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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12일 (토) 12:36 판
베를린주 Provinz Berlin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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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 |||||||||||||||||
Berlin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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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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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독일어: Berlin 베를린[*])은 프로이센의 수도이자 최대 도시이다. 브란덴부르크주의 중앙에 위치하여 북쪽으로는 니더바르님군이, 동쪽으로는 릭스도르프와 오버바르님군, 남쪽으로는 텔토군이, 서쪽으로는 오스트하펠란트군이 위치한다. 남쪽 20km 거리에 포츠담이 위치한다. 2026년 기준 4,383,209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그 외 주변 지역에는 -명이 거주하고 있는 프로이센 최대의 인구를 보유하고 있다. 브란덴부르크주에 둘러싸여 있으며, 주 전체가 도시로써 이루어져 있다. 10개의 구가 있으며, 그 안에는 80개의 구역이 위치한다.
1500년 전부터 슬라브인들이 거주하였으며, 1100년부터 독일인 개척자들이 동방식민운동의 일환으로써 베를린에 정착하기 시작한다. 1307년에는 슈프레 강 너머의 쾰른과 방어 동맹을 결성하였고, 이후 1432년에 완전히 합병한다. 1360년에 한자 동맹에 가입하여 도시가 발달하기 시작했으며, 1417년에는 브란덴부르크 변경백국의 수도가 된다. 그러나 30년 전쟁에서 큰 피해를 입어 인구가 6000 안팎으로 줄어들어, 1640년부터 호엔촐레른가가 브란덴부르크 선제후의 작위를 지니면서부터 다시 번영하기 시작한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는 산업을 촉진시키고 여러 문화 건물의 건설을 후원하였다. 1701년에 왕국이 된 프로이센의 수도가 되었으며, 1701년에는 주변 도시들을 합병하여 통상과 제조업의 중심지가 된다. 예나-아우어슈테트 전투에서 프로이센이 대패를 당하면서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이 진주하였다. 1871년 건국된 독일 제국의 수도로써 존재하여, 대전에서 패전한 후에는 프로이센의 수도로써 남아있다.
베를린에는 프로이센에서 가장 많은 선거구를 보유한 단일 도시로써 총 15개의 선거구를 지니고 있다. 15개의 선거구 중 과반 이상을 프로이센 사회민주당이 차지하고 있으며, 연립 여당인 진보당을 포함하면 60%를 차지하고 있다. 책임자의 명칭은 베를린 주지사이며, 프로이센 17개주 주지사 중 프로이센 국왕에 의해 임명되는 유일한 직책이다. 프로이센의 국가청 건물 대부분이 존재하며, 박물관섬에는 국왕과 그 일가가 거주하는 베를린궁이 위치한다.
역사
12세기-16세기
현재 베를린과 관련된 가장 오래된 유물은 1174년의 집의 잔해와 1192년의 나무 대들보이다. 베를린과 관련된 최초의 기록은 12세기 후반에 처음 이루어져, 스판다우가 1197년에 처음 언급되고, 1209년에 쾨페니크가 언급되었다. 그러나 이 두지역들은 1920년의 베를린 확장 이전까지 베를린의 일부이지 않았으므로, 1237년에 처음 언급된 쾰른과 1244년에 언급된 베를린이 최초라고 할 수 있다. 쾰른과 베를린은 슈프레강을 두고 마주보고 있어 서로 긴밀한 관계를 맺어 주요 교역로에서 이익을 얻었다. 1307년에 그들은 서로 공통된 외교 정책을 위해 동맹을 맺었다.
1417년, 브란덴부르크 변경 백국의 프리드리히 1세는 베를린을 수도로 삼았으며, 1443년, 프리드리히 2세는 베를린에 현재 베를린궁의 기초가 되는 궁전을 건설한다. 박물관섬의 궁전 건축에 대해 베를린의 시민들은 크게 반발하며 1448년에 베를린 선언 등을 발표하며 시위를 이어나갔다. 그러나 이는 결국 실패로 돌아가고 시민들은 여러 특권을 잃게 되었다. 이후 1451년에 궁전은 완공되었고, 알브레히트 3세는 베를린을 거주지로 삼는다. 1486년에 요한 2세에 의해 베를린의 궁전은 공식적으로 브란덴부르크 선제후의 거주지가 되었다. 그러나 이로써 1360년부터 한자 동맹에 가입하여 자유 도시로써 번성한 베를린은 자유시로써의 권리를 포기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