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센
Sachen
Saxony
작센 왕국
Königreich Sachen

1806년현재
국가 신이시여 작센을 축복하소서
Gott segne Sachsenland
면적 39,751km2
국왕
1806년 - 1827년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1세
1827년 - 1836년 안톤
1836년 - 1854년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2세
1854년 - 1873년 요한 1세
1873년 - 1902년 알브레히트 1세
1902년 - 1904년 게오르크 1세
1904년 - 1932년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3세
1932년 - 1943년 게오르크 2세
1943년 - 1968년 프리드리히 1세
1968년 - 2012년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4세
왕국수상
2027.8~ 프란츠 레이폴트 폰 케이스
왕국부수상
2027.8~ 고르덴 람베크
역사 - 건국 1806년
- 독일 연방 해체 1919년 10월 12일
- 작센-바이에른 동맹 체결 2028년 3월 20일

인문 환경


인구 전체 인구 9,584,442명 (2027년)
민족 구성 독일인 92.6 %
기타 7.4%
인구 밀도 241.11명/km2
공용어 독일어
공용 문자 라틴 문자
문해율 89.8(2027년)
종교 루터교 85.7%
기타 14.3%
군대 작센군
세부
군대
육군 작센 육군
공군 작센 공군
기타 작센 국가헌병대

하위 행정구역


행정
구역
7개의 현
73개의 군

정치


정치 체제 입헌군주제 의원내각제(양원제) 단일 국가 다당제 소선거구제 정교분리 성문법주의(대륙법계)
입법부 작센 왕국의회
국가
원수
국왕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5세
정부
요인
시정관 안센 폰 엘벤-메리프
수상 프란츠 레이폴트 폰 케이스
부수상 고르덴 람베크
귀족원 의장 요한 크리스토프 폰 리멘스베르거
귀족원 부의장 페르디난트 아토네 폰 라우렌
평민원 의장 아우스틴 페란
평민원 부의장 라우렌시 팔레
대법원장 프리드리히 폰 아수츠
외무성 외정관 샤크로틴 트리폴리
내무성 내정관 마라고트 폰 엘리몬
법무정의부 장관 알렉산더 폰 투프
재정부 장관 요제프 페르디난트
군사방위부 장관 트레이팅 폰 파츠
근로부 장관 지크스 소르텡
식량부 장관 트라마닌 폰 파리크
보건부 장관 볼레트 폰 라시츠
사회복지부 장관 크라마 폰 제크
건설교통부 장관 베르테온 폰 로만트
국가정보부 장관 엘포트 폰 마이센
교육부 장관 아카디온 칼렌더
환경부 장관 바오로 폰 베르틴
연립 여당 국왕당-기독교민주연합-사회민주당

경제


경제 체제 혼합경제
명목
GDP
전체 GDP 4015억 $
1인당 GDP $ 41,898
화폐 공식화폐 작센 마르크 (SXM)

코드와 단위


ccTLD .sxn
국가 코드 SXN
단위 법정연호 서력 기원
시간대 SST(UTC+1)
도량형 SI 단위
날짜형식 DD-MM-YYYY
운전석
(통행방향)
왼쪽 (우측통행)

외교


국제 연맹 국제 연맹 가입 193-년 --월 --일
국제 연맹 회원국
승인 여부
만장일치
수교국 203개국

작센 왕국(독일어: Königreich Sachen 쾨니히라이히 작센[*], 영어: Kingdom of Saxony 킹덤 오브 삭소니[*]) 혹은 작센(독일어: Sachen 작센[*], 영어: Saxony 삭소니[*])은 중앙 유럽에 위치한 독일계 입헌군주정 왕국이다. 인구는 9,584,442명으로, 인구 비율은 92%가 독일인으로 압도적이다. 면적은 39,751㎢이며, 주로 쓰이는 공용어는 독일어이다. 북쪽으로는 프로이센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고, 남쪽으로는 바이에른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다. 수도는 드레스덴이며, 왕국 내에는 라이프치히와 같은 대도시가 위치하고 있다. 서력 기원을 사용하고 있다.

작센은 본래 북독일(엘베강 동쪽)에 위치하던 국가였다. 또 5세기경 잉글랜드를 정복한 작센족(영국의 색슨족) 역시 북해 연안을 근거지로 삼고 있었다. 476년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고 여러 게르만 왕국들이 세워지자 작센족 역시 구 작센 지역에 작센 왕국을 세웠다. 인접국인 프랑크 왕국과의 관계가 좋지 않았는데, 772년에는 장기간의 전쟁 상태까지 치달으면서 감정의 골이 더욱 깊어졌다. 40년간의 전쟁으로 작센인들의 인구가 격감하였고, 800년대 들어서는 프랑크 왕국에 복속되어 작센 공국이라는 이름으로 남게 되었다. 그렇게 신성 로마 제국에서 이어온 작센은 1142년에 현재의 왕가인 벨프 가문으로 공위가 넘어갔고, 이후 작센 공작들은 영토의 확장을 꾀했다. 작센의 하인리히 사자공은 황제보다 더 넓은 영토를 가지면서, 당시 바르바로사 황제와 권력 다툼을 하였으나 패배하여, 1180년에 벨프 가문의 하인리히 사자공은 모든 작위를 박탈당하고 추방당하였고, 중세 작센 공국은 분할되어 사라졌다. 1235년이 되서야 이 조치에 대한 완화가 시행되어, 벨프 가문에 몰수된 영지가 일부 환수되었다. 당시에 아슈카니아 가문이 구 작센의 가장 동쪽의 영토를 다스리게 되었는데, 벨프 가문이 더 이상 작센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공국이라는 지역명을 사용하자 아슈카니아 가문이 작센 명칭을 사용했다.

1252년에는 아슈카니아 가문의 3개의 땅 중 하나인 작센-안할트 지역을 브란덴부르크 변경백이 다스리게 되어 아슈카니아 가문은 소국으로 축소되고 사실상 작센과도 연관이 없게 되었다. 아슈카니아 가문의 남은 두 땅은 서로 지리적으로 너무 멀었기에, 가문이 분할되었다. 북부(홀슈타인의 남동부)는 작센-라우엔부르크로, 남부(비텐베르크)는 작센-비텐베르크로 나누어졌다. 이 두 지역이 치열하게 경쟁하였으나 결국 작센-비텐베르크쪽에서 작센 선제후로 인정받게 되었다. 1422년 작센-비텐베르크 가문이 대가 끊기면서 작센-비텐베르크 공작위와 선제후 지위는 마이센 변경백인 베틴 가문의 프리드리히 4세에게 주어졌다. 하지만 1428년 프리드리히 4세가 사망하면서 두 아들인 에른스트와 알브레히트의 재산 문제로 인해 결국 작센은 동서로 갈라졌다. 알브레히트가 마이센 변경백령과 북부 튀링겐을 상속받고, 에르스트가 비텐베르크와 남부 튀링겐을 상속 받았다. 이후 1806년에 작센 선제후가 작센 국왕으로 승격되면서 본래 작센 선제후가를 맡고 있던 베틴 가문이 그대로 작센 왕가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작센 왕국의 정치는 대체로 의회 다수당의 대표가 의회에게 지명되어 국왕에 의해 임명되는 왕국 수상이 주도한다. 왕국 수상은 입헌군주정 상에서 국왕의 거의 모든 권한을 위임받아 행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