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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 (신질서의 황혼)|일본]]에서 1990년부터 1997년까지 존재했던 정당. 공영권 붕괴와 대정익찬회 해체를 거쳐 당시 총리이던 [[가네무라 슌에이]]가 민주화 선언 후 구 익찬회의 보수본류 세력을 통하여 창당하였다.
[[일본국 (신질서의 황혼)|일본]]에서 1990년부터 1997년까지 존재했던 정당. 공영권 붕괴와 대정익찬회 해체를 거쳐 당시 총리이던 [[가네무라 슌에이]]가 민주화 선언 후 구 익찬회의 보수본류 세력을 통하여 창당하였다.


익찬체제 붕괴 이후 보수합동으로 자민당을 창당해 해당할 때까지 7년간 존재했다. 존속 기간 동안 줄곧 여당이었고, 1997년 제43회 중원선에서 [[반미투쟁]]의 여파로<ref>[[일미태평양평화조약]]이 발단이었다.</ref> 제2당으로 밀려났던 말미의 잠깐을 제외하고 중의원,참의원 최대 회파이자 제1당이었다. 다만 연립여당과 무소속 공인을 제외하고 단독 과반을 확보한 적은 없었다.  
익찬체제 붕괴 이후 보수합동으로 자민당을 창당해 해당할 때까지 7년간 존재했다. 존속 기간 동안 줄곧 여당이었고, 1997년 제43회 중원선에서 [[반미투쟁]]의 여파로<ref>[[일미태평양평화조약]]이 발단이었다.</ref> 제2당으로 밀려났던 말미의 잠깐을 제외하고 중의원,참의원 최대 회파이자 제1당이었다. 다만 연립여당과 무소속 공인을 제외하고 중의원 단독 과반을 확보한 적은 없었다.  


[[일본국민당]]과 함께 자민당의 양대 전신으로서 현재 일본의 정치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 당이다. 총리는 [[가네무라 슌에이]], [[가네무라 고스케]], [[하시모토 류타로]] 등 3인을 연이어 배출하였다.
[[일본국민당]]과 함께 자민당의 양대 전신으로서 현재 일본의 정치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 당이다. 총리는 [[가네무라 슌에이]], [[가네무라 고스케]], [[하시모토 류타로]] 등 3인을 연이어 배출하였다.

2024년 2월 18일 (일) 00:38 판

Destiny634, 2024 - | CC-0


일본의 보수정당
대정익찬회
(개별 합류)
일본자유당 자유민주당
(보수합동)
동방회
(개별 합류)
일본자유당
日本自由党
등록 약칭 자유(自由)
영문 명칭 Liberal Party of Japan (LPOJ)
슬로건 国民と共にする輝かしい未来。
국민과 함께하는 빛나는 미래.
창당 1990년 8월 27일
해당 1997년 11월 22일보수합동, 자유민주당으로 합당
총재 하시모토 류타로 / 9선 (37~45대)
부총재 우모리 아이토라 / 9선 (40~48대)
간사장 아키야마 미아 / 8선 (41~48대)
이념 내셔널리즘
천황제 민주주의
집단주의
스펙트럼 중도우파 ~ 우파[1]
참의원 127석[2] / 384석 (33.1%)
중의원 204석[3] / 650석 (31.4%)
당색 하늘색 (#33BDF2)
노란색 (#FBC108)
당원 수 4,359,735명 (1997년 11월, 해산 시)
국제조직 국제민주연합
홈페이지
SNS | |

1997.11.22 기준

개요

일본에서 1990년부터 1997년까지 존재했던 정당. 공영권 붕괴와 대정익찬회 해체를 거쳐 당시 총리이던 가네무라 슌에이가 민주화 선언 후 구 익찬회의 보수본류 세력을 통하여 창당하였다.

익찬체제 붕괴 이후 보수합동으로 자민당을 창당해 해당할 때까지 7년간 존재했다. 존속 기간 동안 줄곧 여당이었고, 1997년 제43회 중원선에서 반미투쟁의 여파로[4] 제2당으로 밀려났던 말미의 잠깐을 제외하고 중의원,참의원 최대 회파이자 제1당이었다. 다만 연립여당과 무소속 공인을 제외하고 중의원 단독 과반을 확보한 적은 없었다.

일본국민당과 함께 자민당의 양대 전신으로서 현재 일본의 정치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 당이다. 총리는 가네무라 슌에이, 가네무라 고스케, 하시모토 류타로 등 3인을 연이어 배출하였다.

1997년, 43회 중원선에서 민정당이 제1당에 오르자 국민당과 민정당 견제를 위하여 통합, 보수합동을 통해 현 일본 자민당이 되었다.

현재도 자민당 내에 그 흔적은 남았다. 친미성향의 보수본류 자민당 파벌은 대체로 자유당계에서 출발하였으며, 국민당계인 반미성향의 보수방류와 결이 약간 다른 모습을 보이고있다.

  1. 강성 우파는 상당수가 일본국민당에 있었다. 이후 보수합동 이후에는 극우까지 스펙트럼이 확장된다.
  2. 지역구 106석, 비례대표 21석
  3. 지역구 173석, 비례대표 31석
  4. 일미태평양평화조약이 발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