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1945년 6월 30일부터 분기되는 붉은 끈의 세계관의 타임라인이다.

1945년

  • 6월 30일: 소련이 소련-일본 중립조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대대적인 일본 침공을 시작하다. 만주 진공 작전이 시행되다.
  • 7월 17일: 소련군이 하얼빈에서 유격 작전을 펼치던 한국광복군과 조우하다. 한국광복군이 지청천과 김원봉의 지휘 아래 소련 진영에 참전한다.
  • 7월 28일: 소련군이 만주 침공을 완료하다.
  • 8월 1일: 소련-한국 연합군이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어 한반도로 남하하기 시작하다.
  • 8월 5일: 일본 관동군의 사기 저하와 한반도 내 항일무장세력의 관동군 보급선 차단으로 소련-한국 연합군이 평양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다. 일부 관동군이 일본의 패전을 직감하자 투항 후 소련 진영에 합류한다.
  • 8월 7일: 평양에서의 소식을 들은 미군이 제주도와 목포에 상륙하여 일본군과 전투를 치뤄 제주도와 전라남도 일대를 점령하고 북상한다.
  • 8월 13일: 소련군과 미군이 한강대교에서 조우하다.
  • 8월 14일: 동해로 남하하던 소련군과 미군이 포항에서 합류하여 남하하다. 밤 10시, 부산에서 관동군과 마지막 교전을 벌인다.
  • 8월 15일: 부산 전투의 승리로 한반도에서의 지배권을 완전히 상실한 일본은 패전을 받아들이고 포츠담 선언을 수락하다. 최종적으로 쇼와 덴노의 옥음방송으로 일본군의 모든 군사행동이 중단되다.
  • 8월 17일: 소련이 울릉도와 독도에 남아있던 관동군 패잔병을 섬멸하다.
  • 8월 29일: 일본이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에 서명하다.
  • 9월 2일: 연합국이 한반도와 일본의 전후처리를 서울에서 논의, 서울 협약으로 일본은 도쿄부는 4개국 공동관할, 니가타현, 도치기현, 이바라키현 이북은 소련이, 이남은 미국, 영국, 중국이 각각 분할하여 점령했다. 이로써 일본은 4개의 군정이 들어서며 분할되었다.
  • 10월 1일: 이반 치스차코프의 포고문으로 한반도의 소련군정이 공식적으로 시작되다. 이반 치스차코프가 한반도 군정장관으로 부임하다.
  • 11월 21일: 인천에서 이승만과 김구를 공동의장으로 한 '대한민주건국회의'가 창설되다.
  • 12월 1일: 대한민주건국회의가 제물포 본부에서 사흘간 한반도 민주 정부 수립과 군정 철수에 대해 논의하였다.

1946년

  • 1월 1일: 서울에서 박헌영을 의장으로 한 '조선건국준비회의'가 창설되다. 박헌영이 종로 본부에서 건국강령을 발표한다.
  • 3월 1일: 조선건국인민회의가 종로광장에서 '건국준비회'를 개최하며 3일간 소군정 철수와 자주독립국가 건국에 대하여 시민과 함께 논의하였다.
  • 3월 4일: 소군정은 '군정 철수에 대한 논의는 명백히 소련에 도전하는 것'이라며 7일동안 계획되었던 건국준비회를 소련군을 동원해 강제 해산시켰다.
  • 3월 19일: 건국준비회 강제 해산에 분노한 김원봉은 박헌영의 지지를 받고 민간 무장 조직인 '인민결사대'를 조직한다. 이 조직은 현재 조선인민혁명군의 실질적인 전신이다.
  • 3월 23일: 조선건국인민회의 수원 지부에서 각종 무기와 포를 밀매하여 인민결사대를 무장시킨 후 공터에서 군사훈련을 실행한다.
  • 4월 1일: 대한민주건국회의도 조선건국인민회의의 소식을 듣고 '민주해방대'를 조직한다.
  • 4월 30일: 인민결사대가 사리원에 있는 소련군 병참 기지를 습격한다. 방어 병력이 적었던 소련군은 속수무책으로 당했으며, 많은 군수품과 무기를 약탈하고 퇴각하였다.
  • 5월 3일: 분노한 소련군이 사리원에 남아있는 무장단체를 박멸한다는 이유로 일주일간 [[사리원 학살 사건 (붉은 끈)|사리원 학살 사건]]을 일으킨다.

일본 남북 전쟁

인도차이나 분할

조소 국경 분쟁

인도차이나 전쟁

쿠바 미사일 위기

조중 국경 분쟁

봄의 반역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