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스코리아 주: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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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원의 미온적인 반응에 이승만은 당시 종전 직후 계속된 낮은 지지율로 다음 선거로 고심하고 있던 [[해리 S. 트루먼 (51주)|해리 S. 트루먼]]을 찾아가 남한이 미국의 주로 편입되면 대통령은 다음 재선과 의회 문제를 고심하지 않으셔도 된다며 사우스코리아 주가 가지는 정치적 위상을 꽤나 공들여 설명했다. 이후 철저한 반공노선을 설명하고 자신이 이 주를 미국 내에서 여론을 규합하는 반공의 최전선이자, 아시아의 불침항모로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했다.
상원의 미온적인 반응에 이승만은 당시 종전 직후 계속된 낮은 지지율로 다음 선거로 고심하고 있던 [[해리 S. 트루먼 (51주)|해리 S. 트루먼]]을 찾아가 남한이 미국의 주로 편입되면 대통령은 다음 재선과 의회 문제를 고심하지 않으셔도 된다며 사우스코리아 주가 가지는 정치적 위상을 꽤나 공들여 설명했다. 이후 철저한 반공노선을 설명하고 자신이 이 주를 미국 내에서 여론을 규합하는 반공의 최전선이자, 아시아의 불침항모로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했다.


트루먼 대통령은 잠시 고민하더니 1948년 3월 사우스코리아의 주 편입 문제를 언론에 띄웠다. 당시 공화당은 심각히 반발했으며, 민주당 내에서도 여론은 그렇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한동안 워싱턴 정계는 대부분 처음 듣는 사우스코리아에 대한 이야기로 도배되었다. 트루먼 대통령은 겉으로는 계속해서 '''"아시아의 불침항모, 소련의 족쇄"'''임을 강조했다. 그러던 6월 베를린 봉쇄가 터지며 사회의 반공 여론이 높아진 상황에서  
트루먼 대통령은 잠시 고민하더니 1948년 3월 사우스코리아의 주 편입 문제를 언론에 띄웠다. 당시 공화당은 심각히 반발했으며, 민주당 내에서도 여론은 그렇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한동안 워싱턴 정계는 대부분 처음 듣는 사우스코리아에 대한 이야기로 도배되었다. 트루먼 대통령은 겉으로는 계속해서 아시아의 불침항모, 소련의 족쇄임을 강조했다. 그러던 6월 베를린 봉쇄가 터지며 사회의 반공 여론이 높아진 상황에서 트루먼 대통령이 민주당 의원들을 소집해 책상의 팻말을 짚으며 "책임은 내가 진다"며 [[사우스코리아 주 승인법]]의 통과를 주문했다. 1948년 6월 11일 상정된 법안은 18일 하원을 통과하고, 19일 상원을 통과해 25일 공포되었다.


=== 미합중국 편입 ===
=== 미합중국 편입 ===

2022년 9월 20일 (화) 14:30 판

틀:코리아 세계관

사우스코리아
State of South Korea
파일:사우스코리아 주기.png 파일:사우스코리아 휘장.png
주기 문장
상징
별명 The Sunrise State
모토 Freedom and Peace
자유와 평화
주가(州歌) Korea, Beautiful Land
주조(州鳥) 까치
주목(州木) 소나무
주화(州花) 무궁화
행정
국가 미국 미국
지역 태평양 (Pacific)
시간대 UTC+9 (도쿄 표준시)
주도/최대도시 서울
주 의사당 소재지 1 M Yeoui St, 서울, 사우스코리아 76716
하위 행정구역
카운티 63
502
인문 환경
면적 100,432㎢
인구 41,660,032명
인구밀도 414.8명/㎢
역사
미합중국 가입 1948년 6월 25일 (49번째)
경제
명목
GDP
전체
GDP
$2조 5067억(2019년) / 세계 8위 상당
1인당
GDP
$60,174(2019년) / 세계 8위 상당
정치
주지사 찰스 터너

사우스코리아 주(영어: State of South Korea)는 미국의 본토에서 8,500Km 가까이 떨어져 있는 가장 먼 주로, 현재 미국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주이다.

현재의 주지사는 존 앤드류 리이다. 주요 대도시로는 서울, 부산, 인천, 대전이 있고, 주도인 서울이 있다.

북쪽으로 노스코리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동쪽으로 일본을 동해를 끼고 접한다. 서쪽으로 중화인민공화국과 서해를 끼고 접하여 항상 안보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주는 네모난 형태로, 최북단의 도시 포천노스코리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주의 남서부에는 호남평야가, 동쪽은 동해, 북쪽은 백두 산맥, 남쪽은 남해에 둘러싸여 있다. 서쪽에는 황해가 있다. 호남평야는 사우스코리아 농업의 중심이며, 주 식량 생산의 약 3분의 1을 생산하고 있다.

전반적인 스윙스테이트[1]이다. 물론 편입 후 30년 간은 미국에서도 손에 꼽히는 블루스테이트였다. 하지만 최근 선거 결과를 보면 2000년, 2004년 조지 W. 부시에, 2008년 버락 오바마에, 2012년 미트 롬니, 2016년 도널드 트럼프에 표를 줬고 상기한 5번의 선거 모두 3%p 차도 나지 않는 초접전이었음을 감안할 때 사우스코리아가 한쪽에 치우친 성향을 가진 주는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역사

미군정

1945년 일본 제국이 패망한 이후 북쪽에는 소련이 남쪽에는 미국이 각각 진주하게 된다. 이후 김일성 등이 소련에 남부 미군에 대항할 새 공화국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소련 역시 이에 동감하고 있었다. 그러나 승전국의 회담에서 스탈린의 원래 목표였던 일본 분할 점령은 미국의 GHQ에 원천 봉쇄 당하고, 한반도를 38도선으로 완전히 나눠버리게 되자 회담에서 스탈린은 불안을 느끼게 된다.

여기에 당시 미 군정이 조선인민공화국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자, 소련은 조선인민공화국의 사회민주주의 계열 인물들을 포섭하게된다. 조선인민공화국의 사민계열 구성원들은 1947년 9월 평양으로 건너가 조선인민공화국의 수립을 선포하였다. 이에 당시 주석이었던 이승만은 큰 위기감을 느끼고 미 군정과 미 의회에 도움 요청을 긴급 타진한다.

이승만은 바로 미국으로 건너가 상원의원들과 접촉하며, 남한지역의 미합중국 편입을 역설하였다. 상원에서는 8000km밖에 떨어진 남한지역이 과연 미합중국에 어떤 안보·경제상 이득을 줄 수 있는지 물었다. 이에 이승만은 아시아 대륙의 서쪽 끝 NATO와 남쪽 끝인 남아공과 더불어 미국이 굳이 당시에 안보상 이유를 제외하고 매우 무가치했던 땅인 알래스카를 매입한 이유와 같이 동쪽 끝인 한반도가 유일하게 소련에게 족쇄를 채울 수 있는 위치라고 말하였다. 하지만 상원은 이러한 주장에 미온적으로 반응하였다.

상원의 미온적인 반응에 이승만은 당시 종전 직후 계속된 낮은 지지율로 다음 선거로 고심하고 있던 해리 S. 트루먼을 찾아가 남한이 미국의 주로 편입되면 대통령은 다음 재선과 의회 문제를 고심하지 않으셔도 된다며 사우스코리아 주가 가지는 정치적 위상을 꽤나 공들여 설명했다. 이후 철저한 반공노선을 설명하고 자신이 이 주를 미국 내에서 여론을 규합하는 반공의 최전선이자, 아시아의 불침항모로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했다.

트루먼 대통령은 잠시 고민하더니 1948년 3월 사우스코리아의 주 편입 문제를 언론에 띄웠다. 당시 공화당은 심각히 반발했으며, 민주당 내에서도 여론은 그렇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한동안 워싱턴 정계는 대부분 처음 듣는 사우스코리아에 대한 이야기로 도배되었다. 트루먼 대통령은 겉으로는 계속해서 아시아의 불침항모, 소련의 족쇄임을 강조했다. 그러던 6월 베를린 봉쇄가 터지며 사회의 반공 여론이 높아진 상황에서 트루먼 대통령이 민주당 의원들을 소집해 책상의 팻말을 짚으며 "책임은 내가 진다"며 사우스코리아 주 승인법의 통과를 주문했다. 1948년 6월 11일 상정된 법안은 18일 하원을 통과하고, 19일 상원을 통과해 25일 공포되었다.

미합중국 편입

미소한반도영유권협정

경제

사회

문화

정치

  1. 민주-공화당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고르게 표를 던지는 주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