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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세계년 창안설{{small|(創案說)}}을 두고, 두 종교인 [[알레피아교]]와 [[신성교]]가 맞붙었던 사건이 있다. 바로 '''알레피아교 대 신성교'''{{small|(Allepia vs Holy Religion)}}인데, 알레피아교의 발언이 문제가 된 192년 3월부터 최종 종결된 208년 6월까지 약 16년 3개월에 걸쳐 일어난 종교계 역사상 최대의 사건으로 불리고 있다.
한편 이세계년 창안설{{small|(創案說)}}을 두고, 두 종교인 [[알레피아교]]와 [[신성교]]가 맞붙었던 사건이 있다. 바로 '''알레피아교 대 신성교'''{{small|(Allepia vs Holy Religion)}}인데, 알레피아교의 발언이 문제가 된 192년 3월부터 최종 종결된 208년 6월까지 약 16년 3개월에 걸쳐 일어난 종교계 역사상 최대의 사건으로 불리고 있다.


192년 2월, 이세계신을 유일신으로 삼는 [[아스피아]]계 신흥 종교인 [[알레피아교]]의 당시 교주인 ■■■■■■■■■은 이세계년 창안설에 대한 강의에서 이세계년을 만국 공통 연호이자 [[어나더어스 (행성)|우리 행성]]의 창조와 함께 나타난 유일한 연호라고 정의하였고 "태초에 이세계신이 나타나서 지구가 태어나자마자 나도 한번 세계를 만들어 봐야겠다 하여 우리 행성을 만드셨고, 이세계신이 15세기에 죽었으니 이를 기리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닐까"라며 "이세계신에 의한 창안설"을 설명했다.
192년 2월, 이세계신을 유일신으로 삼는 [[아스피아]]계 신흥 종교인 [[알레피아교]]의 당시 교주인 ■■■은 이세계년 창안설에 대한 강의에서 이세계년을 만국 공통 연호이자 [[어나더어스 (행성)|우리 행성]]의 창조와 함께 나타난 유일한 연호라고 정의하였고 "태초에 이세계신이 나타나서 지구가 태어나자마자 나도 한번 세계를 만들어 봐야겠다 하여 우리 행성을 만드셨고, 이세계신이 15세기에 죽었으니 이를 기리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닐까"라며 "이세계신에 의한 창안설"을 설명했다.


이에 [[신성교]]의 [[알렉스 도너반]] 총회장은 알레피아교의 주장을 반박<ref>신성교가 발표한 보고서의 내용은 "이세계년 창안설이 이세계신의 존재와 성립하는가?"라는 내용이었는데 당시 알렉스 총회장의 말을 빌리자면, 먼저 이세계신은 《[[이세계 신화]]》에 등장하는 허구의 신으로 존재할 뿐, 실제로는 존재 자체가 없다고 하며, 따라서 누군가가 지어낸 소문이거나 사이비 종교에서 만들어낸 유언비어로 보고 있다고 한다. 즉, 결론적으로 이세계신은 허구의 신이고, 당시 수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던 '창안 근거 = 이세계신 창안설'이라는 결과의 성립은 거짓이 된다고 볼 수 있다.</ref>하여 이세계신과의 연관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에 알레피아교는 이세계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단이나 하는 짓'이라 규정하고, 종교로서의 명예를 훼손시켰다는 이유로 같은 해 10월 [[이클리우스]]에서 신성교에 대한 고소장을 [[이클리우스 경찰|지방경찰]]에 제출하였다.
이에 [[신성교]]의 [[알렉스 도너반]] 총회장은 알레피아교의 주장을 반박<ref>신성교가 발표한 보고서의 내용은 "이세계년 창안설이 이세계신의 존재와 성립하는가?"라는 내용이었는데 당시 알렉스 총회장의 말을 빌리자면, 먼저 이세계신은 《[[이세계 신화]]》에 등장하는 허구의 신으로 존재할 뿐, 실제로는 존재 자체가 없다고 하며, 따라서 누군가가 지어낸 소문이거나 사이비 종교에서 만들어낸 유언비어로 보고 있다고 한다. 즉, 결론적으로 이세계신은 허구의 신이고, 당시 수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던 '창안 근거 = 이세계신 창안설'이라는 결과의 성립은 거짓이 된다고 볼 수 있다.</ref>하여 이세계신과의 연관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에 알레피아교는 이세계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단이나 하는 짓'이라 규정하고, 종교로서의 명예를 훼손시켰다는 이유로 같은 해 10월 [[이클리우스]]에서 신성교에 대한 고소장을 [[이클리우스 경찰|지방경찰]]에 제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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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년 8월, 최고관리기구 측은 브리핑을 통해 '''이세계신에 의한 창안설이 이세계년과 연관되지 않는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여기에 이세계신의 실존성에 대해서는 허구의 신으로 밝혀지면서 그동안 이세계신의 실존을 주장하던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충격을 받았고, 이번 사건을 종결시킬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으로 남게 되었다.
204년 8월, 최고관리기구 측은 브리핑을 통해 '''이세계신에 의한 창안설이 이세계년과 연관되지 않는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여기에 이세계신의 실존성에 대해서는 허구의 신으로 밝혀지면서 그동안 이세계신의 실존을 주장하던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충격을 받았고, 이번 사건을 종결시킬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으로 남게 되었다.


206년 9월, 세계유산기구는 이클리우시아의 부족장이 시작을 알리기 위해 이세계년을 만들었다는 새로운 창안 근거를 제시하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사료들이 공개되면서, 이세계신 창안설은 더욱 신뢰성을 잃게 되었다. 신성교 측은 이 사건을 '신성한 승리'로 평가하며 승리를 자처했으며 이세계신을 따르던 신흥 종교들은 크게 반발하였다.
206년 9월, 세계유산기구는 이클리우시아의 어느 부족장이 문명의 시작을 알리기 위해 이세계년을 만들었다는 새로운 창안 근거를 제시하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사료들이 공개되면서, 이세계신 창안설은 더욱 신뢰성을 잃게 되었다. 신성교 측은 이 사건을 '신성한 승리'로 평가하며 승리를 자축했으며 이세계신을 따르던 신흥 종교들은 발칵 뒤집혔다. 그리고 208년 6월, 최고관리기구는 이세계년의 창안 근거를 세계유산기구 측 기준으로 수정함과 동시에 기존의 창안 근거가 공식적으로 사멸되었음을 선언, 16년 3개월에 걸친 논쟁이 마무리되었다.
 
208년 6월, 최고관리기구의 결정에 따라 최종적으로 이세계년의 창안 근거를 수정함과 동시에 기존의 창안 근거가 사멸하게 되어, 16년 3개월에 걸친 논쟁이 마무리되었다.


== 각주 ==
== 각주 ==

2022년 7월 26일 (화) 20:13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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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이세계년(Year of Isekai, Isekai Year, IY)어나더어스의 기년법으로, 만국 공통 연호로 쓰이고 있다. 서력기원인 1800년을 원년으로 하며, 다른 역법과 마찬가지로 0년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세계년은 이세계신의 존재와 어나더어스의 창조에 기원하여, 1800년을 '첫 문명의 해'라 불렀기에 한 때 기년법의 창안 근거로 제시되었으나, 후술할 사건으로 이클리우시아의 부족장이 창안했다는 사실을 그 근거로 하고 있다. 서력기원과는 달리 연(年)과 월(月)로 표기하기 때문에 'IY (연) (월)'로 표기하며 따라서 2022년 7월은 IY 222년 7월이다.

창안설에 대한 논쟁

한편 이세계년 창안설(創案說)을 두고, 두 종교인 알레피아교신성교가 맞붙었던 사건이 있다. 바로 알레피아교 대 신성교(Allepia vs Holy Religion)인데, 알레피아교의 발언이 문제가 된 192년 3월부터 최종 종결된 208년 6월까지 약 16년 3개월에 걸쳐 일어난 종교계 역사상 최대의 사건으로 불리고 있다.

192년 2월, 이세계신을 유일신으로 삼는 아스피아계 신흥 종교인 알레피아교의 당시 교주인 ■■■은 이세계년 창안설에 대한 강의에서 이세계년을 만국 공통 연호이자 우리 행성의 창조와 함께 나타난 유일한 연호라고 정의하였고 "태초에 이세계신이 나타나서 지구가 태어나자마자 나도 한번 세계를 만들어 봐야겠다 하여 우리 행성을 만드셨고, 이세계신이 15세기에 죽었으니 이를 기리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닐까"라며 "이세계신에 의한 창안설"을 설명했다.

이에 신성교알렉스 도너반 총회장은 알레피아교의 주장을 반박[1]하여 이세계신과의 연관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에 알레피아교는 이세계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단이나 하는 짓'이라 규정하고, 종교로서의 명예를 훼손시켰다는 이유로 같은 해 10월 이클리우스에서 신성교에 대한 고소장을 지방경찰에 제출하였다.

연방대법원 측은 11월에 진행된 재판에서 신성교의 주장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따르고 있는 가설을 정면으로 무시함에도 불구하고, 허구로 보기에는 어렵다고 판단해 신성교의 승소로 끝났으나, 신성교의 요청으로 최고관리기구 산하 세계유산기구와 이클리우스 정부 간의 공동 사료 조사를 추진하기로 했다. 본래 세계유산기구와 정부는 문서 1,440장과 서적 115권을 대상으로 한 사료 조사를 193년 10월로 타결하였었는데, 당시 총리였던 마이클 페터의 죽음으로 조기 총선과 겹쳐 끝내 시행하지 못하였다.

그 후 199년 5월 스콧 필러 총리가 신성교를 방문해 이세계신에 대한 인식을 고쳐야 한다는 발언으로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고, 200년 1월 최고관리기구 측에서 이클리우스 정부와의 요청을 받아들여 공식적으로 공동 사료 조사가 시작되었다. 공동 사료 조사는 약 4년 동안 이뤄졌는데, 이 과정에서 일부 종교 단체의 방해가 일어나는 등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204년 8월, 최고관리기구 측은 브리핑을 통해 이세계신에 의한 창안설이 이세계년과 연관되지 않는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여기에 이세계신의 실존성에 대해서는 허구의 신으로 밝혀지면서 그동안 이세계신의 실존을 주장하던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충격을 받았고, 이번 사건을 종결시킬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으로 남게 되었다.

206년 9월, 세계유산기구는 이클리우시아의 어느 부족장이 문명의 시작을 알리기 위해 이세계년을 만들었다는 새로운 창안 근거를 제시하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사료들이 공개되면서, 이세계신 창안설은 더욱 신뢰성을 잃게 되었다. 신성교 측은 이 사건을 '신성한 승리'로 평가하며 승리를 자축했으며 이세계신을 따르던 신흥 종교들은 발칵 뒤집혔다. 그리고 208년 6월, 최고관리기구는 이세계년의 창안 근거를 세계유산기구 측 기준으로 수정함과 동시에 기존의 창안 근거가 공식적으로 사멸되었음을 선언, 16년 3개월에 걸친 논쟁이 마무리되었다.

각주

< 각주 보기 >
  1. 신성교가 발표한 보고서의 내용은 "이세계년 창안설이 이세계신의 존재와 성립하는가?"라는 내용이었는데 당시 알렉스 총회장의 말을 빌리자면, 먼저 이세계신은 《이세계 신화》에 등장하는 허구의 신으로 존재할 뿐, 실제로는 존재 자체가 없다고 하며, 따라서 누군가가 지어낸 소문이거나 사이비 종교에서 만들어낸 유언비어로 보고 있다고 한다. 즉, 결론적으로 이세계신은 허구의 신이고, 당시 수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던 '창안 근거 = 이세계신 창안설'이라는 결과의 성립은 거짓이 된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