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녕 시대사 天寧時代史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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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란시대(戰亂時代, 1281 ~ 1303)는 원녕전쟁(元寧戰爭, 1274~1281)으로 중앙 정부의 통제력이 약화됨에 따라 지방에서 군사력과 경제력 그리고 새로운 사상을 갖춘 호족 세력이 성장하면서 군웅할거(群雄割據)하게 된 시기를 일컫는다. 내부적으로는 곪고 있던 지방 봉건화의 폭발이었으며, 외부적으로는 몽골 제국(蒙古帝國)의 정복 전쟁으로 인한 혼란과 당대 일본(日本)을 통치하던 가마쿠라 막부(鎌倉幕府)의 힘이 약화되고 있던 시점이었다.
전란시대 세력가들의 특징은 명목상으로는 황실(皇室)을 우대하였다는 것이다. 대내적으로는 독립 세력을 형성하였을지 몰라도, 표면적으로는 황실에게 머리를 숙이고 정통성을 인정하는 형태로 유지되었다. 이는 역성혁명(易姓革命)을 통한 부담을 줄이고 실권을 위임받는 형태가 더 효율적인 것으로 판단했다는 의미였다. 이에따라 전란시대를 통일한 박직원(朴直元)은 전란 직후 '권지절도사'(權知節度使)[1]라는 직함을 내세웠고, 이후에는 절대 왕권을 표방하던 황실을 대신하여 통치권을 '위임'받아 행사하는 묘당(廟堂)을 설치하여 이중 정권 체제를 고안했다. 이는 고려(高麗)의 무신정권(武臣政權) 혹은 일본의 막부(幕府) 체제와 유사한 형태를 보이게 되었다.
주요 집권자
전란시대 집권자 戰亂時代 執權者 1281-130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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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 ↑ 의미대로 '임시직'(權知)으로 임명받은 지방 장관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