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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ublik Czechia-Slovakia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
국기 국장
표어 Frieden in deinem Land
조국에 평화를
국가 Wo ist mein Vaterland?
내 조국은 어디에?
파일:Belgium in SZSL.png
수도 프라하
최대 도시 프라하
정치
공용어 독일어
대통령 안드레이 바비시
총리 이반 바르토스
역사
정부수립  
 • 건국 1992년
시간대 UTC (UTC+2)
인구
2019년 어림 3,953,822명
경제
 • 일인당 30,291$
HDI 0.766 2013년 조사)
통화 유럽 유로 (EU)
기타
도메인 .cz
국제 전화 +025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독일어: Republik Czechia-Slovakia) 줄여서 체코(체코어: Česko)는 중앙유럽에 있는 공화국이다. 북서쪽과 서쪽은 독일, 남쪽은 오스트리아, 남동쪽은 슬로바키아, 북동쪽은 폴란드와 닿아 있다. 수도는 프라하이고, 주요 도시로 브라티슬라바, 브르노, 오스트라바, 즐린, 플젠 등이 있다.

체코는 크게 보헤미아(체히), 모라바, 실레시아(슬레스코), 슬로바키아 네 지방으로 나뉜다. 1999년 3월 12일에는 NATO에 가입하였으며 2004년 5월 1일에는 유럽 연합의 정회원국이 되었다. 이 나라의 민족 구성은 대부분이 서슬라브족에 속하는 체코인으로 인구의 60% 정도를 유지한다. 슬로바키아인은 두 번째로 주요한 민족으로, 40%가량을 차지한다.

역사

9세기 말부터 14세기 초까지 프르셰미슬 왕조가 다스렸다. 이후 룩셈부르크 왕조가 다스리는 중에 카렐 1세가 신성 로마 황제 카를 4세로 즉위하였다.

15세기 이후 후스파의 종교 개혁이 격렬하게 전개되었다. 17세기의 보헤미아는 로마 가톨릭 국가였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 하에 있었고,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 양쪽 교도들 사이에 여러 차례 불협화음이 일어났으나,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들은 개신교도의 세력이 크다는 것을 인식하고 신앙을 인정해 주었다. 이후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겸 보헤미아의 왕 마티아스(황제 재위: 1612~19년, 보헤미아 왕 재위 : 1611~17년)도 양쪽 진영에 대한 융화 정책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열렬한 로마 가톨릭 교회 신자인 페르디난트 2세는 보헤미아 왕에 선출(재위: 1617~37년)되는 동시에 개신교에 대한 탄압을 실시했다. 그 와중에 프라하 대주교령에 있던 개신교 예배당들이 철거되었고, 개신교 신자들은 이에 항의하였으나 묵살되었다. 결국에는 탄압에 반발한 개신교 시민들이 프라하의 왕궁을 습격해 국왕 고문관 3명을 왕궁의 창문에서 던져버리는 프라하 창밖 투척사건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으며(1618년), 개신교 신자인 보헤미아 제후는 이 사건을 계기로 단결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이것이 30년 전쟁(1618~48년)의 시발점이 되었다.

반란군 제후들은 다른 개신교 제후에게 협력을 호소하였고, 개신교 제후 연합의 찬성을 얻어냈다. 황제 마티아스가 사망하고(1619년), 보헤미아 왕 페르디난트 2세가 신성 로마 제국 황제도 겸임(재위: 1619~37년)하게 되자, 보헤미아의 제후들은 페르디난트 2세를 황제로 인정하지 않고, 개신교 제후 연합의 중심적 존재였던 팔츠 선제후 프리드리히 5세를 의회에서 보헤미아의 왕(재위: 1619~20년)으로 선출하고 황제에게 대항하였다.

하지만 개신교 동맹측이 개혁파 교회(Reformed church)와 루터교회의 대립으로 발이 묶인 사이, 황제 페르디난트 2세는 로마 가톨릭 교회 세력의 연대를 강화해 교황의 원조금과 스페인-합스부르크 왕가의 지원군 및 바이에른 대공 막시밀리안 1세(재위: 1623~51년) 등의 로마 가톨릭 교회 제후의 원조를 받아 틸리 백작 요한 체르클라에스를 사령관으로 임명하여 군대를 파견했다.

사실상 로마 가톨릭 교회 동맹세력이 우위를 차지함으로써 이 시점에서 승부는 이미 결정되었다. 1620년 11월 8일 개신교 동맹측의 보헤미아군은 백산(白山) 전투에서 틸리 백작이 이끄는 로마 가톨릭 교회 동맹군에게 괴멸적인 대패를 당했고, 보헤미아의 수도 프라하는 저항하지 못하고 항복했다. 이후 합스부르크 왕가의 보헤미아 지배는 강화되었다. 곧이어 1627년 신(新)영지조례법에 의해 의회는 권력을 모두 빼앗기게 되어 사실상 속령이 되었다. 이로 인해 다수의 보헤미아 귀족 및 개신교도가 망명하여 유럽 각지로 흩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합스부르크 왕가에 의한 재산몰수 및 국외추방이라는 가혹한 전후 처리는 다른 개신교 제후의 이탈을 초래하게 되었고, 전쟁이 장기화하게 된 원인이 되었다. 전쟁 이후 신성 로마 제국의 로마 가톨릭 지배가 강화되었고 그대로 신성 로마 제국의 제위(帝位)를 독점한 오스트리아-헝가리가 체코를 1933년까지 지배하였다.