備邊司
비변사
상징 (1917 - 현재)
옛상징 (1517 - 1917)
의장
최재성 (신민당)
부의장
이정미 (사회당)
역사
개원
1517년 (중종 12년)
폐원
1865년 (고종 2년)
재개원
1867년 (민국 1년)
구성
의석



병단
  •     육상방위병단 (28)
  •     해상방위병단 (13)
  •     헌병단 (11)
  •     항공방위병단 (8)
  •     경찰청 (2)
정당
  •     신민당 (14)
  •     사회당 (9)
  •     자유당 (4)
  •     조선 일민통일당 (2)
  •     평화민주당 (1)
  •     무소속 (32)
정수
60석 + 2석 (경찰청 몫 2석)
예하기관

역사

1510년 일어난 조선과 왜구와의 전쟁이었던 삼포전쟁을 계기로 1517년 설립된 조선의 최고 결정 의사 기구이다. 1517년 설립되었으나 실질적으로 막강한 권한을 얻은것은 병자전쟁과 임진전쟁, 그리고 효종의 북벌정책 이후이다. 임진전쟁 이후 비변사의 막강한 권한 획득을 막으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북인정권에 의해 실패했고, 인조 때는 병자전쟁 때문에 권한 축소에 실패하였다. 인조와 효종, 현종에 의해 비변사의 권력이 강화되었으며 6조와 의정부는 권한을 잃게 되었다. 정조의 사망 이후 홍경래의 반란으로 인해 왕권이 약화되었고, 세도정치가 시행됨에 따라 비변사의 권한도 강해졌다. 이에 흥선대원군은 1865년 비변사를 폐지하였으나 1867년 5월 풍양조씨에 의해 주도된 반란으로 인해 비변사가 부활하게 된다. 산업화 이후에도 비변사는 그 권한을 유지하였고 1989년의 민주화 혁명때까지 권한이 강력했다. 1989년, 민주화 혁명이 일어나고 독재정권이 퇴진해 비변사의 권한 상당수가 새로 신설된 조선 최고재판위원회에 넘어갔다. 현재, 조선 최고재판위원회와 비변사의 권한은 비슷하다. 비변사는 군사기구로 출범하였으나, 실질적으로는 군사기구로 취급되지 않았다.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된것은 1957년의 법 개정으로 인한것이었다.

권한

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