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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r>[[파일:방독면-아이콘352-354.png|52px|가운데]]'''<big>방공호 020</big>'''<br><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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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idth=50%; colspan="1" style="font-size:11pt; background:#101010; color:#ffd801;" |[[방공호 도면 및 전개도|{{글씨 색|red|방공호 도면 및 전개도}}]]<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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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idth=50%; colspan="1" style="font-size:11pt; background:#101010; color:#ffd801;" |[[핵심기관 개요 및 소개|{{글씨 색|red|핵심기관 개요 및 소개}}]]<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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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일:방독면-아이콘BLACKUP352-354.png|15px]]'''방공호 020'''는 핵전쟁<small>([[영어]]:Nuclear Warfare·Nuclear War)</small> 이후 지하 방공호에서 살아가는 세계관이다. 전간기 말에 대두되었던 핵전쟁 위기론 시기에 건설되었지만 막상 핵전쟁 발생 이후에는 기존의 관리인원과 담당자 외에는 누구도 대피하지 못했다. 위치는 경상북도 예천군으로 <ins>방공호 020</ins>라는 명칭은 실제로 20번째 방공호인 것이 아니라, 스무번째 방공호 건설계획안이 확정되면서 지어진 이름이다. 핵심 요인들과 수행 인력 등을 종합하여 약 150명이 최장 10년을 버티도록 설계되었으나, 문이 닫힌 직후 초기의 인원은 불과 85명에 불과<ref>자체 생산시설과 기타 수급을 종합하면 약 17년에서 20년을 견딜 수 있는</ref>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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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사태 이후 약 90년간 단 한차례도 핵이 사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MD시스템은 실효를 거두지 못했고, 예산문제로 핵방공호도 고작 하나만 완성<ref>나머지는 각각 준공 단계와 계획 단계였음</ref>되었다. 방공호 020에서는 원폭의 영향으로 한반도 전체가 파괴되었다고 확인했으므로 이곳은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최후의 정부기관이자 보루라고 할 수 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유사시를 대비해 자체적인 생산능력을 갖췄다는 점에서 통조림에 갇힌 신세까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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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계획과 체계 구성에서 여성은 없었으나 방공호 가동 당시 시설 내부에서 기타적인 업무를 보던 민간인 22명에 의해 여성이 포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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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핵심 시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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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재까지의 기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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