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관련 틀
[ 펼치기 · 접기 ]
소비에트 주권 공화국 연방
Союз Советских Cуверенных Республик
Union of Soviet Sovereign Republics
국기 국장
Пролетарии всех стран, соединяйтесь!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국가 소비에트 연방 찬가
국화
해바라기
위치
width: calc(100% + 5px)
역사
[ 펼치기 · 접기 ]
지리
[ 펼치기 · 접기 ]
수도
모스크바
면적
22,227,131km² | 세계 1위
내수면 비율
18%
구성국
러시아 SFSR
몰도바 SSR
벨로루시 소비에트 주권 공화국 벨로루시 SSR
우즈베크 소비에트 주권 공화국 우즈베크 SSR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주권 공화국 우크라이나 SSR
자캅카스 SFSR
카자흐 소비에트 주권 공화국 카자흐 SSR
키르기스 소비에트 주권 공화국 키르기스 SSR
타지크 소비에트 주권 공화국 타지크 SSR
투르크멘 소비에트 주권 공화국 투르크멘 SSR
접경국
중국, 폴란드 등 14개국
인문환경
[ 펼치기 · 접기 ]
인구
총 인구
332,862,716명 | 세계 4위
밀도
14.97명/km2 | 세계 225위
인종
러시아인 61%, 우크라이나인 12%, 우즈베크인 5%, 카자흐인 4% 등
출산율
1.93명
기대 수명
76세
공용어
없음 (사실상 러시아어)
지역어
우크라이나어
카자흐어
우즈베크어
투르크멘어
타지크어
키르기스어
공용 문자
키릴 문자
종교
국교
없음
분포
종교 없음 66%, 정교회 12%, 이슬람 4% 등
군대
소련군
하위 행정구역
[ 펼치기 · 접기 ]
연방 주권 공화국
2개
주권 공화국
11개(자캅카스 SFSR의 구성국 포함)
공화국
18개(러시아 SFSR의 구성국들)
정치
[ 펼치기 · 접기 ]
정치 체제
사회민주주의, 공화제, 이원집정부제, 연방제, 일당 우위 정당제, 양원제
민주주의 지수
3.95점 | 권위주의 체제
167개국 중 111위(2020년)
국가 원수 (수상)
세르게이 미로노프
Сергей Миронов
정부
요인
총리
미하일 미슈스틴
Михаил Мишустин
연방회의 의장
발렌티나 마트비옌코
Валентина Матвиенко
민족회의 의장
뱌체슬라프 볼로딘
Вячеслав Володин
여당
소련 공산당
경제
[ 펼치기 · 접기 ]
경제 체제
국가자본주의, 사회주의자본주의
GDP
(PPP)
전체 GDP
$ 143,690억 | 세계 3위
1인당 GDP
$ 43,168 | 세계 45위
GDP
(명목)
전체 GDP
$ 129,709억 | 세계 3위
1인당 GDP
$ 38,968 | 세계 25위
외환 보유고
$ 8,140억 | 세계 4위
신용 등급
무디스 Aa3
S&P AA-
Fitch AA-
화폐
공식 화폐
루블 (₽)
ISO 4217
SUR
단위
[ 펼치기 · 접기 ]
법정 연호
서력기원
시간대
UTC+2 ~ UTC+12
도량형
SI 단위
ccTLD
.su
국가 코드
810, SU, SUN
전화 코드
+7

소비에트 주권 공화국 연방(러시아어: Союз Советских Суверенных Республик / СССР, 영어: Union of Soviet Sovereign Republics), 약칭 소비에트 연방(러시아어: Сове́тский Сою́з)은 유라시아에 위치한 연방제 국가이다. 1922년 12월 30일 연방 수립 조약에 의해 성립될 당시에는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였다. 세계에서 가장 영토가 넓은 나라이며, 11개의 시간대에 속해있다. 넓은 영토 답게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되어있으며, 공용어인 러시아어를 제외한 많은 언어들이 각 주권 공화국에서 사용되고 있다.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노르웨이, 핀란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폴란드(칼리닌그라드 주 포함),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 루마니아, 이란, 아프가니스탄, 중화인민공화국, 몽골, 고려 인민공화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오호츠크 해와 베링 해협, 알래스카 주에서 미국, 일본과 해상 국경을 유지하고 있다. 수도는 모스크바이며 주요 도시로는 레닌그라드, 이르쿠츠크, 노보시비르스크, 블라디보스토크, 크라스노야르스크, 소치 등이 있다.

소비에트 연방은 러시아 제국이 무너지고 성립되었다. 러시아 제국은 1917년 3월 8일에 일어난 2월 혁명으로 니콜라이 2세가 폐위되면서 멸망했다. 또한 혁명 이후 세워진 러시아 임시 정부 역시 10월 혁명으로 붕괴했고 블라디미르 레닌볼셰비키가 러시아의 정권을 잡았다. 10월 혁명 직후 볼셰비키의 급진적인 혁명과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백군과 볼셰비키가 충돌하면서 러시아 내전이 일어났다. 약 5년 간의 내전에서 볼셰비키가 승리하면서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이 세워졌다. 그 후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벨로루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자캅카스 사회주의 연방 소비에트 공화국과 함께 1922년 12월 30일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수립 조약에 서명함으로써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이 탄생했다. 구성국이 최대 15개까지 늘어났으나 1991년 8월 15일 신연방 수립 조약을 통해 소비에트 주권 공화국 연방으로 국호를 변경했으며 현재는 10개의 구성국만 남아있다.

소비에트 연방은 미국과 함께 세계를 이끄는 초강대국으로 평가받고 있다. 제2차 세계 대전에는 나치 독일을 상대로 대조국전쟁을 치뤄 승리하는 등 연합국의 승리에 크게 기여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 되었다. 또한 현재는 동구권 국가들 사이의 안보 공동체인 바르샤바 조약기구를 창설해 평화 유지에 힘쓰고 있으며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군사력 대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소비에트 연방은 이러한 국제적인 영향력과 군사력을 제외하고도 스포츠, 예술 방면에서 강점을 보이고 있으며 구매력 평가 기준 세계 4위의 경제 규모를 가지고 있는 경제 대국이다.

국명

국명인 소비에트 주권 공화국 연방은 '평의회'라는 의미의 러시아어 소비에트에서 유래했다. 소비에트는 노동자·농민·군인들의 민주적 자치 기구로 러시아 제국 전반에 걸쳐 설치되어 있었다. 이런 소비에트들이 러시아 혁명의 주축 세력으로 성장하고 블라디미르 레닌볼셰비키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을 탄생시키면서 소비에트가 국명에 들어가게 되었다. 소비에트 연방의 본래 국명은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으로, 1991년 신연방 수립 조약에 의해 시작된 대대적인 변화의 일환으로 사회주의가 국명에서 빠지는 대신 주권이 들어가게 되었다. 당시 지속되는 동구권의 민주화 바람으로 소비에트 연방의 흔들리는 영향력을 바로 잡고 분열을 야기하는 공화국을 분리 독립시키기 위해 고르바초프 수상은 연방을 구성하는 각 공화국들에게 소련 존속에 관한 전연방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이 투표의 결과로 3개의 공화국이 연방을 탈퇴하기로 결정했으며 고르바초프 수상은 소비에트 연방의 존속에 찬성한 나머지 10개 공화국과 신연방 수립 조약을 체결했다. 고르바초프 수상과 10개 공화국 대표들은 신연방 수립 조약에서 더이상 특정 이념의 강요는 옳지 않다는데 동의하여 현재의 국명을 소비에트 연방의 새로운 국명으로 결정했다.

역사

러시아 혁명

19세기 중엽부터 러시아 제국은 점진적인 근대화 개혁을 통해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황제였던 알렉산드르 3세는 경제 개혁 외의 사회 전반적인 개혁은 철저하게 묵살했다. 결국 대폭 성장한 경제에 비해 노동 환경은 처참한 수준까지 악화되어 노동자들의 불만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1894년 11월, 알렉산드르 3세가 사망한 후, 그의 뒤를 이어 황제로 즉위한 니콜라이 2세 역시 자신의 제국이 변화하는 것을 두려워해 여러 개혁 요구를 전혀 듣지 않았다. 오히려 언론과 사상의 자유를 대대적으로 통제하며 교육에도 제한을 두었다. 황제의 시대착오적인 정책에 반발하여 1895년 11월, 블라디미르 레닌을 주축으로 한 공산주의자들이 레닌그라드에서 노동자계급 해방투쟁동맹을 결성해 러시아 제국에 적극적으로 대항할 것을 선언했다. 그러나 이 동맹의 첫 신문을 발간하려 했던 12월 20일, 헌병대에 의해 레닌을 포함한 6명의 동맹원들이 체포되어 수감되었다. 하지만 이 사건은 노동자들 사이에서 공산주의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계기였다. 레닌은 감옥에 있는 동안에도 1896년 5월, 레닌그라드의 대규모 노동자 파업을 주도했으며 이 파업은 3주나 지속되었다. 이 파업을 시작으로 러시아 제국 전국 각지에서 파업과 시위가 끊이질 않고 발생했다. 1901년에 발생한 남러시아 총파업에는 약 20만 명의 노동자가 참여했다.

러시아 제국 정부는 노동자들을 탄압하며 혁명 전선에서 떼어놓으려고 시도했다. 간첩, 관제노동조합, 비밀경찰 등을 이용해 노동자들의 와해를 유도했지만, 오히려 시위대는 증가하기만 했고 당 자체적인 무장 조직을 결성한 러시아 사회혁명당이 결성됐다. 러시아 제국이 격렬한 시위로 홍역을 치르고 있던 1904년, 일본 제국이 러시아의 조차지인 뤼순항을 기습 공격하면서 러일전쟁이 발발했다. 전쟁이 시작된 직후, 러시아 제국 국내는 물론 서방의 열강들은 러시아 제국의 손쉬운 승리를 예상했다. 그러나 모든 국내외 여론을 뒤집고 치열한 전투 끝에 러시아 제국이 패배하면서 영토까지 빼앗겼고 결국 국민들의 왕실을 향한 불만은 폭발했다. 시위대는 입헌군주제의 도입과 노동 환경의 개선을 요구했지만, 황제는 피의 일요일 사건을 일으키며 시위대를 유혈 진압했다. 이 사건 이후로 시위대는 전제 정치의 중단을 넘어선 왕실의 폐지를 주장하기 시작했으며 러시아 제국 전역으로 시위가 번지기 시작했다. 러일전쟁의 패전과 피의 일요일 사건 이후 군대마저 동요하기 시작했다. 결국, 1905년 6월, 러시아 제국 해군의 전함 포템킨에서 수병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포템킨 반란은 얼마 못 가 진압되었지만 군대가 흔들리기 시작했음은 제국 정부에 큰 충격을 주었다.

니콜라이 2세는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1905년 10월, 두마라고 불리는 의회를 개설하며 헌법 제정과 투표권 확대를 약속했다. 한 달 뒤인 1905년 11월, 새로운 두마 선거법이 공표되었지만, 투표권은 여전히 불평등했다. 지주와 도시민 등 기득권의 표는 농민과 노동자의 수십 배에 달하는 비중을 차지했고 심지어 여성과 군인, 학생, 소규모 기업의 노동자, 농업 노동자는 투표권이 주어지지도 않았다. 더군다나 니콜라이 2세는 여전히 강력한 권력을 쥐고 전제 정치를 펼쳤으며, 러시아 제국은 무늬만 입헌군주제가 되었다. 이런 개혁에 반발했던 혁명가들은 모두 체포되어 처형되는 등, 상황이 진정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던 1914년 8월, 러시아 제국은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다. 애국심에 고무된 많은 러시아인이 황제를 지지하며 전선으로 나갔지만 타넨베르크 전투에서 대패하고 여러 차례 이어진 전투에서마저 패배하며 1916년까지 약 500만 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다. 또한 전시 경제를 유지하기 위해 정부에서 루블화를 마구 찍어낸 덕분에 루블화의 가치는 폭락했고 인플레이션까지 발생했다. 생활이 파탄 나기 시작한 국민들 사이에선 반전 여론이 거세졌다. 연이어 발생한 파업과 시위에는 100만 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참가했고 진압을 명령받은 군인들도 명령에 불복하고 시위에 호의적으로 대하기 시작했다.

1917년 3월 8일, 국제 여성의 날을 맞아 레닌그라드 시작된 시위는 군경의 무력 진압에도 결국 2월 혁명으로 확대되었다. 3월 12일, 마침내 군대까지 혁명에 가담했고 혁명의 완수를 위해 페트로그라드 노동자 병사 대표 소비에트가 결성되었다. 레닌그라드에서 혁명에 성공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러시아 제국 전역에 노동자 병사 소비에트가 결성되었다. 소비에트는 혁명의 수호를 위해 적위대를 조직하고 권력을 장악했다. 두마는 부르주아 세력을 기반으로 임시위원회를 만들어 소비에트와 함께 무너진 로마노프 왕조를 대신해 러시아의 국토를 통치하기 위한 임시 정부를 수립했다. 러시아 임시 정부는 언론의 자유를 비롯한 서구적인 제도를 도입하며 급진적인 개혁을 진행했다. 그러나 러시아 제국 시절부터 지속된 제1차 세계 대전, 특히 독일 제국과의 전쟁으로 심각한 경제난을 겪고 있었고 당시 민중들은 임시 정부의 파격적인 개혁 정책보다도 휴전을 원했다. 임시 정부는 이를 묵살했고 독일 제국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에 대대적인 공세를 취했으나 대패하면서 한계를 보였고 서서히 지지 기반을 잃기 시작했다.

이에 1917년 9월 블라디미르 레닌과 그가 이끄는 볼셰비키가 휴전을 주장하며 평화와 토지, 빵을 요구했고 전쟁에 지쳐있던 민중의 지지를 얻기 시작했다. 덕분에 임시 정부와 '이중 권력'을 쥐고 있던 소비에트에서 볼셰비키는 단숨에 다수파가 되었다. 핀란드에서 망명 중이던 레닌은 같은 해 10월, 비밀리에 귀국하여 소비에트의 중앙위원들에게 지금이 혁명의 적기라며 강력하게 주장했다. 볼셰비키 중앙위원회는 반대에도 불구하고 투표를 시행해 더이상 무장 봉기를 피할 수 없으며, 시기가 무르익었다는 선언을 채택했다.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의 의장이었던 레프 트로츠키는 곧바로 군사혁명위원회를 설치하여 봉기를 준비했다. 1917년 11월 6일(율리우스력 10월 24일), 알렉산드르 케렌스키가 이끄는 임시 정부의 군인들이 볼셰비키의 프라우다 출판소에 침입해 출판기를 파괴하고 신문을 모두 폐기했다. 볼셰비키와 적위대는 곧바로 대응하여 출판소를 탈환하고 페트로그라드의 중앙전신국을 포위했다. 10월 25일(11월 7일) 트로츠키의 명령으로 10월 혁명이 시작됐고 1,000명의 적위대는 우체국, 발전소, 은행 등을 추가로 점거했으며, 11월 8일(율리우스력 10월 26일) 새벽 2시 마침내 임시 정부 청사였던 겨울 궁전까지 점령하면서 러시아 임시 정부를 무너뜨리고 소비에트와 볼셰비키가 권력을 장악했다.

러시아 내전과 연방의 성립

1917년 10월 혁명이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볼셰비키는 주요 도시만 장악했을 뿐, 지방에는 볼셰비키에 반대하는 세력과 로마노프 왕조를 복위시키려는 왕당파 군벌이 건재했다. 러시아 내전은 흔히 볼셰비키의 붉은 군대와 황제를 지지하고 혁명을 거부하던 백군간의 대립으로 알려져있다. 사실 러시아 내전은 붉은 군대와 백군 모두에 반대하는 다양한 군소 군벌들이 난립했고 러시아가 독일 제국과 전쟁을 지속하길 바랐던 연합국이 백군을 지원하면서 복잡한 양상을 띄고 있었다. 내전 초기에는 백군이 체계적인 군대와 우월한 장비들로 붉은 군대를 압도했다. 시베리아는 일본군의 지원을 받은 백군이 점령했고 우크라이나, 코사크, 체코슬로바키아 군단 등 다양한 세력들이 백군의 편에 서서 붉은 군대를 포위했으며 모스크바는 함락 직전까지 내몰렸다. 최악의 상황이 다가온 붉은 군대의 트로츠키는 1918년 6월, 징병제를 실시해 500만에 육박하는 병력을 확보했다. 또한 백군의 지휘 체계에 비해 열세였던 붉은 군대의 지휘력과 군사적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과거를 불문하고 러시아 제국의 장교들을 영입했다. 결정적으로 붉은 군대는 철도를 장악하고 있었고 다방면에 분산되어 있던 백군에 비해 기동력이 높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더군다나 구체제로의 복귀를 바라는 백군을 러시아의 민중들은 지지하지 않았고 볼셰비키의 붉은 군대에 적극 가담했다. 1919년부터 붉은 군대는 재편된 군사력을 바탕으로 대대적인 반격을 시작했고 백군을 넘어 러시아로부터 독립한 우크라이나, 폴란드, 핀란드와 발트 3국, 나아가 독일까지 팽창하려 했다. 그러나 연합국과 함께 각 국의 군대가 붉은 군대를 저지하면서 우크라이나와 캅카스 지방만 점령하는데 성공했다. 붉은 군대와 접전을 벌이던 백군은 1920년 1월, 시베리아의 전러시아 임시 정부가 해체되면서 조직적인 저항이 불가능해졌다. 이후 붉은 군대는 빠르게 백군의 잔당을 소탕하며 러시아를 완전히 지배하는데 성공했다. 이후, 1921년 외몽골의 로만 폰 운게른 슈테른베르크가 붉은 군대에 패배하면서 외몽골은 중화민국으로부터 몽골 인민 공화국으로 독립했다. 1923년 6월 17일, 아나톨리 페펠랴예프의 군대마저 패배해 백군은 완전히 소탕되었다. 최후의 백군이 패배하기 전인 1922년 12월 28일,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벨로루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자캅카스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4개 공화국이 소비에트 연방 수립 조약소비에트 연방 창설 선언 두 문건을 승인했다. 이후, 12월 30일 첫 번째 소비에트 연방 소비에트 대회에서 두 문건 모두 채택되었고 소비에트 연방이 탄생했다. 소비에트 연방 설립의 공식 선언은 볼쇼이 극장에서 진행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냉전

프라하의 봄

11월 혁명

페레스트로이카

글라스노스트

신 연방 수립

지리

정치

국방

경제

사회

문화

대외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