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朝鮮), 대조선국(大朝鮮國)은 고려의 뒤를 이어 1392년 건국되어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를 지배하는 국가이다.
고려 말 혼란기때에 황산대첩 등의 활약으로 명장으로서 명성을 얻은 이성계(이단)가 위화도 회군으로 고려를 멸망시키고 옛 고조선의 이름을 물려받아 건국하였다.
국호를 조선으로 한 날은 1393년 음력 2월 15일이었다.
후삼국시대를 재통일한 고려와 달리, 이성계의 역성혁명을 통한 국가승계 왕조이기에 초기에는 고려를 그대로 계승한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다만 고려 말 원나라의 몽골 황실이 내정을 간섭하던 시기의 영향과 성리학의 유입이 고려와 조선의 차이를 크게 결정지었다.
건국 초기 고려와의 가장 큰 차이는 숭유억불이었다. 조선 이전의 한반도 국가들은 중원에서 유래된 종교적 색채의 학문인 유교를 정치적인 학문 정도로 봤지 종교로 보진 않았으며, 삼국사기 중기 이래 천 년간 우세했던 전통적인 불교가 국교(國敎)로서 대접받았다. 그러나 고려 말 중원에서 성리학이 들어오면서 여기에 크게 감화된 사대부들이 조선을 개국하면서 유교를 원리로, 즉 국가교학(國家敎學)으로 삼았다. 이는 이전 한반도 국가들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이다. 그러나 잉화귀환이후 숭유 억불 정책이 전면 폐지되면서, 불교는 국가의 후원을 받아 유교에 이은 제2의 종교로 다시 발돋움했다.
조선(朝鮮), 대조선국(大朝鮮國)은 고려의 뒤를 이어 1392년 건국되어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를 지배하는 국가이다.
고려 말 혼란기때에 황산대첩 등의 활약으로 명장으로서 명성을 얻은 이성계(이단)가 위화도 회군으로 고려를 멸망시키고 옛 고조선의 이름을 물려받아 건국하였다.
국호를 조선으로 한 날은 1393년 음력 2월 15일이었다.
후삼국시대를 재통일한 고려와 달리, 이성계의 역성혁명을 통한 국가승계 왕조이기에 초기에는 고려를 그대로 계승한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다만 고려 말 원나라의 몽골 황실이 내정을 간섭하던 시기의 영향과 성리학의 유입이 고려와 조선의 차이를 크게 결정지었다.
건국 초기 고려와의 가장 큰 차이는 숭유억불이었다. 조선 이전의 한반도 국가들은 중원에서 유래된 종교적 색채의 학문인 유교를 정치적인 학문 정도로 봤지 종교로 보진 않았으며, 삼국사기 중기 이래 천 년간 우세했던 전통적인 불교가 국교(國敎)로서 대접받았다. 그러나 고려 말 중원에서 성리학이 들어오면서 여기에 크게 감화된 사대부들이 조선을 개국하면서 유교를 원리로, 즉 국가교학(國家敎學)으로 삼았다. 이는 이전 한반도 국가들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이다. 그러나 잉화귀환이후 숭유 억불 정책이 전면 폐지되면서, 불교는 국가의 후원을 받아 유교에 이은 제2의 종교로 다시 발돋움했다.
또한 고려보다 한층 더 세련된 중앙 집권화 관료제 국가를 완성했다.
잉화귀환
잉화귀환 직후인 1426년 제작된 한성부지도. 마포대교가 선연히 보인다.
1426년한성부 대화재와 병오대재난직후 2020년의 마포대교와 여의도, 둔지산 일대가 조선으로 이동한 사건. 1491년 현재까지도 그 원인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후 세조는 꿈에서 옥황을 알현했다고 하교하며, 직접 행차하여 살피고는 출입을 통제한 이후 대 개혁을 실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