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중 하나의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관리자. 문서를 고치려면 이메일 인증 절차가 필요합니다. 사용자 환경 설정에서 이메일 주소를 입력하고 이메일 주소 인증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실용}} {{키탄 국가 개황}} {{요나라}} {{군인 정보 |이름=이해고(李楷固) |생애= |그림= |설명= |별명= |그림= |태어난 곳=[[거란]] |죽은 곳= ? |복무=[[거란]] , [[당나라]] |복무 기간= ? ~ [[705년]] |최종 계급=우옥검위대장군(右玉鈐衛大將軍) |부대= |지휘= |주요 참전 전투/전쟁= [[천문령 전투]] |서훈 내역= |기타 이력=[[당나라]] 장군 }} == 개요 == <youtube>hN57DCDi1UU&t=5s</youtube> '''[[요국]]의 시호영웅이자 태조 시황제'''<br/> '''이해고'''(Li Kaigu , 李楷固, ? ~ ?)는 [[거란족]] 무상가한 [[이진충]]의 [[양자]]였다가 [[당나라]] 장수가 된 [[거란족]] 출신 인물이다. [[이진충]]이 죽자 [[당나라]]에 항복하였고 [[대조영]]을 토벌하라는 [[측천무후]]의 명을 받아 [[당나라]]의 '''우옥검위대장군'''(右玉鈐衛大將軍) 과 '''연공'''(燕公)의 직위까지 오른 인물이다.<ref> http://news20.busan.com/controller/newsController.jsp?newsId=20070120000159 </ref> [[700년]]부터 [[705년]]까지 [[무주]] 황제 [[측천무후]]의 신임을 받아 측천무후의 성씨인 무씨 성을 하사받고 성을 바꿔 '''[[무해고]]'''(武楷固)라 하기도 하였다. == 생애 == 원래 [[이진충]]의 양자로 그의 부하가 되었다. [[696년]], [[거란]]의 [[이진충]]과 그 처남 [[손만영]]이 [[무주 (당나라)|무주국]]([[측천무후]]가 황위에 있을 당시 국호; 주나라)의 폭압에 항거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이해고는 이 당시 [[거란족]] 무상가한 [[이진충]]의 수하 장수였다. 696년 8월에 황장곡에서 당나라의 군사를 상대해 당나라 장수 장현우와 [[마인절]]을 올가미로 씌어 사로잡았으며 손만영이 죽자 당나라에 항복했다. [[697년]]에 [[이진충]]이 사망하고 [[손만영]]이 피살되었다. 이후 당나라 신병도총관 양현기에게 패해 이해고와 수하 장수 낙무정(駱務整)은 [[측천무후]]에게 항복했다. 처음에 [[무주 (당나라)|무주]]에서는 이해고와 낙무정을 죽이려 했으나 [[당나라의 재상|재상]] [[적인걸]]이 [[측천무후]]를 설득해 그들을 자기 휘하의 장수로 삼았다. [[698년]]에 이해고는 옥검위대장군에 임명되어 측천무후의 명으로 12만 대군을 일으켜 [[손만영]]과 [[이진충]]의 반란을 틈타 [[영주 (중국)|영주]]를 탈출한 [[대조영]]의 세력을 쫒아 [[천문령 전투]]에서 중랑장 섹구(索仇)와 함께 [[백산말갈]] 족장 [[걸사비우]]와 [[대조영]]의 아버지 [[걸걸중상|대중상]]을 죽였다. 그러나 [[천문령 전투]]에서 [[대조영]] 부대를 추격해오다 영주도(營州道)의 길목에서 매복해있던 [[대조영]]에게 군사들을 거의 잃고 패배하였다. <ref> http://news20.busan.com/controller/newsController.jsp?newsId=20070120000159 </ref> 이후 이해고는 여전히 [[무주]]에 저항하고 있던 [[거란]] 백성들을 진압하고 연공의 위에 올라 무씨 성을 하사받았다. 하지만 [[705년]]에 [[당 중종]]이 복위되어 다시 국호가 [[당나라]]로 회복되자 이해고는 무씨 성을 버렸다. 이해고가 언제 죽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 [[천문령 전투]] == 천문령 전투(天門嶺戰鬪) 또는 천문령 대첩(天門嶺大捷)은 698년, 고왕 대조영(大祚榮)과 당(唐) 왕조 하의 거란족(契丹) 장수 이해고(李楷固) 간에 벌어진 전투이다. 신라(新羅)와 당의 연합군 (나당 연합군) 에 의해 고구려 (高句麗)가 멸망한 후, 대조영은 부친 걸걸중상(乞乞仲象)을 따라 당의 영주(營州)로 들어갔다. 696년 5월, 거란의 이진충 (李盡忠)과 손만영 (孫萬榮)이 당 왕조에 반란을 일으켜 혼란이 일어난 틈을 타, 걸걸중상과 말갈 (靺鞨) 추장 걸사비우 (乞四比羽)는 봉기하려는 준비를 했고, 측천무후 (則天武后)의 유화 정책에도 불구하고 고구려가 지난 날 통치했던 영토의 동쪽에 세력을 일으켰다. 당나라가 이해고를 보내 추격시켜 전투가 벌어졌고, 걸사비우와 대걸걸중상은 이때 전사하였다. 대조영은 말갈족과 고구려 출신의 인물들로 구성된 걸사비우와 걸걸중상의 세력을 규합하여 당군에 대항하였다. 대조영은 천문령에서 당나라 군대를 격파하였고 발해를 건국할 기반을 닦게 되었다. 698년, 대조영은 오늘날 지린성 (吉林城)에 있는 동모산 아래에서 진을 세웠다. == 참고 == * [[거란]] ** [[이진충]] ([[660년]] ~ [[696년]]) ** [[손만영]] ([[696년]] ~ [[697년]]) * [[발해]] ** [[대조영]] ** [[걸걸중상]] ** [[걸사비우]] * [[당나라]] ** [[측천무후]] ** [[마인절]] ** [[적인걸]] == 이해고가 등장한 작품 == * 《[[대조영 (드라마)|대조영]]》([[KBS]], [[2006년]]~[[2007년]], 배우 : [[정보석]]) == 외부자료 == {{요 황제}} [[분류:생몰년 미상]] [[분류:당나라의 군인]] [[분류:거란]] [[분류:발해 고왕]] {{토막글|중국사|군인}} 이해고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