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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의 [[제11대 대한민국 국회의원 선거|11대 총선]]에서 민주화 세력으로 일컫어지는 [[김영삼 (구국)|김영삼]]의 [[통일민주당 (구국)|통일민주당]]과 [[김대중 (구국)|김대중]]의 [[평화민주당 (구국)|평화민주당]]은 [[민주정의당 (구국)|민주정의당]]에 밀려 참패했다. 정확히는 지역구 1위 정당에 비례대표 의석의 66%를 주는 조항 때문에 패배한 것이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민주화 세력이 나뉘어져 있어서는 절대로 완전한 민주화를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양김에게 깨닫게 하였다. 총선 참패 직후 민주연합추진협의회가 조직, 1년여 간의 협상 끝에 1982년 4월 16일 창당발기인대회를 가지고 동년 5월 6일 민주연합이 창당되었다. | |||
통일민주당의 상도동계(YS)와 평화민주당의 동교동계(DJ)가 연합한 민주연합은 두 정당의 지지를 그대로 흡수하며 창당 직후 실시된 [[제1회 대한민국 전국동시지방선거|1회 지방선거]]에서 [[민주정의당 (구국)|민정당]]과 호각으로 싸울 수 있었다. 특히 안정을 원하는 국민들의 마음을 잡기 위해 선거 당시 계속해서 "수구주의와 급진적 개혁주의 같은 양극을 배제하고, 온건한 개혁, 안정적인 개혁을 통해 중산층과 근로계층의 이익을 대변하겠다"고 어필한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당시 YS와 DJ의 이미지는 민주투사인 것은 확실하고, 국민들 역시 민주화에 있어서 그들의 공이 크다는 것은 인정하고 있었으나 그 이상으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당장 YS와 DJ가 경제나 사회 문제에 있어서 기존의 군사정권보다 잘 해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적었다. 그런 인식을 타파한 것이 바로 민주연합의 성과인 것이다. | |||
=== 총선, 지선의 압승 === | |||
=== YS냐 DJ냐 === | |||
=== 안정적인 여당으로 === | |||
=== 다시 시작된 양김의 갈등 === | |||
== 각주 == | == 각주 == | ||
[[분류:구 국민세계관]] | [[분류:구 국민세계관]] |
2023년 3월 5일 (일) 13:13 판
민주연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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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명칭 | United Democrats | |
등록약칭 | 민주 | |
슬로건 | 하나된 민주의 힘으로 | |
창당일 | 1982년 5월 6일 (민주연합) | |
당명변경 | 1992년 9월 30일 (새정치국민회의) 2008년 10월 26일 (민주당) 2018년 2월 23일 (새정치민주연합) | |
이념 | 자유주의 보수자유주의 경제적 자유주의 자유보수주의 중도개혁주의 사회민주주의 사회자유주의 | |
스펙트럼 | 중도우파 ~ 중도좌파 | |
출신 대통령 | 김영삼 / 제11대(1987.02.25 ~ 1993.02.25) | |
의석 수 | 104석 / 299석 (34.8%) | |
상징색 | 연녹(#70BA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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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연합(-民主聯合)은 1982년 5월 6일, 김영삼의 통일민주당과 김대중의 평화민주당이 합당을 통해 탄생한 정당이다. 한국의 정당 중 가장 오래된 정당으로, 두 번째는 1991년 창당된 민주자유당의 후신이자 현재 집권당인 새한국당이다. 한국 역사상 ~당으로 끝나지 않고 대통령 당선자를 배출한 유일한 정당이다.
이 문서는 통일민주당과 평화민주당의 합당이 성사된 1982년부터 YS가 재선을 위해 상도동계를 이끌고 탈당해 DJ가 당명을 변경한 1992년 사이, 즉 당명이 민주연합이었던 시절의 내용을 기록한다. 그 이후는 새정치국민회의 참조.
역사
창당
1981년의 11대 총선에서 민주화 세력으로 일컫어지는 김영삼의 통일민주당과 김대중의 평화민주당은 민주정의당에 밀려 참패했다. 정확히는 지역구 1위 정당에 비례대표 의석의 66%를 주는 조항 때문에 패배한 것이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민주화 세력이 나뉘어져 있어서는 절대로 완전한 민주화를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양김에게 깨닫게 하였다. 총선 참패 직후 민주연합추진협의회가 조직, 1년여 간의 협상 끝에 1982년 4월 16일 창당발기인대회를 가지고 동년 5월 6일 민주연합이 창당되었다.
통일민주당의 상도동계(YS)와 평화민주당의 동교동계(DJ)가 연합한 민주연합은 두 정당의 지지를 그대로 흡수하며 창당 직후 실시된 1회 지방선거에서 민정당과 호각으로 싸울 수 있었다. 특히 안정을 원하는 국민들의 마음을 잡기 위해 선거 당시 계속해서 "수구주의와 급진적 개혁주의 같은 양극을 배제하고, 온건한 개혁, 안정적인 개혁을 통해 중산층과 근로계층의 이익을 대변하겠다"고 어필한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당시 YS와 DJ의 이미지는 민주투사인 것은 확실하고, 국민들 역시 민주화에 있어서 그들의 공이 크다는 것은 인정하고 있었으나 그 이상으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당장 YS와 DJ가 경제나 사회 문제에 있어서 기존의 군사정권보다 잘 해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적었다. 그런 인식을 타파한 것이 바로 민주연합의 성과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