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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황제국
도급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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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의 도 및 황실 수도
천경도
天京道 | Province of Imperial Capital
도기 문장
도청 소재지 천경특별시 남산구 운종로 1
하위
행정구역
1개[1]
3개[2]
면적 741.2km2
인구 1,264만 1,100명[3]
인구밀도 17,054.91명/km2
민족 구성 조선인 77.2%, 외국인 10.7%, 일본인 4.3%, 만주인 3.0%, 중국인 2.5%, 기타 2.3%
GDP $1조 681억 7,295만
1인당 $84,500
제도후 조주룡
도지사
헌의영 (재선)
도의회
(194석)
108석
37석
31석
9석
3석
3석
무소속 3석
국회의원
(19석)
11석
6석
2석
지역번호 02
ISO 3166-2 KR-601
위치

개요

조선 관구에 위치한 제2급 행정구역. 천경이라고 하면 보통 천경특별시를 가리키지만 더 넓은 단위인 천경도를 가리키기도 한다.

동경현급시에 이은 부여 제2의 도시이자, 정치적 중심지로 부여 황제가 기거하는 궁이 있는 황실 수도이다.

명칭

천자가 머무는 도시라고 하여 천경(天京)이라는 다소 거창한 이름이 붙었다. 과거에는 한성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었으며, 서울이라는 순조선어 어휘 역시 빈번히 사용된다. 황제가 머무는 도시라고 하여 제도(帝都)라는 별명도 있다.

영어로는 Cheongyeong이라고 쓰지만, 읽기 어려운 이름이기 때문에 Imperial Capital(임페리얼 캐피톨; 제도)라는 번역 명을 더 많이 사용한다.

역사

본래 백제 시대 때부터 위례성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하였으며, 삼국시대 때는 한강 유역을 두고 삼국의 치열한 전쟁이 이뤄지기도 하였다. 그만큼 중요한 무역 도시였으나, 본격적으로 수도 역할을 하기 시작한 것은 1392년 조선 건국 이후이다. 조선 건국 직후 이씨 왕조는 수도를 개성에서 한강 유역으로 옮긴 뒤 도시의 이름을 한양 혹은 한성이라고 하였다. 이후 임진전쟁 등 몇차례의 전란을 겪으면서 도시의 규모가 축소되었다 팽창되었다를 반복하였으나, 19세기 조선의 멸망때까지 조선 내 최대의 도시이자 경제, 정치, 문화의 중심지로서 역할을 다했다.

1812년 부여 황제국의 설립 이후로는 수도를 굳이 옮기지 않고 이곳을 계속 수도로 삼았다. 19세기 후반 문호를 개방한 부여의 중심 도시 답게, 1850년대 이후 한성은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여 동아시아 내에서 가장 발전된 도시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당연히 인구는 폭증하였고 기존 한성의 면적으로는 그 많은 수도의 인구와 정부 기관, 그리고 행상인들을 수용할 수 없음을 인지한 제국 정부가 인근의 고을들을 합병한 이후 천경부라는 이름으로 관리하게 함으로서 현재와 같은 모습의 경계가 완성되었다. 본래 한성에 속하던 지역은 천경부 한성시라고 불리었으나, 1926년 행정구역상 혼동이 잦다는 이유로 한성시가 폐지되고 별도의 행정구역을 두지 않은채 천경도의 직할 행정에 두도록 하였다. 그러다가 1950년, 세종 황제의 칙령 행정구역 대개편이 이뤄짐에 따라 다시 한성시의 행정구역을 부활시키면서 천경특별시라는 이름이 붙여져 현재와 같은 행정구역에 이르고 있다.

그 외의 지역들은 구 한성에 붙어있는 위성도시에 지나지 않았으나, 1970년대 부여의 폭발적인 경제 성장와 강남 늪지대의 간척, 한강 복개 사업 등과 맞물려 천경은 천지개벽이라는 말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는 엄청난 발전을 겪었다. 갯벌과 숲이 가득했던 잠실, 언주 일대에 고층 아파트들과 회사 건물들이 들어섰으며 위성도시의 팽창은 1990년대 동남아시아발 경제 위기 직전까지 이어져 토건 붐을 일으켰다.

지리

구시가지인 천경특별시 지역을 중심으로 도넛처럼 인구가 분산되어있다. 본래 천경특별시 지역이 중심지였으나, 지가가 너무나도 비싼 탓에 현재는 극히 일부의 고위 공직자 및 사회 지도층을 제외하면 자가를 두고 천경 구시가지에 사는 것은 거의 꿈과도 같은 일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시민들은 언주현, 시흥현, 숭신현 등의 배후 도시에 집을 두고 경제 중심지인 천경특별시 지역으로 출퇴근하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천경특별시 지역은 대체로 천경도 그 자체와 구별하기 위해 구한성 지역, 혹은 황거지역으로 불리기도 한다.

하위 행정구역

경복궁 등 황제가 기거하는 궁궐의 경우, 특정한 하위 행정구역에 속하지 않으며 천경도의 직할 행정에 속하게 된다. 그러나 이 역시 명목상에 지나지 않으며 경복궁, 동궐, 서궐 모두 황제가 직접 다스리는 영토로 분류되기 때문에 궁궐은 행정구역법은 커녕 그 어떠한 법에도 얽매이지 않는 치외법권 지역이다.

정치

2022년 천경도지사 선거 지역별 결과
정딩
격차 투표율
후보 헌의영 박주민 (1위/2위) (선거인/표수)
득표수
(득표율)
4,848,255
(58.65%)
3,101,028
(37.52%)
1,747,227
(△ 21.13)
8,265,721
(76.97%)
천경특별시 76.77% 19.86% △ 56.91% 87.4%
언주현 69.31% 26.78% △ 42.53% 76.6%
시흥현 48.11% 48.27% ▼ 0.16% 75.4%
숭신현 52.75% 42.94% △ 9.81% 74.7%

부여는 대도시에서 자민당을 위시로 한 야권 정당의 당세가 강하고 제정당부여국민당 등의 여권 정당은 힘을 못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사회 고위층과 부유층, 그리고 황실 관계자가 인구의 상당수 파이를 차지하고 있는 천경에서만큼은 제정당이 야권 세력에 비해 확실한 우위를 가지는 모습을 보인다.

부여의 총리대신격인 직위라고 할 수 있는 태정령막군은 본래 천경특별시의 제후직이다. 천경도 자체의 경우에는 후작위에 속하는 제도후(帝都侯)가 따로 있다. 물론 민선으로 선출되는 도지사도 있기 때문에 여느 행정구역과 마찬가지로 천경도도 황제가 임명하는 제후와 시민이 선출하는 도지사가 행정권을 양분하는 느슨한 이원집정부적인 구조로 되어있다.

경제

부여 경제의 중심지이다. 인구는 동경현급시가 더 많기 때문에 총 GDP에서는 동경에 약간 밀리나, 산업적인 측면에서 놓고 봤을때는 반도로 붙어있어 대륙 진출이 유리한 부여가 더 우위에 있는 편이다.[4]

세계 금융의 중심지중 하나이다. 천경특별시 종로구에 위치한 천경금융거래소는 뉴욕 금융거래소에 이은 세계 제2위의 금융 거래소로 그 명성이 높다. 부여 유수의 재벌 기업들도 대부분 천경 지역에 본사를 두고 있다.

다른 부여의 대도시들과 마찬가지로, 구도심과 신도심 그리고 배후 지역으로 이뤄져있는 구조이다. 다만 천경의 경우 신도심이라고 할 수 있는 언주현 일대는 일부 대기업들만이 위치해있고 그 외에는 고가의 주상복합아파트가 밀집한 구조인데 반해 구시가지인 천경특별시 지역에 대부분의 기업과 중앙 정부 시설이 몰려있어 구도심이 신도심에 비해 경제적인 우위권을 가지고 있다.

여담

각주

  1. 천경특별시
  2. 언주현, 시흥현, 숭신현
  3. 2022년 주민등록인구 통계
  4. 물론 이 역시 태평양에 접해있어 횡빈항횡수하항을 통해 미국과의 교역이 유리한 동경에 비하면 특별히 더 고지에 있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