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의 불란서 세계관
대한국 국회
원내 구성
[ 펼치기 · 접기 ]
사회민주당
社會民主黨
약칭 사민 (SDPK)
영문명 Social Democratic Party (Korea)
표어 민주사회와 공정한 세상을 위해 뜁니다, 사회민주당
창당 1915년 6월 9일(사회당)
당명변경 1930년 12월 5일(사회민주당)
황도당사 황도특별시 중구 백범로 45-5
서울당사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대로 35
대표 여영국 / 4선 (40~43대)
중추원 원내총무 하준 / 5선 (중:50대, 민:39~42대)
국민원 원내총무 다카츠카사 미코 / 재선 (42~43대)
서기국장 나종규 / 3선 (40,42,43대)
정책위의장 심상정 / 5선 (39~43대)
중추원의원 35석 / 270석 (13.0%)
국민원의원 70석 / 462석 (15.2%)
성장/부지사 0석 / 23석 (0%)
산하 조직 민주사회연구소
당색 노란색 (#FFCC00)
산하연구원 민주사회연구원
책임당원 2,560,487명
등록당원 3,682,883명
국제조직 진보동맹
선거연합 시민연합
사민공산연대

개요

한국의 중도 좌파 정당.

1915년 민권주의 바람을 타고 창당된 사회당이 모태로 여운형, 조봉암등 걸출한 총리를 배출하며 90년대까지 국민당과 정계를 양분하던 유력정당이었으나 1998년 집권 이후에는 단 한차례도 집권하지 못하며 대한공산당에 점점 밀려나고 있다.

최근

37대 총선 이후 1년간의 짧은 집권기 이후 사회민주당은 단 한번도 집권하지 못하고 있으며 중추원 의원 선거, 지방선거에서 조차도 단 한번도 국민당을 상대로 승리하지 못했다. 이런 20년 가까이 이어진 연패에 당내 의견은 분열됐고 연속해서 대표부가 교체되는 혼란기가 2019년 8월 총선 직후부터 약 1년반 가까이 이어졌다. 결국 지지층은 대한공산당으로 이탈했고 당의 노선을 비판하던 젊은 좌익 의원들도 공산당으로 이동했다. 사회민주당은 현재 공산당으로 이탈하지 않은 의원들이 당적을 유지하고 있어 버티고 있을 뿐 20년 중추원 의원 선거21년 지선에서 모두 참패해 소수정당으로 후퇴한 상태다. 이런 당내 갈등은 21년 2월 전당대회가 치러져 정식 대표부가 출범한 이후에도 좀처럼 봉합될 기세가 없어보인다.

왜 쇠퇴하고 있는가?

사민당의 쇠퇴에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내놓는 분석은 자유당의 발흥과 쇠퇴로 인한 국민당의 커다란 변화이다. 실제로 국민당은 90년대 초반까지 강경한 보수주의를 추구했으며 전통적 부농층과 신흥 자본가를 조율하며 이들을 지지층으로 삼아 장기 집권을 꾀해왔다. 하지만 이 전략은 자유당의 출현으로 뿌리부터 흔들렸고 국민당도 사민당의 복지추구 노선을 일부 도입하고 사회적 진보를 인정하고 타협하는 정책으로 바꾸었다. 이런 변화는 사회민주당에게 간접적인 악재로 작용했다. 국민당의 변화는 국민당의 전통적 지지 기반이었던 부농과 자본가가 이탈하지 않으면서 사민당에 가까운 중도층까지 끌어오게 되었고 이것은 사민당이 24년동안 집권하지 못하게되는 원인이 되었다.

또한 사민당은 권영길 총리 이후 강력한 구심점이 될만한 인물이 존재하지 않았다. 국민당이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으로 이어지는 계보를 이어갈 동안 07년 지방선거40대 총선거에서 연패한 이후 권영길 대표는 젊은 당원들의 격렬한 항의를 받고 사실상 당권을 내려놓았으며 11년에는 정계를 떠났다. 그동안 사민당은 선장을 잃고 표류하며 어떠한 새로운 비전이나 미래를 제시하는 인물이 등장하지 않았다. 지방정치에 주력하는 노선을 제시하여 미래를 도모키로한 박순양과 과감한 좌파 정책 노선을 관철시킨 유호준이 지도부로 연달아 등장한 공산당이 끝내 제1야당으로 올라선 현 상황을 보면 비전을 제시할 유력 인사가 등장하지 않은 현실 또한 사민당 몰락에 일조한 셈이다.

사민당은 정권을 잃은 뒤 오랜 기간동안 변화를 꾀하지 못했다. 권영길 대표 체제에서는 그나마 중앙당의 권력을 내려놓고 지역조직의 권한 확대를 통해 지방선거에서 성장을 내주고도 시장군수와 성의회를 장악하는 등의 상당한 성과를 냈으나 권 대표 이후에는 더욱 과감한 변화가 필요함에도 그러한 변화를 추구하지 못했다. 시민들은 더이상 사민당을 매력적인 정당으로 인식하지 못했고 국민당으로 몰리거나 공산당으로 이탈하거나 투표를 포기했다. 노선도 분명치 않고 변화도 없는 ‘이도저도 아닌’ 중도정당으로 전락한 사민당이 오래전부터 뚜렷한 노선을 유지하면서도 여러 변화를 시도해온 공산당에게 밀려나는 것은 필연적이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