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Communist 1968):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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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관 논란 ====
==== 정치관 논란 ====
이정희, 경필석 등 조선사회당 당내 좌파들을 싸잡아 공산주의자라고 비난해 큰 논란이 되었다. 당내 대변인 이정희는 시대가 바뀌었음에도 매카시주의는 여전하다며 오세훈을 비판했다. 또, 오세훈은 종종 진영논리에 함몰되어있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정희, 경필석 등 조선사회당 당내 좌파들을 싸잡아 공산주의자라고 비난해 큰 논란이 되었다. 당내 대변인 이정희는 시대가 바뀌었음에도 매카시주의는 여전하다며 오세훈을 비판했다. 또, 오세훈은 종종 진영논리에 함몰되어있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 같이보기 ==
== 역대 선거 결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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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이 보기 ==
{{역대 조선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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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9일 (토) 15:41 판

오세훈
吳世勳
조선의 제13대 총통
재임기간
2015년 2월 1일 ~ 2019년 2월 1일
전임: 노무현(제12대)
후임: 반기문(제14대)
한양광역시의 민선 6기 시장
재임기간
2006년 7월 1일 ~ 2010년 7월 1일
전임: 이은재(제5대)
후임: 박원순(제7,8,9,10대)
신상 정보
국적
조선민주국 조선민주국
출생일
1961년 1월 4일 (61세)
출생지
경기도 용산군 모현읍
정당
자유당
종교
천주교 (세례명:스테파노)

오세훈(吳世勳)은 조선민주국의 전 총통, 정치인이다.

생애

1961년 1월 4일 용인군에서 태어났다. 중동중학교와 대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에 들어갔다가 고려대학교 법학과로 편입학했다. 사법시험에 붙은 뒤에 국군기무사령부에서 학사장교로 병역을 마치고 중위로 전역했다. 그 후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상법 전공으로 법학석사 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숙명여자대학교 법학과에서 겸임교수로 강의하였고, 영국 예일대학교 로스쿨에 방문학자로 있다가 귀국하여 민사소송법 전공으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993년 일조권 법리공방에서 아파트 주민들의 편을 들어 13억원의 보상금을 따내는데 성공해, 전국적으로 환경전문 변호사라고 유명해졌다. 이 일로 손석희와 인터뷰할 기회를 가졌는데, 한 PD가 독자 프로그램을 만들자고 해서 그 요청에 수락했다. 이후 방송 능력을 인정받아 SBS 그것이 알고싶다의 진행을 담당하게 되었다. 방송을 통한 인지도를 통해 2003년 일국당의 정치 입문 제의를 받았다.

정치 경력

한양광역시장

2006년 일국당에 의해 전략공천되어 한양광역시장의 자리에 출마하게 되었다. 그는 약 43.66%를 득표해 43.21%를 득표한 신민당의 손학규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45세의 젊은 나이에 당선된 그는 한양의 미관을 살리겠다는 명목으로 디자인 한양이라는 정책을 발표했다. 이 정책은 유고슬라비아 티라나 시장 에디 라마의 티라나 미화 사업에서 영향을 받았다. 디자인 한양 정책의 일환으로 1,2,3,4호선 전동차 재도색, 지하철역 미화 사업, 낙후 지역 재개발 등을 진행하였다. 2009년 초등학교 무상급식 철폐를 주장하였으나 실패해 지지율이 휘청거려, 그 책임을 지고 2010년 지방선거에서 불출마를 선언했다.

총통

당내 평판 자체는 좋았기에 2010년 총통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끝내 낙마했다. 2014년 제 13대 조선 총통 선거에서 47.26%를 득표해 문재인 후보를 누르고 총통에 당선되었다. 그는 전국단위의 재개발을 추진해 평양과 개성, 한양을 잇는 한반도 대운하 기획과, 개성의 전면 산업도시화, 이북지역의 인프라 집중 등을 시행했다. 그는 노무현 정부가 지역 분권 정책의 일환으로 실시한 함흥 수도이전을 추진하였으나, 수도권 유권자들의 반발로 큰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2018년 총통 선거 불출마를 선언했고, 이후 정계를 은퇴 하였다.

정계 은퇴 이후

오세훈은 정계 은퇴 이후 법학 전문 강연과 토론회 출연 등 여러 활동을 하고있다. 2020년 조선 정치위기때는 이민영, 유승민과 함께 반기문 대통령을 비판한 몇 안되는 인사였다.

평가

긍정적 평가

권위주의 청산

그는 과거 독재정권때 사용되던 명칭인 총통을 폐지하고 명칭을 대통령으로 바꿨다. 또 최재위와 비변사의 권한을 약화시키려고 시도하였으나, 비변사의 완강한 반대로 실패하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의 정치 개혁안을 계승해 단계별로 지방 자치제와 선거제도를 수정해 소수정당을 배려하는 정책을 폈다.

이북지역 개발 추진

그동안 소외되어왔던 함경북도, 함경남도, 평안북도 지역을 대거 개발하고 행정구역을 개편해 권한을 키웠다. 또 노무현 정부가 2020년까지 추진하기로 되어있었던 조선민주국 선거제, 지방개편안을 수정해 이북지역을 배려하려하기도 했다. 이후 반기문 정부가 오세훈과는 정 반대의 행보를 보인것과는 대조되는 일이다.

부정적 평가

토목공사로 인한 재정 낭비

디자인 한양 정책은 재정 낭비라는 비판을 받았으며, 특히 공사만 해놓고 사용되지 않는 경인 아라뱃길, 새빛둥둥섬 등의 실태가 밝혀졌을때 크게 비판을 받았다. 그가 시장으로 지낼때 한양시의 재정은 전국에서 가장 부실했었다. 또 총통으로 재임했을때 추진했던 한반도 대운하 정책은 국내외로 환경파괴에 돈낭비라며 엄청난 비판을 받았다.

무상급식 철폐 주장

2009년 그는 무상급식 철폐를 주장하였으나, 실제 여론조사 결과 70% 이상의 시민이 한양시 무상급식 철폐를 반대하는것으로도 드러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주민투표를 강행시켜 시민들의 원성을 샀다.

정치관 논란

이정희, 경필석 등 조선사회당 당내 좌파들을 싸잡아 공산주의자라고 비난해 큰 논란이 되었다. 당내 대변인 이정희는 시대가 바뀌었음에도 매카시주의는 여전하다며 오세훈을 비판했다. 또, 오세훈은 종종 진영논리에 함몰되어있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역대 선거 결과

연도명 선거 소속 정당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06년 서울시장선거 일국당 43.66% 당선 1선
2010년 총통 선거 자유조선당 39.63% 낙선
2014년 총통 선거 자유조선당 47.26% 당선 1선

같이 보기

역대 조선민주국 대통령
2022년 기준
1대 2대 3대 4대 5대
이승만 이기붕 박정희
6대 7대 8대 9대 10대
박정희 김대중 김영삼 이회창
11대 12대 13대 14대 15대
노무현 오세훈 반기문 노웅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