

현재까지 내전은 진행중이며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미국 주도의 OFN과 독일의 라이히스팍트도 개입하며 국제전으로 확대되었다.


배경




1920년 멕시코 혁명으로 독재정권이 무너지고 농민들의 지지를 받은 제도혁명당의 아돌포 데 라 우에르타 정권이 들어서지만 농민들의 기대를 져버리고 자본가와 기업편을 들어주고 자국의 이권을 헐값에 열강들한테 팔아버린다. 거기에 대공황까지 겹치며 국민들 생활 수준은 더욱 안좋아지게 되고 정부는 이러한 현실을 방치하게 된다. 이후 2차 기업전쟁 시기 연합국 측으로 참전하고 미국의 지원을 받아 불황에서는 탈출하지만 이득은 모두 지배층들한테 돌아가고 멕시코인들은 빈민같은 삶을 계속해서 살게된다. 이러한 불만이 누적되 1950년 멕시코시티 시위가 일어나지만 200명이 죽으며 유혈진압 당하고 개혁을 주장하는 사회혁명당이 결성되지만 당시 대통령인 미겔 알레만 반데스는 폭도로 규정하고 계속해서 탄압하고 해결할 생각은 하지 않게된다.

결국 시간이 흘러 1965년 사회혁명당은 멕시코 혁명 당시처럼 내전을 통해 정권을 뒤엎고자 했고 붉은 적위대라는 비밀조직을 창설하며 무장병력을 모으기 시작한다. 1968년 1월 사회혁명당 지도자인 호세 로페스 포르티요는 의회에 다시한번 반데스 대통령의 퇴임과 문민정부 복귀를 요구하지만 거부당하고 그해 3월 유카탄 주에서 첫 봉기가 일어나며 멕시코 내전이 시작된다.

전개




붉은 적위대는 자신들을 혁명군이라 칭하며 순식간에 남부 멕시코를 해방 시키고 시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진격해오고 있었다. 9월에는 베라크루스와 멕시코시티 코앞 푸에블라까지 함락 시키고 수도를 압박하게 된다. 10월이 되며 혁명군의 대규모 공세가 이어졌고 1달간의 격전 끝에 양측 40만이 넘는 멕시코시티 전투멕시코시티 수도 방위군의 투항으로 끝나게 된다. 반데스 대통령은 미국 국경지대인 몬테레이까지 도망쳤고 중부 일대를 방위하던 멕시코 2군도 혁명군에 합류하게 된다.

다급해진 멕시코 정부는 미국에 지원을 요청하게 되고 친미정권이 전복되는걸 지켜볼수 없던 미국은 반데스 정권을 지원하게 된고 남부를 점령한 혁명군이 카르텔 몰살을 선언하자 멕시코 전역의 마약 카르텔은 멕시코 정부의 편을 들게 된다 1969년 1월 미군 제8군단이 국경을 넘어 멕시코로 도착했고 지원물자까지 도착하자 혁명군은 밀리게 된다. 베라크루스 항구가 미군한테 다시 탈환 당하고 멕시코시티가 위협 당하게 된다.

주요 세력

  • 멕시코 합중국 - 제도혁명당
  • 멕시코 주방위군
    • 바하칼리포르니아 주방위군 - (5만 3000명)
    • 바하칼리포르니아 수르 주방위군 - (7만 4000명)
    • 소노라 주방위군 - (6만명)
    • 치와와 주방위군 - (4만 4000명)
    • 코아우일라 주방위군 - (1만 4300명)
    • 누에보 레온 주방위군 - (3만 4000명)
    • 타마울리파스 주방위군 - (16만 9000명)
    • 시날로아 주방위군 - (9만 4800명)
    • 두랑고 주방위군 - (7만 4000명)
    • 나야리트 주방위군 - (15만 5000명)


  • 멕시코 합중국군
    • 멕시코 제1군단 - 제1,3,5,11사단 (7만 5000명)
    • 멕시코 제3군단 - 제8사,10사단 (3만명)
    • 멕시코 제4군단 - 예비군 제1,2,3,4,5사단 (20만명)


  • OFN군
    • 신 미합중국군 제8군 - (19만 5000명)
    • 캐나다 파병군 1연대 - (4500명)
    • 호주-뉴질질랜드군 - (1만 3000명)


  • 카르텔
    • 할리스코 신세대 카르텔 - (21만 7000명)
    • 걸프 카르텔 - (11만 5000명)
    • 로스 센타스 카르텔 - (7만 4000명)
    • 멕시코 해군 - (10만명)
    • 멕시코 공군 - (5만명)


  • 멕시코 혁명정부 - 사회혁명당
  • 혁명군 - 붉은 적위대 (민병대)
    • 혁명군 제4군단 - 제12,13,14,15,16사단 (29만명)
    • 혁명군 제5군단 - 제16,17,19,20사단 (25만명)
    • 멕시코 시민방위대 - (79만명)
  • 멕시코 합중국군
    • 혁명군 제2군단 - 제4,6,7,9사단 (12만명)
    • 혁명군 예비군 제6군단 - 예비군 제6,7,8,9군단 (21만명)
    • 멕시코 수도 방위군 - (35만명)


  • 라이히스팍트
    • 독일 국방군 제4군단 - (20만명)
    • 프랑스 국민방위군 제3사단 - (2만명)
    • 브리튼 공화국군 제4사단 - (1만명)


  • 제3지대 (연합 중재군)
  • 국제의용군단 (소련군,대동아 공영권,지중해 협약)
    • 제1군 - (40만명)
    • 시날로아 카르텔 - (4만 5000명)

멕시코 합중국 측으로 1,900,000명,혁명정부 측으로 2,200,000명이 넘는 병력, 중재를 위해 소련과 일본,이탈리아 등지에서 상호합의 하에 파견한 400,000명이 넘는 병력이 참가하였다. 남아프리카 전쟁의 200만명,인도대전의 300만명을 돌파하였으며 지금도 그 수는 증가해 대규모 병력이 동원된 인도네시아 독립전쟁의 500만명을 넘으려 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