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받은 민족의 영토
טריטוריה של האומה הנבחרת
유다국
מדינת ג'אדה
State of Judah
국가 하티크바 ; 희망
(히브리어: התקווה)
국목 올리브나무
국조 후투티
표어 신의 민족, 신의 영토
(히브리어: אנשי אלוהים, שטח אלוהים)
수도 이즈라엘리 (북위 0° 18′ 49″ 동경 32° 34′ 52″)
최대도시 모세 (북위 0° 03′ 00″ 동경 32° 27′ 36″)
면적 236,040km2
역사 - 영국령 우간다 1912년 6월 1일
- 영국으로부터 독립 1946년 1월 14일
- 유다국 설립 1946년 3월 24일
- 제 1차 유다전쟁 1951년 2월 7일
- 제 2차 유다전쟁 1966년 10월 30일
- 제 3차 유다전쟁 1974년 8월 5일

인문 환경


인구 전체 인구 5,347,321명 (1978)
민족 구성 이스라엘인 78.3%, 원주민 20.5%, 영국인 1.2%
인구 밀도 22.6 (1975)
출산율 2.17 (1976)
출생 인구 254,533명(1977)
기대 수명 61세(1974)
공용어 히브리어, 영어
공용 문자 히브리 문자, 알파벳
종교 국교 : 유대교
유대교 69.3%, 기독교 19.5%, 무교 6.4%, 이슬람 4.8%
군대 유대 신정군
(히브리어: צבא אלים יהודי)
세부
군대
육군 유대 신정육군
(히브리어: צבא האלים היהודי)
해군 유대 신정해군
(히브리어: חיל הים של אלים)
공군 유대 신정공군
(히브리어: חיל האוויר היהודי)

하위 행정구역


행정구 8개 주
특수시 3개 특수시
전쟁특수부 8개 군

정치


정치 체제 군사정권, 이원집정부제, 의원내각제, 대의민주주의, 자유민주주의, 국민주권, 성문법주의
민주주의 지수 5.99 (혼합체제)
국가
원수
군참모총장 조제프 바라송
(프랑스어: Josepf Barasoinst)
정부
요인
국무총리 게오르케 필만
(독일어: George Schfilmann)
부총리 다비드 벨러 페렌츠
(언어 오류(hu): David Beller Ferenz)
상원의장 프랑수아 트라빌레
(프랑스어: François Travilet)
하원의장 조지 스미스
(영어: Jeorge Smith)
재판소장 로베르트 스와지핀스키
(폴란드어: Robert Suazipiński)
내무장관 안토니우 수아레스
(포르투갈어: António Soires)
외무장관 레비 에리크 베르디크손
(노르웨이어: Levi Erick Berdickson)
재정장관 레오 데 길라모르
(아일랜드어: Leo De Giollamóir)
국방장관 요르요스 파블로풀로스
(그리스어: Γεώργιος Παυλόπουλος)
여당 유대교 정교회 동맹 (JOA)
연립 여당 자유당 (LP)

경제


경제 체제 전시경제, 자본주의적 시장경제, 사회적 시장경제, 혼합경제, 사적가치, 토지사유론
명목
GDP
전체 GDP $357억
1인당 GDP $6,753
GDP
(PPP)
전체 GDP $414억
1인당 GDP $7,821
수출
입액
수출 $4억 3천만
수입 $32억 9천만
외환보유액 $204억
신용등급 무디스 Caa1
S&P CCC-
화폐 공식화폐 유다 셰켈 (JSK)

코드와 단위


국제 전화 코드 +32
단위 법정연호 서력기원
시간대 +3
DST +3(UTC)
도량형 SI 단위
날짜형식 yyyy-mm-dd
운전석
(통행방향)
오른쪽(좌측통행)

외교


유엔 유엔 가입 1947년 3월 1일
유엔 회원국
승인 여부
132개국 승인
수교국 78개국 수교

유다국(히브리어: התקווה, 영어: State of Judah 스테이트 오브 쥬다[*])은 아프리카 중앙에 위치한 유대인 민족국가이다. 수단, 탄자니아, 케냐, 콩고와 국경을 맞대고있고 남쪽으로는 아프리카 최대 호수인 빅토리아호수와 접해있다. 아프리카 중부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이며 이집트, 남아프리카 연방과 함께 아프리카의 3대 강국중 하나이다. 또한 아프리카에서 몇 안되게 민주정이 들어섰으며 경제적으로 발달한 국가이기도 하다.

남쪽으로는 빅토리아호수를 접해있으며 북쪽은 사막이며, 그 외의 지역은 대부분 사바나 지형이다. 또한 산지가 거의 없고 평탄한 지형이라 운송업이 발달하였다. 그러나 북부 영토가 척박하여 농업이 발달하지 못했으며 대신 제조업이 크게 발달하였다. 유다국은 아프리카에서 제조업 1위 국가이며 수출 규모도 아프리카 1위이다.

1905년 영국의 영국령 우간다 계획을 통해 우간다 지역에 유대인 자치구가 세워졌으며, 이 유대인 자치구가 유다국으로써 독립한것이 1946년의 일이다. 1947년 3월 유다국은 UN에 가입하였다. 유다국의 태생적 한계 때문에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과 충돌하였다. 1951년 탄자니아로의 강제이주를 반대하는 우간다 소수민족과 1차 전쟁을 벌였으며, 1966년 콩고, 케냐, 탄자니아와 2차 전쟁을 벌였다. 1974년에는 수단과 전쟁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유다국의 신용등급과 경제적 부양 능력은 크게 떨어졌으며 유다국의 경제발전을 가로막는 주요 이유로 자리잡게 되었다. 1979년 현재 유다국은 전시경제 체제로 돌입하였으며, 신용등급은 형편없이 추락하고있고 전쟁으로 인해 국가는 존망길에 놓여있다.

현재 유다국의 군사 지출 비용은 1978년 기준 국가 예산의 48.5%로 전세계에서 가장 높다.

역사

영국령 우간다

유대인민족(영어: Jewish)은 로마제국 이후로 한참을 유럽 영토를 떠돌며 박해받던 민족이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죽였다는 혐의가 있었던 민족이었기에 기독교 중심의 유럽 국가들은 유대인들을 탄압했고 유대인들은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1894년 프랑스의 루이 드레퓌스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간첩으로 몰려 억울하게 처벌을 받자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대인에 대한 탄압이 너무 심각하다는 동정론이 일었고 이는 시오니즘 운동과 국제 유대인의 연합으로 이어졌다. 이에 1905년 영국은 영국령 우간다를 유대인들의 국가로 설립할 계획을 세웠고 이를 영국령 우간다 계획이라 한다. 초반에 시오니스트들은 생뚱맞은 우간다에 유대국가가 세워지는것에 반대했으나, 이 기회가 아니면 영원히 유대 국가를 세우지 못할것이라는 주장이 받아들여져 1912년 우간다에 유대인 자치 구역이 생기게 되었다.

영국은 우간다 유대인 자치구에서 원주민과 유대인의 갈등을 막고자 전 원주민의 80%에 달하는 800만명을 강제이주시켰다. 이에 반발해 우간다 시민들은 폭동을 일으켰고 이들은 모두 무자비하게 영국군에 의해 사망했다. 1912년 공식적으로 유대인 자치구가 출범했고 원주민들은 반발하였다. 쫓겨난 우간다 원주민들은 케냐와 탄자니아, 콩고 등에 나뉘어져 살고있다.

독립, 그리고 1차 유다 전쟁

1946년 2차대전이 끝나고 식민지 독립 여론이 조성되자 영국은 인도와 캐나다 등의 식민지의 독립을 고려하였다. 로스차일드 가문의 영향력으로 클레맨트 애틀리 영국 총리는 유대인 자치구를 아프리카 식민지중 가장 먼저 독립시키기로 결정하였고, 1946년 유대인 자치구는 유다국으로 공식적으로 독립하게된다. 독립이 허가된 3월 24일은 독립절로 유다국 최대 국경일이다. 1946년 3월 25일 우간다 총독부에 다윗의 별 깃발이 올라가고 처음으로 국가 하티크바가 연주되었다.

영국은 독립시 군대를 모두 철수하겠다고 약속하였다. 유다국도 진정한 독립을 위해 이를 반겼으나 우간다 독립주의자들은 이를 이용해 유다국을 공격하기로 작정하였다. 케냐에 위치한 우간다 독립군은 쫓겨난 우간다 원주민들을 모아서 독립을 도모하였고 병사들을 모집했다. 1951년 2월 7일, 소련의 지원을 받은 우간다 독립군은 유다국 국경을 기습침공하였고 유다국 군대는 크게 패퇴했다. 아직 군사훈련이 덜되어있었던 유다국은 영국군과 프랑스군에 도움을 요청했다. 벨기에령 콩고군과 케냐 주둔 영국군이 유다국을 군사적으로 지원하였고 프랑스는 물자적으로 지원하였다. 양쪽에서 몰려오는 연합군에 독립군의 진격도 멈췄으며 대부분 1953년에서 1954년 사이 궤멸되었다. 우간다 독립군은 이후 완전히 몰락하였고, 이디 아민의 인민해방전선이 탄자니아에서 세력을 구축하게 된다. 한편 1차 유다전쟁으로 유대인과 우간다 원주민의 갈등이 심화되었고 이 기간에서 13만명의 유대인과 20만명의 원주민이 제노사이드를 당한것으로 추정된다.

전쟁은 1953년 5월 3일 유다국 총리 다비드 이마을를의 승리 선언으로 마무리 되었으나, 이것은 곧 있을 유다국의 시련 과정중 하나였을 뿐이었다.

제 2차 유다전쟁

작전 수행중인 유다국의 센츄리온 전차 (1968)

1953년 전쟁 이후 유다국의 경제는 중흥적으로 발전해 1965년에는 국민소득이 1203불로 스페인 수준까지 뛰어 올랐다. 1956년에서 1966년까지 10년동안의 경제발전기를 빅토리아호의 기적이라고 부르며, 유다국은 이때 당시 아프리카에서 가장 뛰어난 경제적 수준을 보였다. 1963년 유다국의 수도 이스라엘리에서는 아프리카 최초로 지하철이 개통되었고, 군사적으로도 발전해 10년전과 달리 센츄리온, M-48 패튼등 첨단 장비로 무장하였다.

한편 1960년대 유럽에서 사회주의 운동이 격화되고, 베트남과 알제리에서 식민지 지배에 저항하는 운동이 일어나 프랑스 정부가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입자 영국과 벨기에 등 주요 식민제국들은 평화적 식민지 독립을 획책하게 되었다. 1960년 벨기에령 콩고가 70년만에 폭압에서 벗어나고 62년과 65년에는 각각 탄자니아와 케냐 정부가 독립하게 되었다. 유다국의 친영 패권적 행보를 보다못한 이들 국가는 유다국에 항의성명을 냈고 유다국 정부는 내정 간섭이라며 맞받아쳤다. 외교적으로 유다국은 극히 불안정화되었고 이는 2차 유다전쟁을 일으키게 되었다.

1966년 10월 30일, 콩고는 공식적으로 유다국에 선전포고하였고 다음날 케냐와 탄자니아도 선전포고하였다. 유다국은 즉각 대응에 돌입해 316km 떨어진 탄자니아의 므완자시를 미사일로 폭격했다. 유다국의 신형 미사일은 최대 사정거리 400km였으며 이 거리 안에 있는 중소도시는 왠만하면 다 폭격을 맞았다. 므완자시는 3일간의 포격으로 쑥밭이 되었고 5000명이 숨졌다. 아프리카 동맹국도 대응에 나서 유다국 국경을 침공했다. 머릿수로 밀렸던 유다국은 59식 전차 등 동구권 무기로 무장한 동맹국에 일시적으로 밀렸다. 설상가상으로 우간다 원주민들의 반란까지 겹쳐져 유다국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고, 수도 이스라엘리까지 포위된다.

그러나 때마침 터진 콩고 내전으로 인해 콩고는 불미스럽게 전쟁에서 빠지고, 이틈을 노린 유다국 국군이 죽을힘을 다해 탄자니아군을 격퇴하였다. 질적으로 우수했던 유다국의 장비와 전술 앞에 케냐와 탄자니아는 밀려났고 나이로비에서 100km 떨어진곳까지 유다국 군대가 쳐들어가자, 소련과 독일이 중재에 나섰다. 유다국과 케냐, 탄자니아는 각자 전쟁 이전의 국경을 유지하는것으로 타협되었으며 1970년 5월 전쟁이 공식적으로 종전된다.

2차 유다전쟁으로 유다국은 불친절한 이웃에 대한 공포심이 극대화되어 국방력을 엄청나게 키우게 된다.

제 3차 유다전쟁

1970년부터 1974년까지 유다국은 안전한 국가 만들기 프로젝트로 각 전선에서의 군사 장비를 증강하고 무기들을 수입하였다. 치프틴, 빅커스 MBT, 레오파르트, M60 패튼 등 최신 무기를 장착한 이들은 완벽하게 전쟁에 대비하게 된다. 최대 사정거리 1200km의 신형 미사일도 수입하였다. 자체적인 전차 개발도 하게되는데, 이 결과 메르카바 1이 1974년부터 실전에 배치되었다. 1972년 유다국 국방부는 만약 타국이 공격을 한다면 4년 이내에 수단이 침공할것이라는 결론을 내렸고 즉각 수단 전선에 무장을 하게된다. 1965년 독립한 수단은 밀려든 우간다 난민들을 받아줬기 때문에 유다국에 반감을 품고있었고, 침공의 날을 벼르고 있었다. 수단 역시 유다국과의 국경에서 군사력을 증강하였다.

1974년 8월 3일 수단 국경선에서 한 유대인 아이가 수단군의 오인사격으로 사망하는 일이 일어났다. 긴장된 전선에서 유다국 정부는 이를 수단의 선전포고로 간주하고 수단을 무단침공했다. 국경 인근 수단의 대도시인 주바는 미사일 폭격을 받아 불바다가 되었고 현장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기자에 의해 생생히 보도되어 국제 사회의 비난을 샀다. 이에 개의치 않고 유다국은 1974년 9월 7일 수단 국경을 넘어 수단의 전선을 쓰러트리고 주바를 점령했으며, 남수단을 친 유다국 독립정부로 독립시킬것임을 휴전의 대가로 내걸었다. 황당한 조약에 수단은 당연히 거절했고 소련 정부에 SOS를 쳤다. 소련 정부는 여기서 더 전쟁을 개시할시 유다국을 핵으로 폭격시키겠다고 포고했다. 독일과 프랑스도 소련의 방식은 과격하나 전쟁은 멈춰야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스웨덴의 올로프 팔메 총리는 공식적으로 유다국 정부에 대한 감성적 비난을 쏟아부었다.

국제 사회가 압박하자 유다국도 하는수 없이 수단에서 철수했으며, 전쟁은 4개월만에 끝나게 된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수단과 유다국의 관계는 완전히 트러졌고 1979년 현재까지 유다국과 다른 아프리카국의 긴장이 유지되고있다.

정치

행정구역

유다국의 행정구역

유다국의 행정구역은 3개의 도시, 8개의 구와 8개 전쟁 특수부로 나뉘어져있다. 특수시와 구는 각각 동등한 지위를 가지며 전쟁특수부는 군대의 통제를 받는다. 전쟁 등 유사시에는 모든 행정구역이 전쟁특수부로 전환되어 군대의 통제를 받는다. 유사시가 풀리면 전쟁특수부는 해체되어 다시 문민통제에 들어간다. 5년전의 수단과의 전쟁 때문에 현재 수단과 케냐, 탄자니아 국경에 전쟁특수부가 설치되어있다.

다음은 현재 11개의 일반 행정구역의 일람이다.

북서구 북동구 중앙구 서구 솔로몬구
하이파구 유다구 남구 모세 아리엘
이스라엘리 (수도)

원내정당

유다국의 정당
1979년 2월 4일 기준
여당 (68석)
유대교 정교회 동맹
50석
자유당
10석
국민 유대교 동맹
7석
전진자유당
1석
야당 (52석)
시오니스트 사회주의연합당
27석
유다 공산당
9석
75동맹
9석
우간다 민족명단
5석
사회진보당
1석
무소속
1석

1946년 공화국 수립 이후 유다국의 정치계를 장악해온것은 주로 우파 시오니즘을 표방한 유대교 정교회 연합(Jewish Orthodox Alliance, JOA)였다. 이 정당은 유다국의 건국 영웅인 다비드 이마을를이 창당한 정당으로 시온주의 우파, 유대 민족주의적 성향을 강하게 띈다. 유대교 정교회 연합은 1973년 기독교 민주주의 정당의 연합체인 중도민주인터내셔널(Centrist Democrat International)에 가입하였다. 유대교 정교회 연합은 1946년부터 1979년 현재까지 9년을 제외한 기간동안 항상 집권해왔다. 1946년부터 1965년까지, 그리고 1974년부터 현재까지 계속 집권하고있다. 유대교 정교회 연합은 주로 중산층과 고소득층, 농민들, 그리고 유대교 신자들에게서 지지세가 높다. 1977년 선거에서 50석을 얻어 자유당과 군소정당과 연정해 다시 집권했다.

제1야당인 시오니스트 사회주의연합당(United Socialist Party of Zionist / Zionist Socialist Unity Party, USPZ / ZSUP)은 1946년 독립때 군부 출신 인사였던 모세 다얀(Moshe Dayan)이 세운 정당으로 군부의 지지를 받는 정당이다. 이름대로 사회주의, 노동시온주의, 사회민주주의, 민주사회주의를 표방한다. 현재 사회주의 인터내셔널(Socialist International)과 유럽 사회당(European Socialist Party)에 가입되어있다. 시온주의를 표방하지만 유대교 근본주의를 주장하지는 않으며, 유다국의 세속주의를 주장한다. 때문에 종교적인 정교회 연합과는 언제나 대립하고있다. 주요 지지층은 군부, 도시민, 노동자, 고학력자들이며, 특히 군대에서의 전폭적 지원을 받고있다. 일각에서는 최근들어 이어지는 경제 침채로 인해 이 당이 군부와 손을 잡고 쿠데타를 일으킬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되고있다. 1965년 집권하여 2차 유다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1971년 총선에서 압승했으나, 오일쇼크의 여파로 인해 1974년 총선에서 참패하였다.

이 외에 보수진영에는 민족적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자유당(Liberal Party, LP)과, 마르크스주의를 표방하는 공산당(Judahan Communist Party, JCP), 사회자유주의를 표방하는 75동맹(Alliance 75, A'75) 등이 있다. 자유당은 1946년 이래로 제 3당 역할을 하면서 캐스팅보트를 잡고 있다. 공산당은 최근 들어 사회당과의 연합으로 당세가 성장하였고, 일본공산당과 마찬가지로 폭력투쟁 노선을 포기해 급격히 당세가 늘어나고있다. 75동맹의 경우 20대에서의 열렬한 지지로 1976년 총선에서 예상을 뒤엎고 3당의 지위를 차지하기도 하였다.

국가 원수

총리

역대 유다국 총리
Prime Minister of Judah
1946-1979
ראש ממשלת יהודה
1대 2대 3대 4대
이마을를
(정교련)
1946-1954
슈페르트
(정교련)
1954-1956
베레뢰센
(정교련)
1956-1959
크루거
(정교련)
1959-1962
5대 6대 7대 8대
호르헤
(정교련)
1962-1965
알바윈
(사회당)
1966-1971
레핀스키
(사회당)
1971-1974
예거
(정교련)
1974-1976
9대 10대
쇼펜하워
(정교련)
1976-1977
슈필만
(정교련)
1977-1980

[1]

유다국 총리(히브리어: ראש ממשלת יהודה, 영어: Prime minister of Judah)는 유다국의 국가원수 2명중 한명이며 그중 민정의 대표자이다. 1946년 다비드 이마을를이 초대 총리로 취임한 이후 현재까지 총 12명의 총리가 재직하였다. 유다국의 총리는 단임으로 3년에서 2년정도를 맡으며, 전쟁이 일어날시 임기가 정권 안정을 위해 연장된다. 때문에 6대 총리인 알렉산드로스 알바윈(Alexandros Albayin)은 5년간 재직하였다. 총리의 권한은 평시 대부분의 서류를 결재하며 8개 일반 행정구역을 통솔한다. 장관을 임명 혹은 해임할수 있고 공식 행사에서 국가 원수의 자격으로 참가하며, 국제 회담에도 참가한다. 문화 산업, 도시 개발, 대외 외교 등이 총리가 해야할 역할이다. 총리는 단임인 탓에 자주 교체되고 실질 권한도 군사 참모총장에 비해 상당히 약한 편이다.

군 참모총장

역대 유다국 군 참모총장
Judahan Chief of staff
1946-1979
ראש המטה של מדינת יהודה / ראש צבא יהודה
1대 2대 대행 3대
모세 다얀
(사회당)
1946-1970
슈테어펜
(사회당)
1970-1975
맥밀런
(무소속)
1975-1976
바라송
(사회당)
1976-

유다국은 이원집정부제 국가지만 프랑스처럼 대통령과 총리가 각각 국가원수를 맡는것이 아닌, 군 참모총장과 총리가 국가 원수를 맡는 기이한 정치 구조를 갖고있다. 헌법상으로 총리와 군참모총장의 권한은 동일하지만 전쟁이 잦은 유다국 특성상 군참모총장의 권한이 훨씬 강력하다. 군참모총장은 군의 최고 사령관(대한민국이나 미국 등과 다르게 유다국은 군참모총장의 계급이 가장 높다)으로 국방부장관을 해임 혹은 임명할수있고 때에 따라서는 총리까지도 해임할수 있는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있다. 반대로 총리가 참모총장을 해임할 권한도 있는데 2대 참모총장인 우르치 슈테어펜(Urzi Schterfehn)은 1975년 3차 유다전쟁을 이유로 안보리 협정을 위반했다는 명목으로 해임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모총장의 권리는 일반적으로 총리보다 더 우위에 있다.

참모총장은 3개의 특수시와 전쟁특수지역을 총괄하고 전시 상황때에는 총리를 대신해 대부분의 외교를 맡는다. 계엄령을 선포할수 있고 상황에 따라 시가지에 전차를 투입시켜 국가 안보에 위험이 되는 세력을 진압할수 있다. 평시상황때도 참모총장의 역할은 매우 강력하다. 평시상황에서 참모총장은 식량 배급을 늘이거나 줄일 권한이 있고 치안을 총괄한다. 정보부 역시 참모총장의 직속기관이다.

참모총장의 역할이 이렇게 강력한것은 전 국민의 15%인 85만명 가량이 군인으로 징집되어있는 유다국의 특성이 강하게 반영되어있다. 보통 참모총장은 군대 내에서 투표로 선출하고 의회가 이를 통과시킨다. 일반 국민의 투표로 선출되지 않은 참모총상의 사실상 국가원수직을 맡기 때문에 유다국이 독재국가라는 의견도 강하게 나온다. 또 유다국의 군대는 초대 참모총장 모세 다얀의 영향으로 세속적으로 좌파적인데, 최근 들어 이어지고 있는 정부의 반세속주의적 행보 때문에 군대가 쿠데타를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우파들의 비판도 나온다.

군사

유다국 자체 개발 전차인 메르카바 I (1976)

유다국의 현역 군인은 85만명으로, 소련에 이은 세계 2위 수준이다. 예비군 병력은 총 360만명으로 총합시 445만명이 되어 인구 대비 가장 많은 군사 병력 수(현역 16.03%, 전체 83.96%)를 가지고있다. 워낙 잦은 전쟁과, 강력한 군대의 힘 때문에 인구 대비 지나치게 많은 군사들이 징집 혹은 인원 충당되어 군대의 권한이 너무 강력해졌다. 전쟁이 너무 자주 일어나서 대부분의 해외 기업들이 유다국에서 철수하고 무디스와 S&P마저 유다국을 신용 불량급으로 분류하자 대다수의 회사들이 망해버렸고 GDP 대부분이 소모되고 있는 공무원직인 군대로 인원이 쏠리면서 점점 상황이 악화되고있다. 군대를 40만명으로 감축하려던 총리 쿠르드 쇼펜하우어가 군부의 사주를 받은 테러리스트의 테러로 인해 사망하고 유다국은 걷잡을수 없는 군국주의 사회가 되어버렸다.

군부의 민주주의 유린

유다국의 군부는 위에서 언급했듯이 모세 다얀 초대 참모총장의 영향으로 정치적으로 좌파적이며 공화인민당 지지세가 강한 터키와 비슷하다. 그러나 터키와 마찬가지로 군부가 정치적 중립성을 대놓고 어기고있고 우파 정치인들을 살해하거나 협박하는 등 반민주적 행동들을 자행하고있어 유다국의 민주주의 성장에 큰 방해를 가하고있다. 유다국의 군사령관과 군위원회 구성원의 85% 이상을 시오니스트 사회주의연합당이 차지하고있고 그만큼 군대에서도 정치적인 의견들이 오간다. 1977년 극좌 군사령관이었던 루드윅 고이게반(Ludyig Geugeban)이 군감축과 평화주의 정책을 주장하던 쿠르드 쇼펜하우어(Kurd Schofehnhauer)를 1977년 이스라엘리 연속 폭탄 테러 사건으로 죽였다. 이후 군사의 힘을 감축하려는 우파 여당과, 군국주의 사회를 지지하는 좌파 군부 사이에서의 엄청난 갈등이 일어나고있다. 1978년 유다국 쿠데타 미수사건이 이 여파이다. 우파 여당은 현재 독일과 소련의 지원을 받고있으며 좌파 군부는 영국과 미국의 지원을 받고있어 국제전으로도 번질수 있으며 최악의 경우 내전이 발생할수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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