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대전 (격변의 시대): 두 판 사이의 차이

잔글편집 요약 없음
편집 요약 없음
41번째 줄: 41번째 줄:
독일 제국은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가장 큰 이득을 취했다. 우선 러시아 제국과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 (격변의 시대)|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을 맺어 러시아가  영유해오던 폴란드 지역을 독일의 보호국으로 전락시켰고, 발트 지역은 독일의 입김을 강하게 받는 라트비아 공화국과 에스토니아 공화국이 건국되게 하였으며, 각각 벨로루시 공화국과 우크라이나 인민 공화국을 수립해 러시아와 국경을 멀찍이 떨어뜨려 본국에 가해지는 위협을 덜었다. 또한 전쟁 배상금 명목으로 현대 기준 약 4,000억 루블을 러시아로부터 납부받았으며 이는 전쟁 후 러시아의 경제 파탄과 물가 상승을 초래했다. 이후 민족주의로 찢어진 오스트리아의 갈리치아 로도메리아, 부코비나 지역을 제외한 시스라이타니아 지역을 흡수하여 1억 인구와 탄탄한 경제력, 강력한 국력을 가진 준초강대국으로 성장하게 된다.
독일 제국은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가장 큰 이득을 취했다. 우선 러시아 제국과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 (격변의 시대)|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을 맺어 러시아가  영유해오던 폴란드 지역을 독일의 보호국으로 전락시켰고, 발트 지역은 독일의 입김을 강하게 받는 라트비아 공화국과 에스토니아 공화국이 건국되게 하였으며, 각각 벨로루시 공화국과 우크라이나 인민 공화국을 수립해 러시아와 국경을 멀찍이 떨어뜨려 본국에 가해지는 위협을 덜었다. 또한 전쟁 배상금 명목으로 현대 기준 약 4,000억 루블을 러시아로부터 납부받았으며 이는 전쟁 후 러시아의 경제 파탄과 물가 상승을 초래했다. 이후 민족주의로 찢어진 오스트리아의 갈리치아 로도메리아, 부코비나 지역을 제외한 시스라이타니아 지역을 흡수하여 1억 인구와 탄탄한 경제력, 강력한 국력을 가진 준초강대국으로 성장하게 된다.


오스트리아 제국은 대전쟁에서는 승리했지만 이후 불어온 민족주의의 여파로 인해 해체된다. 역시 러시아와 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을 맺어 배상금과 영토를 받아내었고, 러시아라는 후원자를 잃은 남슬라브 연방과도 소피아 조약으로 영토를 받아냈지만 전쟁 전부터 오스트리아의 중앙 집권 능력은 지방을 원활히 통치하는 데에 역부족이였으므로, 제국 곳곳에서 일어난 봉기와 독립 요구를 감당하지 못하고 1911년 헝가리에 자치권을 주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결성하였다. 그러나 두 지배 민족의 인구를 합쳐도 오스트리아 제국의 40%에 미치지 못했고, 헝가리는 영내 타민족들을 가혹하게 탄압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직후 불어온 민족주의가 유럽에 들끓는 가운데 이러한 선택은 피지배민적으로 하여금 의문을 갖게 했고, 오스트리아 제국은 어떻게든 명맥을 잇고 새로 얻은 보스니아+북부, 중부 세르비아 지역의 반발심을 타개하려는 목적으로 남슬라브인들과 타협해 1919년 삼중제국을 구성하였지만 이 역시 헝가리의 반대로 인한 빈번한 군사적 충돌로 얼마 가지 못 해 의미를 상실한다. 더 버틸 수 없었던 합스부르크 왕가는 1922년 제국의 해체를 선포하고, 오스트리아 지역과 티롤을 위시한 오스트리아 제국, 트란스라이타니아를 위시한 헝가리 왕국, 갈리치아 로도메리아를 위시한 폴란드 왕국, 보헤미아와 모라비아를 위시한 체코 왕국,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를 위시한 흐르바츠카 왕국으로 분할되게 된다. 하지만 민족주의의 광풍은 끝나지 않았다. 트란실바니아 지역에서는 루마니아인들이 독립을 요구하여 헝가리-루마니아 전쟁이 발발하고, 여기에 슬로바키아인들까지 가담해 전쟁의 규모는 더욱 커진다. 크로아티아인들은 예로부터 세르비아인들과 충돌을 일으켜왔었고 이번에는 공식적으로 흐르바츠카 왕국에 세르비아의 역사적 영토가 포함되어있었으므로 충돌은 전쟁까지 이어지게 된다. 갈리치아 로도메리아 지역은 폴란드인들이 다수인 서갈리치아와 우크라이나인들이 다수인 동갈리치아로 분리되었지만, 폴란드는 독일 치하에 있었고 우크라이나는 조약으로 독립을 인정받는 국가였기에 큰 충돌이 발생하지 않았다.
오스트리아 제국은 대전쟁에서는 승리했지만 이후 불어온 민족주의의 여파로 인해 해체된다. 역시 러시아와 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을 맺어 배상금과 영토를 받아내었고, 러시아라는 후원자를 잃은 남슬라브 연방과도 소피아 조약으로 영토를 받아냈지만 전쟁 전부터 오스트리아의 중앙 집권 능력은 지방을 원활히 통치하는 데에 역부족이였으므로, 제국 곳곳에서 일어난 봉기와 독립 요구를 감당하지 못하고 1911년 헝가리에 자치권을 주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결성하였다. 그러나 두 지배 민족의 인구를 합쳐도 오스트리아 제국의 40%에 미치지 못했고, 헝가리는 영내 타민족들을 가혹하게 탄압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직후 불어온 민족주의가 유럽에 들끓는 가운데 이러한 선택은 피지배민적으로 하여금 의문을 갖게 했고, 오스트리아 제국은 어떻게든 명맥을 잇고 새로 얻은 보스니아+북부, 중부 세르비아 지역의 반발심을 타개하려는 목적으로 남슬라브인들과 타협해 1919년 삼중제국을 구성하였지만 이 역시 헝가리의 반대로 인한 빈번한 군사적 충돌로 얼마 가지 못 해 의미를 상실한다. 더 버틸 수 없었던 합스부르크 왕가는 1921년 제국의 해체를 선포하고, 오스트리아 지역과 티롤을 위시한 오스트리아 제국, 트란스라이타니아를 위시한 헝가리 왕국, 갈리치아 로도메리아를 위시한 폴란드 왕국, 보헤미아와 모라비아를 위시한 체코 왕국,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를 위시한 흐르바츠카 왕국으로 분할되게 된다. 하지만 민족주의의 광풍은 끝나지 않았다. 트란실바니아 지역에서는 루마니아인들이 독립을 요구하여 헝가리-루마니아 전쟁이 발발하고, 여기에 슬로바키아인들까지 가담해 전쟁의 규모는 더욱 커진다. 크로아티아인들은 예로부터 세르비아인들과 충돌을 일으켜왔었고 이번에는 공식적으로 흐르바츠카 왕국에 세르비아의 역사적 영토가 포함되어있었으므로 충돌은 전쟁까지 이어지게 된다. 갈리치아 로도메리아 지역은 폴란드인들이 다수인 서갈리치아와 우크라이나인들이 다수인 동갈리치아로 분리되었지만, 폴란드는 독일 치하에 있었고 우크라이나는 조약으로 독립을 인정받는 국가였기에 큰 충돌이 발생하지 않았다. 이후 오스트리아 제국은 민중의 의지에 굴복한 합스부르크 황가의 요청으로 1924년 독일 제국과 평화 통합을 이루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고, 헝가리 왕국은 트란실바니아 사수에 성공하지만 슬로바키아 지역에는 상당한 수준의 자치를 허용하게 된다. 흐르바츠카 왕국은 세르비아 왕국과 흐르바츠카 제1공화국으로 분리되었지만, 보스니아를 차지하기 위한 피 튀기는 싸움이 계속된다.
 
오스만 제국은 러시아 제국과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을 맺어 크림 반도와 아르메니아를 위시한 캅카스를 얻어내고 남슬라브 연방과 소피아 조약을 맺어 그리스와 불가리아, 남부 세르비아를 차지하였다. 그러나 이쪽도 인종 구성이 다양하였기에 오스트리아 제국과 비슷한 길을 걷게 된다. 우선 불가리아 지역은 세르비아의 강압으로 인해 반강제적으로 남슬라브 연방에 가입했고, 대전 말기에는 독립을 선포하여 연맹국 측에 가담해 싸웠기에 동정표를 받아 광범위한 자치를 누려 사실상 독립 상태나 다름없었고, 그리스 지역은 메갈리 이데아로 자꾸만 오스만 제국을 귀찮게 굴었다.

2023년 12월 15일 (금) 00:19 판

세계 대전
1902 ~ 1908제1차 세계 대전 1908 ~ 1931전간기 1931 ~ 1941제2차 세계대전
관련문서: 7년 전쟁 | 연표 | 대공황 | 냉전 | 제3차 세계 대전
제1차 세계 대전
第一次世界大戰
기간 1902년 1월 19일 – 1909년 6월 13일
장소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일부
원인 러시아 제국의 부상과 범슬라브적 팽창주의 대두에 따른 기존 열강과의 충돌
교전국 및
교전 세력
연맹군 혁명군
영국
독일 제국
오스만 제국
오스트리아 제국
스페인 왕국
러시아 제국
프랑스 제국
루마니아 왕국
이탈리아 왕국
핀란드 왕국
지휘관 조지 5세
빌헬름 2세
메흐메트 5세
프란츠 요제프 1세
니콜라이 2세
병력 독일 제국 8,080,172명
대영 제국 7,782,116명
오스트리아 제국 4,620,581명
오스만 제국 2,701,681명
스페인 왕국 2,275,988명
총합 25,160,537명
러시아 제국 17,000,000명
프랑스 제국 8,294,300명
이탈리아 왕국 5,461,288명
루마니아 왕국 1,609,477명
남슬라브 연맹 3,919,785명
핀란드 왕국 500,000명
총합 36,784,850명
피해 민간인 사망 1,859,892명
민간인 부상 3,429,478명
군 병력 사망 4,419,489명
군 병력 부상 7,344,207명
실종 3,029,171명
총합 20,102,237명
민간인 사망 3,642,740명
민간인 부상 5,630,239명
군 병력 사망 8,042,887명
군 병력 부상 13,688,206명
실종 5,492,227명
총합 36,496,299명
결과 러시아 제국의 몰락, 동유럽 대혼란, 슬라브 대분열 사태 초래, 소비에트 인민공화국 수립
영향 제2차 세계대전의 단초 제공, 슬라브인 제노사이드 발생, 독일의 준초강대국 등극, 민족주의 발흥

개요

제1차 세계 대전은 범슬라브주의에 입각한 슬라브 통일 운동의 일환으로 팽창하는 러시아 제국 및 독일을 견제하는 프랑스 제국과 이를 저지하려는 독일, 오스트리아 제국, 영국의 충돌으로 발생한 전쟁이다. 러시아 제국이 독일 제국에 전쟁을 선포하여 1902년 1월 19일부터 1909년 6월 13일까지 전 세계적으로 전개되었다. 결교ㅏ적으로 대략 6000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고 민족주의가 대규모로 발흥하였으며 슬라브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의 풍조가 프랑스와 슬라브권 국가들을 제외한 전 유럽에 퍼져나갔다. 이는 제노사이드와 슬라브 대분열, 민족주의에 입각한 소 중규모 국지전과 내전, 제2차 세계대전 발발의 단초를 제공하였다.

발단 및 배경

전개와 종결

피해

영향

독일 제국은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가장 큰 이득을 취했다. 우선 러시아 제국과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을 맺어 러시아가 영유해오던 폴란드 지역을 독일의 보호국으로 전락시켰고, 발트 지역은 독일의 입김을 강하게 받는 라트비아 공화국과 에스토니아 공화국이 건국되게 하였으며, 각각 벨로루시 공화국과 우크라이나 인민 공화국을 수립해 러시아와 국경을 멀찍이 떨어뜨려 본국에 가해지는 위협을 덜었다. 또한 전쟁 배상금 명목으로 현대 기준 약 4,000억 루블을 러시아로부터 납부받았으며 이는 전쟁 후 러시아의 경제 파탄과 물가 상승을 초래했다. 이후 민족주의로 찢어진 오스트리아의 갈리치아 로도메리아, 부코비나 지역을 제외한 시스라이타니아 지역을 흡수하여 1억 인구와 탄탄한 경제력, 강력한 국력을 가진 준초강대국으로 성장하게 된다.

오스트리아 제국은 대전쟁에서는 승리했지만 이후 불어온 민족주의의 여파로 인해 해체된다. 역시 러시아와 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을 맺어 배상금과 영토를 받아내었고, 러시아라는 후원자를 잃은 남슬라브 연방과도 소피아 조약으로 영토를 받아냈지만 전쟁 전부터 오스트리아의 중앙 집권 능력은 지방을 원활히 통치하는 데에 역부족이였으므로, 제국 곳곳에서 일어난 봉기와 독립 요구를 감당하지 못하고 1911년 헝가리에 자치권을 주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결성하였다. 그러나 두 지배 민족의 인구를 합쳐도 오스트리아 제국의 40%에 미치지 못했고, 헝가리는 영내 타민족들을 가혹하게 탄압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직후 불어온 민족주의가 유럽에 들끓는 가운데 이러한 선택은 피지배민적으로 하여금 의문을 갖게 했고, 오스트리아 제국은 어떻게든 명맥을 잇고 새로 얻은 보스니아+북부, 중부 세르비아 지역의 반발심을 타개하려는 목적으로 남슬라브인들과 타협해 1919년 삼중제국을 구성하였지만 이 역시 헝가리의 반대로 인한 빈번한 군사적 충돌로 얼마 가지 못 해 의미를 상실한다. 더 버틸 수 없었던 합스부르크 왕가는 1921년 제국의 해체를 선포하고, 오스트리아 지역과 티롤을 위시한 오스트리아 제국, 트란스라이타니아를 위시한 헝가리 왕국, 갈리치아 로도메리아를 위시한 폴란드 왕국, 보헤미아와 모라비아를 위시한 체코 왕국,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를 위시한 흐르바츠카 왕국으로 분할되게 된다. 하지만 민족주의의 광풍은 끝나지 않았다. 트란실바니아 지역에서는 루마니아인들이 독립을 요구하여 헝가리-루마니아 전쟁이 발발하고, 여기에 슬로바키아인들까지 가담해 전쟁의 규모는 더욱 커진다. 크로아티아인들은 예로부터 세르비아인들과 충돌을 일으켜왔었고 이번에는 공식적으로 흐르바츠카 왕국에 세르비아의 역사적 영토가 포함되어있었으므로 충돌은 전쟁까지 이어지게 된다. 갈리치아 로도메리아 지역은 폴란드인들이 다수인 서갈리치아와 우크라이나인들이 다수인 동갈리치아로 분리되었지만, 폴란드는 독일 치하에 있었고 우크라이나는 조약으로 독립을 인정받는 국가였기에 큰 충돌이 발생하지 않았다. 이후 오스트리아 제국은 민중의 의지에 굴복한 합스부르크 황가의 요청으로 1924년 독일 제국과 평화 통합을 이루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고, 헝가리 왕국은 트란실바니아 사수에 성공하지만 슬로바키아 지역에는 상당한 수준의 자치를 허용하게 된다. 흐르바츠카 왕국은 세르비아 왕국과 흐르바츠카 제1공화국으로 분리되었지만, 보스니아를 차지하기 위한 피 튀기는 싸움이 계속된다.

오스만 제국은 러시아 제국과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을 맺어 크림 반도와 아르메니아를 위시한 캅카스를 얻어내고 남슬라브 연방과 소피아 조약을 맺어 그리스와 불가리아, 남부 세르비아를 차지하였다. 그러나 이쪽도 인종 구성이 다양하였기에 오스트리아 제국과 비슷한 길을 걷게 된다. 우선 불가리아 지역은 세르비아의 강압으로 인해 반강제적으로 남슬라브 연방에 가입했고, 대전 말기에는 독립을 선포하여 연맹국 측에 가담해 싸웠기에 동정표를 받아 광범위한 자치를 누려 사실상 독립 상태나 다름없었고, 그리스 지역은 메갈리 이데아로 자꾸만 오스만 제국을 귀찮게 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