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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시대는 "만약 새로운 정치 세력이 등장했다면?"을 바탕으로 제작된 시즌제 대체역사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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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주요선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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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대 국회의원 선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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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 299석 / 과반: 150석 | ||||||||||||||||||||||||||||||||||||||||||||||||||||
실시일: 1988년 4월 26일 | ||||||||||||||||||||||||||||||||||||||||||||||||||||
투표율: 75.8% (▼ 8.8%p)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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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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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4월 26일에 치러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로, 75.8%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제6공화국 수립 이후 제도적 민주주의가 정착되면서 실시한 첫 선거이자 9차 개헌에 따라 조기에 실시된 선거이기도 하다. 의원 정수는 299명으로 지난 총선보다 23명이 늘어났으며 지역구는 40석 늘어났지만 전국구가 17명 줄었다. 이 때부터 선거 방식이 중선거구제에서 소선거구제로 전환되었다. 다만 아직까지는 전국구를 지역구 의석 비율로 배분하는 1인 1표제로 실시되고 있고, 지역구 1당이 전국구를 독식하는 조항은 1/2로 줄었을 뿐 여전히 제도적으로 남아있다.
이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통일민주당, 평화민주당, 신민주공화당, 변화당, 한겨레민주당 등이 참여했다.
정당 | 득표수 | 지역구 | 전국구 | 총합 |
---|---|---|---|---|
민주정의당 | 6,470,494 (32.9%) | 87석 | 38석 | 125석 |
평화민주당 | 3,783,279 (19.3%) | 53석 | 16석 | 69석 |
통일민주당 | 4,680,175 (23.8%) | 46석 | 13석 | 59석 |
신민주공화당 | 3,062,506 (15.6%) | 27석 | 8석 | 35석 |
무소속 | 890,229 (4.5%) | 9석 | - | 9석 |
변화당 | 243,312 (1.2%) | 1석 | 1석 | |
한겨레민주당 | 251,236 (1.3%) | 1석 | 1석 | |
등록 취소 | ||||
신한민주당 | 46,877 (0.2%) | - | 없음 (등록 취소) | |
민주한국당 | 32,799 (0.2%) | |||
한국국민당 | 65,032 (0.3%) | |||
민중의당 | 65,650 (0.3%) | |||
사회민주당 | 3,267 (0.0%) | |||
우리정의당 | 25,433 (0.1%) | |||
기타 정당 | 22,131 (0.1%) |
무소속 당선자 복당 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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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 민주정의당 | 131석 |
신민주공화당 | 35석 | |
민주 | 평화민주당 | 70석 |
통일민주당 | 62석 | |
한겨레민주당 | 1석 | |
제3지대 | 변화당 | 1석 |
선거 결과 민주정의당이 125석, 평화민주당이 69석, 통일민주당이 59석, 신민주공화당이 35석으로 민주정의당은 지역구 1당과 함께 전국구의 반을 차지했음에도 과반 확보에 실패했다. 반면 세 정당은 총선 단일화 실패에도 불구하고 강세 지역을 대부분 차지하거나 석권해 여당의 과반 확보를 저지하는데 성공했다. 정당별로는 통일민주당이 부산, 평화민주당이 호남권, 신민주공화당이 충남을 석권했다.
한겨레민주당과 변화당은 각각 전남 신안의 박형오와 서울 중구의 김민재가 당선되어 각각 1석을 얻는데 그쳤다. 허나 한겨레민주당의 박형오는 당시 내란 음모 조작 사건으로 인해 피선거권이 박탈되어 후보 등록 무효가 된 한화갑을 대신하여 평화민주당 측에서 밀어준 후보였기 때문에, 당선 직후 평화민주당으로 이동하면서 자연스레 원외정당이 되었다. 5공 시기 야당이었던 민주한국당, 신한민주당, 한국국민당은 아예 당선자도 내지 못하고 해체 수순을 밟았다.
첫 직선제 선거로 출범한 노태우 정부는 이 선거를 통해 국정 운영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으며, 여기에 민주화 열풍과 맞물려 광주특위 창설, 청문회를 통한 5공 비리가 세상에 알려지는 계기가 된다. 13대 국회의 여소야대 정국은 한동안 계속되다가 1989년 공안 정국을 거쳐 1990년 3당 합당을 통해 판세가 완전히 뒤집어지고, 이른바 '황색 돌풍'을 일으켰던 평화민주당, 변화당만이 유일하게 야당이 되었다.
지역 | 민정당 | 평민당 | 민주당 | 공화당 | 기타 · 무소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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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 10석 | 16석 | 10석 | 3석 | 3석 |
경기 | 16석 | 1석 | 4석 | 6석 | 1석 |
인천 | 6석 | 당선자 없음 | 1석 | 당선자 없음 | |
강원 | 8석 | 당선자 없음 | 1석 | 1석 | 2석 |
충북 | 7석 | 당선자 없음 | 2석 | 당선자 없음 | |
충남 | 2석 | 당선자 없음 | 2석 | 13석 | 1석 |
광주 | 당선자 없음 | 5석 | 당선자 없음 | ||
전북 | 당선자 없음 | 14석 | 당선자 없음 | ||
전남 | 당선자 없음 | 17석 | 당선자 없음 | 1석 | |
부산 | 1석 | 당선자 없음 | 15석 | 당선자 없음 | |
경남 | 12석 | 당선자 없음 | 9석 | 당선자 없음 | 1석 |
대구 | 8석 | 당선자 없음 | |||
경북 | 17석 | 당선자 없음 | 2석 | 2석 | 당선자 없음 |
제주 | 당선자 없음 | 1석 | 당선자 없음 | 2석 | |
합계 | 87석 | 53석 | 46석 | 27석 | 11석 |
- 이 선거에서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던 노무현이 부산광역시 동구에서 당선되었고, 이후 제5공화국 청문회 과정에서 전두환이 퇴장하자 명패를 던지는 사건으로 인해서 일명 '청문회 스타'로 거듭나게 되었다. 그는 훗날 소신 있는 야권 정치인에서 대통령이 되었으며, 그의 사후에도 명패 사건은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 선거를 하루 앞둔 4월 25일, 제주문화방송에서 리허설된 장면이 송출되는 방송사고가 일어나 제주도에 큰 충격을 받았고, 이에 문화방송에서는 사과방송과 함께 문책조치를 내렸으며 수사 결과 단순 실수라는 결론이 나게 된다. 하지만 컴퓨터 여론조작설이 힘을 얻어 민주정의당의 과반 확보 실패에 큰 영향을 받았으며 현경대 후보는 결국 낙선하고 말았다.
- 서울 중구에서는 유일하게 변화당 소속 당선자가 나왔는데, 당시 평화민주당의 정대철 후보가 우세한 상황이었으나 사회 개혁과 도시 발전, 그리고 군사정권 타파를 내세워 지지층을 끌어모으는데 성공해 두 후보 간의 접전 끝에 당선되었다. 당선자인 김민재는 훗날 재선에 성공해 15대 총선 전까지 국회의원을 역임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