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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제국과 발칸 연맹의 발족===
 
===오스트리아 제국과 발칸 연맹의 발족===
 
1804년 나폴레옹의 프랑스 제국에 대항하여 프란츠 1세는 오스트리아 제국을 건설하였다. 나폴레옹과의 전쟁에서 패배 후 프랑스 제국에 굴복하였으나, 1813년 라이프치히 전투에서 프랑스 제국을 상대로 승리를 거머쥐고 프랑스 군을 독일 지역에서 몰아내었다. 1814년 파리를 점령하여 나폴레옹 전쟁을 끝맺은 후에는 '빈 회의'를 이끌어 영토를 회복하고 입지를 굳건히 했다. 이 무렵, 발칸 반도에서는 민족주의와 자유주의가 대두되기 시작하였고, 이에 따라 그리스, 불가리아, 세르비아 등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 하에 있던 발칸 반도의 위성국들이 독립 전쟁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1821년 발발한 그리스의 독립 전쟁을 필두로 대대적인 반란이 일어났고, 오스트리아 제국은 발칸 반도에서의 입지를 굳건히 하기 위하여 오스만 투르크와의 전쟁을 일으킨다. 하인리히가 지휘하는 오스트리아 군은 보스니아 지방에서 오스만 투르크 군과 첫 교전, 승리를 거두었으며, 1825년에는 세르비아를, 1827년에는 그리스를, 1830년에는 불가리아를 해방시켰다. 이 전쟁을 [['발칸 해방 전쟁']] 혹은 [['오스트리아-오스만 전쟁']] 으로 일컫는다. 이를 통해 오스트리아는 발칸 반도에서 세를 확장하였으나, 보수-반동적인 빈 체제 하에서 탄압받던 국내의 자유주의자, 민족주의자들이 오스트리아 제국을 상대로 독립을 요구한다. 이에, 페르디난트 1세는 제국 의회를 설립, 여러 민족의 대표자가 의원이 되어 황제권을 견제할 수 있도록 양보했고, 자치권을 부여하는 것으로 의회와 타협을 이루어 혼란을 넘길 수 있었다. 오스트리아는 국내의 어수선한 상황을 해결한 뒤, 발칸 반도에 발칸 연맹을 세웠고, 해방 전쟁을 통해 독립한 국가들의 군사 동맹 기구로 기능하도록 했다. 이에 영국과 러시아 등이 반발하였으나, 오스트리아는 해외 식민지 확장 포기 및 부동항 조차지 제공 등으로 무마했다.  
 
1804년 나폴레옹의 프랑스 제국에 대항하여 프란츠 1세는 오스트리아 제국을 건설하였다. 나폴레옹과의 전쟁에서 패배 후 프랑스 제국에 굴복하였으나, 1813년 라이프치히 전투에서 프랑스 제국을 상대로 승리를 거머쥐고 프랑스 군을 독일 지역에서 몰아내었다. 1814년 파리를 점령하여 나폴레옹 전쟁을 끝맺은 후에는 '빈 회의'를 이끌어 영토를 회복하고 입지를 굳건히 했다. 이 무렵, 발칸 반도에서는 민족주의와 자유주의가 대두되기 시작하였고, 이에 따라 그리스, 불가리아, 세르비아 등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 하에 있던 발칸 반도의 위성국들이 독립 전쟁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1821년 발발한 그리스의 독립 전쟁을 필두로 대대적인 반란이 일어났고, 오스트리아 제국은 발칸 반도에서의 입지를 굳건히 하기 위하여 오스만 투르크와의 전쟁을 일으킨다. 하인리히가 지휘하는 오스트리아 군은 보스니아 지방에서 오스만 투르크 군과 첫 교전, 승리를 거두었으며, 1825년에는 세르비아를, 1827년에는 그리스를, 1830년에는 불가리아를 해방시켰다. 이 전쟁을 [['발칸 해방 전쟁']] 혹은 [['오스트리아-오스만 전쟁']] 으로 일컫는다. 이를 통해 오스트리아는 발칸 반도에서 세를 확장하였으나, 보수-반동적인 빈 체제 하에서 탄압받던 국내의 자유주의자, 민족주의자들이 오스트리아 제국을 상대로 독립을 요구한다. 이에, 페르디난트 1세는 제국 의회를 설립, 여러 민족의 대표자가 의원이 되어 황제권을 견제할 수 있도록 양보했고, 자치권을 부여하는 것으로 의회와 타협을 이루어 혼란을 넘길 수 있었다. 오스트리아는 국내의 어수선한 상황을 해결한 뒤, 발칸 반도에 발칸 연맹을 세웠고, 해방 전쟁을 통해 독립한 국가들의 군사 동맹 기구로 기능하도록 했다. 이에 영국과 러시아 등이 반발하였으나, 오스트리아는 해외 식민지 확장 포기 및 부동항 조차지 제공 등으로 무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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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사태과 지기스문트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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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8년 프랑스에서 2월 혁명이 발생하여 오스트리아 제국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데, 3월 빈에서 발생한 대규모 소요 사태에 의해 자택에서 황궁으로 이동하던 메테르니히가 잡혀 빈의 한 저택에 감금되었다. 더불어, 발칸 연맹이 오스트리아 제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난다는 취지의 '[[발칸주의]]'를 발표하여, 대내외적으로 혼란에 직면하였다. 그러나 페르디난트 1세는 자유주의자들과 민족주의자들의 대표를 황궁으로 초대하였고 합스부르크 가문의 일원으로 의회를 견제하는 역할을 하던 [[지기스문트 합스부르크]]는, 의회에서 수상을 선출하며, 수상에 대해 황제가 해임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조항과, 제국의회와 별도로 제후국에도 의회를 설치하는 조항을 포함한 [[지기스문트 개혁]]안을 제시하여 자유주의자와 민족주의자들과 합의하는데 성공하였다. 이에 따라 메테르니히는 황궁으로 복귀할 수 있었고, 제후국에 자치의회가 설치되어 제후들의 권한이 약화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내부 문제를 해결한 페르디난트 1세는 발칸 연맹의 발칸주의 선언을 인정하지 않았고, 영국과 교섭을 진행하여 발칸반도의 영향력을 오스트리아가 유지하는 대신, 북독일의 프로이센과 러시아를 견제하고, 영국의 중국 이권을 인정하고 중국 시장에 발을 들이지 않도록 하는 비밀 조약을 체결하였다. 이에 페르디난트 1세는 즉시 보스니아 지역에 군대를 파견, 발칸 연맹 내부의 문제를 종식시키는 한편, 종주국 역할을 하던 제국이 양보하여 연맹의회를 구성할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자치권을 존중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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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 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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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라이타니아의 ‘왕국들과 영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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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헤미아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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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코비나 공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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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티아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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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티아 왕국<br>
갈리치아-로도메리아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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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연해 지방 - 고리치아 그라디스카 제후백국, 트리에스테 제국 자유 도시, 이스트라 변경백국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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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연해 지방 - 고리치아 그라디스카 제후백국, 트리에스테 제국 자유 도시, 이스트라 변경백국 포함<br>
니더외스터라이히(하오스트리아) 대공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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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라바 변경백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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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라바 변경백국<br>
잘츠부르크 공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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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츠부르크 공국<br>
오스트리아령 실레시아 (상실레시아 하실레시아 공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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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령 실레시아 (상실레시아 하실레시아 공국)<br>
슈타이어마르크 공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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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어마르크 공국<br>
티롤 백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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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롤 백국<br>
오버외스터라이히(상오스트리아) 대공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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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외스터라이히(상오스트리아) 대공국<br>
포어아를베르크 제후백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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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어아를베르크 제후백국<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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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 반도의 ‘제국 연방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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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 반도의 ‘제국 연방령’:<br>
헝가리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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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왕국<br>
크로아티아-슬라보니아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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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슬라보니아 왕국<br>
피우메와 주변 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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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우메와 주변 지구<br>
불가리아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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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아 왕국<br>
그리스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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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왕국<br>
알바니아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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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니아 왕국<br>
루마니아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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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니아 왕국<br>
세르비아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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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비아 왕국<br>
  
 
==군사==
 
==군사==

2018년 8월 4일 (토) 09:44 기준 최신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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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연방 제국은 동부 유럽에 위치한 불가리아 왕국, 세르비아 왕국, 루마니아 왕국, 알바니아 왕국, 그리스 왕국, 헝가리 왕국오스트리아 제국으로 구성된 연방 제국이다. 제국의 공용어는 독일어이며, 오스트리아 제국이 통치한다. 오스트리아 연방 제국 의회에서 연방국들이 오스트리아 제국의 독단적인 통치를 견제한다.

Die im Reichsrat und im Reichsbund des Balkans vertretenen Königreiche und Territorien
제국 회의에 대표된 왕국들과 영토 및 발칸 반도의 제국 연방령
Flag of Austria Bundesreich.png Coat of arms of Austria Bundesreich.png
국기 국장
표어

Indivisibiliter ac Inseparabiliter

(라틴어: 갈라질 수도 없고 분리될 수도 없다.)
국가 하느님 황제를 지켜주소서 (Gott erhalte den Kaiser)
Map of Austria Bundesreich.jpeg
수도 북위 48° 12′ 동경 16° 21′
정치
공용어 독일어
카이저 오토 폰 합스부르크
제국의회 의장 루돌프 시링구스 합스부르크
역사
정부수립  
 • 연방 제국 선포 1867년
지리
면적 1,209,849km² (26 위)
내수면 비율 4.2%
시간대 CET (UCT) (UTC+1)
인구
2017년년 어림 81,972,000명
2017년년 조사 81,972,227명 (18위)
인구 밀도 67.75명 (99위)
경제
GDP(PPP) 2016년 어림값
 • 전체 8,175,519,425,763$ (3위)
 • 일인당 99,735$ (2위)
명목 5,248,165,142,468$ (3위)
HDI 0.955 (1위, 2017년 조사)
통화 라이히스 마르크 (ℛℳ)


역사

오스트리아 제국과 발칸 연맹의 발족

1804년 나폴레옹의 프랑스 제국에 대항하여 프란츠 1세는 오스트리아 제국을 건설하였다. 나폴레옹과의 전쟁에서 패배 후 프랑스 제국에 굴복하였으나, 1813년 라이프치히 전투에서 프랑스 제국을 상대로 승리를 거머쥐고 프랑스 군을 독일 지역에서 몰아내었다. 1814년 파리를 점령하여 나폴레옹 전쟁을 끝맺은 후에는 '빈 회의'를 이끌어 영토를 회복하고 입지를 굳건히 했다. 이 무렵, 발칸 반도에서는 민족주의와 자유주의가 대두되기 시작하였고, 이에 따라 그리스, 불가리아, 세르비아 등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 하에 있던 발칸 반도의 위성국들이 독립 전쟁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1821년 발발한 그리스의 독립 전쟁을 필두로 대대적인 반란이 일어났고, 오스트리아 제국은 발칸 반도에서의 입지를 굳건히 하기 위하여 오스만 투르크와의 전쟁을 일으킨다. 하인리히가 지휘하는 오스트리아 군은 보스니아 지방에서 오스만 투르크 군과 첫 교전, 승리를 거두었으며, 1825년에는 세르비아를, 1827년에는 그리스를, 1830년에는 불가리아를 해방시켰다. 이 전쟁을 '발칸 해방 전쟁' 혹은 '오스트리아-오스만 전쟁' 으로 일컫는다. 이를 통해 오스트리아는 발칸 반도에서 세를 확장하였으나, 보수-반동적인 빈 체제 하에서 탄압받던 국내의 자유주의자, 민족주의자들이 오스트리아 제국을 상대로 독립을 요구한다. 이에, 페르디난트 1세는 제국 의회를 설립, 여러 민족의 대표자가 의원이 되어 황제권을 견제할 수 있도록 양보했고, 자치권을 부여하는 것으로 의회와 타협을 이루어 혼란을 넘길 수 있었다. 오스트리아는 국내의 어수선한 상황을 해결한 뒤, 발칸 반도에 발칸 연맹을 세웠고, 해방 전쟁을 통해 독립한 국가들의 군사 동맹 기구로 기능하도록 했다. 이에 영국과 러시아 등이 반발하였으나, 오스트리아는 해외 식민지 확장 포기 및 부동항 조차지 제공 등으로 무마했다.

3월 사태과 지기스문트 개혁

1848년 프랑스에서 2월 혁명이 발생하여 오스트리아 제국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데, 3월 빈에서 발생한 대규모 소요 사태에 의해 자택에서 황궁으로 이동하던 메테르니히가 잡혀 빈의 한 저택에 감금되었다. 더불어, 발칸 연맹이 오스트리아 제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난다는 취지의 '발칸주의'를 발표하여, 대내외적으로 혼란에 직면하였다. 그러나 페르디난트 1세는 자유주의자들과 민족주의자들의 대표를 황궁으로 초대하였고 합스부르크 가문의 일원으로 의회를 견제하는 역할을 하던 지기스문트 합스부르크는, 의회에서 수상을 선출하며, 수상에 대해 황제가 해임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조항과, 제국의회와 별도로 제후국에도 의회를 설치하는 조항을 포함한 지기스문트 개혁안을 제시하여 자유주의자와 민족주의자들과 합의하는데 성공하였다. 이에 따라 메테르니히는 황궁으로 복귀할 수 있었고, 제후국에 자치의회가 설치되어 제후들의 권한이 약화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내부 문제를 해결한 페르디난트 1세는 발칸 연맹의 발칸주의 선언을 인정하지 않았고, 영국과 교섭을 진행하여 발칸반도의 영향력을 오스트리아가 유지하는 대신, 북독일의 프로이센과 러시아를 견제하고, 영국의 중국 이권을 인정하고 중국 시장에 발을 들이지 않도록 하는 비밀 조약을 체결하였다. 이에 페르디난트 1세는 즉시 보스니아 지역에 군대를 파견, 발칸 연맹 내부의 문제를 종식시키는 한편, 종주국 역할을 하던 제국이 양보하여 연맹의회를 구성할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자치권을 존중해주었다.

=

행정 구역

시스라이타니아의 ‘왕국들과 영토들’:
보헤미아 왕국
부코비나 공국
케른텐 공국
크라인 공국
달마티아 왕국
갈리치아-로도메리아 왕국
오스트리아 연해 지방 - 고리치아 그라디스카 제후백국, 트리에스테 제국 자유 도시, 이스트라 변경백국 포함
니더외스터라이히(하오스트리아) 대공국
모라바 변경백국
잘츠부르크 공국
오스트리아령 실레시아 (상실레시아 하실레시아 공국)
슈타이어마르크 공국
티롤 백국
오버외스터라이히(상오스트리아) 대공국
포어아를베르크 제후백국


발칸 반도의 ‘제국 연방령’:
헝가리 왕국
크로아티아-슬라보니아 왕국
피우메와 주변 지구
불가리아 왕국
그리스 왕국
알바니아 왕국
루마니아 왕국
세르비아 왕국

군사

오스트리아 연방 제국 육군

장교 및 장군 :: 100,000명

부사관 및 병사 :: 850,000명

전차 :: 8,000대

야포(견인포) :: 10,500문

장갑차 :: 5,200대


오스트리아 연방 제국 해군

장교 및 장군 :: 50,000명

부사관 및 병사 :: 70,000명


오스트리아 연방 제국 공군

장교 및 장군 :: 50,000명

부사관 및 병사 :: 70,000명


오스트리아 연방 제국 해안 국경 경비대

장교 및 장군 :: 5,000명

부사관 및 병사 :: 30,000명

문화

오스트리아 연방 제국의 문화는 다양한 국가로 구성되있는 만큼, 다양성을 존중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페르디난트 1세 시기 이후 대연방주의의 발족으로 오스트리아-발칸 문화의 구축이 시도되었다. (OstroBalkan Culture)

지리

산업

출처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