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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극성 장애로 인해 몇주에서 몇달간 우울감에 빠져있다가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거나 외적 스트레스를 받으면 며칠 동안 잠도 자지 않고 연설문이나 책을 썼다. 본인은 어렸을 때 조증 삽화가 찾아오면 창문 밖으로 물건을 던지거나 집안의 물건을 깨뜨리는 등 파괴적이고 충동적인 행동을 일삼았으나 점차 자라면서 이것이 파괴적이고 충동적이지만 번뜩이고 획기적인 내적 사고로 대체되어갔다고 회고했다.
양극성 장애로 인해 몇주에서 몇달간 우울감에 빠져있다가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거나 외적 스트레스를 받으면 며칠 동안 잠도 자지 않고 연설문이나 책을 썼다. 본인은 어렸을 때 조증 삽화가 찾아오면 창문 밖으로 물건을 던지거나 집안의 물건을 깨뜨리는 등 파괴적이고 충동적인 행동을 일삼았으나 점차 자라면서 이것이 파괴적이고 충동적이지만 번뜩이고 획기적인 내적 사고로 대체되어갔다고 회고했다.
그는 완벽주의 성향도 갖고 있었고 매사에 철저해서 사소한 것도 잊지 않고 없애고 빼버릴 것과 추가할만한 사항들을 꼼꼼하게 챙겼다. 그러나 무결점을 추구했다는 타인의 평가와는 다르게 그의 방은 몹시 어질러져 있었고 본인도 본인이 완벽주의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 어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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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문|세상이 미쳤을 때는 그 전체를 불태워버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인용문|세상이 미쳤을 때는 그 전체를 불태워버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인용문|인류의 시대가 아프리카에서 시작되었듯이 인류의 새로운 시대 또한 아프리카에서 시작될 것입니다.|2056년 아프리카 연합 기조 연설중}}
{{인용문|인류의 시대가 아프리카에서 시작되었듯이 인류의 새로운 시대 또한 아프리카에서 시작될 것입니다.|2056년 아프리카 연합 기조 연설중}}

2020년 6월 12일 (금) 04:47 판


혁명세계관

Meine Erzfeindin, er nähert sich. Ich bin hier in Sicherheit und das weiß ich. Ich muss nur meinen Weg nach unten finden. Aber in letzter Zeit falle ich... Ich brauche nur etwas Zeit. Ich werde dich zu meinem machen. Ich werde dich wieder zu meinem machen. Ich brauche nur Zeit. Ich werde diese ganze verdammte Welt zu meiner machen.
적들이 나에게 다가오고 있어. 난 여기서 안전하고, 난 그걸 알아. 그냥 나의 길을 찾고 있을 뿐이야. 하지만 최근 내가 무너지는 기분이야... 하지만 난 시간이 필요할 뿐이야. 널 내것으로 만들겠어. 널 다시 내것으로 만들겠어. 시간이 필요할 뿐이야. 이 엿같은 세상을 내것으로 만들겠어.

 
— 2044년 3월경 모리셔스에서 아내 레나 발렌스카에게 보낸 편지중
윤주용
Julian Yun
국적
대한민국 → 독일 → 소련 (동아시아 SFSR)
본명
성준영
다른 가명
윤정혁, 나루호 켄토, 율리안 발렌스카
출생
1997년 5월 13일, 대한민국 경기도 연천군
직위
소련 공산당 초대 대표
2056년 5월 1일 ~ 2066년 12월 31일
소련 전소비에트대표자대회 의장
2056년 6월 2일 ~ 2080년 6월 1일
소련 정치위원회, 군사위원회, 공안협력위원회 위원장 (겸직)
2056년 6월 6일 ~ 2090년 6월 4일
당적
한국공산당 (2034~2035)[1]
소련 공산당 (2056~)
배우자
레나 발렌스카 (2034~2043, 2057~)
슬하 1녀


개요

대한민국 출신 독일, 소련의 공산주의와 아나키즘 사상가, 혁명가이자 엔지니어.

대다수 좌파 지식인들마저 회의적으로 바라보았던 계급혁명을 줄기차게 주장했고 21세기 중반의 세계적 혼란 속에서 결국 이를 성공시킨 혁명가로 평가받는다.

윤주용은 필명이지만 사실상 본명으로 굳혀졌으며 나중에는 아예 개명했다.

생애

어린 시절

신원 미상의 친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태어나자마자 보육원에 맡겨졌으며 만으로 2살에 입양될때까지 그곳에서 지냈다. 양부는 중소기업의 사장이었고 양어머니는 세무직 공무원이었다. 그러나 6살에 양부모가 이혼하면서 다시 보육원에 맡겨졌고 3년만에 양어머니의 품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양어머니와 생활하는 도중에도 몇년간 양부쪽의 잦은 언어적 폭력에 시달렸다. 그는 어린 시절의 불우한 가정환경으로 인해 평생 양극성 장애에 시달렸고 가족이라는 것에대해 집착했다.

그의 어머니는 높은 교육열로 인해 양부가 집앞에 찾아와 폭언을 퍼붓는 와중에도 결코 이사하지 않았고 접근금지 소송까지 벌이면서까지 서울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공부에는 별로 관심이 없던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 과목에서 모두 낮은 성적을 얻었다. 하지만 사회, 물상 과목은 항상 높은 성적을 받았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입학한 성적이 높은 학생들이 많았던 고등학교를 중하위권 성적으로 졸업한다. 수능도 당시 지방거점국립대 상위 학과에서 서울 소재 대학 중하위권에 달했으나 그는 어머니가 실망할까봐 재수에 들어갔다. 하지만 성적은 몹시 떨어졌고 결국 삼수 끝에야 원래 성적을 회복해 모 대학 화학공학과에 입학한다.

윤주용은 물질적으로는 전혀 부족하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의 어머니가 이혼하면서 얻어온 상당한 금액의 위자료가 있었고 어머니의 소득도 낮지 않은 편이었기 때문이다.

철부지 공산주의자

2018년 3수끝에 입학한 대학에서는 상당히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 특히 물리학과 열역학, 공업수학, 선형대수학등의 과목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2019년에는 경제학과 복수전공을 시작했는데 이로인해 졸업이 1년 늦어지게 되었지만 양쪽 과목에서 모두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이 시기 공산주의 사상을 접하기 시작했으며 경제학과 철학에 깊게 빠져들었다. 이후 사회주의 동아리나 관련 학회 토론회 등에 참여했으나 몇몇이 주장하던 미군 철수등은 공상적, 비현실적이라며 비판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공공연히 심각하게 자신의 정치사상을 드러냈으나 어머니부터 친구들까지 그다지 진지하게 받아들이진 않았다고 한다.
2023년 졸업한뒤 학교로부터 해외 유학을 권유받았으나 거절하였고 2025년 병역을 마친다.
이후 좌파 계열 잡지등에서 칼럼니스트, 기자로 활동하다 2027년 경제학 대학원에 들어갔다. 이후 2029년 <소득격차의 발생원인에 대한 철학적, 수학적 양자적 접근을 통한 분석 결과의 수렴성에 대하여>라는 논문을 통해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이 시기부터 그의 사상은 점차 급진적으로 변하기 시작했고 레닌주의등에 심취하기 시작했다.
2030년 2월 박사학위 취득을 위한 유학을 준비하던 도중 그가 속한 ‘한국공산당 창당준비위원회’가 누군가에게 고발당해 검찰에게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조사를 받게 되었고 이를 큰 위협으로 여긴 그는 급히 독일로 떠났다.
그러나 몇개월후 검찰은 ‘혐의없음’으로 사건을 매듭지었고 실제로 대부분의 참여인사들은 반북 성향이 강했고 유럽공산주의등의 사상을 띄고 있어 별문제없이 넘어가는듯 하였으나 별건으로 윤주용이 쓴 무력혁명 구상, 구체적 논의등을 적은 문서들이 발견되면서 창준위내 소수그룹이 반국가단체 구성 혐의등으로 기소되었다.
2030년 9월 윤주용은 독일에 난민 신청을 했고 이것이 받아들여지면서 기나긴 망명 생활이 시작되었다.

윤주용 본인은 자신의 2020년대를 ‘철부지 공산주의자’로 지냈다고 회고했다.

망명 생활

그는 이듬해 에어버스에 취직하였고 엔지니어 및 수리기사로 활동하며 드레스덴 공과 대학에서 공학 석사 과정을 밟았으나 중퇴하고 몇몇 대학의 철학과 청강을 하면서 지낸다.

어머니의 생활비 지원과 엔지니어 수입이 짭짤했던 터라 난민이라는 지위에 있는 것 치고는 상당히 안정적인 망명생활을 보냈다.
그는 동시에 독일 좌파당과 좌파 잡지등에서 활동하였으며 독일내 사회주의 운동에도 참여했하였고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일부 세력에게는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을 듣기도 하였으나 외국인 신분으로는 상당한 지지자를 얻었다.

2034년 자신이 청강하던 철학과 조교수 레나 발렌스카와 결혼했다. 그녀는 폴란드계 독일인이었고 윤주영보다 3살이 많았다. 그녀의 아버지는 1980년대 초반 브레즈네프 독트린으로 인해 폴란드에서 박해받던 자유노조원중 하나였고 천신만고끝에 서독으로 탈출하는데 성공하면서 그곳에 완전히 눌러앉게 되었다.

모리셔스로

미국 내전에 뛰어들다

평가

긍정적 평가

부정적 평가

사상

성격

상술한 유년기의 불행 때문에 양극성 장애를 앓고 있었다. 초기에는 우울장애로 판정받았으나 2036년이 되어서야 양극성 장애로 진단받았다.
이런 병과 윤주용 자신의 다혈질적인 성격이 겹치면서 그를 짧게 만난 사람들은 그를 대화하기조차 어려운 인간이라고 혹평했으나 그의 주위에 오래 있던 아내 레나 발렌스카나 여러 혁명 동지들은 그를 옹호했다.

양극성 장애로 인해 몇주에서 몇달간 우울감에 빠져있다가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거나 외적 스트레스를 받으면 며칠 동안 잠도 자지 않고 연설문이나 책을 썼다. 본인은 어렸을 때 조증 삽화가 찾아오면 창문 밖으로 물건을 던지거나 집안의 물건을 깨뜨리는 등 파괴적이고 충동적인 행동을 일삼았으나 점차 자라면서 이것이 파괴적이고 충동적이지만 번뜩이고 획기적인 내적 사고로 대체되어갔다고 회고했다.

그는 완벽주의 성향도 갖고 있었고 매사에 철저해서 사소한 것도 잊지 않고 없애고 빼버릴 것과 추가할만한 사항들을 꼼꼼하게 챙겼다. 그러나 무결점을 추구했다는 타인의 평가와는 다르게 그의 방은 몹시 어질러져 있었고 본인도 본인이 완벽주의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어록

세상이 미쳤을 때는 그 전체를 불태워버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인류의 시대가 아프리카에서 시작되었듯이 인류의 새로운 시대 또한 아프리카에서 시작될 것입니다.

 
— 2056년 아프리카 연합 기조 연설중
  1. 해산되면서 2035년 당적 말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