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경제정보
인구 2억 1,976만 명 2023년
경제규모(명목) 17조 4,981억 달러 2023년
GDP 성장률 2.22% 2023년
무역규모 3조 4,915억 달러 2023년
1인당 명목 GDP 79,625 달러 2023년
GDP 대비 공공부채 비율 53.69% 2023년
고용률 77.53% 2023년


일본은 명목 GDP가 세계 2위인[1] 경제대국으로 PPP 세계 2위[2], 외환보유고 세계 1위[3], 대외순자산 규모 세계 1위, 무역 규모 세계 2위[4], 주식시장 규모 세계 2위[5], IMF 투표권 세계 2위[6] 국가이다. 또한 일본은 OECD의 가입국이자 아시아 최초의 G8 회원국[7]이다. 단순히 나열한 지표를 보면 알겠지만 각종 경제지표에서 항상 미국과 1-2위를 다투는 나라이다. 다만 영토 면적, 인구, 천연자원 등 지리적 문제로 거시적 규모면에서 2000년대 이후 부터는 경쟁자라고 보기는 어려워졌다. 그러나 1980년대와 90년대 일본의 경제적 위상은 미국에서 공공연히 위협으로 작용했을 정도로 높았다. 그 유명한 스타워즈의 "제국의 역습" 역시 당시 일본의 미국 자본시장 습격으로 미국 정치권이 술렁이던 때에 나와 일본에 대한 공포감을 조성했을 정도다.[8]

어찌되었건 일본 엔화는 미국 달러를 제외하면 가장 신용이 높은 화폐로 안전자산으로 활용된다.[9]

주요 기업

순위 기업 시가총액 (USD) 산업
1 AIM 3조 5,269억 반도체
2 덴큐 2조 9,058억 전자
3 코페르니쿠스 2조 6,163억 IT
4 도쿄제일은행 1조 665억 금융
5 시노미야 자동차 5,993억 자동차
6 시노미야 전기 5,318억 전자
7 일본원자력발전 1,718억 에너지
8 사와무라 파이낸셜 1,614억 금융
9 신에쓰 화학공업 1,579억 화학
10 키리사키 광학 1,514억 반도체
11 스즈츠키 통신 1,444억 통신
12 아카츠 항공우주 1,236억 항공기
13 야오요로즈 1,067억 소비재
14 사와무라 생명 1,066억 보험
15 SDDI 1,053억 통신
16 시다레 약품공업 1,040억 제약
17 시노미야 상사 1,039억 무역
18 사와무라 잡기집단 1,009억 IT
19 스즈츠키 은행 994억 금융
20 타카나시 제작소 991억 기계
2023년 12월 기준

세계 최초로 1조 달러를 달성한 기업 열세 곳 중 다섯 곳이 일본 기업이다. 그 중 하나는 주식회사 아가스로 2021년 달성했지만 2022년 소드 아트 온라인 사태로 주가가 폭락, 이후 렉토시스템에 인수되며 자취를 감췄다.

역사

1인당 GDP 및 엔달러 환율 추이 (1970~2023년)
연도 1인당 국민소득
천 엔
미국 달러 환율 명목 1인당 GDP
1950         109 ¥ 361.10 $     301.86
1951         114 ¥ 361.10 $     315.70
1952         119 ¥ 361.10 $     329.55
1953         125 ¥ 360.00 $     347.22
1954         134 ¥ 360.00 $     372.22
1955         141 ¥ 360.00 $     391.67
1956         156 ¥ 360.00 $     433.33
1957         170 ¥ 360.00 $     472.22
1958         184 ¥ 360.00 $     511.11
1959         202 ¥ 360.00 $     561.11
1960         235 ¥ 360.00 $     652.78
1961         267 ¥ 360.00 $     741.67
1962         298 ¥ 360.00 $     827.78
1963         324 ¥ 360.00 $     900.00
1964         376 ¥ 360.00 $   1,044.44
1965         432 ¥ 360.00 $   1,200.00
1966         497 ¥ 360.00 $   1,380.56
1967         571 ¥ 360.00 $   1,586.11
1968         651 ¥ 360.00 $   1,808.33
1969         700 ¥ 360.00 $   1,944.44
1970         755 ¥ 357.70 $   2,110.71
1971         810 ¥ 314.80 $   2,573.06
1972         959 ¥ 302.00 $   3,175.50
1973       1,111 ¥ 280.00 $   3,967.86
1974       1,219 ¥ 301.00 $   4,049.83
1975       1,354 ¥ 305.20 $   4,436.44
1976       1,454 ¥ 292.80 $   4,965.85
1977       1,661 ¥ 240.00 $   6,920.83
1978       1,795 ¥ 194.60 $   9,224.05
1979       1,994 ¥ 239.70 $   8,318.73
1980       2,190 ¥ 202.90 $   10,793.49
1981       2,332 ¥ 219.60 $   10,619.31
1982       2,434 ¥ 233.90 $   10,406.16
1983       2,526 ¥ 231.50 $   10,911.45
1984       2,661 ¥ 250.30 $   10,631.24
1985       2,818 ¥ 200.10 $   14,082.96
1986       2,943 ¥ 160.00 $   18,393.75
1987       3,063 ¥ 123.40 $   24,821.72
1988       3,277 ¥ 124.90 $   26,236.99
1989       3,495 ¥ 144.00 $   24,270.83
1990       3,749 ¥ 134.60 $   27,852.90
1991       3,975 ¥ 125.30 $   31,723.86
1992       4,061 ¥ 124.60 $   32,592.30
1993       4,250 ¥ 111.90 $   37,980.34
1994       4,383 ¥   99.80 $   43,917.84
1995       4,458 ¥ 103.80 $   42,947.98
1996       4,560 ¥ 116.20 $   39,242.69
1997       4,713 ¥ 130.10 $   36,225.98
1998       4,846 ¥ 114.70 $   42,249.35
1999       4,971 ¥ 102.10 $   48,687.56
2000       5,121 ¥ 104.40 $   49,051.72
2001       5,181 ¥ 121.40 $   42,677.10
2002       5,316 ¥ 108.60 $   48,950.28
2003       5,405 ¥   96.90 $   55,779.15
2004       5,444 ¥   92.50 $   58,854.05
2005       5,468 ¥   97.80 $   55,910.02
2006       5,589 ¥   98.70 $   56,626.14
2007       5,612 ¥   93.00 $   60,344.09
2008       5,633 ¥   90.20 $   62,450.11
2009       5,680 ¥   92.10 $   61,672.10
2010       5,762 ¥   91.40 $   63,041.58
2011       5,891 ¥   97.80 $   60,235.17
2012       6,123 ¥   96.50 $   63,450.78
2013       6,295 ¥   95.30 $   66,054.56
2014       6,481 ¥ 100.30 $   64,616.15
2015       6,631 ¥ 100.40 $   66,045.82
2016       6,787 ¥   96.60 $   70,258.80
2017       6,863 ¥   92.80 $   73,954.74
2018       6,900 ¥   90.60 $   76,158.94
2019       6,920 ¥   89.10 $   77,665.54
2020       6,985 ¥   91.80 $   76,089.32
2021       7,085 ¥   89.80 $   78,897.55
2022       7,151 ¥   91.50 $   78,153.01
2023       7,222 ¥   90.70 $   79,625.14

1950년대

태평양 전쟁 이후 일본은 패전국임에도 불구하고 큰 제재를 받지 않았다. 당장 국제정세는 미소 대결로 인한 냉전으로 얼어붙었는데,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며 마무리되지 않은 일본 문제에 대해 미국이 더 신경쓰고 있을 틈이 없었기 때문이다.[10] 때문에 미국은 일본과 도쿄 선언을 통해 급하게 전쟁을 마무리한다.[11] 특히 미국은 전선의 재설정을 위해 열강 식민지들의 일시적인 관리를[12] 패전국인 일본에 요구했을 정도로 40년대 말에서 50년대 초의 국제정세는 불안했다. 게다가 일본은 각종 공습으로 파괴되었지만 여전히 강력한 산업기반과 연구단지를 가지고 있었고, 미국은 1951년 전까지 이들을 모조리 망가트려 농업국가로 전환시키려 했지만 예상과 달리 제2일본제국의 규모가 크자 이런 시도를 취하지 않았다.[13]

결과적으로 일본은 패전국이지만 미국의 아시아 공산화를 막을 방파제로 순식간에 역할이 전환되었다. 일본은 전쟁 이전부터 선진 공업국이었고 전쟁으로 인해 망가진 경제로 저렴한 인건비와 풍부한 노동력, 그럼에도 불구하고 높은 노동자 생산성을 무기로 자신들이 맞서던 미국과 서유럽에 공격적인 수출을 실시했다. 서유럽이 미국에 의한 마셜 플랜으로 전후 복구를 진행하고 있을 때, 일본은 이러한 자금이 전혀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전쟁 전의 경제수준으로 복귀했다. 게다가 일본은 자발적으로 벌어들인 자금 일부를 서유럽에 무상으로 원조하는 등 냉전에서 완전히 1세계에 서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에 미국은 일본에 대한 경제제재를 완전히 해제하고, 앞으로 경제제재를 가할 생각이 없다고 천명했다.

또 미국은 한국전쟁을 치르면서 혼자서 전세계에서 공산주의에 맞설 병력이나 자금을 준비할 수 없음을 실감했다.[14] 한국전쟁에 잠깐 발을 들인 것 만으로 미국내에서는 염전도가 급격히 상승, 민주당 트루먼 정부의 지지율이 급락했다. 미국은 적어도 아시아에서 미국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 친구가 필요했고, 일본은 이러한 조건에 딱 맞는 나라였다. 국내적으로 일본 내의 자이바츠들은 축적된 자본을 재투자해 무역장벽의 건설, 기술과 경영 혁신 주도를 통해 1950년대 후반 아시아 제1의 경제대국의 지위에 복귀했다.

1960년대

1960년 일본의 1인당 GDP는 625달러였지만, 미국 3,007달러의 5분의 1 수준이었고 세계 평균 459달러에 비해서도 그렇게 높은 수준은 아니었다. 일본 경제가 전쟁 전으로 빠르게 복귀했다고는 하지만 애초에 일본의 경제력은 전쟁 전에도 중진국 수준이었다. 물론 아시아에서는 가장 잘 사는 나라였기 때문에 제트 여객기와 컬러 TV를 도입하는 등 재건이 끝났음을 과시했지만, 영국과 프랑스 같은 구주 선진국들의 경제 규모도 추월하지 못한 아시아 한정 여포였다.

그러나 60년대 중반 이후 일본은 비관세 장벽과 기술혁신, 통상성을 중심으로 하는 관료주도 경제유도, 냉전으로 인해 일본에게 유리하게 전개되는 국제정세 등에 힘입어 무역에서 큰 돈을 벌어들이게 되었고, 1965년에는 이미 영국과 프랑스를 추월한 뒤였다. 1964년에는 OECD를 가입했으며, 동해 10월 1일 세계 최초의 고속철도인 신칸센이 개통하고 도쿄 올림픽을 개최하는 등 일본의 재부상을 세계에 알렸다. 1965년 일본의 1인당 GDP는 무려 1,200달러로 세계 평균인 561달러를 두 배 이상 앞서는 수준이었다. 물론 미국의 3,574달러에는 한참 못미치는 수치였다.

일본의 재부상에 기존 연합국들에서는 일본에 대한 단죄 여론이 고개를 드는 등 굉장한 압력을 받았지만, MITI의 현란한 무역외교 덕에 일본은 질시와 비난에도 크게 성장을 거듭해 60년대 후반 서독을 제쳤다. 1970년 일본의 1인당 GDP는 2,110달러로 702달러 수준인 세계 평균의 3배를 기록하며 급속도로 선진국의 반열에 올랐고, 미국의 4,696달러의 2분의 1에 조금 못미치는 수준을 달성했다.

1970년대

일본은 1970년대 통상산업성의 주도로 자동차와 전자공학 산업을 적극적으로 밀어주기 시작했으며, 상대적으로 가치가 떨어지는 산업들에 할당하는 신용을 줄이며 산업구조 개편을 단행했다. 특히 자동차 산업으로의 적극적인 개편과 지원은 1-2차 오일쇼크를 지나며 일본차 경쟁력을 높여주었다.[15] 일본은 1970년 아시아 최초로 보잉 747기를 도입했고, 아시아 최초로 맥도날드가 입점했으며 오사카 엑스포를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부의 편중이 문제가 되던 1960년대도 있었지만 1970년대에 와서는 일반 서민들의 경제적 수준이 큰 폭으로 향상되었다. 국민 대다수가 2층 단독주택에 자가용을 끌고 다닐 수 있었다. 1960년대에 보급이 시작된 컬러 TV도 이 때에 와서는 전 가정으로 확산되었을 정도로 경제 사정이 나아졌다. 당시 산업자동화의 큰 축이었던 컴퓨터 공작기계를 시노미야 전산이 국산화하는 것에 성공해 일본 산업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16]

1980년 일본의 1인당 GDP는 10,793달러로 세계 평균인 2,860달러와의 격차를 3배 이상 유지하는데 성공했다. 중요한 사실은 미국은 12,575달러로 일본의 국민소득 수준이 미국의 턱밑까지 쫓아왔다는 것이다. 일본의 급성장, 일본이 미국을 넘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은 미국인들에게 충격으로 다가갔다.

1980년대

1980년 이후 일본의 출산율은 감소해 2명대가 깨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80년대 내내 4~7%의 안정적인 성장률[17]은 보였다. 레이건 행정부의 대외무역 적자 해소를 위한 전방위적인 압박 중 하나인 플라자 합의로 엔달러 환율이 폭락[18], 이 때문에 달러표시 1인당 GDP가 급등해 1980년 10,793달러에서 1987년 24,822달러로 7년만에 두 배 이상 상승했으며, 동시에 1인당 국민소득이 미국을 제쳤다. 이후 현재까지 일본의 1인당 국민소득은 미국에 한 번도 뒤쳐지지 않았다.

에즈라 보겔 교수는 "Japan as No.1"이라는 책을 발간했고, 이 책은 순식간에 미국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렸다. 사회적, 문화적으로 일본을 경계하면서도 무서워하는 분위기가 팽배했기 때문에 당시 미국 사회의 일본에 대한 여론은 경외감에 가까웠다. 지금 미국에서 고급으로 취급받는 와규나 스시 등의 문화가 유행하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이다. 당연하게도 국제적으로 일본은 비관세장벽의 철폐를 기반으로 하는 통상개방 압력을 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벌어진 1986년 반도체 위기는 1세계내에서 직접적으로 벌어진 통상 마찰이었다. 미국은 일본의 관료주도, 지도형 산업육성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일본 반도체 업체 상품 수입을 제한하였다.[19] 물론 이러한 위기는 금방 지나갔으며, 미국으로의 수출이 막힌 일본 반도체 기업들은 미국외 시장에 저가 공세를 펴기 시작했다.[20] 결국 1세계 반도체 시장 자체의 붕괴를[21] 염려한 미국이 일본 반도체 기업들이 미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도산에 대해 공격적 인수를 금지하는 선에서 협정이 체결되는데, 이것이 87년 미일 반도체 협정이다.

일본이 80년대 미국의 견제와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흘려 넘길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전후 40년 가까이에 걸친 성공이 가격경쟁력이 다소 떨어지는 정도로는 붕괴되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환율이 폭락한 후 일본의 대외 수출액의 감소가 존재한 것은 사실이지만, 감소 규모가 수출 상품의 가격이 두 배가 된 것에 비해 적었다. 물론 완전히 일본이 이런 경향을 무시하고 고도성장을 달성했다고 보기는 어렵고, 어느정도 일본의 성장률을 낮추는데 성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1990년 27,853달러를 기록해 세계 평균인 4,700달러를 5배를 넘겼고, 미국 1인당 GDP의 23,889달러를 1.17배 넘으며 80년대를 마무리해 80년대는 일본의 시대였음을 과시했다. 또 이시기 70년대 오일쇼크 당시 화력발전 비중을 줄이기 위해 적극적으로 건설되던 원전이 완공되고 가동을 시작하면서 전체 전력 수급의 60% 이상을 원자력에 의존하게 되었다.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

2020년대

각주

  1. 1위 미국 25.8조 달러
  2. 1위 미국
  3. 여기서 외환이란 대부분 미국 달러를 의미하기 때문에 미국의 외환보유고 순위는 낮은 편이다.
  4. 1위 미국 4조 6880억 달러
  5. 1위 미국
  6. 1위 미국
  7. 한국이 2014년 가입하면서 유일한 회원국은 아니게 되었다.
  8. economic pearl harbor 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또 이 때를 기점으로 미국 학계에서 일본이 자유시장과 민주주의를 통해 발전했다는 시장학파의 세가 꺾였으며, 일본이 경제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으로 경제 전쟁을 치루고 있다고 주장하는 수정주의학파가 급부상했다. 일본에 대한 플라자 합의 역시 이러한 공포 분위기 속에서 나왔다.
  9. 미국 달러, 일본 엔, 유로는 모두 세계 경제가 위기에 가까워지면 가치가 급등한다.
  10. 일본은 1945년 오가사와라 해전에서의 패배 이후 항복했지만, 연합함대가 항복에 불복하여 일본의 식민지로 이루어진 제2일본제국을 구성, 연합군의 식민지 진주를 방해하며 해상에서는 노략질을, 육상에서는 게릴라전을 펼치고 있었다. 도쿄 선언이 나온 1951년까지 6년이나 연합군이 이들을 궤멸시키려고 시도했지만 이미 연합국 본국은 전쟁이 끝났다는 분위기가 팽배해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병영 내의 사기도 박살난 상태였다.
  11. 침략전쟁에 사용된 네임드 함들의 미국에 의한 수장, 전쟁 기간 일본이 획득한 의료 기술 등의 무조건 양도, 전쟁 중인 한국에 무상차관을 지원하고 전후 쌓여있는 무기들을 지원할 것, 위와 같은 내용을 히로히토 천황이 황궁에서 발표할 것 등이 포함되었다.
  12.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 등 원래 식민제국들이 행정력을 복구하기 전까지
  13. 미국에서 전쟁물자나 보급을 가져오는 것보다 당연히 항복한 일본 본토에서 생산해 전방에 보급하는 것이 유리했기 때문이다.
  14. 트루먼은 일본군의 한국전쟁 참전을 요구했지만, 이승만의 강력한 반대로 실제로 이뤄지지는 않았다.
  15. 일본의 소형차, 고연비 중심 개발이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기 충분하고도 남았다.
  16. 미국은 40년대 말에 일본에 대한 경제제재를 완전히 해제했다고 선언했지만 사실 물밑에서 일본 산업에 대한 견제나, 일본 경제에 대한 통제권을 쥐기 위해서 계속해서 노력해왔다. 그 중 하나가 산업 핵심기술의 절대보안이었다. 이런 미국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20년만에 일본에서 CNC의 자체양산에 성공하면서 미국의 이런 조치는 오히려 MITI가 많은 기술들을 국산화하려고 하는 시작을 끊었다고 평가받는다.
  17. 엔화기준 실질성장률
  18. 1984년 달러당 250.3엔에서 1987년 123.4엔으로 엔화가치가 두 배 이상 절상되었다.
  19. 일본 반도체 기업들의 수직적 계열화의 완성, 공정의 배타성, 그로 인한 규모의 경제의 실현이 초과공급을 불러왔고 86년 미국 반도체 기업들은 수익성 악화를 버티지 못하고 무너지기 시작했다. 미국이 국내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조치를 취한 것
  20. 3대 메가뱅크를 중심으로 정부의 지급보증아래 반도체 기업들은 자금지원을 받고 있었고, 이 당시 일본의 경제력은 미국의 70.3%였기 때문에 셀 수 없는 손실을 보더라도 문제가 없는 사실상 무제한 잔고라고 봐야했다.
  21. 1세계에서 반도체를 생산하는 나라는 미국, 일본, 네덜란드 정도인데 일본이 미국을 제외한 전세계에서 염가공세를 하니 결국 미국 반도체만 소외되는 결과를 낳았음을 6개월도 되지 않아 확인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