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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반격
Wideclouds/Danons의 대체역사 국가 아르헨티나입니다. 2018년 10월 12일 본인에 의해 설정된 아르헨티나 공화국을 모체로 합니다.

아르헨티나 공화국
República Argentina
국기 국장
En unión y libertad
연합과 자유
상징
국가 아르헨티나 국가
국조
호르네로
국화
피토라카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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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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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6년 8월 1일 리오데라플라타 부왕령 편성
1810년 5월 25일 5월 혁명
1816년 7월 9일 스페인으로부터 독립 선언
1853년 5월 1일 헌법 제정

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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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면적
2,782,966km2
접경국
브라질, 칠레, 파라과이, 볼리비아, 우루과이
인문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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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총 인구
45,605,823명(2021년)
공용어
스페인어
지역어
과라니어, 마푸체어
공용 문자
라틴 문자
종교
국교
가톨릭교회
분포
가톨릭(82.6%)
개신교(7.8%)
기타(2.5%)
무종교(7.1%)
군대
아르헨티나군
하위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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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Provincia)
23개
군(Departamentos)
346개
군(Partido)부에노스아이레스 한정
135개
동(Bario)부에노스아이레스 한정
48개
자치구(Comunas)부에노스아이레스 한정
15개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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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체제
공화제, 대통령중심제, 양원제, 연방제
국가 원수 (대통령)
호세 사르데아 (José Sardea)
정부
요인
부통령 겸 상원의장
펠리페 가르시아네즈 (Felipe Garcíanez)
대외연방부 장관
후안 산 칼리데즈 (Juan San Calides)
내무문화체육부 장관
사르데즈 리아마카 (Sardez Liamaca)
교육기술부 장관
알레산드로 마리아우 (Alejandro Mariau)
산업부 장관
인두스트라 칼리마나 (Industra Kalimana)
재무은행부 장관
후안 사날레즈 (Juan Sanalez)
하원의장
카마리오네 살레마즈 (Camarione Salemaz)
여당
급진혁명당 (Unión Cívica Radical)
원내 야당
정의당, 공화주의제안당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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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체제
수정자본주의 시장경제
GDP
(PPP)
전체 GDP
$1,637,021,016,585
1인당 GDP
$35,895
GDP
(명목)
전체 GDP
$1,534,818,367,242
1인당 GDP
$33,654
화폐
공식 화폐
아르헨티나 페소 (ARP)
ISO 4217
단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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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연호
서력기원
시간대
GMT-3
도량형
국제표준도량형 기준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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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 가입
창립회원국
ccTLD
032, AR, ARG
국가 코드
.ar
전화 코드
+54


아르헨티나(Argentina), 아르헨티나 공화국(República Argentina)은 안데스 산맥에서 남아메리카 대륙 최남단의 티에라델푸에고 섬에 이르는, 세계 8위의 매우 장대한 영토를 두고 있는 공화국이다. 수도는 부에노스아이레스(Buenos Aires)이며 최대도시의 역할도 겸한다. 수도이자 최대도시인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제외한 주요 도시로는 코르도바, 로사리오, 산타페, 코리엔테스, 파라나, 바이아블랑카, 마르델플라타, 라플라타 등이 있다. 인구는 45,605,823명이며 대다수는 부에노스 아이레스 주, 즉 비옥한 팜파스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19세기-20세기 초 유럽 대륙에서 비롯한 여러 차례의 폭발적인 대(大)이민과 당시 정부의 인종 차별 정책으로 인해 인종의 다수는 백인이 차지하고 있다. 이웃으로 왼쪽엔 칠레, 위로는 볼리비아와 파라과이, 오른쪽엔 브라질과 우루과이가 있다. 아르헨티나 억양의 스페인어가 공용어이며 브라질을 제외한 모든 접경국은 스페인어를 사용해 의사소통에는 거의 문제가 없다. 연방제를 채택하고 있어 주(Provincia)가 존재하는데, 헌법에 의해 이들은 각자의 주 헌법 제정권과 자치를 보장받았기 때문에 독립 초기에 중앙정부와 주 정부 간의 갈등이 심각했으나, 로사스(Rosas)의 독재가 지나면서 사실상 중앙정부가 국가 권력의 주요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국가원수와 정부수반은 대통령이며 육ㆍ공ㆍ해군 및 아르헨티나의 모든 군대의 통수권자이다. 대통령은 임기 4년의 직선 중임제이며 최대 2번 연임할 수 있다. 남아메리카에서 최초로 제정된 헌법인 1853년 아르헨티나 헌법에 의하면 대통령은 원래 임기 6년으로 전국의 선거인단에 의해 선출되었으나 1994년 현행 헌법에서 임기 4년의 직선 중임제로 개정된 것이다. 국가의 부(副)원수이자 제2통수권자인 부통령의 임기는 대통령과 동일하며 만약 대통령의 유고 시에는 그 직을 승계한다.

국가 상징

국호

국호는 라틴어에서 유래되었다. '은(銀)'을 의미하는 '아르겐툼(Argentum)'에서 비롯되었다. 스페인의 도래 당시 아르헨티나의 수도가 위치한 부에노스아이레스 주변 강 일대를 라 플라타(La Plata)라고 불렀었고, 개척자들이 라 플라타 강 상류에 은으로 되어 있는 산맥이 존재한다고 믿었기에 Argentium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이것이 스페인어로 의역된 것이다.

국기

Sol de Mayo
아르헨티나의 국기
1812년 2월 27일에 제정되었다. 상ㆍ하에 각각 하늘색 무늬, 중간에는 흰색 무늬가 그려져 있어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5월의 태양(Sol de Mayo)이 삽입되었다. 본래는 상징이 들어가 있지 않았지만 1818년에 추가된 것이다. 또한 현대에도 민간기와 상선기에서 5월의 태양 디자인은 생략하고 있다.

국장

아르헨티나의 국장
국장의 문양은 1813년 제정되었고, 현재 통용되는 문양은 1944년 제정되었다. 맨 위에는 5월의 태양이, 국장 바깥쪽 양 부분에는 월계수 가지로 묶은 화환이 감싸고 있다. 국장 안쪽 가운데에는 국기를 구성하는 색인 하늘색과 하얀색, 두 가지 색의 타원이 그려져 있다. 악수를 하고 있는 손은 여러 지역의 단결을 의미한다.

역사

아르헨티나의 독립
Independencia de Argentina
1806-1807년 사이 영국군이 침략했으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민들이 몰아냄, 1차 의회, 5월 혁명, 투쿠만 회의(좌 상 우 상, 좌 하 우 하 순으로 읽습니다.)

19세기 초는 격동의 시대였다. 이베리아가 프랑스 제1제정에 의해 쑥대밭이 되었고 영국이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침공을 시작했던 시대였다. 그런 와중 영국이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침공했을 때 시민들은 힘을 합쳐 영국군을 몰아냈다. 스페인의 지원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기에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민들은 마침내 본국에 대한 기대를 저버렸다. 1810년 5월 25일, 스페인 국왕이 나폴레옹 황제에 의해 퇴위됐다는 소문을 들은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민들이 1차 의회를 소집하면서 스페인의 영향권에서 독립했다.(5월 혁명, Revolución de Mayo)

1810년 5월 독립을 선포하고 임시정부를 수립한 이래, 1816년 7월 9일 투쿠만 회의를 소집해 중앙 집권적 공화국이 성립되었음을 선언했다. 초반엔 리오데라플라타 부왕령 전체가 하나의 연합주로 독립했지만 내부에서의 지속적인 충돌로 인해 페루ㆍ볼리비아ㆍ파라과이ㆍ우루과이가 이탈하고 말았다. 이후 중앙정부의 강력한 권한을 요구하는 부에노스아이레스와 수도권 일대의 중앙집권주의자들과 지방의 자치권을 요구하는 연방주의자 간의 분쟁이 빚어졌는데, 분쟁 끝에 경제ㆍ군사적 우위를 가졌던 부에노스아이레스 수도권의 중앙집권주의자가 승리하고 권력을 장악했다. 중앙집권주의자들은 스페인에게 물려받은 남대서양 일대 섬들의 영유권을 행사하길 원했고, 강력한 권력을 바탕으로 말비나스 제도에 이주자들과 내국인 관리, 군대를 파견했다. 또한 인접한 산 페드로 제도에도 주기적으로 정부관리와 군대를 보내 양 제도를 장악하는 한편 수교를 맺은 모든 국가들에 영토를 재확인하여 말비나스와 산 페드로의 영유권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이렇게 아르헨티나는 역사적으로 2번에 걸쳐 양 제도에 대한 영유권 명시 및 재확인 의지를 선언했으며, 그에 그치지 않고 이주자와 관리ㆍ군대를 지속 파견함으로써 고유 영토 보호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1829년 후안 마누엘 데 로사스가 아르헨티나의 대통령직에 올랐다. 그는 자치권을 중요시하는 연방주의자였음에도 재임중 강한 중앙집권정책을 통해 현대 아르헨티나의 초석을 닦았다고 평가받는다. 로사스 대통령은 20년간 재임하면서 국내정치를 안정시키고 대통령의 권한을 강력하게 강화시켰지만 반정권 인사들을 죽이거나 중상을 입히는등 잔혹하게 통치했고, 부에노스아이레스 주지사 지위를 로사스 가문에 의해 세습시키려고 시도하는 등 권력에 대한 독점 야욕이 있었기에 많은 비판을 받았다. 로사스 재임 도중 우루과이에서 발생한 내전으로 인해 브라질 제국이 개입하자 로사스 정권도 이에 개입해 브라질과 충돌을 빚던 도중, 반정권 인사들의 연합으로 내전이 진행됐는데 여기서 로사스가 대패하면서 결국 재임 20년만에 축출당했고 로사스와 그 일가는 영국으로 망명가게 되었다.

로사스가 축출된 이후 1853년 아르헨티나의 주지사들은 로사스 전 대통령의 독재가 반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 아르헨티나의 연방국가화에 합의했으며 헌법을 제정했다. 신임 대통령은 엔트레리오스 주지사였던 호세 우르키사가 선출됐는데 신헌법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 세관의 수입을 모든 주가 공유하도록 한 것에 반대한 부에노스아이레스 주는 이를 거부하고 혼자 아르헨티나 연방을 탈퇴했다. 이후 다시 10년 간 크고 작은 분쟁이 벌어지다가, 결국 여러 분쟁을 거쳐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주지사였던 바르톨로메 미트레가 최종적으로 내륙의 아르헨티나 연방을 제압했다. 모든 주가 참가한 연방 의회에서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세관을 국유화하되 부에노스아이레스 주의 수입을 보장하는 방법으로 모두가 동의하는 합의가 이루어졌고, 1862년 미트레가 통합된 아르헨티나의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프랑스에서 냉장기술이 개발되자 경제발전의 기회가 찾아왔다. 번영하는 목축업을 토대로 많은 소고기를 수출할 수 있게 되자 경제력이 상승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게다가 국내정치의 혼란이 완전히 정리되면서 아르헨티나 정부가 남부 황무지 및 원주민 영토의 정복에 힘쓰기 시작했는데, 1800년대 후반에 이루어진 대규모 정복사업은 아르헨티나의 영토를 2배 이상 불려놓았고, 남부 파타고니아 지방을 제외하고는 전부 농업과 목축업에 쓰기 좋은 땅들이었기에 아르헨티나의 초기 산업이 크게 부흥하게 되었다. 이에 땅ㆍ농장 지주들의 자본 축적이 이루어져서 1880년 이후부터 초기적인 산업화가 시작되었고, 해외 자본, 특히나 영국과 프랑스의 자본이 유입되어 최초로 근대적 공장이 세워지고 선진적인 산업 기술을 바탕으로 한 공장이 여럿 세워지는 등 아르헨티나는 빠른 경제성장을 이룩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정부가 산업화에 관심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국내 물자 이동 등의 편리화를 목적으로 전국구급 철도를 여럿 운영하기 시작하였고, 도시간의 교류도 확대되었다. 정부는 공장을 놓기 좋은 지역에 국가 산업 지대를 구성하여 선진기술 도입을 장려하기도 했다. 1900년 이후부터는 다양한 방법으로 축적한 큰 부를 바탕으로 문화와 예술의 풍요, 사회의 발전으로 인해 본격적으로 '남미의 프랑스'라고 불리게 되었고, 수도였던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은의 여왕', '남미의 파리' 등의 되게 화려한 명칭을 갖게 되었다. 철도와 기간사업이 여럿 건설되었고 아메리카 대륙 최초의 지하철을 건설하였다. 급진주의당이 정권을 잡은 뒤에는 사회정치적 문제에도 크게 관심이 대두되어 모든 성인 국민들에게 투표권을 보장하였고, 사회안전망에 대한 기초적 재고와 개선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미국에서 발발한 세계 대공황으로 인해 모든 나라가 그렇듯 아르헨티나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하지만 예전부터 선진 산업에도 지속적인 투자와 관심을 가져 풍부한 인프라를 가진 덕분에 농업에 과의존했던 국가들과는 달리 충격을 흡수할 수 있었고, 정부의 지속적인 위기 탈출 노력과 겹쳐 세계 경제가 다시 개선되기 시작한 1930년대 후반부터는 대공황 이전의 경제력을 온전히 회복한뒤 상승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런 가운데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였고, 아르헨티나는 유럽의 연합국들에 농업 물자와 공업 물자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농장에서는 질높은 작물들을 모아 비싼 가격에 수출했고, 공장에서는 군사 무기를 생산하여 유럽으로 수출했다. 이런 가운데 아르헨티나는 당대 다른 라틴아메리카 국가들과는 다르게 정치적인 안정을 견고하게 만드는데에 성공했다.

정치

경제

  1. 남극은 실효지배하고 있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