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연방공화국 역대 상원선거

1대 상원선거

제 1회 조선연방 상원선거
정당 공화당 국민민주당 일국민주당 자유민주연합 사회당
당선자 수 22석 21석 19석 8석 5석
의석 22석 21석 19석 8석 5석

실질적 민주화 이후 양원제가 실시된 조선에서 처음으로 시행된 선거. 의원의 임기는 6년으로 하되 2년에 1/3씩 나눠서 뽑았기 때문에 75명만 당선되었다. 각 광역자치단체별로 5명씩 뽑는 중선거구제를 시행해 정당간 의석이 비슷비슷했다.

원래 하원에서 102석을 얻고 여당이 된 박정희의 공화당이 상원만큼은 장악할 것이라는 예측이 우세했으나, 중선거구제로 인해 국민민주당과 일국민주당이 거의 모든 지역에서 1등~3등을 하여 공화당이 1석 차이로 국민당을 이겼다. 선거 결과에 승복한 공화당은 국민당과 대연정을 시도하여 정권을 사수했고 일국민주당이 제1야당으로 떠올라 강경한 대여 투쟁을 이어가게 된다.

2대 상원선거

제 2회 조선연방 상원선거
정당 국민민주당 공화당 일국민주당 사회당 자유민주연합
당선자 수 28석 18석 16석 7석 6석
의석 49석 40석 35석 12석 14석

결과는 예측을 뒤엎은 국민당의 압승이었다. 중도세력과 온건 보수세력의 표를 모조리 흡수한 국민당은 한성, 경기, 호남, 제주 등지에서 승리하였고 황해도와 충청도, 강원도에서도 공화당과 동률을 기록하며 대승을 거뒀다. 반면 공화당은 지난 선거에 비해 4석이나 잃었고 국민당과 9석 차이로 패배하면서 처참하게 망해버렸다. 민주당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는데, 대여 투쟁을 바탕으로 진보표를 노리던 김영삼 총재는 우익 성향이 강한 경제정책을 폐기하지 못하면서 온건 보수표와 진보표를 모조리 사회당과 국민당에 뺏겨버렸다. 자민련도 부진한 것은 마찬가지여서, 세 당은 1년 뒤 삼당합당을 통해 국민당에 맞서게 된다.

3대 상원선거

제 3회 조선연방 상원선거
정당 민주보수당 국민민주당 민주당 사회당
당선자 수 39석 23석 8석 5석
의석 125석 72석 11석 17석

삼당합당으로 태어난 민보당은 상원선거에서의 압승을 노렸다. 그러나 투표 결과를 보니 민보당은 목표치였던 150석에 턱없이 모자라는 125석을 얻었고 당선자 수도 지난번 40명에서 1석 줄은 39명을 얻었다. 그러나 김대중의 국민당도 목표치인 단독개헌저지선에 3석이나 미달하였고 당선자 수도 역대 최악이었기 때문에 승자를 판정하기가 어려웠다. 이로 인해 국민당과 민보당은 심각한 당내 계파갈등을 겪게 되고 곧 있을 하원 선거에서 민보당은 과반을 간신히 넘는 152석, 국민당은 겨우 7석 늘어난 86석을 획득하면서 김영삼 총리-김대중 총재로 대표되는 양김 정치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한편 일국민주당의 합당 반대파들이 세운 민주당은 8석을 당선시키며 돌풍을 일으켜 하원선거에서 교섭단체 확보를 목표로 하게 되었다.

4대 상원선거

제 4회 조선연방 상원선거
정당 민주보수당 국민민주당 민주당 사회당
당선자 수 44석 18석 9석 4석
의석 121석 69석 19석 16석
증갑 감소4석 감소3석 증가8석 감소1석

1976년 지방선거에서 김영삼 바람을 일으킨 민보당이 수준높은 경제개발 공로를 내세우며 압승했기에 모두가 민보당의 앞승을 예견하였다. 결과는 역시 국민당 참패, 민보당 대승으로 나타났으나 민보당이 목표치였던 45석에 미달하고 민주당이 돌풍을 일으켜 9석을 당선시켰다. 민보당은 130석을 목표치로 삼았으나 2회,3회 상원선거에서 참패한 나머지 4석을 까먹지만 모든 지역에서 승리하면서 79년 하원선거에서도 압승을 노렸다. 한편 국민당은 개헌저지선은 커녕 20명도 안되는 18명밖에 못당선시켰고, 70석도 깨져 69석을 얻었다. 또한 민주당은 9석을 당선시켜 유일하게 의석이 증가하였는데, 8석이 늘어나 무려 지난 선거보다 2배나 늘어나 돌풍을 일으켰다.

5대 상원선거

6대 상원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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