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드릴라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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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lactic Republic
국기 국장

찬드릴라 공화국의 세력권
수도 찬드릴라->나카디아->호스니안 프라임(의회수도), 찬드릴라(사법수도), 호스니안 프라임(행정수도)
최대 도시 코르산트
정치
공용어 베이직
 
 • 역사 ABY 4년 2월 5일~ABY 253년 11월 7일
경제
통화 크레딧 (C)

찬드릴라 공화국(Chandrila Republic)은 스타워즈 K-1 평행우주에서 존재하는 범은하적 민주적 행성연합체이다. 보통 신 공화국(New Republic)이라고 불린다. 첫 수도가 찬드릴라였기에 역사가들은 찬드릴라 공화국으로 부른다. 쉬브 팰퍼틴 황제의 은하제국 체제를 붕괴시킨 반란연합(Rebel Alliance) 주도로 세운 민주공화국이다. 대략 스타워즈 K-1 은하의 25-30%정도를 회원국으로 두고 있으며 미탐사지역(Unknown region) 제외한 운하의 상당수 부분을 여러 협정과 치안 전진기지(Judicial Outposts)를 통제한다. 보통 수도로 불리는 의회 수도(Senatorial Capital)은 의회에서의 투표를 통해 정하여 순회하여 실무적 기능을 담당하는 사법 수도(Judicial capital)과 행정수도(administrative capital)가 따로 있다. 사법수도는 찬드릴라(Chandrila)이고 행정 수도는 호스니안 프라임(Hosnian Prime)이다.

1. 역사

1.1 은하 과도 위원회(GTC)[ABY4년-ABY10년]

엔도르 전투(Battle of Endor)에서 반란연합이 승리하고 황제 팰퍼틴과 그의 함대가 궤멸된 후, 반란연합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잉 반란연합 위원회(Rebellion council)은 은하 과도 위원회(Galactic Transition Council)로 변모했다. GTC는 반란연합의 민간 정부로 기존 반란연합세력뿐만 아니라 엔도르 전투 이후 제국에 반기를 든 신 반란세력들이 대표자를 보내 반란연합의 의사결정에 참여하였다. GTC 의장으로 취임한 몬 모스마(Mon Mothma) 의원은 제국 잔당의 소탕이후 은하 단위 총선거를 실시할 것을 공약하고 국가 조직에 나섰다. GTC 창설이후 반란 연합은 빠르게 국가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이에 비해 은하제국은 펠퍼틴 사후 지휘계통이 붕괴하여 빠르게 군벌화가 진행되었다. 야심찬 정치군인들은 마스 아메다(Mas Amedda)가 이끄는 제국 중앙정부를 무시하고 자신의 세력기반을 만드는데 바빴다. 각 지역의 제국군은 다른 지역의 제국군과 협력은 커녕 대립했다. 이 때문에 각 행성정부와 제국군, 제국의 행정조직과 제국군간의 격화되었다. 이에 많은 행성들이 행성정부 단위로 봉기하였고 제국군은 반란연합군에 대응하기보다는 현지 안정화에 바빴다. 또한 제국군의 일탈행위에 분노한 제국관료들도 GTC에 가담하여 제국의 보급망 붕괴를 가속화시켰다.

1.2 코러산트 해방과 신 공화국 선포

이렇게 혼란에 빠진 제국은 빠르게 영향력을 잃어 갔고 반란연합은 제국의 압제로부터 많은 행성을 해방시키며 제국의 수도 코러산트를 향해 진격하기 시작했다. 코르산트는 제국의 지방 장악력이 떨어지면서 수비병력이 빠르게 붕괴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스 아메다의 제국 중앙 정부는 여전히 상당한 전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전체 제국군 병력에 비하면 미미했지만 반란연합에게는 버거운 상대였다.

하지만 반란군 지휘관들의 뛰어난 전략과 코러산트 내의 저항조직의 협력으로 제국의 코르산트 수비 함대는 붕괴되었고 마스 아메다와 제국 중앙정부는 항복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코러산트 전투 참조

이렇게 코러산트가 해방되고 제국의 명목상의 중앙 정부가 항복하자 몬 모스마 GTC 의장은 반란연합을 국가로의 개편을 완성할 필요를 느꼈다. 그래서 그녀는 찬드릴라에서 GTC 33회 임시회를 소집하였다. 여기서 몬 모스마는 신 공화국의 정부 수립과 제헌의회 소집을 위한 총선 실시를 안건으로 제출하있다. 이 안건을 GTC 는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이에 몬 모스마 의장은 전 은하로 생중계된 담화를 통해 신 공화국의 창설의 선포하고 제헌의회 선거일을 공고하였다.

1.3 찬드리아 시대 [ABY4년-ABY20년]

1.3.1 자쿠 전투와 제국 잔당의 소탕

코러산트의 제국 중앙정부는 항복했지만, 전쟁은 끝난 것이 아니였다. 제국의 중앙 군사력은 제국군의 극히 일부에 불과 했고 막강한 지방 군사력이 남아있었다. 중앙정부가 항복하자 지방의 제국의 군벌들은 그제야 신 공화국의 위협을 인지하고제국 군사위원회(Imperial military council)을 구성하고 반격을 준비했다. 다행히도 제국군의 전력은 군벌간의 전쟁으로 많이 소진된 상태있다 또한 일부 군벌들은 자신의 세력 손상으로 이어질까봐 두려워 충분히 많은 병력을 제국 군사위원회에 보내지 않았다. 그래서 제국 군사위원회가 자쿠(Jakku)로 병력을 총집결시켰을 때, 제국 기준으로 보았을 때 그 병력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또한 보급망의 붕괴도 제국군을 괴롭혔다. 제국 병력이 자쿠에 집결한다는 첩보를 입수한 찬드릴라 공화국 함대는 즉시 대병력을 자쿠에 투입시켜 제국군을 공격했다. 전혀 준비가 안 되어 있던 제국군은 공화국 함대의 기습을 받고 궤멸적 피해를 입었다. 제국 군사위원회의 반격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고 제국 잔당들은 수비에 전력할 수 밖에 없었다. 자세한 것은 자쿠 전투 참조

공화국함대는 이 승리의 기세를 타고 제국 잔당들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였다. 이 공세를 자쿠 공세라 부르며 제국 잔당들의 기반을 성공적으로 파괴했다고 평가받는다. 자세한 것은 자쿠 공세 참조

1.3.2 은하 협정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된 제국 군사위원회는 찬드릴라 공화국 정부와 “명예로운 항복”을 위한 협상을 시작하였다. 이 협상에서 제국 군사위원회는 제국인사들에 대한 사면과 제국 잔당 군벌들의 기반 유지를 요구하였다. 공화국은

1.3.3 신 공화국의 사법함대와 ILE 창설

은하 내전은 공권력의 부재를 가져왔고 이는 해적과 갱단의 범죄의 급증을 가져왔다. 그래서 제국 잔당을 어느 정도 정리한 신 공화국은 치안 조직을 구성하여 치안 유지에 힘을 쏟기 시작했다. 그 결과가 사법 함대와 항성간 법집행청(Interstellar Law Enforcement, ILE)의 창설이다. ILE은 수사기관으로 법무관(Praetor) 지휘를 받아 중대 범죄를 수사했고 사법 함대는 그 수사를 위한 강제력을 제공하였다. ILE는 처음에는 임시 조직이었다가 제헌과정에서 법치연합의 요구에 상설 조직이 되었다. 초기 몇 년 간은 무덤이라고 불릴 정도로 수많은 인원들이 해적과 갱단과 싸우다 죽었다. 하지만 이들의 희생 덕분에 은하의 치안은 크게 개선되었다.

1.3.4 신 공화국 제헌의회 소집

제국 잔당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고 은하가 어느 정도 안정이 되자, GTC는 제헌의회 구성을 위한 선거를 공고하고 실시 하였다. ABY 8년 1월 2일 제헌의회 선거가 실시되었다. 몬 모스마가 이끄는 은하 공화당이 제 1당이 되었고 몬 모스마가 신 공화국의 초대 최고의장으로 선출되었다.

선거결과 정당. 의석 분포

은하 공화당(Galactic Republicans) 30%

법치연합(Legalist Union) 21%

인민전선(Popular Front) 15%

외곽연합(Outer Rim Confederate) 10%

자유동맹 (Liberal Alliance) 6%

복귀연합 (Restoration Federation). 3%

철혈단 (Blood and Iron). 2%

무소속. 13%

1.3.5 신 공화국의 헌법 제정과 인민전선과의 갈등

제헌의회는 소집된 후 헌법 제정 작업에 나섰다. 제헌의회는 일단 GTC를 과도정부로 승인하여 GTC에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 하였다. 그리고 각 분야별 제헌 소위를 소집하여 헌법제정에 나섰다.

그런데 이 헌법 제정과정에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몬 모스마를 중심으로 한 "시민주의자들"(Populist)은 은하 제국 성립 이전의 은하 공화국의 은하 헌장(Galactic Charter)를 바탕으로 헌법 제정을 원했다. 자유시장경제, 강력한 지방 분권, 작은 중앙정부, 비무장화로 대표되는 구 은하 공화국체제를 원했다. 즉, 구 공화국의 부활을 시도하였다. 이 것은 많은 시민주의자들은 제국의 초기 부터 정치적으로 "위대한 공화국"으로 복귀를 시도한 구 은하의회 의원들인 것에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이는 "중앙주의자"(Centrist)와 "인민전선"(Popular Front)의 반발을 샀다.

법치연합으로 대표되는 중앙주의자들은 클론전쟁의 원인을 약한 중앙정부가 지방 토호들의 준동을 막지 못해 분리주의자 사태가 발생한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그들은 작은 중앙정부와 비무장화에 반대하였다. 그래서 중앙정부의 역할 확대와 치안 유지를 위한 강력한 함대 유지를 요구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제국의 국유화 정책 폐기에는 반대하지 않았다. 이는 많은 중앙주의자들이 강력한 중앙정부의 유용성과 계획 경제의 실패를 목격한 구 제국의 문민관료들인 것에서 비롯되었다.

인민전선은 구공화국으로의 귀환을 원치 않았다. 그들은 “인민 국가”(Popular State)를 원했다. 인민국가는 행성 정부 해체, 중앙집권화, 국유화, 계획경제를 통해 전통적인 코어 월드(Core World)의 엘리트와 지방 토호들을 타도하여 평등을 달성하려는 국가체제있다. 이 때문에 그들은 제국의 국유화나 중앙집권화 정책, 제다이 숙청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았다. 그들이 제국에 항거한 이유는 제국 정부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고 인간우월주의 사상에 찌들어 외계인들을 노예화 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혼란은 신구 한비(Singu Hanbi)이끄는 법치연합과 몬 모스마의 은하 공화당이 군사적 목적의 함대 유지와 ILE 상설화에 합의하고 제국에 의해 국유화된 산업체들의 민간으로 이양하기 실시하자 인민전선의 더욱 반발하기 시작했다. 구 공화국 헌법에 의회의 권력 제한, 사법부 권한 확대, 이익단체의 의회 대표자 파견 금지 정도만 추가한 신 헌법이 제헌의회의 80%의 동의를 얻어 통과하자 인민전선 의원들이 모두 사퇴하고 신 헌법을 무효라고 선언하였다. 이에 몬 모스마 내각은 GTC 헌장에 헌법 제정에 제헌의회 2/3 동의만 있으면 된다는 규정을 들어 헌법 공포를 강행하였다.

1.3.6 찬드릴라 헌정위기

몬 모스마 최고의장이 신 공화국 헌법 공포를 강행하고 선거일을 공고하자 인민전선 지도부는 혼란에 빠졌다. 당시 지도부는 온건파인 라노 스텔리(Lano Stenli)가 이끌고 있었는데 그는 몬 모스마가 나약한 지도자로 생각하고 헌법 공포를 강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몬 모스마 최고의장은 강행을 했고 이에 인민전선의 온건파 지도부의 위신은 땅에 떨어졌다.

이에 소라 파티산(Sorra Partisan)등 인민전선 과격파들이 봉기하여 “인민국가”를 선포하고 신 공화국 헌법을 무효라고 선언했다. 이에 호응하여 찬드릴라 주둔 제 4 포병 군단과 제 13 보병군단이 봉기해 공화국 정부를 공격하였다. 하지만 샨드릴라 경찰(Chandrilan Planetary Police)와 향토 방위 함대(Chandrilan Local Defense Fleet)가 반격하여 공화국 정부를 제압하는데 실패하였다. 또한 모든 회원국 정부들도 신 헌법의 효력을 인정하고 자국내 "인민국가"의 소규모 봉기를 빠르게 진압하였다. 마지막으로 "인민국가"은 민중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 하지만 정부도 반란세력 초기 진압에 실패해 의회가 위치한 하나 시티 (Hanna City) 외곽에 콤그라드(Comgrad)를 “인민국가”에 내주었다. 이에 반란세력의 제 4 포병 군단은 콤그라드에 하나 시티를 향해 포격을 하기 시작했다. 콤그라드는 은하 내전 시대 제국의 공격에 대비해 요새화되어 강력한 방공망이 있어 신공화국 정부측 병력이 제공권을 장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압에 어려움이 있었다. 이에 공화국 정부는 신 공화국에 충성하는 구 제국군 병력인 “자유군단”을 동원하여 스타 디스로이어를 이용한 제한적 궤도폭격을 실시하고 지상전역에도 스톰트루퍼들을 투입시켜 “인민국가”의 봉기를 진압하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은하의 정정 불안은 많이 해소되었다. 신 공화국은 헌법을 제정하여 민주적 정당성을 가지게 되었고 봉기가 확산되기 전에 빠르게 진압하여 신 공화국이 은하에 대한 통제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공화국 정부를 종이 호랑이 취급하던 반란연합내의 극단주의자들도 어느 정도 자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신 공화국과 인민전선의 관계는 회복불능상태에 이르렀다. 인민전선 사람들은 공화국을 증오하기 시작했다. 인민전선 과격파 잔당들은 지하로 숨어 들어 인민지하동맹(Popular Underground Alliance) 결성하여 신 공화국에 테러 행위를 하기 시작했고 인민전선 온건파는 의회에 복귀해 “민중회의”(Populace Congress)라는 정당을 만들어 체제 변혁을 위한 정치 투쟁을 시작했다.

1.3.7 신 공화국의 1대 총선

찬드릴라 공화국 헌법하에서 치러진 첫 선거이다. 은하공화국과 다르게 모든 지역구는 직선제이고 비례대표제가 도입되었다. 지역구와 비례대표제 비는 5:1이었다. 무역연합(Trade Federation)같이 일부 이익단체가 의원을 의회에 보내는 법인대표제도를 폐지했다. ABY 10년 11월 2일에 실시되었다. 인민전선 계열 정당인 민중의회는 몰락했고 군소정당들이 약진했다. 법치연합-은하 공화당 거대 양당을 중심으로하여 여러 군소 정당들이 연립하여 정부가 구성되는 10년 체제가 시작되었다.

선거결과 정당. 의석 분포

은하 공화당(Galactic Republicans) 35%

법치연합(Legalist Union) 30%

외곽연합(Outer Rim Confederate) 10%

자유동맹 (Liberal Alliance) 6%

민중회의(Popular Congress) 5%

복귀연합 (Restoration Federation). 3%

철혈단 (Blood and Iron). 2%

무소속. 9%

1.3.8 쓰론 전쟁

쓰론쉬브 펠퍼틴 황제의 명을 받아 비탐사지역을 개척하던 은하제국의 대제독이었다. 거기서는 그는 쉬브 팰퍼틴의 명을 받아 제국의 손이라는 식민지제국을 세우고 비탐사지역에서 대대적인 탐사와 개척을 벌였다. 그는 수많은 미개문명을 복속시켰고 새로운 하이퍼스페이스 항로를 발견했다.

엔도르에서 승리 이후 제국 잔당들이 잇따라 반란 연합에 의해 무너지고, 마침내 제국 수도 코르산트가 반란 연합에 의해 빼앗겨 찬드릴라 공화국이 수립되기에 이르를 무렵에도 쓰론은 여전히 변경에 머물러 있었다. 이때 그가 한 일은 자신의 직속 세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제국의 여러 비밀을 탐지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ABY 10년 제국군사위원회가 사실상 찬드릴라 공화국에 항복하자 쓰론은 기함인 어드모니터를 아우터림에 두고 제국 중앙함대로 복귀한다. 그는 제국 수뇌부의 인정을 받아 제국 육해군 총사령관의 지위를 장악한 그는 놀라운 전술로 찬드릴라 공화국 제1 함대를 궤멸시키면서 찬드릴라 공화국을 충격으로 몰아넣고 그를 의심하는 제국 장성들을 복종시켰다. 제국군사위원회를 완전히 장악한 쓰론은 자신이 왜 이제야 중앙으로 복귀했는지 이유를 공개했다. 그는 황제의 비밀을 발견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황제의 비밀은 바로

1.4 나카디아(Nakadia) 시대 [ABY20년-ABY30년]

1.4.1 진보의 시대

평화기

1.5 호스니안 프라임(Honsian Prime) 시대
ABY30년-ABY 40년

호스니안 프라임시대는 경제 위기와 정치적 혼란은 점철된 시기였다. 대공황이 발생하여 은하계의 경제가 초토화되었다. 이는극단주의 세력들이 발흥으로 이어져 여러 행성들이 내전이 발생했다. 중앙 정치도 ABY 32년에는 12번 최고의장이 바뀌는 등 대혼란에 빠졌다. 은하계의 변경에서는 제국 잔당들과 공화국 사법함대가 지속적으로 교전하여 아우터 림 지역이 전쟁터가 되었다. 포스 범죄도 급증하여 시스 형제단이 등장하고 신 제다이 기사단 내에서 일부 타락한 제다이들이 렌 기사단을 만들어 공화국 정부를 전복시키려고 시도를 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신 제다이 기사단이사회의 음모때문에 불법화가 될 뻔하는 등 위기를 겪었다.

다행히도 이사회의 음모는 실패로 돌아갔고 중앙정치는 레아 오르가나가 최고의장이 된 후 어느정도 안정되었다. 제국 잔당의 준동은 제다이 기사단이 중재한 코르굴사 협정으로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 30년대 말 경제가 어느 정도 회복되면서 극단주의 세력도 힘을 잃는다. 신 제다이 기사단은 정치적 위기때마다 중재 노력을 통해 평화적 해결을 도출해내어 제다이 권위와 명성을 회복해 나갔다. 30년대는 은하 규모의 유혈사태만 없었을 뿐, 매우 혼란스러운 시대였지만 새로운 전성기를 향해 도약하기 위한 성장통의 기간이있다.

1.5.1 대공황

1.5.1.1 경제적 영향
1.5.1.2 정치적 영향

1.5.2 제국 잔당들의 준동

1.5.3 포스 관련 범죄 폭증

1.5.4 인민전선의 부활

1.5.5 13명의 의장의 해

1.5.6 범죄외의 전쟁

1.5.7 “이사회”의 폭주

1.5.7.1 “이사회”
1.5.7.2 배리스 오피(Barriss Offee)의 음모
1.5.7.3 의회 시스 사건
1.5.7.4 의회 최종권고(Senatorial ultimatum)
1.5.7.5 렌 기사단
1.5.7.6 카일로 렌 테러 사태
1.5.7.7 이사회의 공작과 제다이-렌 전쟁
1.5.7.8 마라코르 5 (Malachor V) 참사

1.5.8 특별구역 문제

1.6 코르산트 시대 ABY 40년 - ABY 200년

레아 오르가나 정부의 제 1 차 은하경제계획이 성공 하면서 찬드릴라 공화국은 대공황을 벗어났다. 경기가 좋아지자 퍼스트 오더나 인민전선같은 극단주의자 세력은 몰락했고 공화국에는 평화와 안정을 되찾았다. 그리고 루크 스카이워커마라 제이드가 중재한 코르굴사 협정 덕분에 특별구역 문제는 표면적으로는 해결된 것처럼 보였다. 이 기간동안은 별로 큰 사건이 터지지 않아 신 제다이 기사단은 전투 집단이라보다는 평화사절단 같은 역할을 하있다.

하지만 이 평화기는 시스들의 성장이 있었던 시절이기도 했다. 오더66은하내전을 거쳐 대중에 풀려 버린 시스 홀로크론 같은 포스 물체들은 전량 회수되지 못했고 신 제다이 기사단은 구 제다이 기사단과 다르게 원하는 포스 센시티브들만 참여하는 것이기 때문에 시스로 타락할 포스 센시티브들은 많았다. 다크 사이드 포스 물체를 접촉하여 타락한 포스 유저들은 시스 형제단을 만들어 자신들이 가진 지식을 공유하며 시스 재건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포스 관리국, 항성간 법집행청, 신 제다이 기사단은 정기적으로 일제 단속을 벌였지만 시스 형제단은 계속해서 살아남았다. 특히 코르산트 시대 말기로 가면서 사회 부조리가 확산되자 시스 형제단은 폭발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1.7 독재집정관 체제의 대두 ABY 200년-ABY 213년

150년 이상의 평화와 번영를 누린 찬드릴라 공화국 체제는 동맥경화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공화국의 공공 행정 조직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비대해지며 공화국 말기에는 방만한 관료제의 전형적인 문제점들이 그대로 드러나고 말았다. 부정부패는 기본이고 각 기관 간 업무 떠넘기기, 업무 태만 등이 만연해져 공적 업무가 정상적으로 집행되지 않았다. 또한, 공화국 정부는 공화국 내의 여러 세력들 간의 점증하는 갈등을 제대로 조정하지 못하여 정부의 위신이 크게 추락하고 있었다. 특히 루크 스카이워커마라 제이드가 중재한 코르굴사 협정이 흔들리면서 특별구역보통구역의 갈등이 재발했다. (코르굴사 위기) 이러한 문제점을 감시하고 견제할 감사조직이나 사법부도 부정부패하긴 마찬가지여서 자정이 일어나기 매우 어려운 구조였다. 그래서 공화국의 헌법기관들이 아닌 신 제다이 기사단이 나서야 문제가 해결되는 경우가 빈번해지기 시작했다.

이때문에 공화국의회내에서는 이러한 동맥경화 현상을 타파하기 위해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찬드릴라 공화국의 평시 행정부는 온 최고의장을 중심한 고등위원회가 이끌어 왔다. 고등위원회 체제는 집단지도체제였기 때문에 행정부내 한 개인에게로의 권력으로 집중을 막아 왔다. 하지만 이 체제는 찬드릴라 공화국 말기에는 빠른 정책결정을 방해하는 정부의 마비와 무능의 상징이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GTC 시기와 쓰론 전쟁기 잠시 있었던 최고의장을 중심으로한 단일 지도체제가 필요하다고 여겼다. 그래서 탄생한 체제가 독재집정관 체제이다. 독재집정관 체제는 23인으로 구성된 고등위원회 대신 독재집정관을 뽑아 많은 권력을 집중시키는 단일지도체제이다. 그런데 이 독재집정관체제는 GTC 시기의 최고의장보다도 더 권력이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헌법기관간 권력분립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또한 독재집정관에 계속하여 권위주의적 대중선동가(스트롱맨)들이 당선되면서 민주주의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1.8 반란의 시대 ABY 213년 - ABY 223년

1.8.1 쿠앗 대반란

오랜 평화는 언제나 민주주의를 쇠퇴시킨다. 약 170년 이상의 평화는 찬드릴라 공화국의 의회와 국민들로 하여금 중세적 정체의 그림자 안에 빠지게 되었다. 피로와 권태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정의를 밀어냈다.과학기술의 새로운 발견은 명맥이 끊어졌고, 민주주의는 자정능력을 잃었으며, 사회의 문화는 퇴폐 일로를 걸었다. 이런 찬드릴라 공화국의 문제는 독재라는 이름의 극약으로 처방되는 듯 했다.

허나 독재는 더욱 중우정치의 길로 민주주의를 밀어내었고 결국 진정한 민주주의자들은 혁명을 시작했다. 쿠앗 대반란의 시작이었다.

ABY 213년 9월 13일, 쿠앗의 최대도시인 엘쿠앗시티에서 혁명가 케이 모스마을 선두로 한 신공화민주당을 비롯해 공화국 제7함대가 반란을 일으켰다. 그들은 성공적으로 쿠앗을 정복했으며, 이후 데바론과 온데론에서도 반란이 일어났다. 그러자 마침내 공화국 독재집정관로 하여금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는 호스니안 프라임 대전을 불러 일으켰다.

1.8.2 호스니안 프라임 대전

계속되는 반란은 코어 림 지역을 유린했고, 결국 군은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수 밖에 없었다. 처음엔 신 제다이 기사단에게 맡기려 했으나 신 제다이기사단은 포스의 순리에 따라 공화국의 일에 개입하지 않기로 하였다.(자세한 건 신 제다이 기사단 문서 참조) 결국 공화국군이 호스니안 프라임에 주둔하여 반군을 압박하는 수 밖에 없었다.

한편 반군은 공화국의 부패를 괴멸시키고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겠다고 하며 스스로를 공화국의 자유와 민주주의 세력의 연합이자 은하의 모든 행성들의 연맹이라고 하였다. 이를 오늘날의 역사가들은 자유연합 은하연맹이라고 칭한다. 반군은 스스로 찬드칠라 공화국 정통정부라고 생각했으며 이를 증명하기 위해 공화국군이 주둔한 호스니안 프라임을 공격했다. 이것이 바로 호스니안 프라임 대전이다.

1.9 공화국의 황혼 ABY 230년 - ABY 255년

호스니안 프라임 대전 이후로 공화국군은 사실상 괴멸되고 말았다. 자유연합은하연맹군은 성공적으로 찬드릴라에 개선했으며, 독재집정관을 몰아내고 정치 개혁을 실시하여 국민의 지지를 받았다.

허나 왜 역사는 반복되는 것일까. 일명 후기개혁이라고 불리우는 이 개혁은 실패하고 말았다.

그렇게 신정부는 오히려 공화국의 분열을 초래해 버렸다.

국민들과 의회, 그리고 신 제다이기사단은 신정부와 이전 정부 지지파로 나뉘었고 심지어 자유연합은하연맹파벌 마저도 개혁을 지지하는 파와 반대하는 파로 나뉘었다.

이 상황에서 더 나빠질 수 도 없을 것 같았으나 특별구역 문제가 또 다시 심해져 의회는 난장판이 되어 버렸다.

구시대 구공화국 말기처럼 정치는 회생 불가능한 상황에 빠지게 된다.

이를 두고 훗날의 역사가 마틴 M.매버티는 말한다.

공화국의 황혼이 찾아왔다


황혼이 찾아온 공화국을 기다리는 건 부활이 아니라 다른 것이었다

제국의 복수였다.

1.10 시스의 복수 ABY 255년~257년

1.10.1 펠 제국의 대두

이렇게 찬드릴라 공화국이 혼란이 빠져드는 동안 특별 구역에서는 불온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었다. 보통구역독재행정관 정치, 쿠앗 대반란, 후기 개혁 실패등에 의해 혼란에 시달릴 때 특별구역에서는 제국 잔당들이 다시 기지개를 펴기 시작했다. 코르굴사 협정에 의해 총독 대표(Moff Representative)라는 직책이 있었는데 원래는 특수구역의 제국 잔당들을 대표해 공화국 정부와 협상을 하는 역할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ABY 200년 총독 대표가 된 자가드 펠(Jagged Fel)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이 직책이 분열되어 있는 제국 잔당들을 통합할 수 있는 직책으로 보았다. 그는 제국이야 말로 공공의 선을 실현하는 최고의 체제로 여겼다. 그는 제국 잔당들을 재규합하여 제국을 건설하여 은하의 평화와 질서를 회복시키려고 했다.

자기드 펠은 정치적 공작을 통해 총독 대표의 권한을 늘려갔고 자신이 종신 총독 대표가 될 수 있도록 공화국의회에 로비를 했다. 그리고 부패한 공화국 의회는 그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른체 ABY 205년 자기드 펠을 종신 총독 대표로 임명했다. 자가드 펠은 코르굴사 위기때 제다이들과 잘 협력하여 위기를 극복하여 제다이들 사이에서 환심을 샀다. 또한 총독 대표 보좌국 사실상의 정부를 만들어 특수구역내에 작은 제국을 세웠다.

그리고 쿠앗 대반란이 터졌을 때 혼란을 틈 타 제가드 펠은 특수구역내 자신을 반대하는 총독들을 제거하여 특수구역에 대해 완전한 통제력을 획득했다. 그는 군주(Prince)를 자칭하기 시작했고 자신의 아들 로안 펠에게 ‘왕위’를 계승할 준비를 하였다. 그는 사실상 황제있다.. 특수구역은 이제 펠 제국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쿠앗 대반란이 끝난 후 후기 개혁시기는 찬드릴라 공화국은 혼란의 연속이었다. 보통구역의 행성들은 만성적인 내전에 시달렸고 중앙정부도 7번의 쿠데타를 경험할 정도로 혼란에 빠졌다. 신 제다이 기사단은 정치구조 개편을 통해 문제의 원인 해결을 추구하기 보다는 겉으로 들어나는 민중의 고통만 치유하는 대증요법만 지속하고 있었다. 그에 비해 펠 제국은 제가드 펠의 선정 덕분에 이러한 혼란 속에서도 안정되고 번영을 누리고 있었다.

제국기사단

포스 유저로 제다이였던 로안 펠신 제다이 기사단의 소극성에 환멸을 느끼고 아버지의 왕국으로 돌아갔다. 그를 따라 72명의 다른 제다이들도 신 제다이 기사단을 떠났고 로안 펠과 함께 제국 기사단을 창설하있다. 제국 기사단은 펠 가문에 충성하는 라이트 사이드 포스 유저들로 제국에 충성하는 방식으로 라이트 사이드 포스를 섬길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이들은 펠 제국에 매우 충성스러운 포스 유저들이있다. 또한 펠 제국향토방위함대라는 명목으로 군사력을 증강하였다. 이 함대들은 펠 함대들로 불렸고 당시 은하계에서 가장 강력한 함대중 하나가 되었다.이러한 제국기사단의 이상주의와 펠 함대의 무력을 바탕으로 펠 제국은 일반구역으로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

1.10.2 시스 다스 케이더스의 집권

한편 찬드릴라 공화국 수도에서는 다시 쿠데타가 발생했다. ABY 250년 찬드릴라 공화국의 마지막 민주정부인 사로 도돈니 정부가 무너지고 전직 제다이 장성 제이센 스카이워커가 집권했다.(다스 케이더스 쿠데타) 제이센 스카이워커는 사실 다스 케이더스로 다크 사이드에 빠진 시스였다.

제이센 스카이워커는 과거 팰퍼틴처럼 청럼결백하고 강직한 지도자 이미지를 대중에게 심어주며 자신의 권력 기반을 다졌다. 그리고 자신의 정적이 될 수 있는 정치인들을 암살해버렸다. 그렇게 케이 모스마와 같은 공화국 최후의 민주정치인들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1.10.3 반 시스 연합의 대두

다스 케이더스의 폭정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원하는 시민들의 반발을 불러왔고 이들은 다스 케이더스의 폭정에 반발해 공화국 함대에서 이탈한 기다 히로시 제독의 공화국 제3 함대를 중심으로 자유전선을 만들어 다스 케이더스 정권에 항거하기 시작했다. 신 제다이 기사단도 민중의 고통을 더 이상 무시할 수 없었다. 그래서 신 제다이 기사단은 은하계의 정치에 관여한 필요성을 느끼고 자유전선과 연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펠 제국에서는 자가드 펠 황제가 죽고 로안 펠이 황제가 올랐다. 그는 전직 제다이으로서 다크 사이드를 패배시켜 은하계에 평화를 회복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제국 기사단도 라이트 사이드의 신봉자들이어서 다크 사이드를 패배시키기 위해 다스 케이더스의 ‘타락한’ 공화국에 대해 ‘성전’을 벌어야 한다고 황제에게 청원하였다. 결국 자유전선, 제다이, 펠 제국은 연대하여 반 시스 연합을 창설하고 시스 타도를 결의했다.

1.10.4 시스 공화국

반 시스연대는 시스에 반대하는 공화국 군대와 정치인들을 규합시켰으며, 세력을 키워 나갔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공화국이 사실상 시스공화국으로 나아간다고 알렸으나... 수많은 사람들은 혼란이 멈춘 신 독재체제를 옹호했다.

'그들은 몰랐으리라.그들의 옹호가 공화국의 멸망을 불러올 줄은.' 훗날의 역사학자들은 말했다.

여전히 사람들의 지지를 받은 제이센 스카이워커는 이미 반 시스 연대가 성립되기 전부터 시스제국의 기반을 다져놓은 상태였고, 시스제국에겐 의회는 걸림돌 밖에 되지 않았기에, 결국253년을 이어온 찬드릴라 공화국 의회가 해산되었다. 이와 함께 시스를 불태울 최후의 불씨인 자유연합은하연맹 또한 사라졌다.

완벽한 1인 독재체제가 된 것이다.

이를 안 반 시스 연대는 마침내 공화국 영토를 무력 점거하기 시작하며 전쟁을 선포하였다. 의회를 해산했다는 것을 알은 반 시스 연대군의 분노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컸다.

이들은 성공적으로 이너 림 지역까지 침공했으나, 그때부터 찬드릴라 공화국군에게 밀리기 시작했다.

아니, 시스 공화국에게 말이다.

ABY 253년 11월 7일 오후 2시 02분, 한때 공화국의 수도이자 민주주의의 성지였던 코루스칸트에서 찬드릴라 공화국의 해체와 시스공화국의 성립이 선포되었다.

마침내 시스와 제다이, 타락한 공화국 대 진보된 제국, 전체주의 대 입헌주의의 전쟁, 즉 제 2차 은하내전이 시작되었다.

1.11 제 2차 은하내전과 공화국의 멸망

2. 정치구조

2.1 입법부

2.2 행정부

2.3 사법부

2.4 행성정부

찬드릴라 공화국에서 행성정부의 독립성이 매우 컸다. 중앙정부의 권한은 항성간 문제과 안보문제에 국한되었다. 찬드릴라 헌법은 중앙정부의 권한만 열거하고 나머지는 행성정부의 권한으로 규정하여 중앙정부가 사실상 행성들의 내정에 개입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법률에 의해 제한되어 있기는 했으나 행성 정부들은 막강한 향토방위함대를 가졌다. 이 때문에 중앙정부는 민주공화정인데 행성정부들 중 비민주적 정권들이 이외로 많이 있었다. 또한 공화국 초기 여러 제국 군벌들이 자유군단이라는 이름으로 공화국에 가담하는 대신 자신들의 구역내 기득권을 인정받아 신질서 성향의 행성정부가 있는 경우가 있었다. 이에 따른 ‘특별구역’ 의 제국성향 행성정부와 중앙정부의 갈등과 특별구역내 민주화 운동이 찬드릴라 공화국의 고질적인 문제가 되었다. (특별구역 문제) 또한 행성정부는 헌법상으로는 공화국에서 탈퇴할 권한도 가졌으나 이는 의회의 허가가 필요해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리고 의회는 2/3 찬성으로 자치권을 박탈하여 행성정부를 해산하고 관선지사를 파견할 권한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합법적 독립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2.5 신 제다이 기사단

2.6 찬드릴라 공화국 역대 정부

1. 몬 모스마정부 -신공화국 200년 기반을 다진 위대한 정부

2. ?

3. 라네버 빌레캄정부 -무능한 민주정부


3. 사회

4. 과학기술

4.1 진보의 시대

4.2 포스 물리학

5. 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