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국: 두 판 사이의 차이

편집 요약 없음
편집 요약 없음
73번째 줄: 73번째 줄:
| 민주주의 지수 = 8.2점, <span style="color: #008000;> '''완전한 민주주의''' <span style="color: #000000;><sup>(2022년)</sup>
| 민주주의 지수 = 8.2점, <span style="color: #008000;> '''완전한 민주주의''' <span style="color: #000000;><sup>(2022년)</sup>
| 행정구역1 명칭 = [[영화국의 행정구역|{{글씨 색|#BC1133|광역행정단체}}]]
| 행정구역1 명칭 = [[영화국의 행정구역|{{글씨 색|#BC1133|광역행정단체}}]]
| 행정구역1 = 1도 4주 11현
| 행정구역1 = 1도 4주 1부 10현
| 행정구역2 명칭 = [[영화국의 행정구역|{{글씨 색|#BC1133|기초행정단체}}]]
| 행정구역2 명칭 = [[영화국의 행정구역|{{글씨 색|#BC1133|기초행정단체}}]]
| 행정구역2 = n시 n구 n정 n향
| 행정구역2 = n시 n구 n정 n향
308번째 줄: 308번째 줄:
==역사==
==역사==
===[[이시즈카 시대]]===
===[[이시즈카 시대]]===
기원전 2000년경 전까지 오늘날 영화국이 위치하게 될 [[영화 제도]]에는 대륙과의 분리로 인류의 이주가 이루어지지 않아 오랫동안 문명이 존재하지 않았다. 허나 기원전 약 2000년대부터 카누를 타고 태평양을 유랑하던 오스트로네시아족의 한 분파가 제도 남부의 [[난카이 군도]]를 시작으로 영화섬에 상륙하게 되는데 이들이 바로 영화국의 [[이시즈카 시대|선사 시대]]를 열게 되는 [[영화 원주민]]이었다.
기원전 2000년경 전까지 오늘날 영화국이 위치하게 될 [[영화 제도]]에는 대륙과의 분리로 인류의 이주가 이루어지지 않아 오랫동안 문명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기원전 약 2000년대부터 카누를 타고 태평양을 유랑하던 오스트로네시아족의 한 분파가 제도 남부의 [[난카이 군도]]를 시작으로 영화섬에 상륙하게 되는데 이들이 바로 영화국의 [[이시즈카 시대|선사 시대]]를 열게 되는 [[영화 원주민]]이었다.
[[파일:아리에 이시즈카 사진.jpg|270px|섬네일|왼쪽|[[아리에주]]에 위치한 이시즈카의 모습]]
[[파일:아리에 이시즈카 사진.jpg|270px|섬네일|왼쪽|[[아리에주]]에 위치한 이시즈카의 모습]]
이후 입도 500년 만에 영화섬의 최북단 지역인 [[시토]] 지방의 [[아이타현]]과 [[에이토부]]까지 다다른 오스트로네시아족계 이주민 세력은 영화 제도 전역으로 퍼져나가 원시적인 수렵·채집 문화을 발전시키고 애니미즘, 토테미즘에 기반한 토속 신앙을 숭배하며 제도 곳곳에 돌을 산처럼 쌓아 올려 만든 무덤 '''이시즈카(石塚)'''를 축조했다. 이시즈카는 규모나 종류 등 여러 면에서 매우 방대하고 다양했기에 영화국의 선사 시대를 대표하는 매우 중요한 유적이었다. 이런 까닭에 역사학계에서는 영화 원주민들이 구축한 이 문명을 이시즈카 문화로 명명하기도 하였다.
이후 입도 500년 만에 영화섬의 최북단 지역인 [[시토]] 지방의 [[아이타현]]과 [[에이토부]]까지 다다른 오스트로네시아족계 이주민 세력은 영화 제도 전역으로 퍼져나가 원시적인 수렵·채집 문화을 발전시키고 애니미즘, 토테미즘에 기반한 토속 신앙을 숭배하며 제도 곳곳에 돌을 산처럼 쌓아 올려 만든 무덤 '''이시즈카(石塚)'''를 축조했다. 이시즈카는 규모나 종류 등 여러 면에서 매우 방대하고 다양했기에 영화국의 선사 시대를 대표하는 매우 중요한 유적이었다. 이런 까닭에 역사학계에서는 영화 원주민들이 구축한 이 문명을 이시즈카 문화로 명명하기도 하였다.
314번째 줄: 314번째 줄:
[[난요]] 지방을 중심으로 발전한 [[이시즈카 시대|이시즈카 문화]]는 [[영화 제도]]에 인류가 유입된 기원전 초창기부터 기원후까지 이어지며 수천년에 걸쳐 [[영화 원주민]]의 생활 양식에 근간을 이루었지만, 섬 바깥의 사람들이 국가를 태동시킬 때까지 이시즈카 문화권은 대륙과의 단절로 문명의 진보가 점차 정체하였고 그로 인해 영화 원주민들은 원시적인 부족 체제 하에서 기나긴 시간을 후진적인 석기 시대에 머물게 되었다.
[[난요]] 지방을 중심으로 발전한 [[이시즈카 시대|이시즈카 문화]]는 [[영화 제도]]에 인류가 유입된 기원전 초창기부터 기원후까지 이어지며 수천년에 걸쳐 [[영화 원주민]]의 생활 양식에 근간을 이루었지만, 섬 바깥의 사람들이 국가를 태동시킬 때까지 이시즈카 문화권은 대륙과의 단절로 문명의 진보가 점차 정체하였고 그로 인해 영화 원주민들은 원시적인 부족 체제 하에서 기나긴 시간을 후진적인 석기 시대에 머물게 되었다.
===[[시로즈카 시대]]===
===[[시로즈카 시대]]===
허나, 시간이 흘러 서기 11세기경에 이르자 선사 문화만을 영위해온 [[영화 제도]]에도 큰 변곡점이 찾아왔다. 헤이안 시대 연간의 정치적·사회적 불안이 닥친 일본에서 영화 제도로 사람들이 이주해온 것이었다. 혼란을 피해 영화섬으로 도래한 이들은 '''야마토인(大和人)'''으로 불리며 농경과 철제 기술 등의 각종 선진 문물을 제도에 전파하고 [[에이토부]]를 거점으로 [[시토]] 지방에 자리잡게 되는데 이러한 야마토인의 도래는 원주민 중심의 이시즈카 문화가 쇠퇴하고 시로즈카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분수령이 됐다.
허나, 시간이 흘러 서기 11세기경에 이르자 선사 문화만을 영위해온 [[영화 제도]]에도 큰 변곡점이 찾아왔다. 헤이안 시대 연간의 정치적·사회적 불안이 닥친 일본에서 영화 제도로 사람들이 이주해온 것이었다. 혼란을 피해 영화섬으로 도래한 이들은 '''야마토인(大和人)'''으로 불리며 농경과 철제 기술 등의 각종 선진 문물을 제도에 전파하고 [[에이토부]]를 거점으로 [[시토]] 지방에 자리잡게 되는데 이러한 야마토인의 도래는 [[영화 원주민|원주민]] 중심의 이시즈카 문화가 쇠퇴하고 [[시로즈카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분수령이 됐다.


본격적인 일본에서의 이주가 시작한 11세기 초중반에야 시토 일대에 정착했던 야마토인들은 도래 이후 불과 200년 만인 13세기 초에 이르러 섬 최남단의 [[고에이현]]까지 진출하며 급속도로 영화섬을 장악하기 시작하였다. 반면에 기존 영화섬의 주인이었던 [[영화 원주민]]들은 도래인들이 창궐시킨 천연두에 의해 인구가 급감하면서 [[난요]] 지방으로 세력권이 급격히 위축되어버렸고 결과 천연두의 여파로 원주민들이 철수한 지역들을 고스란히 야마토인들이 점유함에 따라 시로즈카 시대를 전후하여 야마토인이 [[영화 제도]]의 주류 민족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본격적인 일본에서의 이주가 시작된 11세기 초중반에야 시토 일대에 정착했던 야마토인들은 도래 이후 불과 200년 만인 13세기 초에 이르러 섬 최남단의 [[고메이현]]까지 진출하며 급속도로 영화섬을 장악하기 시작하였다. 반면에 기존 영화섬의 주인이었던 [[영화 원주민]]들은 도래인이 창궐시킨 천연두에 의해 인구가 급감하면서 [[난요]] 지방으로 세력권이 급격히 위축되어버렸고 결과 천연두의 여파로 원주민들이 철수한 지역들을 고스란히 야마토인들이 점유함에 따라 시로즈카 시대를 전후하여 야마토인이 [[영화 제도]]의 주류 민족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이때부터 영화 제도 곳곳에 권력자의 상징으로서 '''시로즈카(城塚)'''라는 마치 성과 같은 규모를 지닌 무덤들이 출현하고 이시즈카 문화 하에서는 볼 수 없었던 발달된 주거 유적과 철제 도구의 흔적이 등장하였다.
야마토인이 영화섬 전역을 영유한 이때부터 시로즈카 시대의 문화 발전이 본격화되어 영화 제도 각지에 권력자의 상징으로서 '''시로즈카(城塚)'''라는 마치 성과 같은 규모를 지닌 무덤들이 출현하고 이시즈카 문화 하에서는 볼 수 없었던 발달된 주거 유적과 철제 도구의 흔적이 등장하였다.
===[[고코쿠 시대]]===
===[[고코쿠 시대]]===
===[[통일 영화국 시대]]===
===[[통일 영화국 시대]]===
343번째 줄: 343번째 줄:
===정당과 선거===
===정당과 선거===
{{영화국 국회의 원내구성}}
{{영화국 국회의 원내구성}}
영화국의 정계는 크게 보수주의 우익 정당인 [[영화민주당]]과 사회주의 좌익 정당인 [[영화사회당]]이 양분하고 있으며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중도 [[자유혁진당]], 기성 정치권을 비판하며 등장한 우익대중주의 성향의 [[영화 퍼스트]]가 제3지대로서 주류 정치권으로 분류된다. 이밖에 강경한 정치개혁을 요구하면서도 이념적으로는 온건한 정당 [[신정 영화]]나 녹색 정치를 공식 이념으로 내세운 [[신당 미도리]], 사회당과는 차별화된 중도좌파 [[사민당]], 명련종에<ref>명련종은 17세기에 승려 메이렌(明蓮, 1599년~1670년)이 영화의 토착 신앙과 불법(仏法)의 가르침을 융합시킴으로써 창시한 신흥종교로 신자수는 약 60만명 정도다.</ref> 바탕을 둔 중도보수 [[여명당 (영화)|여명당]] 같은 군소 정당들도 어느정도 정치적 발언권을 지닌 채 존재한다.
영화국의 정계는 크게 보수주의 우익 정당으로서 1936년 결당 이래 2023년 현재까지 87년간 정부를 구성해온 [[영화민주당]]과 1950년대부터 제1야당 지위를 공고화한 사회주의 좌익 정당인 [[영화사회당]]이 양분하고 있으며 사회당 이전에 영화국의 제1야당 자리를 유지했었던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중도 [[자유혁진당]], 기성 정치권을 비판하며 등장한 우익대중주의 성향의 [[영화 퍼스트]]가 제3지대로서 주류 정치권으로 분류된다. 이밖에 강경한 정치개혁을 요구하면서도 이념적으로는 온건한 [[신정 영화]]나 녹색 정치를 공식 이념으로 내세운 [[신당 미도리]], 사회당과는 차별화된 중도좌파 [[사민당]], 명련종에<ref>명련종은 17세기에 승려 메이렌(明蓮, 1599년~1670년)이 영화의 토착 신앙과 불법(仏法)의 가르침을 융합시킴으로써 창시한 신흥종교로 신자수는 약 60만명 정도다.</ref> 바탕을 둔 중도보수 [[여명당 (영화)|여명당]] 같은 군소 정당들도 어느정도 정치적 발언권을 지닌 채 존재한다.
 
{{영화국의 주요 선거}}
영화의 선거 제도는 크게 중앙의 [[영화국 국회|국회]]를 구성하는 국정선거와 지방의 [[영화국의 행정구역|자치행정단체]]를 조직하는 지방선거로 구분된다. 국회 양원의원과 자치행정단체장 등의 각 선출 대상은 모두 직접 선거로 뽑히고 만 18세 이상의 영화 국민이 평등하게 투표를 할 수 있는 보통선거제가 시행 중이며 피선거권 또한 만 18세 이상 영화 국민이라면 선거권과 마찬가지로 누구든지 부여된다. 정상적인 임기 만료가 이루어진다는 전제 하에 [[영화국 국회의원 선거|국회의원 선거]]는 [[영화국 참의원|참의원의원]]이 3년, [[영화국 민의원|민의원의원]]이 4년을<ref>민의원의원 총선거는 [[영화국 내각총리대신|총리]]가 민의원을 해산하여 조기 총선을 치룰 때가 빈번한 탓에 4년 주기를 꽉 채워서 시행하는 경우를 보기 힘들다. 지금까지 있었던 34번의 민의원 선거 중 3분의 1을 밑도는 9번만이 통상적으로 치러진 임기 만료에 따른 총선거였다.</ref> 주기로 시행되고 지방선거 같은 경우에는 전국의 모든 자치행정단체가 [[전국통합지방선거]]에 병합돼 4년마다 도주부현지사 선거와 자치의회 선거를 일괄로 치른다.
===사법===
===사법===
==경제==
==경제==

2023년 7월 25일 (화) 01:02 판

영화 관련 틀
[ 펼치기 · 접기 ]
동아시아의 국가
[ 펼치기 · 접기 ]
베트남[1] 대만 대한민국
몽골[2] 일본 영화국[3]
중국[4]
  1. 한자문화권 국가로 분류되는 동남아시아 국가
  2. 중앙아시아, 북아시아의 일부로 분류되기도 함
  3. 한자문화권 국가로 분류되는 오세아니아 국가
  4. 영토의 일부가 중앙아시아, 남아시아, 동남아시아로 분류되기도 함


영화국의 역사
[ 펼치기 · 접기 ]

G7
[ 펼치기 · 접기 ]
참가국
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영화국 캐나다 유럽연합(비공식)

G20
[ 펼치기 · 접기 ]
미국 중국 독일 영국
인도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
영화국 캐나다 러시아 호주
브라질 멕시코 인도네시아 사우디아라비아
튀르키예 아르헨티나 남아프리카 공화국 유럽 연합

영화국
永火国 | Kingdom of Eika
국기 국장
明るい火が天地を照らす
밝은 불빛이 온 세상을 비추리라
상징
국가 영화가
국조
호반새
국화
오얏꽃
역사
[ 펼치기 · 접기 ]
지리
[ 펼치기 · 접기 ]
수도
가쿄도
최대 도시
가쿄도
면적
230,958㎢
내수면 비율
1%
인문환경
[ 펼치기 · 접기 ]
인구
총 인구
47,508,050명
밀도
205.6명/km2
민족 구성
영화인 94%
영화 원주민 3%
기타 3%
출산율
1.46명
기대 수명
81세
공용어
영화어(사실상)
지역어
영화 제어
공용 문자
한자(영화 표준상용정자), 가나 문자
종교
국교
국교 없음(신앙의 자유)
분포
불교 32%
기독교 29%
영화 신토 20%
기타 및 무종교 19%
군대
영화국 국군
하위 행정구역
[ 펼치기 · 접기 ]
광역행정단체
1도 4주 1부 10현
기초행정단체
n시 n구 n정 n향
정치
[ 펼치기 · 접기 ]
정치 체제
입헌군주제, 자유민주주의, 의원내각제, 다당제, 양원제, 단일국가
민주주의 지수
8.2점, 완전한 민주주의 (2022년)
국가 원수 (화주)
히노쿠니 미치요리
정부
요인
내각총리대신
아이자와 시노부
참의원의장
카마도 이치로
민의원의장
이타가와 에이코
대심원장
가네하라 메이슈
입법부
영화국 국회(·하원)
여당
영화민주당
경제
[ 펼치기 · 접기 ]
경제 체제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체제
GDP
(명목)
전체 GDP
$2,135,977,052,680
1인당 GDP
$44,960
무역
수입
$6,756억
수출
$7,114억
예산
세입
$6,409억
세출
$6,824억
외환 보유고
$3,870억
신용 등급
무디스 Aa2
S&P AA
Fitch AA-
화폐
공식 화폐
영화 엔
ISO 4217
EKY
단위
[ 펼치기 · 접기 ]
법정 연호
슈에이(朱榮)
시간대
UTC +9 (영화 표준시)
도량형
SI 단위
ccTLD
.ek
국가 코드
333, EIK, EK
전화 코드
+83
위치

개요

영화국(永火国), 약칭 영화(永火)는 오세아니아의[1] 영화 제도에 위치한 입헌군주제 국가이다.

영화국은 역사적으로 일본인 계통의 이주민들이 수립한 봉건제 군주정을 오랫동안 유지하다가 미국의 보호국이 된 뒤 점진적으로 정치 제도를 개혁해 지금은 의회제 민주주의를 토대로 한 입헌군주국으로 자리잡았다. 양원제를 채택 중인 국회에서 행정부 수반에 해당하는 내각총리대신을 선출하는 전형적인 의원내각제 국가이며 영화국의 군주인 화주는 명목상 국가원수로서 형식적인 권한만을 행사한다. 현재 영화국의 화주는 히노쿠니 미치요리가 재위 중에 있고 내각총리대신은 아이자와 시노부영화민주당의 당수로서 단독정부를 구성해 재임하고 있다.

1946년에 미국으로부터 주권을 회복한 직후, 영화국은 냉전 시기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가 공산화된 상태일 때 자유 진영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비약적인 경제 성장을 이룩하였다. 현대에 이르러 영화는 세계 10위권 안에 드는 경제대국이자 다수의 국제기구가 공인한 선진국이며 외교적으로 봤을 때도 G20의 공식 참가국, G7 회원국 중 유일한 아시아권 국가, 영미상호안보조약을 통한 미국의 주요 군사동맹국임과 동시에 준수한 국방력과 소프트 파워를 지닌 지역강국이라 볼 수 있다.

상징

국호

영화국이라는 명칭은 영화국 헌법에서 규정된 공식 국호로 보통 이를 줄여서 영화라 부르는데 이는 과거 영화국을 창건한 태강왕 하쿠코가 해의 신(日の神)의 축복을 받았다며 나라를 건국했을 때, 그 신을 기리고자 나라의 이름을 영화(永火)로 지은 데에서 기원한 이름이다.

영화국의 국호를 영화어나 일본어로 읽을 시에는 그 한자를 음독한 에이카(えいか)로 독음하는게 원칙이다. 영화의 한자를 훈독해서 부르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영화국의 영문 국호 역시 이를 음차하여 Eika로 일컬어지고 대다수 국가는 영어처럼 영화의 음독인 에이카를 그대로 따라 부른다.

한편으로 영화라는 호칭 이외에도 영화국을 가리키는 비공식적인 이름들은 꽤 있다. 예를 들어 불의 나라라는 뜻의 히노쿠니(火の国)라던지[2] 엔코쿠(炎国), 해동화국(海東火国), 화본국(火本国) 같은 불을 매개로 한 바리에이션들이 역사적으로 영화국을 의미하는 별명들이었다.

국기

영화국의 공식 국기
단리백선양홍기 | 단리기
丹李白線両紅旗 | 丹李旗
제작 시기 1858년
제정 시기 영화국 조정(1858년)[3]
재영화 미국 고등판무관부(1906년)
영화 자치령 자치정부(1935년)
영화국 정부(1946년)
지위 공식 국기
근거 법령 영화국 헌법공식 규범
영화국 국기·국가법세부 규범
제작자 정헌왕 아사타케
비율 3 : 2
유니코드 EK

영화국의 국기, 단리백선양홍기(丹李白線両紅旗, 단리하쿠센료코키)는 붉은 바탕을 가운데 백색 선이 양단하며 좌측 중앙의 적색 원에 영화국 왕실의 상징인 오얏꽃 문양이 하얗게 새겨진 깃발이다. 여기서 붉은 바탕은 번영과 풍요를 기원하는 만세의 불꽃, 하얀 직선은 올곧게 이어질 무결한 영화국의 미래, 오얏꽃 문장은 영화국을 이끄는 히노쿠니 왕실을 상징한다. 문양 부분이 약간 오른쪽으로 기울어진 이유는 해가 뜨는 동쪽을 가리키기 위함이라 한다.

구 영화국의 상선기

단리기는 화주 정헌왕 아사타케가 직접 창안한 도안에 바탕을 두어 제작된 것으로 깃발이 마련된 초창기엔 오얏꽃 무늬가 현재처럼 90도 각도로 회전돼 있지 않았고 가로의 백색 선이 좌측에 치우쳐 세로로 깃발을 양분하는 차이점이 있었다. 또한 원래 단리기는 국기로 쓰일 목적으로 만들어진게 아니라 19세기에 문호개방을 단행한 영화국의 상선기로 이용하려 제정된 것이었다.

그러나 1906년, 미국령 영화국 정부가 출범하자 단리기는 기존에 국기로 쓰이던 왕실기를[4] 대신해 보호국 정부의 상징으로 지위가 급격히 격상되었으며 이후 영화국이 미국의 보호령에서 자치령으로 승격한 뒤에도 영화를 대표하는 상징으로 이어졌다. 훗날 1946년 주권 회복이 이루어졌을 때도 디자인만 현재와 같은 모양새로 약간 바뀐 채 독립국가 영화국의 공식 국기로서 계승되었다. 법적으로는 영화국 헌법에 그 존재가 대강 명기돼 있고 1947년에 별도로 성립된 국기·국가법에서 국기의 색감이나 규격 등 상세한 사항을 정한다.

국가

영화국의 공식 국가
영화가
永火歌
지위 법률상 국가
채택 시기 영화국 조정(1905년)
영화국 정부(1946년)
근거 법령 영화국 국기·국가법
작사자 히노쿠니 아야코
작곡자 프란츠 에케르트
구세모토 우타(편곡)
언어 영화어
링크 유튜브 링크

영화국의 국가인 영화가(永火歌)는 독일인 작곡가 프란츠 에케르트가 작곡하여 영화인 음악가 구세모토 우타에 의해 편곡된 노래로 가사는 히노쿠니 아야코 공주가 신원 미상의 작가를 포함한 여러 시인들이 공동 편찬했던 시집 영가만요집(永歌萬要集)에서 내용을 따와 작사하였다.

근대 아시아 국가들의 국가 제정 움직임에 영향을 받은 조정 측의 의뢰로 1903년부터 궁정 아악단과 에케르트의 합작이 이루어져 1905년 여름에 노래가 완성되었다. 직후 시범 연주에서 화주 인성왕 무네하루의 긍정적인 평가를 얻어 같은 해에 발령된 조칙에 따라 영화의 공식 국가가 되었으나 이로부터 1년 만에 제2차 아리에 조약으로 인해 영화국이 미국의 보호령으로 전락당하는 비운을 겪었었다. 1946년 주권 회복과 함께 영화국이 정상국가로 복귀하면서 영화가 또한 공공연히 그 존재가 격하당해온 외치 시기를[5] 벗어나 국가의 지위를 완전히 회복했다.

가사 전반이 영화국의 건국 과정과 깊이 연관된 '불'을 찬양하는 내용을 주제로 담았다. 불의 밝음과 영원함을 찬미하는 구절이 곡의 처음과 끝에 배치돼 수미상관을 이루며, 불을 예찬하면서도 그 예찬의 대상인 불과 영화국을 연결시킴으로써 간접적으로 자국을 찬양하는 뜻으로 가사가 해석될 여지를 남겼다.[6]

음악의 분위기는 다소 어두운 편이지만 구카쿠(宮楽)에 기반한 영화 전통의 궁중 음악 선율과 서양적 색채의 곡조가 적절한 조화를 이루어 듣는 느낌은 상당히 좋다. 이는 에케르트가 유럽식 악풍을 베이스로 작곡했던 기존 영화가의 선율을 후일 주권 회복을 앞두고 1946년에 수석 궁정음악가 구세모토 우타가 편곡을 하는 과정에서 영화의 전통 음계에 맞게 수정을 가함에 따라 만들어진 부분이다.

법정 국가로서 왕실 행사, 전승절을 비롯한 국경일 행사, 외교 행사 등 주요 국가 행사에는 의무적으로 영화가의 제창이 실시되며 학교 행사 같은 각종 민간 행사에서도 제창을 권고하는 법제가 있다. 허나 국가 제창 권고를 거부했다 하여 행사 주체 측에 특별한 법적 처벌이 부과되지는 않는다.

가사


영화가
永火歌
明るい空の火は永遠で
아카루이 소라노 히와 에이엔데
환한 하늘의 불빛은 영원하며
万邦を守る火は高潔で
반포오 마모루 히와 코케츠데
만방을 수호하는 불빛은 고결하고
大地を堅固に照らす火は
다이치오 켄고니 테라스 히와
대지를 견고히 비추는 불빛은
千代に栄えるわれらと一緒だ
치요니 사카에루 와레라토 잇쇼다
천대에 번성할 우리와 같다
火は万歳にわたって
히와 이치만사이니 와탓테
불빛은 만세토록
変わらず世界を助けるから
카와라즈 세카이오 타스케루카라
변함없이 세계를 도우리니
天地を照らす火は無限に明るい
텐치오 테라스 히와 무겐니 아카루이
천지를 비추는 불빛은 무한히 환하다

국장

영화국의 비공식 국장
이화문
李花紋
이명 오엽기표이화문(五葉基標李花紋)
이화어문(李花御紋)
이화문장(李花紋章)
채택 시기 영화국 왕실(1907년)
지위 법률상 왕실 문장
관습상 국장
근거 법령 영화국 왕실전범왕실 문장 규정
제작자 태강왕 하쿠코

오얏꽃 무늬를 문양화한 이화문(李花紋)은 영화국의 관습상 국장이자 영화국 왕실의 공식 문장으로 다방면에서 영화를 상징하여 부착된다.

대표적으로는 각국의 국장을 표시해야 한다는 영화국의 여권 표지에 이 오얏꿏 문장이 들어가 있고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최고기관들의 로고가 이화문으로 되어 있다.[7] 게다가 군·경의 계급장과 훈장 및 포장 또한 오얏꽃 문양이 쓰여진다. 또 영화국의 공식 국기인 단리기에도 이화문이 존재한다. 사실상 뚜렷한 성문화만 안 되어 있을 뿐이지 이화문이 왕실의 상징인 것을 넘어 실질적으로 영화국이란 한 나라를 대변하는 국장의 기능을 수행 중인 것을 알 수 있다.

이화문이 역사에 드러난 최초의 시기는 영화국이 건국된 14세기로, 왕실의 고문헌을 통해 이화문의 사용 흔적이 나타난다. 영화국이 건국된 초기부터 영화국 왕실은 붉은 자두 과실이 자라나는 자두나무를 신성시 여겼으며 그 자두나무에서 생장한 오얏꽃을 국가와 왕실, 특히 왕실의 상징으로 삼아 국정 사무, 예술, 건축 등 여러 방면에서 두루 이용했다. 이렇게 약 600년 간 이화문은 영화국의 국장 겸 왕실 문장의 기능을 명확히 수행하였고 대다수 국민들도 오얏꽃을 사실상 국화로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1907년에 미 고등판무관부의 주도로 왕실전범이 제정되는 과정에서 이화문을 공식적인 왕실 문장으로 규정하는 조항이 전범에 삽입되었지만, 왕실의 영향력을 견제하던 고등판무관부의 방침 때문에 이화문이 국장이 되거나 오얏꽃을 국화로 지정하는 법령은 검토되지 않은 채 지금까지도 관습상 국장으로서만 지위가 유지되고 있다.

역사

이시즈카 시대

기원전 2000년경 전까지 오늘날 영화국이 위치하게 될 영화 제도에는 대륙과의 분리로 인류의 이주가 이루어지지 않아 오랫동안 문명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기원전 약 2000년대부터 카누를 타고 태평양을 유랑하던 오스트로네시아족의 한 분파가 제도 남부의 난카이 군도를 시작으로 영화섬에 상륙하게 되는데 이들이 바로 영화국의 선사 시대를 열게 되는 영화 원주민이었다.

아리에주에 위치한 이시즈카의 모습

이후 입도 500년 만에 영화섬의 최북단 지역인 시토 지방의 아이타현에이토부까지 다다른 오스트로네시아족계 이주민 세력은 영화 제도 전역으로 퍼져나가 원시적인 수렵·채집 문화을 발전시키고 애니미즘, 토테미즘에 기반한 토속 신앙을 숭배하며 제도 곳곳에 돌을 산처럼 쌓아 올려 만든 무덤 이시즈카(石塚)를 축조했다. 이시즈카는 규모나 종류 등 여러 면에서 매우 방대하고 다양했기에 영화국의 선사 시대를 대표하는 매우 중요한 유적이었다. 이런 까닭에 역사학계에서는 영화 원주민들이 구축한 이 문명을 이시즈카 문화로 명명하기도 하였다.

난요 지방을 중심으로 발전한 이시즈카 문화영화 제도에 인류가 유입된 기원전 초창기부터 기원후까지 이어지며 수천년에 걸쳐 영화 원주민의 생활 양식에 근간을 이루었지만, 섬 바깥의 사람들이 국가를 태동시킬 때까지 이시즈카 문화권은 대륙과의 단절로 문명의 진보가 점차 정체하였고 그로 인해 영화 원주민들은 원시적인 부족 체제 하에서 기나긴 시간을 후진적인 석기 시대에 머물게 되었다.

시로즈카 시대

허나, 시간이 흘러 서기 11세기경에 이르자 선사 문화만을 영위해온 영화 제도에도 큰 변곡점이 찾아왔다. 헤이안 시대 연간의 정치적·사회적 불안이 닥친 일본에서 영화 제도로 사람들이 이주해온 것이었다. 혼란을 피해 영화섬으로 도래한 이들은 야마토인(大和人)으로 불리며 농경과 철제 기술 등의 각종 선진 문물을 제도에 전파하고 에이토부를 거점으로 시토 지방에 자리잡게 되는데 이러한 야마토인의 도래는 원주민 중심의 이시즈카 문화가 쇠퇴하고 시로즈카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분수령이 됐다.

본격적인 일본에서의 이주가 시작된 11세기 초중반에야 시토 일대에 정착했던 야마토인들은 도래 이후 불과 200년 만인 13세기 초에 이르러 섬 최남단의 고메이현까지 진출하며 급속도로 영화섬을 장악하기 시작하였다. 반면에 기존 영화섬의 주인이었던 영화 원주민들은 도래인이 창궐시킨 천연두에 의해 인구가 급감하면서 난요 지방으로 세력권이 급격히 위축되어버렸고 그 결과 천연두의 여파로 원주민들이 철수한 지역들을 고스란히 야마토인들이 점유함에 따라 시로즈카 시대를 전후하여 야마토인이 영화 제도의 주류 민족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야마토인이 영화섬 전역을 영유한 이때부터 시로즈카 시대의 문화 발전이 본격화되어 영화 제도 각지에 권력자의 상징으로서 시로즈카(城塚)라는 마치 성과 같은 규모를 지닌 무덤들이 출현하고 이시즈카 문화 하에서는 볼 수 없었던 발달된 주거 유적과 철제 도구의 흔적이 등장하였다.

고코쿠 시대

통일 영화국 시대

개항기

외치 시대

미정시기

일치시기

현대

지리

영화국은 일본 열도의 이즈 제도 이남에 자리하고 있는 영화 제도 전역을 영유하며 제도의 총면적은 230,958㎢으로,

인문환경

인구

민족

언어

종교

공공서비스

행정구역

주요 도시권

정치

화주


화주
[ 펼치기 · 접기 ]

내각


영화국 내각총리대신
[ 펼치기 · 접기 ]

정당과 선거

영화국 국회
원내 구성
[ 펼치기 · 접기 ]
아이자와 3기 내각
(2021 ~ )
여당

영화민주당
90석 · 218석
야당

영화사회당
61석 · 110석

자유혁진당
24석 · 42석

영화 퍼스트
10석 · 10석

신정 영화
4석 · 4석

신당 미도리
2석 · 3석

사민당
2석 · 3석

여명당
2석 · 2석
무소속 4석 · 6석
재적 199석 · 398석공석 1석 · 2석
왼쪽은 참의원(상원) 의석 수, 오른쪽은 민의원(하원) 의석 수

영화국의 정계는 크게 보수주의 우익 정당으로서 1936년 결당 이래 2023년 현재까지 87년간 정부를 구성해온 영화민주당과 1950년대부터 제1야당 지위를 공고화한 사회주의 좌익 정당인 영화사회당이 양분하고 있으며 사회당 이전에 영화국의 제1야당 자리를 유지했었던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중도 자유혁진당, 기성 정치권을 비판하며 등장한 우익대중주의 성향의 영화 퍼스트가 제3지대로서 주류 정치권으로 분류된다. 이밖에 강경한 정치개혁을 요구하면서도 이념적으로는 온건한 신정 영화나 녹색 정치를 공식 이념으로 내세운 신당 미도리, 사회당과는 차별화된 중도좌파 사민당, 명련종에[8] 바탕을 둔 중도보수 여명당 같은 군소 정당들도 어느정도 정치적 발언권을 지닌 채 존재한다.

영화국의 주요 선거
[ 펼치기 · 접기 ]
종류 최근 선거 다음 선거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 29회
2023년 7월 5일
30회
2026년 7월 1일
[ 역대 선거 펼치기·접기 ]
··· 29회 · 30회
민의원 의원 총선거 28회
2021년 10월 24일
29회
2025년 이내
[ 역대 선거 펼치기·접기 ]
1회 · 2회 · 3회 · 4회 · 5회 · 6회 · 7회 · 8회 · 9회 · 10회 · 11회 · 12회 · 13회 · 14회 · 15회 · 16회 · 17회 · 18회 · 19회 · 20회 · 21회 · 22회 · 23회 · 24회 · 25회 · 26회 · 27회 · 28회 · 29회
전국통합지방선거 19회
2022년 8월 3일
20회
2026년 8월 5일
[ 역대 선거 펼치기·접기 ]
··· 19회 · 20회
중대공직 보궐선거 2023년
2023년 4월 26일 · 10월 25일
2024년
2024년 4월 24일 · 10월 30일
[ 역대 선거 펼치기·접기 ]
··· 2023년 · 2024년

영화의 선거 제도는 크게 중앙의 국회를 구성하는 국정선거와 지방의 자치행정단체를 조직하는 지방선거로 구분된다. 국회 양원의원과 자치행정단체장 등의 각 선출 대상은 모두 직접 선거로 뽑히고 만 18세 이상의 영화 국민이 평등하게 투표를 할 수 있는 보통선거제가 시행 중이며 피선거권 또한 만 18세 이상 영화 국민이라면 선거권과 마찬가지로 누구든지 부여된다. 정상적인 임기 만료가 이루어진다는 전제 하에 국회의원 선거참의원의원이 3년, 민의원의원이 4년을[9] 주기로 시행되고 지방선거 같은 경우에는 전국의 모든 자치행정단체가 전국통합지방선거에 병합돼 4년마다 도주부현지사 선거와 자치의회 선거를 일괄로 치른다.

사법

경제

사회

문화

군사

외교

  1. 지리적으로는 오세아니아 지역에 위치하지만 문화권 자체는 일본의 영향으로 동아시아 쪽에 훨씬 가까운 편이다.
  2. 이 명칭은 영화국 왕실국성이기도 하다.
  3. 상선기로서 공포된 연도
  4. 왕실기는 흰색 바탕의 정중앙에 황색 또는 적색으로 칠해진 오얏꽃 문장이 위치한 깃발로 영화국 조정이 문호개방을 전후하여 본격화된 외국과의 외교 활동에 쓰일 국기로서 이 왕실기를 사용했었다가, 현재는 단리기에게 국기의 자리를 내주고 왕실을 상징하는 공식 깃발로만 남아 있다.
  5. 일본 치하에서는 아예 영화가가 국가의 지위를 박탈당했었고 미국의 보호를 받던 시기에도 고등판무관부 측이 새롭게 도입한 섬의 노래(島の歌)라는 곡과 미국의 국가 'The Star-Spangled Banner'가 공식 행사에서 영화가에 비해 더 자주 제창되는 차등 대우가 있었다.
  6. 다만, 네번째 구절의 잇쇼다(一緒だ)를 '같다'가 아닌 '함께 하다'로 해석할 경우엔 이런 의미는 다소 누그러지고 불꽃을 찬송하는 이미지가 강해진다. 한데 국기·국가법에도 정확한 해석이 명시돼 있지 않아 어느 쪽으로 해석을 해야 하는지 학자마다 의견이 공분하는데 대중적인 해석은 전자인 편이다.
  7. 한데 내각에서는 단풍나무 문양을 활용한 영화국 정부상징을, 국회는 의사당 건물을 본딴 국회 미디어 마크, 대심원은 정의의 여신 디케를 형상화한 문장을 더 애용하는 편이다.
  8. 명련종은 17세기에 승려 메이렌(明蓮, 1599년~1670년)이 영화의 토착 신앙과 불법(仏法)의 가르침을 융합시킴으로써 창시한 신흥종교로 신자수는 약 60만명 정도다.
  9. 민의원의원 총선거는 총리가 민의원을 해산하여 조기 총선을 치룰 때가 빈번한 탓에 4년 주기를 꽉 채워서 시행하는 경우를 보기 힘들다. 지금까지 있었던 34번의 민의원 선거 중 3분의 1을 밑도는 9번만이 통상적으로 치러진 임기 만료에 따른 총선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