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대한민국, 어나더어스)

WARSAW (토론 | 기여)님의 2020년 6월 21일 (일) 17:06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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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참·민의원
원내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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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대 참의원 219.03 ~
제26대 민의원 220.05 ~
정수민 정부
221.07 ~ 225.07
여당

49석·158석
야당

114석·432석

28석·52석

16석·34석

11석·16석

10석·17석

9석·13석

3석·6석

4석·2석
무소속 6석·20석
재적 250석·750석
원내 · 원외 · 금지
극좌 · 진보 · 민주당계 · 제3지대 · 단일쟁점 · 보수 · 극우 · 종교
민주당
The Democratic Party of Korea
약칭 DP, 민주
표어 국민 속으로
당원 1,693,059
창당 IY (이세계년, 2016년) 216년 2월
선행조직 191년 민주당
시민민주당
국민의당
병합한 정당 216년 민주당 (216년 6월)
소나무 (220년 1월)
상징색 파랑색 (DPK Blue, #3771C8)
역사
정계 개편 IY (이세계년, 2016년) 216년 1월
창당 IY (이세계년, 2016년) 216년 2월
민주당으로 개칭 IY (이세계년, 2015년) 216년 8월
당직자
당수 김국재
원내대표 이해진
소속 대통령 권남국 (제22대)
이념
스펙트럼 중도좌파
사회민주주의
중도주의
진보주의
경제 혼합 경제
케인스주의
시장 경제(부분적)
외교·국방 다문화주의
평화주의
아스피아 질서주의
사회 사회자유주의
민주사회주의(일부 계파)
조직 및 기관
중앙 당사 대한민국 한경특별시 중앙구
당 내 조직
국제조직 이세계 민주주의 인터내셔널
싱크탱크 민주연구원
의석
이세계 의회
156 / 2,200 (7%)
민의원
434 / 750 (58%)
참의원
116 / 250 (46%)
도·광역지사
13 / 16 (81%)
광역단체장
469 / 510 (92%)
기초의원
6,700 / 9,200 (73%)
유로아스피아 의회
20 / 250 (8%)
democrat.kr

민주당(民主黨, Democratic Party of Korea)는 대한민국의 여당이며 사회자유주의와 진보주의 등을 표방하는 정당이다. 216년 1월 야당의 정계개편을 계기로 중도주의를 표방하는 민주당, 진보주의, 친노 성향의 시민민주당, 중도보수 성향의 국민의당이 통합하면서 통합민주당이란 명칭으로 탄생하였으며 자유당에 이은 제1야당(298석)으로 시작하였다. 216년 8월 명칭을 민주당으로 변경하였으며, 이후 217년 1월 25대 민의원 선거에서 389석을 흭득하면서 제1당이 되었고, 217년 3월 유영호 대통령의 정계 은퇴를 계기로 217년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에서 권남국이 당선되면서 여당이 되었다. 218년 민주당은 대한공산당의 좌경화에서 탈당한 온건 PR계열과 그 노선을 따르는 노동자 세력을 대부분 흡수하면서 전보다 약간 좌경화되었으나, 218년 전당대회에서 친권 중립파와 민주평화모임 세력이 강성 친권을 꺾고 당권을 잡으면서 사실상 중도화되었다. 26대 민의원에서는 434석을 흭득하면서 제1당이 되면서 여당 자리를 이어나가는 중이다. 현실 한국의 더불어민주당, 민생당과 유사하다.

216년 6월에는 원외 민주당을 흡수합병했고, 220년 1월에는 사람사는세상 노유천재단의 현 이사장인 유서진이 대표로 있는 소나무당을 흡수합병했다.

역사

통합민주당의 뿌리가 되는 민주당 (191년)은 191년 창당한 민주당계 정당으로, 그 이전에는 대한민주당 등 여러 민주당계 정당들이 존재했기에, 민주당계 정당의 시초는 보수성향이 강했던 민주당 (145년)을 그 근본으로 본다.

187년 7월 김영후 대통령의 6월 학살을 계기로 발생한 7월 민주화 항쟁을 계기로 여당인 정의개발당과 자유당 연립내각이 붕괴하였으며, 자유당의 이구총 총리가 8월 선언을 발표하며 개헌과 동시에 대선 직선제, 국평 해산 및 양원제 실시, 정당 설립의 자유, 대통령 4년 연임제 등의 내용이 담겨 있는 선거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259:41로 통과하자 민주화 운동 세력들은 각자의 정당을 만들기 시작했다. 소위 민주 4인방인 김용수자유민주당을, 황대진은 스스로 주장했던 평화민주주의에 입각한 평화민주당을 먼저 창당했고, 노유천은 188년에 민주당 (188년)을 창당했다. 하지만 홍윤표는 민주화 세력에서 이탈하여 스스로 민주당계와 자유당에 반감을 가지고 반권위주의 우파를 택했으며, 후에 국민당을 창당한다.

이후 187년 9월 초대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황대진이 국민의 지지를 이끌어 평민당의 지지율이 상승했으며, 정권 연장, 국정 안정을 외치던 자유당과 반권위 체제 수립과 경제 안정, 권위주의 타파를 주장했던 자민당의 지지율은 급격히 감소하기 시작한다. 특히 자유당은 국민들의 반감을 사 11%까지 곤두박질치며 참의원 선거 패배가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결국 예상대로 평민당이 제1당이 되고, 자유당과 자민당은 각각 제2당, 제3당으로 추락한다. 하지만 신생 민주당은 오히려 8석을 얻어 승승장구했으며 국민당은 군소정당 중에서 가장 낮은 득표율(2.73%)를 얻어 원내 진입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하지만 자민당에서는 김용수를 따르는 청산동계와 이강택을 따르는 신수동계의 마찰이 계속되었고, 지지율도 하락세를 보이자 신생 민주당은 자민당과의 합당을 거절당하면서 자민당은 역사 속으로 사라질 기미에 처했다. 이에 박유신 전 대통령 인사, 전 측근들과 지지자들이 주축이 된 민주공화당이 자민당, 자유당과 합당 러브콜을 보냈으며, 자민당은 찬성, 자유당은 좀 더 고민하다가 끝내 거절하고 만다. 여기에 진보그룹의 류일규가 속해있는 개혁주의 성향의 개혁민주당도 이에 찬성하자 류일규를 포함한 일부가 합당 반대를 외치면서 탈당했다.

189년 8월 15대 대선에서 평민당의 강규일, 통민당의 박상규, 신생 민주당의 노유천이 각각 후보로 나섰고, 대선 결과 강규일이 당선되었다. 결국 자민당은 강규일의 대통령 당선을 무효화시키려 하자 190년 3월 개혁민주당, 민주공화당, 자민당은 합당을 선언하였고, 여기에 무소속 의원들까지 합류하면서 통일민주당을 출범시켰다. 또, 119석이 넘는 의석을 확보하면서 동시에 제1당이 되었다. 통민당은 평민당을 4인방의 배신자, 변절자 정당이라고 공격하면서 지지율을 무려 7%까지 끌어올리는 데 성공하였으며 여기에 무소속 강규일 대통령(대통령 취임 전에는 평민당 소속)의 부정부패 의혹이 통민당의 반사이익을 보게 되면서 평민당은 통민당에 대항하기 위해 신생 민주당과 합당을 시도한다. 그리고 같은 해 8월 16대 민의원 선거에선 평화당이 제2당으로 밀려났고, 신생 민주당은 상당히 약진한 반면 통민당은 157석을 흭득하면서 거대 정당으로 급부상한다.

이후 191년 6월 노유천과 황대진이 만나 합당 결의문을 발표하였으며, 이것이 구일민주당이라 부르는 민주당 (191년)을 탄생시킨다. 하지만 통민당의 의석에 못 미치는 111석에 불과하였고 제2당으로 남게 되었다. 193년 8월 18대 민의원 선거를 앞두고 여론조사만 봐도 통민당과 민주당이 지지율 전쟁을 벌였으나 결과를 보니 통민당이 97석, 민주당이 118석으로 오히려 민주당에게 역전당했고, 통민당은 끝내 제2당이 되고 만다. 191년 11월 첫 지방선거에서도 민주당이 광역의원 39석, 기초의원 290석을 흭득한 반면 통민당은 고작 광역의원이 3석, 기초의원이 10석에 불과하면서 어마어마한 참패를 당했다.

193년 16대 대선에서는 통민당의 김유화 후보와 민주당의 노유천 후보가 맞붙었고, 자유당 김천식, 사회당 양일령 후보가 양 후보에 단일화를 할 정도로 어마어마했다. 그러던 중 노유천 후보가 중앙구 유세 중 암으로 쓰러져 사실상 유세 활동을 중단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김유화 후보가 당선되면서 사실상 민주당의 패배로 이어졌다. 노유천은 약 5년 동안 투병 생활을 해야만 했으며, 노유천의 아들인 노친호가 임시대표를 맡았다.

195년 5월 통민당 내 민공당계가 김유화 대통령의 반감으로 인해 탈당을 선언했으며 신수동계 일부가 자유당으로 이동하는 등 정치적인 혼란이 벌어졌으며 민주당 역시 지지율 감소로 위기에 빠진 상태였다. 그러나 황대진이 다시 인기를 얻으면서 차기 대선에 도전할 가능성이 생겼고 황대진은 대선 도전을 선언하면서 정권교체에 기회를 잡기 시작했다. 이후 197년 17년 대선에서 자유당 이호순 후보와의 대결에서 163만표 차이로 당선되면서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198년 노유천이 5년간의 투병 생활을 끝내고 민주당에 화려하게 복귀하면서 여당 연장을 위해 2년동안 칼을 갈았다. 한편 자유당은 민주당에 크게 궤멸된 통민당과 병합하려는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여당을 위협하기 시작했으며 민주당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자유당을 비판하였다. 그러나 자유당은 통민당과 통합하자마자 일부 세력들이 탈당하여 공화당을 창당하였고, 보수 표심이 공화당으로 쏠릴 위기에 처하고 만다. 199년 6월 20대 민의원 선거에서는 자유당이 110석으로 지난 선거에 비해 어느 정도 선전했지만 172석이라는 제1당의 벽을 넘지 못했고, 199년 8월 4대 참의원 선거에서는 10석 정도 건져서 참패하고 만다. 또, 양 후보의 지지율의 격차가 전보다 더 벌어져 노유천의 승리로 확정된 상태였고 자유당 일부 의원들의 스캔들과 사건사고들로 인해 국민들의 신뢰를 받지 못한 상태였다. 이 때문에 이호순 후보는 지지율 하락으로 후회를 해야만 했다.

18대 대선에서는 노유천이 당선되면서 민주당 정권은 연장되었으며 이른바 친노 세력이 당권을 휩쓸었다. 그러나 친노 세력의 등장으로 자유당과 공화당, 현대민주당, 대한인민당이 힘을 합쳐 노유천 탄핵 운동을 주도하였다. 이 때문에 19대 민의원 선거에서 작용하여 민주당이 99석으로 줄어 제1당을 빼앗길 위기에 처했으나 자유당 내의 폭로로 인하여 국민들의 반감을 사면서 민주당과 사회당을 제외한 야권연대의 지지율은 추락하고 만다. 이를 토대로 203년 5대 참의원 선거에서는 야권연대 후보가 대부분 낙선하는 등 고비를 겪었으며, 민주당은 119석으로 늘어나 다시금 제1당을 유지하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이 선거 이후부터 영향력이 조금씩 감소하기 시작했고 국정 운영에 차질이 생기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기 시작했다. 한편 일부 친노 계열은 시민민주당을 창당했고, 민주당 내 동구동계 일부 역시 탈당하면서 신생정당인 중도개혁당을 창당하면서 독자적인 활동을 이어나갔다. 19대 대선에서는 자유당+대한인민당+공화당 야권연대 후보인 이명재 후보가 당선되면서 야당 신세가 되었으나 제1당을 유지하였다. 21대 민의원 선거에서는 110석으로 패배했고 이로 인해 지도부가 총사퇴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이후 206년 전당대회가 열리면서 비주류 유남근 후보가 당선되었으나 6대 참의원 선거에서 패배하여 다시 제1당에서 밀려났고, 206년 지방선거에서는 자유당에 두 배 차이로 밀려 큰 패배를 당했다. 한편 민주당계 야당들은 이에 선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후 민주당이 정원 확대 등의 내용을 담은 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하였고, 자유당과 다른 야당들도 이에 찬성하면서 이젠 민의원·참의원 정원 수를 합치면 1,000석이 되는 현재의 형태로 변하게 되었다.

이후 211년 안지수가 이끄는 새정치당이 혜성처럼 나타나 민주당과 연대를 제안했으며, 이후 새정치-민주당 연합을 주도하게 된다. 또, 199년의 민의원 선거 이후 다시 정계에 입문한 권남국이 다시 본색을 드러내 210년에는 자신의 세력인 친권을 이끌어낸다. 211년 1월 전당대회에서는 자신이 전당대회에 출마하여 친노 신민주, 비주류 노영길, 진보그룹 이영순 후보를 누르고 당대표가 되면서 민주당에 변화를 주게 된다. 하지만 새정치당이 212년 민주당과의 연대에서 이탈했고, 여기에 동구동계와 일부 청산동계의 유입으로 국민의당이 창당하였다. 권 대표는 야권 분열을 예상하면서 민주진보 야권 통합을 주장했고, 시민민주당과의 통합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213년 민주당은 21대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혔으며, 그 후 안지수와 정구영의 갈등으로 안지수와 그 세력들이 국민의당을 나가면서 국민정당을 창당하였고, 국민의당은 사실상 현실 한국의 민생당과 다를 바 없는 정당이 되자 민주당의 야권 통합에 합류하였다. 215년 12월 민주당과 야권통합연대는 본격적으로 합당 준비를 시작했고, 급기야 민주통합신당 창당준비위원회를 결성한다. 민주당은 참여정당들의 대표가 공동대표로 정하고, 최고위원은 민주당 3명, 시민당 3명, 국민의당 3명으로 확정하였다. 급기야 대한정의당도 다른 진보야당들과의 합당을 추진하기 시작하면서 정계개편에 시동이 걸렸으며 216년이 되자, 마침내 야당의 정계개편이 이루어지면서 권남국과 김영민, 백혜림을 공동당수로, 이해진을 원내대표로 하는 "통합민주당"이 출범한다.

통합민주당은 25대 민의원 기준, 민주당(251석)+시민민주당(6석)+국민의당(41석)을 합친 298석으로, 302석에 불과한 자유당에 비해 약간 낮았다. 216년 6월에는 원외 민주당을 흡수합병하였고 8월에는 명칭을 현재의 민주당으로 변경하였고, 12월에는 기독교 출신들을 중심으로 하는 기독교사제연대가 민주당에 합류한다. 하지만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데 한계점이 나타나긴 했으나 217년 3월 치러진 37대 민의원 선거에서 398석을 흭득하여 자유당을 꺾는데 성공한다. 같은 해 7월 치러진 22대 대선에서는 권남국이 66.54%의 득표율로 당선되면서 완전히 여당이 되었다. 민주당은 218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3석을 제외한 도지사와 광역지사를 차지하였고, 기초단체장과 광역·기초의원도 대부분 차지하는 데 성공하였다. 218년부터 국회의원, 기초단체장, 광역의원, 기초의원이 대거 상실·사퇴함에 따라 144석을 뽑을 재보궐선거에선 무려 139석의 선거구를 차지했고, 특히 기초단체장, 광역의원, 기초의원 선거구를 전부 차지하면서 자유당의 패배로 이어졌다. 그 후 대한공산당의 PR, 노동자 계열이 다수 민주당으로 전향하면서 약간 좌경화된 모습을 보였으나, 그 후 치러진 전당대회에서 강성 친권인 최영길과 민평모의 정윤구가 맞붙어 민평모의 정윤구가 당선되면서 정당 사상 처음으로 비주류 후보가 당수가 되는 이변이 일어났다. 다행히 계파 갈등은 없었고, 최영길 후보는 "잘 싸웠지만 언젠간 다시 당수를 차지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219년 9대 참의원 선거에서는 116석을 얻어 제1당 자리를 유지했으나, 정윤구 당수가 건강 악화로 사퇴하자 김국재 의원이 당수직을 맡게 되었다.

219년 12월 당 강령에 중도주의, 30년 집권, 동아스피아 질서, 계파 간의 존중 등을 담은 새로운 강령을 채택하였다.

220년 1월 노유천재단의 이사장인 유서진이 창당한 소나무당을 흡수합병했다. 220년 26대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의 지지율이 조금씩 하락세를 보이게 되었고, 오히려 자유당이 반사이익을 보게 되었지만 권남국 대통령의 리더십을 바탕으로 지지율이 30%까지 올라갔다. 반면 자유당은 인지도를 높힐 어떠한 방법도 없이 지지율이 하락하였으며, 결국 26대 총선에서 434석을 흭득하면서 제1당의 입지가 강해지면서 자유당은 궤멸되었다.

이념

민주당은 사회민주주의, 사회자유주의, 진보주의, 중도주의 등 그 이념이 다양한데, 현재 주류는 중도개혁주의, 사회민주주의, 제3의 길을, 비주류는 진보주의, 사회자유주의 등을 지항한다. 당 강령에 따르면 "우리는 헌법적 전통과 3월민주혁명, 7월민주화항쟁, 부평민주항쟁의 민주이념을 계승한다"라고 되어 있으며 과거 민주당계 정당의 민주정신을 계승하고 있다.

상징

민주당가
나가자 전진 민주당

전진 민주당(반복)
영원한 우리의 민주주의
우리의 피끓는 사랑이
이 땅의 정의와 수호로 힘차게 용솟음친다
우리의 한마음 뜻으로
국민 속에 활짝 피어라
손에 손 맞잡고 나아가자
우리는 자랑스런 민주당
겨레의 희망 민주당 온 나라의 미래 위한 영웅이 되어라
이 나라 지킨 민주당 피땀 흘려 쌓아올린 민주주의 영원하라
국민의 등불 민주당 세계평화 번영의 나라 우리의 사명
힘차게 전진하여라 우리의 민주당

민주당의 상징색은 시안블루로, 현실 대한민국의 더불어민주당, 열린민주당, 그리고 과거의 한나라당과 비슷한 파랑색 계통이다. 파랑은 민주주의, 국민, 정의를 상징하며 권남국 대통령이 좋아하는 색으로 불린다. 민주당의 상징물로는 소나무이며, 소나무당도 이 당의 상징물에서 따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민주당의 당가는 "민주당가"로, 현실 한국의 통합민주당, 민주당 (2008년), 민주통합당 당가와 운율이 비슷하다. 민주당가는 민주당이 과거 156년 유상민 대통령의 부정선거로 촉발된 대한민국 3월 혁명과 187년 김영후 대통령의 6월 학살로 인해 국민의 전국적 시위를 주도해온 7월 민주화 항쟁으로 독재로 인해 무너진 대한민국을 지켜냈고, 민주당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영웅이 되겠다며 힘차게 나아가자는 특징인데, 가사가 전대물 비스무리한 느낌이 난다. 각종 선거에서도 많이 쓰이고 있으며 상록수 등 노유천 전 대통령이 불렀던 곡들도 선거곡으로 사용하고 있다.

과거 통합민주당 시절에는 "ㅁㅈㄷ" 자음으로 로고를 만들었으며, "ㅁ"은 91년 민주당, "ㅈ"는 시민민주당, "ㄷ"은 국민의당의 당색을 써서 이 셋을 상징한다. 로고를 만든 제작사는 대한민국의 로고 디자이너 팀인 W&S 스튜디오에서 제작하였으며, 민주당으로 개명한 후에도 해당 제작사가 새 로고를 제작한 바 있다.

타 정당과의 관계

현실 한국

더불어민주당

더불어민주당과는 이낙연 의원과 권남국 대통령이 어나더어스이클리우스 민주연방이 주최하는 "이세계-지구 행성평화박람회"에서 한국 측 공동대표로 참여했을 정도로 사이가 매우 깊다. 과거 민주당 (191년)과 통합민주당 시절 더불어민주당, 민주평화당, 국민의당은 가짜 정당이라고 비판했으며 좌우 가릴 것 없이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의 20대 총선 이후 치러진 25대 민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이 민의원에서 압승을 거두자 당시 더불어민주당과 야당들은 큰 충격을 받았고, 이로 인해 국내 외신들에게 화제가 되었다. 217년(2017년) 이후부터는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으며 219년에는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한경특별시 중앙구에서 민주당 지도부와 함께 회동을 하기도 했다. 다만 더불어민주당은 민주당의 영어명과 비슷하기 때문에 "Democratic Party"로 표기하고 있다. 민주당에 호의적인 더민주 정치인은 이낙연, 우원식, 우상호, 노웅래이다.

미래통합당, 국민의당

미래통합당과는 민주당을 가짜 정당이라고 주장하면서 매우 적대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다. 미래통합당의 황교안 전 대표는 민주당을 "이상한 종족들이 만든 정당"이라고 비판하였고, 민주당은 논평을 통해 미래통합당을 비판하였다. 주호영 원내대표도 "그런 정당 모른다"고 민주당을 무시했다.

국민의당도 마찬가지인데, 안철수 대표는 "어나더어스라는 양산형 판타지 세계에 무슨 민주당이 있냐"고 발언하면서 현실 한국 내 어나더어스 역사학자들의 반발이 일어나기도 했다. 또, 민주당-새정치 연합 중 하나였던 212년에 존속한 국민의당 때문에 현실 국민의당은 정당 왜곡을 이유로 반발하였다.

기타 정당

민생당은 딱히 민주당과의 관계는 없으며, 정의당도 어떠한 관계가 없다. 열린민주당은 이 당을 "가짜 민주당"이라고 주장했고 최강욱 대표는 "이런 식의 민주당은 더불어민주당과 성향이 비슷하기 때문에 잠시 거리를 두는 것이 좋다"고 밝혔다.

미래당, 녹색당, 기본소득당, 시대전환 등의 진보/중도정당들은 이 당에 대한 관심이 없다.

세계관 상 한국

자유당

자유당과는 비판적으로, 거의 모든 면에서 비판한다. 자유당은 과거 민주당계 정당과 진보정당을 잔혹하게 탄압했으며 급기야 일부 정당들은 아예 정치 활동을 금지하는 등의 정치 행보를 보여 일부 국민들과 정치인들이 반발하였고, 결국 자유당 정부는 대한민국 2월 정치개혁 선언문을 발표하였지만 2조 33항에서 "정부의 허가를 받은 이외의 정당은 해산되며, 정부의 허가를 받은 정당은 자유당 산하 정당이어야 한다"고 명시했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았다.

이후 자유당은 민주당계 정당들을 반동정당, 불법정당으로 간주하면서 여러 번의 정치 활동 금지 처분과 강제 해체를 주도하였으나 187년 7월 민주화 항쟁으로 7월 대국민 선언을 발표하여 정당 설립의 자유를 보장받자 민주당계 정당도 정치 활동 금지 처분에서 벗어나 정당 활동이 활발해졌다.

하지만 수차례의 민의원, 참의원 선거과 지방선거, 대선 등을 거치며 충돌이 발생했고, 결국 자유당은 선거에 불복하여 부정선거라고 수차례 주장했으나 모두 해프닝으로 끝났다.

또 권남국 대통령의 정책에 강하게 비판하는데 권 대통령이 주장한 동아스피아 세계질서론을 반어나더어스 정책이라고 비판했고 권 대통령의 15조를 들여 만든 경제정책인 혁신경제가 집권 2년차만에 성공하자 "이럴거면 혁신경제는 왜 만들었냐? 이건 마치 현실 한국의 소득주도성장론이랑 똑같다"며 현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론으로 비유하는 가 하면, "지금 혁신경제 때문에 애꿎은 세금, 15조도 아깝다"며 혁신경제에 쓰이는 15조원이 아깝다고 비판했다. 이에 권 대통령은 자유당을 향해 "지금 국고는 1,000조를 넘는데 혹시 혁신경제의 긍정적 효과는 안 보셨나"고 반론하였다.

미래전진당-평화전진당

미래전진당평화전진당은 대체로 옹호적인 편이다. 대한민국의 신좌파 세력, 청년 세력, 소수자 세력, 동성애 세력 등으로 구성된 미래전진당과 평화주의자, 일부 정구영계, 반전주의자, 사회민주주의 세력으로 구성된 평화전진당은 창당부터 다수의 민주당 정치인들이 창당식에 참석하였고, 특히 미래전진당에서는 권남국 대통령까지 참석하였다.

현재 미래전진당은 민주당과 청년 정책, 소수자 권리 정책 등에 호의적인 편이며 평화전진당은 민주당과 반전 운동을 공동으로 추진하여, 동아시아 질서와 세계 평화를 위한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열린진보당

열린진보당과는 옹호적이다. 216년 야권 정계개편을 통해 탄생했고 통합민주당 창당식에서 지도부가 전원 참석했으며, 심유진은 자유당으로부터 미래전진당, 평화전진당, 민주당과 함께 야권연대를 이뤄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민주당은 거절했으며 결국 미래-평화-진보 진보연대가 구성되었다. 25대 민의원 선거 이후 열린진보당이 이탈하면서 미래평화연합을 구성했고, 열린진보당은 범여권으로 잔류하였다.

218년 전당대회에서 정윤구 후보가 당수로 선출되자 열린진보당 지도부가 이에 대한 축하 답사를 보내기도 했다.

계파

height=20의 계파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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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친권 비권
변혁
심유박 정설희
유화룡 김인재
민주평화모임
정구영 박영준
박유한 노규인
김인수 유적
노태민 정미례
친권
신재수 양태자
김수명 이해진
양진화 유수진
김진혁 정세형
민주선진연합
이신규 정윤지
최서희 노태영
정현성 양현숙
동구동계
보수파
김영진
유근래
성연진
당 내 진보계
김광진 김대화
정석재 정의화
민주정의회
노일구
유수화
양세진
문재윤계
문재윤 송영훈
전병미 백두환
고윤정 유서진
추명태 유석연
정선주
민주혁명연합
이해수 이세훈
노세정 박영진
최정혜 노석준
이강재 설민지
순수 친권
정열수 김오적
(민주 · 자유 · 전진 · 진보 · 공화 · 사회 · 태양 · 개혁중도 · 공산 · 기타 정당)
(진보 · 민주 · 보수)

민주당은 총 네 개의 계파로 나뉜다.

권남국이 대통령이 되기 전으로는 제18대 대통령인 노유천을 따르는 친노가 최대 세력이었으며 권남국도 친노 출신으로 분류된다.

비권 세력은 93년 민주당 출신 인사 (동구동계)와 국민의당 출신 인사 (정구영계), 무소속 이신규 세력 등으로 이루어져 있어 그 스펙트럼도 다양한데 왼쪽으로는 민주평화모임, 오른쪽으로는 반권 성향까지 넓은 편이다. 민주평화모임은 현실 대한민국의 민생당과 유사한 성향으로 평화당계, 대안신당계에 가깝다. 평화주의, 중도개혁주의를 지향한다. 과거 대통합민주당 대표를 맡은 정구영, 국민의당 국회의원이자 정치 싱크탱크 민주평화그룹의 대표를 맡은 노규인, 음악가 출신 박영준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송유신은 과거 자유당에선 온건 친유였으며 24대 민의원 선거에서 공천 탈락으로 탈당하면서 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겼고, 기독교사제연대와는 달리 보수 성향이 짙다.

친권 세력은 비당권파지만 210년 친노에서 갈라져 나온 사회민주주의, 실용주의 성향의 계파로 211년부터 7년 동안 당권을 잡았으며, 전 중앙구 국회의원 겸 행정자치성 장관인 이연식, 전 국토산림부 장관이자 민주당 대변인인 정세진 등 과거 정치 거물들이 여기에 해당하며 진보 성향인 달의 모임문재윤을 따르는 성향으로 과거 시민민주당 대표와 사람사는세상 노유천재단의 2대 이사장, 경산도 남부의 야구 구단 화성 드래곤즈의 34대 감독을 맡았다. 청와대의 전 대통령정무수석전병미, 국민소통위원장고윤정이 여기에 해당한다.

또, 열린진보당의 전신인 대한정의당의 일부 세력도 친권으로 분류되는 경우가 있다. 노일구, 고국, 유수화 등이 소속되어 있으며 216년부터는 그 영향력이 점차 감소하고 있다. 민의원에서는 25명, 참의원에서는 3명이 정의당계이다.

38대 민의원 선거, 7대 참의원 선거에서는 대다수의 친권 후보들이 민의원에 당선되었고 현재 민의원에는 217명의 의원, 참의원에는 60명의 의원이 친권 성향이다.

진보 계열 중에는 대한공산당에서 탈당한 PR파도 존재한다. 심유진의 아들 심유박 등이 이에 해당되며 진보적 사회주의를 이념으로 삼고 동아스피아의 자주통일을 추구하는 NRA파보다 온건적인 성향을 띈다. 진보그룹은 구 공산당 계열보다 온건적인 진보주의를 표방한다.

보수 계열 중에서는 기독교 인사들을 중심으로 하는 기독교사제연대가 존재하며 신성교의 한국 지부인 신성교회 총회장인 박규한경제일교회 목사인 신유찬이 주축이 된 세력으로 204년부터 단체로 활동하다가 216년 7월부터 민주당에 합류하였다. 기독교 민주주의를 지향하지만 권남국에는 호의적이며 민평모를 반대한다. 극단적인 타 기독교와는 달리 매우 온건적인 보수를 표방한다.

주요 선거 결과

대통령 선거

실시년도 대수 후보자 득표 득표율 결과 당락
217년
23대 권남국 13,202,103명 46.19% 1위 당선

민의원 선거

실시년도 선거 당선자 수 결과
217년
25대 389/750 제1당
220년
26대 434/750 제1당

참의원 선거

실시년도 선거 당선자 수 결과
219년
9대 116/250 제1당

지방 선거

실시년도 선거 당선자 수 결과
광역단체장 기초단체장 기초의원
218년
3회 13/16 469/510 6700/9200 제1당

역대 지도부

역대 당수

대수 당수 직함 임기
1 권남국 공동당수 216년 1월 ~ 217년 7월
1 김영민 공동당수 216년 1월 ~ 218년 2월
1 백혜림 공동당수 216년 1월 ~ 218년 2월
2 정윤구 당수 218년 2월 ~ 219년 11월
(임시) 김국재 권한대행 219년 11월 ~ 220년 1월
3 김국재 당수 220년 1월 ~

역대 원내대표

대수 원내대표 직함 임기
1 이해진 원내대표 216년 1월 ~

민주통합신당 창당준비위원회 지도부

215. 10 ~ 216. 01
  • 공동창당준비위원장 : 권남국 (민주당 대표), 김영민 (시민민주당 대표), 백혜림 (국민의당 총재)
  • 분과위원장 : 정구영 (국민의당 의원, 민주평화그룹 수장)
    • 총괄기획분과 : 김영진 (시민민주연구원장), 이택윤 (국민의당 의원), 정후광 (민주당 국민소통위원장, 민주당 의원)
    • 정무기획분과 : 나영민 (민주당 의원)
    • 정당정책·당헌당규분과 : 양영진 (국민의당 의원), 신소미 (시민민주당 의원)
    • 정당조직분과 : 유신호 (민주당 최고위원)
  • 공동 대변인 : 전병미 (민주당 대변인), 이연식 (민주당 대변인), 김광진 (민주당 대변인)

1기 지도부

216. 01 ~ 218. 02
  • 공동당수 : 권남국, 김영민, 백혜림
  • 상임최고위원 : 전병미, 이연식, 김광진, 정구영, 박영신, 권양희, 최영길, 손혜인, 김양림
  • 최고위원 : 정영군, 박수영, 최신희, 송열근, 이상규, 최공수
  • 원내대표 : 이해진
  • 사무총장 : 원해룡
  • 정책위원장 : 신영주
  • 혁신변혁위원장 : 유상주
  • 원내수석 : 이종훈

2기 지도부

218. 02 ~ 219. 11
  • 당수 : 정윤구 → 김국재
  • 상임최고위원 : 임유신, 정영춘, 최공수, 이상규, 원해용, 문재윤, 공양화
  • 최고위원 : 이상진, 김광진, 정구영, 김영진, 전병미, 박규
  • 원내대표 : 이해진
  • 사무총장 : 이연식
  • 정책위원장 : 변용기
  • 윤리위원장 : 표일룡
  • 변화개혁위원장 : 정혜군
  • 원내수석 : 조상규

1기 권한대행 지도부

219. 11 ~ 220. 01
  • 당수 권한대행 : 김국재
  • 원내대표 : 이해진
  • 사무총장 : 이연식 → 표일룡
  • 정책위원장 : 전양호 → 성수진
  • 윤리위원장 : 표일룡 → 김청
  • 원내수석 : 김양준 → 고영현

3기 지도부

220. 01 ~
  • 당수 : 김국재
  • 최고위원 : 조영구, 문유진, 박형준, 김상연, 조창기, 노윤호
  • 원내대표 : 이해진
  • 사무총장 : 표일룡
  • 정책위원장 : 성수진 → 유향주
  • 윤리위원장 : 김청 → 임수화
  • 혁신위원장 : 노연정
  • 원내수석 : 고영현

역대 전당대회

217년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 후보 경선

217년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 민주당 후보 경선 참조

218년 전당대회

218년 민주당 전당대회
총 득표수: 16,302표
기호 이름 계파 득표수 득표율 당락
1
최영길
친권
7,742표
46.4%
낙선
2
정윤구
민주평화모임
8,560표
53.6%
당선
3
심유박
구 공산당
사퇴

218년 1월, 민주당 지도부는 2대 당수를 선출하기 위한 전당대회를 열기로 결정하였다. 열린진보당의 대표인 심유진의 아들 심유박이 출마를 선언했으며, 그 후 민주평화모임의 정윤구, 강성 친권의 최영길이 출마를 선언한다. 김재진, 홍영자도 차기 당수 선호도에서 5%를 기록하면서 출마 가능성이 생겼으나 김재진은 불출마, 홍영자는 출마를 선언했다가 1월 중순 불출마를 선언하였다. 하지만 심유박 후보는 전당대회 직전 사퇴하였으며 최영길 후보를 지지하게 되었다.

또, 전당대회 준비위원회는 경선규칙을 (대의원 투표 40%, 권리당원·평당원 투표 40%, 일반당원 여론조사 15%, 국민 여론조사 5%)로 정하였고 전당대회 시행 기간을 218년 2월로 확정되었다.

218년 2월, 제1차 전당대회에서 대의원 투표 40%, 권리당원·평당원 투표 40%, 일반당원 여론조사 15%, 국민 여론조사 5%를 반영한 지도부 경선에 따라 정윤구가 당선되었다. 이는 비당권파가 처음으로 당수직을 차지한 사례가 되었다. 또 상임최고위원에 임유신, 정영춘, 최공수, 이상규, 원해용, 문재윤, 공양화, 최고위원에 이상진, 김광진, 정구영, 김영진, 전병미, 박규가 선출되었으며 민주당에선 처음으로 기독교 지식인 출신 최고위원을 배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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