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쑨이셴은 일본에서 여생을 보낼 수도 있었으나, 자신에 대한 군벌들의 감시가 느슨해지자 다시 돌아온다. 중국에서 그의 삼민주의와 오권분립을 담은 저서를 <del>팔아먹으면서</del> 그는 '민국을 정말로 만들자' 라며, 삼민주의의 당, '''삼민당'''을 만들기 시작한다. 삼민주의가 중국에서 태동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진정한 민국을 만들기 위해서는 군벌들을 붕괴시킬 필요가 있다고 판단, 당시 쑨이셴이 강남 지방에 위치하고 있었기에 여기서 봉기하여, 북쪽으로 진군하자는 '''북벌론'''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쑨이셴은 일본에서 여생을 보낼 수도 있었으나, 자신에 대한 군벌들의 감시가 느슨해지자 다시 돌아온다. 중국에서 그의 삼민주의와 오권분립을 담은 저서를 <del>팔아먹으면서</del> 그는 '민국을 정말로 만들자' 라며, 삼민주의의 당, '''삼민당'''을 만들기 시작한다. 삼민주의가 중국에서 태동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진정한 민국을 만들기 위해서는 군벌들을 붕괴시킬 필요가 있다고 판단, 당시 쑨이셴이 강남 지방에 위치하고 있었기에 여기서 봉기하여, 북쪽으로 진군하자는 '''북벌론'''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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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남부를 석권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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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삼민주의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중국권에 많이 퍼졌다고 해서, 그들의 수가 많다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았다. 이들은 수만 많았지 힘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힘을 가진 것은 중국에 할거하고 있는 군벌들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쑨이셴은 일종의 필요악으로, 당시 군벌 중 한 사람을 북벌의 동맹으로 삼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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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군벌들 중 '''리진쿤李進坤'''은 중국 대륙 내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이었던 광서-광동 지역을 석권한 군벌이었고, 당대의 '무식한' 군벌들 중에서 그나마 현대적인 사상에 익숙한 사람이었으며 좌파적 사상에도 어느정도 우호적인 사람이었다. 쑨이셴은 군벌 리진쿤을 필사적으로 설득하여 그가 북벌에 나서도록 설득했고, 리진쿤도 야망이 있는 사람이었기에 통일된 중화민국의 '총통'이 되려는 야심을 품고 북벌에 성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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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리진쿤이 북벌의 포고문을 읽고 진군할때쯤, 쑨이셴은 병사하고 말았다. 리진쿤은 당대의 주요 군벌 중 하나였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북벌의 상징'으로 여겨질 만한 인망은 없었다. 그리고 북벌과 삼민주의의 상징이었던 쑨이셴이 병사했을 때, 그 뒤를 이을 사람이 없었다면 북벌은 붕괴했을 것이라는 것이 학계의 다수설이다. 그러나 북벌의 의기를 이어감과 동시에, 삼민당을 '''현재의 민족주의적 좌파 정당'''으로 이끌어간 새로운 아이콘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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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후란王虎蘭'''과 '''왕룽王隆'''은 광서 지방 빈민가의 이름없는 '어느 왕씨'에게서 태어났으며, 태어나서 10대 중반까지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지만 당대의 '근대적 자선기관'을 통해서 운 좋게 학문을 접할 수 있었다. 이들의 야학에서 왕씨 남매는 '그들이 가난하고, 또 멸시받는 것'은 자연스러운 질서가 아니라, 타파해야 할 죄악이라는 의식을 갖게 되었고, 그들의 정의감을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더더욱 공부해 들어가면서 이들은 '레티시아 마르크스'와 '카를라 엥겔스'의 공산주의 서적까지도 접하게 되면서 이들은 강경한 좌파 사상가로 변모해 있었다. 쑨이셴이 '삼민주의'를 주창하며 삼민당을 창당했을 때, 왕씨 남매는 즉각 삼민당에 입당했고 열성적인 당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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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삼민당의 당원이 됨으로서 그들에게 엄청난 정치적 능력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는데, 왕후란은 여성의 몸으로. 편견에 가득했을 중국의 남성들까지 홀릴 수 있는 데마고그적 선동 능력이 있었으며, 왕룽은 당이라는 하나의 조직을 관리하고 통치하는 데 일가견이 있었다. 이들의 천부적인 재능은 사망한 쑨이셴의 자리를 대신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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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진쿤이 자신의 군벌 군대를 동원하여 다른 군벌을 격파하고 복속시킨다면, 왕후란은 중국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삼민주의를 따르라는 연설을 하였고, 또 '그 많은 인구'를 가진 중국인들의 절반인 여성들을 적극적으로 공략하여, 삼민주의와 삼민당에 동조하는 여성회, 부인회들을 결성하고 이들이 (남성들만 주목하고 있는 현상에서) 물밑에서 삼민당에 우호적인 현지 공작 세력이 되었다. 이 여성회들은 자발적으로 북벌군에게 물자를 제공하거나, 부인회의 인맥을 통해 군벌 휘하의 하위 장교층이나 병사층을 분열시키는 등 북벌군의 '제 5열'<ref>현실 스페인 내전에서, 쿠데타군 수괴 프랑코가 자신에게 4개의 부대뿐만 아니라 적의 뒤에서 호응하는 제 5열이 있다고 발언한 데서 유래함.</ref>이 되었으며, 왕룽은 쑨이셴의 권위가 부재했을 때 삼민당의 들끓는 혁명가들을 안정시키고 분열되지 않도록 보이지 않는 밑바탕이 되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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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진쿤 - 왕후란 - 왕룽은 곧 북벌 시기 삼민당의 3대 권력 축이 되었으며, 북벌이 순조로이 진행되어 가는 것처럼 보이면서 이 3축은 승리의 위광에 힘입어 나름대로 유지되어 갔다. 그러나 중국 북쪽에서도 중국의 구 수도 베이핑을 근거지로 한, 구 제국군 중앙부를 근원으로 두는 '''베이핑 군벌''' 또한 주변의 군벌들을 타협, 정복 등으로 흡수해가며 우세를 점하고 있었고, 베이핑 군벌 또한 자신들을 '''중화민국 정통 정부'''라고 자처했기 때문에 삼민당과 베이핑 군벌 양쪽은 결국 서로를 적대시하게 되었다. 삼민당의 왕룽은 그래도 베이핑 군벌과의 협상과 공동 정부를 제안하는 회담을 제안하였지만, 이 회담이 이해 차이로 결렬됨으로서 평화적 타협의 기회는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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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중원대전'''이라고 일컬은 삼민당 - 베이핑 군벌간의 전쟁은 상호간 무승부로 끝났다. 이 전쟁에서 삼민당 측은 리진쿤이 전사함으로서 3축의 한 핵심이었던 '군사적 재능'이 소실되었고, 베이핑 군벌 또한 많은 피해를 내서 '남벌'을 할 여력을 상실하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혼란기에 빠졌던 중국 대륙은 북쪽의 베이핑 군벌, 남쪽의 삼민당으로 양분된 채 대치하게 된다.
  
 
== 주석 ==
 
== 주석 ==

2019년 7월 14일 (일) 13:41 기준 최신판


중국권 지도.png
중화민국의 영토(지도의 황색 영역)
중화민국
中華民國 / Zhōnghuá Mínguó / Republic of China(Nanjing)
중화민국 국기.png
중화민국 국기
국명 중화민국
통칭 중국, 남중국, 삼민당 정부, 난징 정부
정치체제 사회주의적 공화국 / 삼민주의
의회 체제 일당제
경제 체제 국가주의적 사회주의
국가의 표어 민족, 민권, 민생
설립 연도 1907[1]
국가 ISO 코드 RCH
소속 국제기구 아시아 사회주의 연합
수도 난징南京
국가 삼민주의가
세계관의 국가 상징색 #FFF200
화폐 단위 중화민국 위안/RCY
현재 인구수 약 10억 248만 명
중화민국 정부인사 목록
현직 국가원수 민국 주석 한비안더韓汴得
현직 정부수반 민국수상 차오쉬안曺玄
오성五省의 장관진
현직 재무성 장관 선창푸申昌蒲
현직 방위성 장관 장쿠이將奎
현직 내무성 장관 난후이인南慧誾
현직 외무성 장관 진다오金導
현직 농림성 장관 리수안용李蒜永
팔부八部의 장관직
현직 노동부장 리롱커李龍克
현직 복지-후생부장 장더쉬안姜德玄
현직 국영공사부장 젠춘톈甄春田
현직 국토개발부장 차이잉리엔蔡英聯
현직 교통부장 타오잉陶膺
현직 교육부장 궈송우郭松悟
현직 가정평등부장 우샹위吳香玉
현직 환경부장 저우보셴周伯鮮

개요

중화민국中華民國가상지구 BF 세계관의 중국권 국가 중 하나이며, 현재 중국권에서 가장 큰 나라이다. 본 세계관 중화민국의 모티브는 명백히 현실의 '중화민국' 이지만, 중화민국을 등장시킨 대부분의 대체/가상 세계관들이 민주주의적이거나, 우파 독재적 중화민국을 그려내는 것과는 달리. 본 세계관의 중화민국은 사회주의로서의 삼민주의를 따르는 사회주의 국가이다. 현실 역사의 중국 국민당에서도 왕징웨이(비록 많은 사람들이 그를 일본과 손잡은 매국노 정도로만 생각하지만), 천두슈와 같은 좌파적 경향성을 보였거나, 좌파 출신이었던 인물들이 많이 포진하고 있었고, 국민당 내에서도 국민당 우파와 좌파가 꽤 큰 세력을 형성했던 적이 있었다. 본 세계관은, 현실 세계의 국민당에서 '국민당 좌파가 주도권을 잡고 국민당이 사회주의 노선을 걸었다면?'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중화민국은 가상지구 BF 세계관에서 가장 큰 사회주의 국가로서 그 인구가 10억에 달한다.

정치

본 세계관의 중화민국은 국부 '순이셴孫逸仙'이 주창한 '오권 분립' 제도를 사회주의적으로 재해석하여 적용하고 있다. 현실에서의 사회주의 국가와 상이한 점이라면, 소련, 중화인민공화국 등의 사회주의 국가들은 정부와 당의 관계에서, 당이 정부보다 우위에 있지만[2] 본 세계관의 중화민국은 당과 정부의 관계에서 정부가 우위이다. 이 세계의 중화민국도 일당제 사회주의 국가이고, 국민당의 자체 당규가 존재하지만, 국가 통치의 논리에 있어서 중화민국의 헌법이 실질적인 통치원리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현실 사회주의 국가와 다르다.

예를 들어, 중화민국에는 당의 실무를 총괄하는 '당무위원장'이 존재하고, 당 내의 의전에 있어서는 당무위원장이 민국수상(내각의 수상)보다 높다.[3] 그러나 당무위원장은 어디까지나 '삼민당' 이라는 중화민국 정당 내에서만 간부로서의 권위를 가지며, 당무위원장은 국가 행정에 개입할 수 없다는 점에서, 정부 전체로 보았을 땐 민국수상이 오히려 당무위원장보다 중요한 요직이다. 이 체제가 정립되고 난 뒤, 당무위원장은 '준 명예직'으로 취급받아, 위상이 높던 거물 정치인이 실무에서 은퇴하고 난 뒤에 후방 조언자나 원로의 역할을 맡는 것으로 여겨진다.

국민대회國民大會

중화민국의 국민대회國民大會(National Assembly)는, 명목상 모든 노동자 인민들의 대표기관이며, 지방 자치를 시행하고 있는 각 자치단체들의 총체이다. 국민대회는 각 성/특수 광역 행정구역별 단위로 분리되어 있으며, 이들이 한데 모여서 전 중화민국 국민대회의 총의읜 국민대회총회를 구성한다. 즉 이들은 지방의회이자, 그 지방의회가 모인 중앙정부의 헌법기구의 측면을 동시에 가진다.

평시에 각 국민대회원들은 자신들이 속한 성의 지방 의회를 담당하며, 해당 지역의 민법인 성법城法을 제정한다.

국민대회는 다음과 같은 기능을 한다.

  • 중화민국의 주석 선출

중화민국의 국가원수인 '주석'이 정해진 임기를 마치고 퇴임하거나, 또는 예상치 못한 일에 의해 주석직에 궐위가 발생할 경우, 모든 성의 국민대회원들이 총 소집되는 국민대회총회를 열어서, 여기에서의 논의 및 선거를 통해 차기 주석을 선출한다.

  • 중화민국 헌법 개정안의 발의권

중화민국의 헌법에 따르면, 국민대회는 필요하다고 여겨질 시 임시 국민대회총회를 열고, 전 국민대회원을 모두 모아서 개헌안을 논의할 수 있고, 여기서 개헌안을 의결할 수 있다. 이후 국민대회에서 제정된 개헌안은 입법원에서의 의결을 거친 뒤, 중화민국의 국민투표에 회부되어, 국민투표에서 다수의 찬성을 얻으면 헌법을 개정할 수 있다.

국민대회는 각 성 단위로 존재하는 것이 기본이나, 민국수도 남경을 포함한 특별시(북경, 상해 등)들은 성과 독립되어 존재하는 광역 행정구역이므로 이러한 지역은 별도의 국민대회를 조직하며, 소수민족 자치구도 자체적인 국민대회를 조직한다.(단, 특별시, 자치구의 국민대회에서 제정한 지방자치법도 '성법'으로 지칭된다.) 그러나 중화민국 정부에 의해 지정된 특수한 자치 구역의 경우에는 국민대회가 존재하지 않고, 별도의 자치 기구를 조성할 수 있다.

  • 중화민국의 성법 제정

각 자치단체(성 또는 특수 광역 행정구역) 의 지방의회로서, 각 지역의 국민대회원은 해당 지역의 자치적 민법인 성법을 제정한다. 그러나 이들은 '형법'을 제정할 권리는 없으며, 형법은 전적으로 중앙 의회인 입법원에서 전 중화민국에서 단일하게 적용되는 형법을 제정한다.

입법원立法院

입법원立法院(Legislative Yuan)은 중화민국의 중앙 의회를 맡는다. 이들은 일종의 '연방법'/'중앙법'에 해당하는 '민국법民國法'을 제정한다. (민주국가의 선거[4]와 완전히 동일시할 수는 없지만) 이들은 선거로 선출되어 4년의 임기를 맡는다. 중화민국의 정부체제는 형식적으로는 내각제의 요소가 혼합되어 있어서 입법의원선거를 통해 중화민국의 정부수반인 민국수상을 선출하고, 민국수상이 내각을 구성한다. 민국 주석은 민국수상을 통해 내각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명목상으로는 민국수상이 각 내각의 인사(5부 8청을 포함해서)를 임명하고 총통이 이를 승인하는 형태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총통의 의향에 따라 민국수상이 총통이 원하는 인물을 지명하는 형식이다.

입법원의 권한은 다음과 같다.

  • 입법의원선거를 통한 민국수상 선출과 내각 구성
  • 민국법 제정

민국법은 민국 민법과 형법으로 나뉘는데, 상기 '국민대회' 문단에서도 언급되었듯 형법은 오직 중앙정부의 입법원에서만 만들어진다. 이렇게 된 이유는, 중화민국 초창기에 '단순한 생활 풍속은 선악을 따질 수 없기에 지방마다 다르게 해도 좋지만, 형법은 선악의 문제가 중요하기에, 각 지역에 맡겼을 경우 해당 지역의 악습이 형에 개입될 수 있기에, 형법은 전적으로 중앙에서 만들어야 한다'는 이유로, 형법은 오직 입법원에서만 만들 수 있게 하였다.

  • 중화민국 예산안 승인권 및 추경 권한
  • 국민대회에서 제안된 개헌안에 대한 의결권

행정원行政院

행정원行政院(Excecutive Yuan)은 중화민국의 행정부이다. 행정원의 수장은 민국수상이며 행정원장은 행정원 관료들의 제 1 대표이다. 민국수상이 행정원의 각료를 임명하지만, 입법원 문단에서 설명되었듯 실질적으로는 총통에 의향에 따라 총통이 원하는 인물을 민국수상이 임명한다.

행정원 산하의 정부기관은 4 가지로 나뉘고, 주요 정부 회의로는 민국최고민생회의, 민국국치회의, 민국행정총회의가 있다.

오성장관

오성五省은 중화민국에서 가장 중요한 정부부서들로는 각각 재무성, 방위성, 내무성, 외무성, 농림성이 있으며 이들을 오성으로 통칭하고 그 수장들을 오성장관들로 호칭한다.

재무성 중화민국의 예산배정, 예산집행, 회계, 예산 사용 내역에 대한 통제와 관리를 수행한다.
방위성 중화민국의 국토, 영해 방어를 담당한다.
내무성 중화민국의 치안과 법의 집행을 담당한다.
외무성 중화민국의 모든 외교를 담당한다.
농림성 중화민국의 근간이자 최대 유권자인 농민[5]들과 농업의 관리, 연구, 개선, 개발과 포간도호법에 따른 토지분배와 관리 집행, 자원개발과 보호, 수목림들의 관리들을 담당한다.

십부장관

십부十部는 민생과 관계된 부서들을 5생, 민권과 관계된 부서들을 3권으로 부르며 이를 합쳐 5생3권의 8부라고 부른다. 여기에 5생 3권에 속하지 않는 두 개의 부서 또한 국가를 다스리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하기에 8부에 2개 부서들을 합쳐 '십부'라고 부른다.

  • 5생
노동부 전국의 노동자, 노동 관리들을 총괄하며 노동 개선, 노동권 보장, 노동문제 해결등을 담당한다.
후생복지부 전국의 복지, 보건 상황을 개선하고 관리하지만, 중화민국의 크기가 너무 크고 담당해야할 인구가 많기에 여전히 그들의 성과가 전 중국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국영관리부 중화민국의 수많은 국영기업들과 소비재기업들을 총괄하고 생산을 담당한다.
국토개발부 중화민국 국토의 개발과 공공사업, 공공시설 유지보수를 담당한다.
토지부 중화민국 전역의 토지현황, 토지관리, 교통시설 부설과 관리를 담당한다.
  • 3권
교육부 중화민국 전민의 교육, 계몽, 교육환경 개선, 현대적 시민의식 성장등을 담당하나, 실질적으로 중화민국의 끝없는 국토와 그 국토를 뛰어넘는 인구때문에,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도시화, 산업화된 남부 주요 지역을 제외하고는 그 교육의 수준이 제한되어 있다.
가정평등부 전통적으로 뿌리박혀 있던 전통적 악폐습과 반동들을 교정하고 ,만민평등의 실현을 위해 설치된 부서로써, 엄격하고 가차없는 집행에도 불구하고, 북부와 변경에서 일어나는 악폐습 근절은 요원하다.
환경부 환경에 대한 관심과 자연재해의 폭등으로 신설된 부서로 전국의 환경 유지개선과 자연재해 예방을 위한 환경 복구를 담당한다.


  • 그 외 2부
해양부 중화민국의 영해와 해양자원 관리, 해양 사고 예방과 구조를 담당한다.
방첩부 중화민국의 방첩과 국제범죄자 추격, 삼민주의 체제의 수호를 담당한다.

팔청장

팔청八廳 '부' 보다는 일반적으로 중요성이 떨어진다 여겨지는 행정기구들이다.

인권 규범청 인권규범들의 제정과 집행 그리고 반인권 문제들의 처리등을 맡는다.
조세청 중화민국의 세금 징수를 집행한다.
선전공포청 법률과 선거결과, 시행령, 규범, 조례등의 공포와 인권, 삼민주의등을 선전하고 정부 행사를 홍보한다.
소방청 중화민국의 화재 및 재난 구조를 담당한다.
경찰청 경찰 업무와 치안 확립, 군중 통제를 담당한다.
검찰청 범죄자를 기소하고 재판을 수행한다.
공정거래관리청 공정거래 확립과 시장에서의 위법 행위 적발, 소비재 통제를 맡는다.
문화예술청 중화민국의 문화를 발전시키고 예술을 지원하며 국민 교양 교육도 담당한다.

사법원史法院

사법원史法院(Judical Yuan)은 사법원은 중화민국의 중앙 사법 기권이다. 가상지구 알파의 중화민국에서는 법원 체계가 이원화되어 있는데, 이는 자치제를 실시하여 각 성의 국민대회에서 성법을 입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형법은 중화민국 헌법에 의해 민국법으로 일원화되어 있어서, 민법의 경우 각 성/특별시/자치구 별로 상이하나, 형법은 전 중화민국에서 동일하게 적용된다. 이러한 구조로 인하여 중화민국에는 각 성의 관할하에 있는 일반법원(성법에 따라 민사재판을 진행함)과, 사법원의 관할 하에 있는 형법원(민국법에 따라 형사재판을 진행함)과 민국법원이 있다.

일반법원, 형법원과 구별되는 민국법원의 독자적인 영역은 다음과 같다.

  • 일반적으로는 각 성의 성법으로, 일반법원에서 진행되어야 할 민사재판이 법률상 특이점/사안의 중대성이 있을 경우, 민국법원에서 민국 민법에 근거하여 최종심급을 담당할 수 있다.
  • 민국법과 성법이 중화민국 헌법에 위배되는지의 여부를 심사한다.
  • 민국법과 성법이 상호간에 충돌될 경우, 충돌되는 법률 간의 중재를 담당하고, 두 법이 조화될 수 있도록 개선입법할 것을 국민대회와 입법원에 통보할 수 있다.

감찰원監察院

감찰원監察院(Control Yuan)은 중화민국 정부의 반부패기구로, 각 국가기관들을 감사하고 부패한 공직자에 대한 수사를 진행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 중화민국이 현실 중국처럼 모든 중화권을 모두 통치하지 못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우 거대한 나라로서 모든 지역에 대해 완벽한 통제권을 행사하고 있지는 못하다. 이런 상황 때문에 지방정부 등에서 부패가 쉽게 일어나는데, 이를 제약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 중화민국의 감찰원이다.

고시원考試院

고시원考試院(Examination Yuan)은 중화민국 정부기구의 공무원에 대한 심사, 채용 기구로서, 모든 공무원에 대한 임용시험은 고시원에서 주관한다.

정당

가상지구 BF 세계관의 중화민국은 삼민당의 일당제 국가라고 봐도 크게 무리가 없지만, 형식적으로는 '우당'[6]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삼민당 이외의 정당들이 존재는 하고 있다. 중화민국의 국회에 해당하는 입법원에는 총 900석이 있는데, 이들 중 30석이 바로 '중화민국의 우당들'에 의무적으로 할당된 정당들이다. 이 우당들은 형식적으로 중화민국의 각 계층들을 직접 대변하는 정당들이다.

  • 삼민당三民黨

삼민당은 중화민국의 국부 쑨이셴이 창당한 정당이며, 중화민국(난징 정부)가 출범한 직후 지금까지 집권하고 있는 여당이다. 삼민당 출범 직후에는 다양한 각계 각층의 공화주의자, 좌파, 우파들이 혁명을 바라며 연합한 정당었지만, 1930년대 들어 국민당 내 국민당좌파라고 불리는 민족주의적 좌파 성향의 인물들이 주도권을 잡았고, 이들이 쑨이셴의 삼민주의를 좌파적으로 재해석함으로서 지금과 같은 '사회주의적 공화국인 중화민국'이 존재할 수 있게 되었다. 본래 공산주의 사상의 시초인 '레티시아 마르크스'는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세요!'를 외치며 탈민족주의적, 세계주의적 성향을 보였지만, 이들은 쑨이셴의 사상 '삼민주의'에서의 '민족주의'영향을 받아, 상당히 중국 민족주의적 성향에 치우쳐 있으며, 사회주의가 중국을 넘어 아시아에 퍼져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이들은 중화민국이 아시아의 타 '사회주의 국가'들을 이끄는 맹주가 되기를 원한다.

  • 국민당國民黨

국민당은 중화민국의 우당들 중에 가장 오래된 정당이며, 정치인들의 계보로 따지면 삼민당까지도 올라가는 정당이다. 이들은 중화민국 초창기 삼민당 내 권력 투쟁에서 밀려난 우파들이지만, '세계의 참화' 대전쟁 시기 좌우 대립을 잊고 항일, 항 북중국을 외쳤던 정치인들을 직접적인 기원으로 한다. 당시 삼민당 정부는 이들의 협조를 받음으로서, 이 구 삼민당 우파 출신들에게 '관제 야당'으로나마 정부에 참여하는 것을 허용하였다. 국민당은 명목상으로 중화민국 내의 '우파 세력'을 대변하는 정당이자, 좌우 이념을 넘어선 '중국민족의 화합'을 도모하는 정당으로 설정되어 있다.

  • 경민당耕民黨

경민당은 중화민국 내의 상당한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농업인들을 대변하는 우당이다.

  • 근로인민당勤勞人民黨

근로인민당은 중화민국의 공업 노동자와 노동조합의 대표들이 중화민국 정치계에 직접 자신들의 의사를 대변한다는 취지에서 설립된 우당이다.

  • 기독당基督黨

기독당은 중화민국 내 기독교인들을 대변하는 정당들이다. 현실의 어느 중국과는 달리 본 세계관의 중화민국에서는 기독교가 명목상 불법이거나 탄압당하고 있지는 않다. 비록 그 비율이 극소수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중화민국의 국부 쑨이셴부터가 유학 시기 일정부분 기독교 사상에 감화되었으며, 또 삼민당의 초기 혁명가들 상당수가 좌파, 우파를 막론하고 기독교에 우호적이었거나 기독교인이 많았기에, 삼민당 정부는 기독교를 탄압하고 있지는 않으며, 명목상 기독당이라는 우당을 통하여 이들의 편의를 봐주고 있으며, 또 서구 유럽의 기독교권 국가 및 교황청과의 관계 개선을 꾀한다.

  • 불심당佛心黨

불심당은 중국에서 오랫동안 민중과 친숙한 종교였던 불교를 대변하는 정당이다.

  • 상공대표회商工代表會

중화민국의 국영 대기업 및 사기업, 공장주들의 '사회주의 참여' 및 '노동자들과의 협상'을 입법원에서 대변한다는 취지에서의 우당이다.

역사

제국의 멸망

가상지구 BF 세계관의 중국권 지역에서, 중화민국의 바로 전에 존재했던 국가는, 15C경 건국된 한족국가 송나라宋이다. 당시 중국권의 천자국으로 군림하던 몽골 제국의 붕괴기에, 여러 곳에서 반란이 일어났고 그들 중 가장 강성한 세력을 이루고, 최종적으로 새로운 천자국이 된 나라가 송나라이다. 이후 이 송나라는 17세기 중엽에, 동북부에서 세력을 규합하고 중국을 침략하러 한 '주르첸 족'에 의해 위기를 겪었으나, 이 위기도 극복해냄으로서 계속 중원의 패자로서 군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중국인들의 전통에 뿌리박힌 '천하' 개념 바깥에서, 이 천하를 뒤흔드는 듣도보도 못한 새로운 세력들이 나타났다. 그것이 바로 서구 유럽의 열강들이었다. 처음에 유럽의 각 열강들은 '평화적'으로 접근하여, 단지 중국의 물건들을 사가고 자신들의 물품을 교역하려 하였고, 이는 '오랑캐들이 나타나서 자신들의 신기한 것을 팔고 우리 것을 사 가는 것'정도로 여겼다. 그러나 이들은 점차 중국으로부터 더 많은 것을 요구했고, 끝내 중국이 이들의 마음에 들지 않자 군대를 파견하여 전쟁을 벌였다.

1842년에, 차 무역 분쟁으로 인해 일어난 중국-알비온 전쟁은, 중국이 어찌저찌 이기기는 하였으나, 당시 알비온의 '최첨단 해군'과 '최첨단 병사'들은 한참 기술 수준이 낮은 송나라의 군대, 목제 군함을 손쉽게 격파했고, 이 전쟁은 송나라가 약 1,000 명의 병사를 이기기 위해 수만명의 군대를 투입하고, 때마침 알비온이 유럽에서 또 다른 전쟁에 휘말리면서 어쩔 수 없이 '철군'해야 했기에 얻어낼 수 있었던 '승리 아닌 승리'에 불과했다. 이 전쟁으로 인하여 중국인들에게 각인된 서양은 '오랑캐'지만, '무섭고 끔찍한, 두려운 오랑캐'였던 것이었다.

제국의 수도 '베이핑北平'의 천자와 대신도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일부 수구적인 신료들은 현실을 아득바득 부정하려고 했지만, 당시 어린 황제의 섭정이었던 효숭현태후는 그나마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했다. 태후는 즉시 천자국으로서의 위세를 내버리고 서구에 사절과 견학단을 보내, 머리를 조아리다시피 하며 서구 열강들의 문물을 배우려고 했다.

제국 말기에 명목상의 군주가 아닌 진짜 천자는 태후나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거의 100살 가까이까지 살면서, 명목상으로 존재하는 황제들을 꼭두각시처럼 부리고, 제 마음대로 황제를 교체하기도 하면서 실질적으로 권력을 휘둘렀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권력으로서 쓸 수 있었던 국가의 역량을 자신이나 측근들의 사치에 거의 쓰지 않고[7] 제도와 군대 등에 사용하기만 하였다.

송나라는 거대한 중국을 배경으로 한 나라였기에, 이렇게 국가역량을 총동원하면서 거의 '멱살잡고 캐리하기' 수준으로 위로부터의 근대화를 한 결과, 송나라는 어떻게든 외견상으로는 서구 열강과 비슷한 모습을 보여줬다. 1891년, 일본의 함대가 송나라 인근 영해를 침범함으로서 발발한 '중국-일본 전쟁'에서, 제국의 함대가 일본 함대를 격침시키고 전쟁에서 승리 함으로서, 이 근대화가 전적으로 헛것은 아니라는 것이 명백해졌다.

그러나, 그 승리가 얼마 가지 않아 효숭현태후가 병사했을 때부터 송나라는 급속도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 근대화는 철저히 황제(실제로는 태후)의 권위로서 국민들의 불만을 억눌러가며, 철저히 위로부터 멱살잡고 끌려온 근대화였기에 백성들의 불만, 그리고 구체제를 추종하던 신료 계층의 불만이 넘쳐났다. 태후가 살아 있을 때는 태후가 직접 순방하며 백성들을 위무하고, 때로는 제압하기도 하면서 나라를 통제했지만, 마지막 제국인이었던 태후가 죽고 나자, 억눌린 불만을 통제할 수 있는 유능한 이들이 없었다. 또 태후가 죽자 권력을 잡은 신료 당파들이 부패와 사치, 향락에 빠져들면서 근대화 과정에서 이미 많은 수탈을 당한 송나라 백성들의 불만은 늘어갔다. 설상가상으로, 서구 문물과 제도를 배워오는 과정에서 '공화주의'나 '사회주의', '자유주의'와 같은 이념들이 들어오면서 중국인들 사이에 왕조 자체를 반대하는 기운까지도 늘어갔다.

제국의 마지막 심장이었던 태후가 죽고 나자, 급속도로 그 심장은 꺼지기 시작했고, 끝내 1907년, 제국의 국채를 갚는다는 명목으로 납세액을 늘린다는 정책에 반발한 백성들의 시위에 군벌, 공화주의자, 사회주의자, 다양한 세력이 얽힌 혼돈 끝에 제국은 붕괴해버렸고, 그 자리에는 그 당시 힘이 있던 군벌들이 난립하며 혼란에 빠지고 만다.

삼민주의와 삼민파

이 시기, 정말로 공화주의의 이념에 투철했든, 단지 제국에 반란을 일으키고 싶었을 뿐이건, 아니면 적당히 할거하고 싶었을 뿐이건, 혹은 자기가 새 천자가 되고 싶었던 간에, 송나라에 반대하던 각 세력들은 명목상으로는 공화주의를 수용한다는 선언을 하였고, 이들 중 몇몇 명망가들(반란 군벌, 송 제국의 멸망을 필연으로 받아들인 구 대신들, 공화주의 혁명가, 기타 반란가들 등)이 '한양漢陽'에 모여서, 민국 선언을 한다. 이는 현재 중화민국 정부의 공식 사관에서 제국시기의 종말, 민국시기의 시작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중화민국의 공식 건국시기로 삼고 있다.

그러나, 민국을 만들자라는 합의는 있었으나, 정작 민국이라는 이름이 존재했을 뿐, 민국의 정부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당시 서구의 공화주의 체제를 모방하여 구 제국 수도였던 베이핑北平에 '민국 입법회'를 만들자는 합의까지는 어찌저찌 진행되었고, 각 세력, 군벌들, 일부 명망가들이 적당한 대표자를 보내어 172명의 '입법 의원'들을 구성한 회가 생겨나기는 하였으나, 이들 중 몇몇 뜻 있는 이는 어떤 형식으로든 신국가를 수립하려고 하였으나, 대부분은 자기 세력의 이익을 도모하는데 골몰하였으며, 군벌들은 노골적으로 입법회를 무시하였다.

제각기 나뉘어져 있는 군벌들의 목표는 단순했다. 이유가 뭐가 되었든 간에 자신의 세력을 키우고 그를 위해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것, 이로 인하여 제각기 군벌들마다 자신이 '중화민국 정통 지도자'를 내세우며 민중들의 복종을 강요하거나, 반항하는 군벌이나 소규모 세력과 전쟁을 일으키거나, 심지어 어떤 세력은 '자신이 중화민국의 정통 지도자라고 국제적으로 승인받고 지원을 받기 위해' 외국에 이권을 팔아넘기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이들 중에 중화민국에서 '가장 위대한 이가 될 이'는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

쑨이셴孫逸仙은 송나라의 한 지역 유지이자 훈장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송나라의 '마지막 제국인' 효숭현태후의 근대화 정책에 의해, '외국 유학생단'의 일원으로 선출되어 유럽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는데, 본래 유학생단은 '무기, 과학, 관료제'등을 배우라고 보낸 것이지만, 이셴은 그런 것들엔 크게 흥미를 두지 않은 대신, 철학이나 정치학 등에 더욱 흥미를 가졌다. 그는 근현대 유럽에서 일어난 시민혁명의 역사, 그리고 당대 유럽을 떠도는 망령인 '레티시아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사상 등에 매료되었다. 나라가 원하는 것을 배우지 않았던 쑨이셴이 아니꼬왔던 제국 조정은 쑨이셴을 유학생단에서 추방시켰지만, 그는 그곳에서 하류 노동자로 일하며 직접 도서관 등을 전전하며 독학하였다.

그가 자신만의 공부를 끝내고 (거지꼴로) 나라로 돌아왔을 때, 애국주의와 충정심이 엿보였던 과거의 쑨이셴은 없었고, 대신 철저한 공화주의 이념에 투철한 혁명가만이 존재했을 뿐이었다.

송나라의 붕괴가 임박했을 때, 그는 처음에는 열렬하게 '제국의 붕괴'를 지지하였다. 제국이 붕괴되면 곧 공화국이 들어설 것이며, 반란자들이 바른 정부를 세워서 곧 서구의 공화국과 같은 좋은 나라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틀렸다. '민국'의 이름은 있었지만 민국의 정부는 없었으며, 단지 왕, 황제, 천자의 행세를 하지 않았을 뿐 각지를 점거한 군벌 세력가들은 왕과 다름이 없었다. 적극적으로 입헌과 의회, 민치를 주장하던 쑨이셴은 전제적이던 군벌 세력가들에게 눈엣가시였으며, 심지어 이들은 쑨이셴을 체포하려고 하거나, 암살을 시도하기까지 할 정도였다. 그래서 쑨이셴은 잠적하였다가, 밀항하여 일본국으로 도망갔으며, 거기서 '중국의 공화주의 이론'을 작성하기 시작한다, 그의 저작에서 현 중국의 공식 이념인, 삼민주의, 즉 민족, 민생. 민권오권분립체제가 완성된다.

쑨이셴은 일본에서 여생을 보낼 수도 있었으나, 자신에 대한 군벌들의 감시가 느슨해지자 다시 돌아온다. 중국에서 그의 삼민주의와 오권분립을 담은 저서를 팔아먹으면서 그는 '민국을 정말로 만들자' 라며, 삼민주의의 당, 삼민당을 만들기 시작한다. 삼민주의가 중국에서 태동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진정한 민국을 만들기 위해서는 군벌들을 붕괴시킬 필요가 있다고 판단, 당시 쑨이셴이 강남 지방에 위치하고 있었기에 여기서 봉기하여, 북쪽으로 진군하자는 북벌론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중국 남부를 석권하다

그러나, 삼민주의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중국권에 많이 퍼졌다고 해서, 그들의 수가 많다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았다. 이들은 수만 많았지 힘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힘을 가진 것은 중국에 할거하고 있는 군벌들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쑨이셴은 일종의 필요악으로, 당시 군벌 중 한 사람을 북벌의 동맹으로 삼기로 결정했다.

당시 군벌들 중 리진쿤李進坤은 중국 대륙 내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이었던 광서-광동 지역을 석권한 군벌이었고, 당대의 '무식한' 군벌들 중에서 그나마 현대적인 사상에 익숙한 사람이었으며 좌파적 사상에도 어느정도 우호적인 사람이었다. 쑨이셴은 군벌 리진쿤을 필사적으로 설득하여 그가 북벌에 나서도록 설득했고, 리진쿤도 야망이 있는 사람이었기에 통일된 중화민국의 '총통'이 되려는 야심을 품고 북벌에 성공하였다.

그러나, 리진쿤이 북벌의 포고문을 읽고 진군할때쯤, 쑨이셴은 병사하고 말았다. 리진쿤은 당대의 주요 군벌 중 하나였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북벌의 상징'으로 여겨질 만한 인망은 없었다. 그리고 북벌과 삼민주의의 상징이었던 쑨이셴이 병사했을 때, 그 뒤를 이을 사람이 없었다면 북벌은 붕괴했을 것이라는 것이 학계의 다수설이다. 그러나 북벌의 의기를 이어감과 동시에, 삼민당을 현재의 민족주의적 좌파 정당으로 이끌어간 새로운 아이콘이 나타났다.

왕후란王虎蘭왕룽王隆은 광서 지방 빈민가의 이름없는 '어느 왕씨'에게서 태어났으며, 태어나서 10대 중반까지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지만 당대의 '근대적 자선기관'을 통해서 운 좋게 학문을 접할 수 있었다. 이들의 야학에서 왕씨 남매는 '그들이 가난하고, 또 멸시받는 것'은 자연스러운 질서가 아니라, 타파해야 할 죄악이라는 의식을 갖게 되었고, 그들의 정의감을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더더욱 공부해 들어가면서 이들은 '레티시아 마르크스'와 '카를라 엥겔스'의 공산주의 서적까지도 접하게 되면서 이들은 강경한 좌파 사상가로 변모해 있었다. 쑨이셴이 '삼민주의'를 주창하며 삼민당을 창당했을 때, 왕씨 남매는 즉각 삼민당에 입당했고 열성적인 당원이 되었다.

이들이 삼민당의 당원이 됨으로서 그들에게 엄청난 정치적 능력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는데, 왕후란은 여성의 몸으로. 편견에 가득했을 중국의 남성들까지 홀릴 수 있는 데마고그적 선동 능력이 있었으며, 왕룽은 당이라는 하나의 조직을 관리하고 통치하는 데 일가견이 있었다. 이들의 천부적인 재능은 사망한 쑨이셴의 자리를 대신할 수 있었다.

리진쿤이 자신의 군벌 군대를 동원하여 다른 군벌을 격파하고 복속시킨다면, 왕후란은 중국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삼민주의를 따르라는 연설을 하였고, 또 '그 많은 인구'를 가진 중국인들의 절반인 여성들을 적극적으로 공략하여, 삼민주의와 삼민당에 동조하는 여성회, 부인회들을 결성하고 이들이 (남성들만 주목하고 있는 현상에서) 물밑에서 삼민당에 우호적인 현지 공작 세력이 되었다. 이 여성회들은 자발적으로 북벌군에게 물자를 제공하거나, 부인회의 인맥을 통해 군벌 휘하의 하위 장교층이나 병사층을 분열시키는 등 북벌군의 '제 5열'[8]이 되었으며, 왕룽은 쑨이셴의 권위가 부재했을 때 삼민당의 들끓는 혁명가들을 안정시키고 분열되지 않도록 보이지 않는 밑바탕이 되어 주었다.

리진쿤 - 왕후란 - 왕룽은 곧 북벌 시기 삼민당의 3대 권력 축이 되었으며, 북벌이 순조로이 진행되어 가는 것처럼 보이면서 이 3축은 승리의 위광에 힘입어 나름대로 유지되어 갔다. 그러나 중국 북쪽에서도 중국의 구 수도 베이핑을 근거지로 한, 구 제국군 중앙부를 근원으로 두는 베이핑 군벌 또한 주변의 군벌들을 타협, 정복 등으로 흡수해가며 우세를 점하고 있었고, 베이핑 군벌 또한 자신들을 중화민국 정통 정부라고 자처했기 때문에 삼민당과 베이핑 군벌 양쪽은 결국 서로를 적대시하게 되었다. 삼민당의 왕룽은 그래도 베이핑 군벌과의 협상과 공동 정부를 제안하는 회담을 제안하였지만, 이 회담이 이해 차이로 결렬됨으로서 평화적 타협의 기회는 사라졌다.

1928년, 중원대전이라고 일컬은 삼민당 - 베이핑 군벌간의 전쟁은 상호간 무승부로 끝났다. 이 전쟁에서 삼민당 측은 리진쿤이 전사함으로서 3축의 한 핵심이었던 '군사적 재능'이 소실되었고, 베이핑 군벌 또한 많은 피해를 내서 '남벌'을 할 여력을 상실하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혼란기에 빠졌던 중국 대륙은 북쪽의 베이핑 군벌, 남쪽의 삼민당으로 양분된 채 대치하게 된다.

주석

  1. 제국 붕괴 시기를 기점으로 한다.
  2. 대표적으로 그 국가의 헌법보다, 당의 규약이 실질적으로 더 높은 지위를 갖고 있음에서 드러난다.
  3. 가장 높은 것은 민국 주석이지만, 주석은 국가원수의 업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당 내 행정업무는 당무위원장이 맡는다
  4. 민주적 사회주의/생디칼리슴 국가인 미텔란트 코무네의 선거도 포함한다.
  5. 중화민국은 지속적으로 산업화 과정을 진행하고 있지만, 여전히 농업의 비중이 매우 높으며 그만큼 인구에서 농민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다.
  6. 여당과는 다른 당이지만, 여당의 통치체계를 인정하고 이에 복종하는 정당들, 한국 정치계의 용어로 말하자면 '2중대'
  7. 심지어는, 함대를 만들기 위해 자금이 부족하자고 하자, 황실의 의전 비용을 축소할 정도였다.
  8. 현실 스페인 내전에서, 쿠데타군 수괴 프랑코가 자신에게 4개의 부대뿐만 아니라 적의 뒤에서 호응하는 제 5열이 있다고 발언한 데서 유래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