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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고할 세계관은 [[나치 독일]]과 [[소한민국]]이고, 유머 70 : 진지 30 정도로 갈 것 같음 | | * 참고할 세계관은 [[나치 독일]]과 [[소한민국]]이고, 유머 70 : 진지 30 정도로 갈 것 같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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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검은 행진 = | | = 유럽 대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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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 | | * '''러시아'''<br>1905년 러시아 혁명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검은 백인대는 1917년 10월 볼셰비키와 케렌스키 정부를 상대로 대규모 테러를 감행해 혁명을 저지하는데 성공한다. 세묘노프는 백인대의 명칭을 '차르단'으로 바꾸고 유럽을 넘어 아시아에까지 영향을 떨치기 시작했으며, 백군의 분열과 볼셰비키 잔당들의 기습 공격으로 내전이 발발한다. 이후 1918년 11월, 시베리아와 극동 지역을 모조리 장악한 차르군은 푸리시케비치를 중심으로 '신성 러시아 임시정부'를 형성했고, 콜차크를 비롯한 주요 인사를 동원해 백군 내 민주주의 세력을 모조리 숙청시킨다. 그리하여 차르군은 백군의 중심 세력이 되었고, 압도적인 물량으로 볼셰비키를 찍어누르는 데 성공해 1921년 내전을 종전시킨다. |
| ** 1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를 달리는 가운데, 사회주의 시위대가 주도하는 2월 혁명으로 황제가 퇴위된다. 그러나 검은 백인단 운동은 쇠퇴하지 않고 '전러시아 대회'를 해체하지 않기에 이르렀고, 케렌스키 정부와 볼셰비키에 맞선 테러, 암살 행위를 지속적으로 저지르게 된다.
| | : 하지만 전쟁에서 이긴 차르국에서는 새로운 정권 수립을 위한 요건을 놓고 내부 갈등을 일으키는데, 이 때 사빈코프가 친위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권력을 쥐고, 스스로를 '''보흐'''로 칭하면서 '''제3제국 건설'''을 선포한다. 이 때부터 사빈코프는 극렬 파시스트로 전향, 이후 러시아 내 왕당파와 파시스트, 국수주의자들을 모조리 통합하며 '''국가제국당'''을 형성해 스스로 당수가 되고, 무려 12년 동안 러시아 재건을 주도했다. |
| ** 또 백인단은 비밀결사를 동원해 시베리아와 극동, 캅카스를 중심으로 체르노소텐치를 양성시켰으며, 이 때 운게른슈테른베르크 남작과 세묘노프 장교를 설득해 백인단에 합류한다. 두 사람은 난민이 된 부랴트인들을 부대로 양성하기 위해 동러시아로 이동한다. 한편 페트로그라드와 중심도시에 자리잡은 백인단 인사들은 볼셰비키가 혁명을 일으킬 것이란 정보를 입수하고, 이들을 몰살시킬 계획을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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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7년 11월 7일, 백인단이 정부청사인 겨울궁전과 볼셰비키 본부를 폭파하고, 케렌스키, 레닌을 비롯한 주요 인사들을 살해한다(10월 테러). 이에 트로츠키를 비롯한 일부 주요 인사들은 신변 보호를 위해 탈출하는 등 혼란이 지속되면서 혁명이 중단된다. 임시정부에서는 케렌스키의 죽음으로 연립정부가 해체되면서 큰 타격을 입었고, 이 틈을 탄 백인단은 지지자들과 장교를 앞세워 정부의 주요 거점을 장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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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7년 11월 12일, 백인단이 명칭을 '검은 차르단'으로 변경하고 볼셰비키에 맞서기 위해 백군 진영에 합류한다. 당시 백군은 사회혁명당 등의 민주주의 공화파 세력과 콜차크가 이끄는 보수 반동파로 나뉘었으며, 차르단의 합류로 반동파의 세가 확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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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7년 11월 19일, 푸리시케비치가 콜차크 장군을 만나 케렌스키, 사회주의 세력의 타파와 제정복고에 협조해주되 두마를 부활시키겠다는 조건으로 백인단 합류를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하는 일이 벌어진다. 이에 푸리시케비치는 격노해 콜차크를 반역자로 취급했고, 이 일로 두 진영 간의 갈등이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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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7년 11월, 차르단의 주요 거점이던 페트로그라드가 적군의 지배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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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8년 4월 25일, 검은 차르단이 세묘노프 장군과 비밀결사, 그리고 아시아 지역의 체르노소텐치를 이끌고 콜차크의 기지를 기습 공격한다. 콜차크의 부대는 비밀결사와 끈질긴 교전을 벌이지만 한 달에 걸친 싸움 끝에 사기가 완전히 꺾여버렸고, 결국 콜차크를 비롯한 백군은 차르단의 포로가 된다. 하지만 몇 달 뒤 콜차크가 차르단의 최고사령관에 임명되는데, 이 소식을 들은 연합군은 시베리아가 아닌 데니킨이 이끄는 남부 러시아를 지원하기로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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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8년 5월, 시베리아를 맡게 된 세묘노프가 '시베리아 신성 임시정부'를 세우며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하고, 적군이나 볼셰비키에 가담한 공산주의자는 물론 백군 내 민주주의자, 공화파 인사, 입헌군주론자들을 대거 숙청한다. 일부는 숙청을 피하기 위해 극동이나 유럽으로 도망가고, 아예 전향까지 하기도 했다. 한편 핀란드에서는 실제 역사대로 내전이 끝나지만 백군의 분열을 겪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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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8년 6월, 일본의 지원을 받은 세묘노프, 운게른슈테른베르크, 콜차크의 군대가 대대적인 영토 수복을 시작한다. 여기에 푸리시케비치도 시베리아에 들어가 임시정부를 지휘하기 시작해, 백군의 반격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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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8년 7월 17일, 니콜라이 2세를 비롯해 로마노프가의 가족들이 페름에서 처형당한다. 백군이 니콜라이를 구할 것이란 정보를 입수한 적군이 처형을 명령한 것인데, 이 사건으로 로마노프가의 직계가 완전히 단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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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8년 11월, 러시아국이 차르군의 쿠데타로 몰락하고, 푸리시케비치를 지도자로 하는 '''신성 러시아 임시정부'''가 세워진다. 하지만 로마노프가의 직계가 완전히 몰살당하면서 새 황제가 있기 전까지는 황제 없는 군주제를 유지하기로 했고, 푸리시케비치가 행정을, 콜차크가 군사 업무를 맡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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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8년 11월 19일, 데니킨이 이끄는 남러시아 총사령부와 차르군이 차리친을 점령하기 위한 합동 공격을 개시한다. 또 운게른슈테른베르크의 아시아 부대와 체르노소텐치 부대가 만주를 떠나 중앙아시아로 이동해 적군 소탕을 개시하면서, 백군의 우세는 절정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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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9년 2월, 중앙아시아 해방과 차리친 점령을 성공적으로 끝낸 차르군이 적군과 우크라이나에 대한 대규모 공세를 감행한다. 적군은 전열을 다듬으면서 차르군과 최후의 싸움을 준비했고, 차르군은 우크라이나를 점령한 후 하리코프와 차리친, 아르한겔스크를 거점으로 삼아 진격할 것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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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9년 3월, 우크라이나가 백군에 의해 멸망하고, 차르군이 모스크바와 페트로그라드 점령을 위해 공세를 이어간다. 적군은 주요 지역을 방어하며 백군차르군에 맞섰고, 급기야 옴스크가 느슨해진 틈을 타 빠르게 돌파를 시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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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9년 4월, 차르군의 지속적인 공세로 밀린 볼셰비키가 옴스크 점령에 실패하자, 할 수 없이 페트로그라드와 모스크바를 남기고 결사항전을 벌이기 시작한다. 볼셰비키는 패전 시 유럽에 망명하여 지하조직의 형태로 재건할 것을 계획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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