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드릴라 헌정위기

Freewhale (토론 | 기여)님의 2019년 2월 21일 (목) 00:25 판
이 문서는 스타워즈K-1의 공식 설정입니다.
1.25 폭동

포격받아 불타는 의회의사당.
날짜 ABY 9년 4월 13일-ABY 9년 4월 20일
위치 찬드릴라 행성 전지역과 일부 기타 행성들
원인 몬 모스마 정부의 찬드릴라 헌법 선포 강행
결과 인민전선 분열, 인민전선과 공화국 정부 관계 악화
피해
사망자 1121 명
부상자 3241 명

Chandrila constitutional crisis

출범하기도 전에 찬드릴라 공화국을 파멸시킬 뻔 한 최악의 헌정위기

인민전선과 공화국 정부와 관계가 악화되는 결정적 계기

찬드릴라 헌정위기(Chandrila constitional crisis)는 ABY 8년 4월 13일 부터 ABY 8년 4월 20일 까지 신 공화국 정부와 "인민국가"간 무력충돌 사건이다. 신 헌법에 반발한 인민전선 과격파가 소라 파티산 지휘하에 봉기하여 인민국가를 선포하고 신 공화국 정부를 전복을 시도한 사건이다. 다행히도 찬드릴라 공화국 회원국 정부들 중 아무도 가담하지 않아 찬드릴라와 기타 일부 행성들에서 발생한 봉기가 빠르게 진압되는 것으로 끝났다.

1. 배경

ABY 8년 GTC는 제헌회의를 총선을 계속해서 미룰 수 없다고 판단하고 선거가 가능한 지역에서만 이라도 총선을 진행하기로 하였다. 이 선거에서 몬 모스마은하 공화당이 제1당이 되었으나 인민전선법치연합에 밀려 제 3당이 되었다. 인민전선은 이러한 선거 결과에 큰 불만을 가졌다. 법치연합은 "전향"한 구 제국관료들이 많이 참여한 정당으로 은하 내전기간에 거의 기여가 없었다. 하지만 인민전선은 내전기 가장 피해를 많이 보았기 때문에 이러한 선거 결과가 불공평하다고 느꼈다. .

또한 이 헌법 제정과정에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몬 모스마를 중심으로 한 "시민주의자들"(Populist)은 은하 제국 성립 이전의 은하 공화국의 은하 헌장(Galactic Charter)를 바탕으로 헌법 제정을 원했다. 자유시장경제, 강력한 지방 분권, 작은 중앙정부, 비무장화로 대표되는 구 은하 공화국체제를 원했다. 즉, 구 공화국의 부활을 시도하였다. 이 것은 많은 시민주의자들은 제국의 초기 부터 정치적으로 "위대한 공화국"으로 복귀를 시도한 구 은하의회 의원들인 것에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이는 "중앙주의자"(Centrist)와 "인민전선"(Popular Front)의 반발을 샀다.법치연합으로 대표되는 중앙주의자들은 클론전쟁의 원인을 약한 중앙정부가 지방 토호들의 준동을 막지 못해 분리주의자 사태가 발생한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그들은 작은 중앙정부와 비무장화에 반대하였다. 그래서 중앙정부의 역할 확대와 치안 유지를 위한 강력한 함대 유지를 요구하였다.하지만 그들은 제국의 국유화 정책 폐기에는 반대하지 않았다. 이는 많은 중앙주의자들이 강력한 중앙정부의 유용성과 계획 경제의 실패를 목격한 구 제국의 문민관료들인 것에서 비롯되었다.인민전선은 구공화국으로의 귀환을 원치 않았다. 그들은 “인민 국가”(Popular State)를 원했다. 인민국가는 행성 정부 해체, 중앙집권화, 국유화, 계획경제를 통해 전통적인 코어 월드(Core World)의 엘리트와 지방 토호들을 타도하여 평등을 달성하려는 국가체제있다. 이 때문에 그들은 제국의 국유화나 중앙집권화 정책, 제다이 숙청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았다. 그들이 제국에 항거한 이유는 제국 정부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고 인간우월주의 사상에 찌들어 외계인들을 노예화 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혼란은 신구 한비(Singu Hanbi)이끄는 법치연합과 몬 모스마의 은하 공화당이 군사적 목적의 함대 유지와 ILE 상설화에 합의하고 제국에 의해 국유화된 산업체들의 민간으로 이양하기 실시하자 인민전선의 더욱 반발하기 시작했다. 구 공화국 헌법에 의회의 권력 제한, 사법부 권한 확대, 이익단체의 의회 대표자 파견 금지 정도만 추가한 신 헌법이 제헌의회의 80%의 동의를 얻어 통과하자 인민전선 의원들이 모두 사퇴하고 신 헌법을 무효라고 선언하였다. 이에 몬 모스마 내각은 GTC 헌장에 헌법 제정에 제헌의회 2/3 동의만 있으면 된다는 규정을 들어 헌법 공포를 강행하였다.

2. 발단

몬 모스마 최고의장이 신 공화국 헌법 공포를 강행하고 선거일을 공고하자 인민전선 지도부는 혼란에 빠졌다. 당시 지도부는 온건파인 라노 스텔리(Lano Stenli)가 이끌고 있었는데 그는 몬 모스마가 나약한 지도자로 생각하고 헌법 공포를 강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몬 모스마 최고의장은 강행을 했고 이에 인민전선의 온건파 지도부의 위신은 땅에 떨어졌다. 이에 인민전선에서 불온한 분위기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이에 온건파 지도부는 비상 총회를 열어 분위기를 추스리고 향후 투쟁방향을 결정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막상 총회가 소집되자 혼란 상황이 수습되기는 커녕 더 심해졌다. 강경파들은 총회에서 지도부 사퇴를 촉구하였고 무장투쟁 시작을 요구하였다. 하지만 지도부는 사퇴를 거부했다. 이에 인민전선 과격파들은 자신들만의 지도부를 구성하였고 소라 파티산을 당 대표로 선출하였다. 이러한 당내 이중권력사태가 발생하자 온건파 지도부는 GTC에 중재를 요청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는 과격파들을 더 분개하게 만들었다. 이에 코라 스톤(Corry Stone)이란 과격파 열성당원이 찬드릴라 하나 시티에 있는 당사에 들어가 총기난사를 하여 라노 스텔리를 비롯한 온건파 지도부를 사살하였다. 이에 GTC는 과격파 지도부를 폭력단체로 규정하고 체포에 나섰다.

3. 전개

이렇게 사태가 악화되자 인민전선 과격파 지도자 소라 파티산은 평화적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보았고 무력으로 GTC를 제압하여 자신들의 "혁명"을 완수하려고 하였다. 그 당시 찬드릴라에는 2개 정규군단과 찬드릴라 향토방위함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그리고 찬드릴라 행성계 외곽에는 구 제국 제33함대인 자유군단 제1함대가 자쿠 공세를 마치고 보급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콤그라드등 여러 노동자 거주 지역을 중심으로 친 인민전선 성향인 준군사조직들이 있었다.또한 찬드릴라 주둔하고 있던 2개 정규군단도 제 4 포병 군단과 제 13 보병군단으로 친 인민전선 성향이 강했다. 이에 서라 파티산은 찬드릴라 향토바위함대는 쉽게 제압되고 자유군단은 투입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봉기를 계획하였다. 인민전선은 정규군단들의 지휘관들을 포섭하는데 성공하였고 친 인민전선 준군사조직들도 포섭하였다. 그리고 ABY 4월 13일, 소라 파티산(Sorra Partisan)등 인민전선 과격파들이 봉기하여 “인민국가”를 선포하고 신 공화국 헌법을 무효라고 선언했다. 이에 호응하여 콤그라드 인민방위대등이 찬드릴라의 일부 공업도시들에서 봉기하였다. 이에 찬드릴라 경찰과 준군사조직들이 충돌하여 찬드릴라 주요 도시들에서 시가전이 벌어졌다.이러한 혼란을 진압하기 위해 GTC는 찬드릴라 전역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군 투입을 결정하였다.

혼란에 빠진 찬드릴라

4. 절정

불타는 의회의사당
포격을 맞은 하나시티
하나 시티 공항을 장악한 인민국가의 제4 포병군단병사들
콤그라드에 진입하는 자유군단

5. 결말

5.1. 찬드릴라 헌법의 안정화

5.2. 인민전선의 분열 및 해산

6. 실패 원인

7. 여파

8. 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